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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용사
작품등록일 :
2022.02.17 13:58
최근연재일 :
2022.03.1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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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2.19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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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 헬중세 이민(3)

DUMMY

“서전트 키마누. 출근합니다.”

“늦으셨구려. 키마누 왕자.”


지휘 막사에 들어서자 꼰꼰한 노기사가 못마땅한 시선을 보냈다. 이 심술궂은 인상의 할배는 근위대장 라스칼 군주로 한국군 계급으론 대대장에 해당한다. 서전트인 나는 소대장 정도다.


“왜 이렇게 늦으셨소?”


라스칼은 늘 그렇듯 짜증을 냈다. 무릎에 화살을 맞고 후방으로 전출된 사람이라서 그렇다. 매사에 불만에 가득 차 있지.


“서전트로 승진하자마자 지각이라니! 마땅히 병사들의 모범을 보여야 할 분이 무슨······”

“결투입회를 하고 오는 길입니다.”

“허! 결투 입회? 외지인이 무슨······”


나는 말없이 황금 그리폰이 새겨진 왕실의 증명서를 내밀었다. 그러자 라스칼은 뚱한 표정을 짓는다.


“······늦었으니 근무나 하러 가보시오.”


라스칼 군주는 시선을 돌려 어린 종자와의 카드놀이에 열중했다. 나는 응대받지 못하는 경례를 하고, 지휘 막사를 나섰다.


‘일 안하는 책임자들은 이쪽 세계나 저쪽 세계나 똑같구만. 우리부대 대대장도 비밀번호도 나한테 알려주고 자빠져서 폰만 봤는데.’


지휘막사를 나오자 바다의 내음이 코를 찔러오고 눈에는 웅장한 무역항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드높은 등대와 하얀 성벽, 커다란 접안 시설이 인상적이었다.


‘입대 초기엔 이 풍경에 가슴이 벅차올랐지.’


나는 꿈 많던 10대에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플레이하면서 선원들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부와 성공을 쫓아, 무역품을 한가득 싣고 거친 바다를 가로지르는 바다의 상남자들!


‘바다의 상남자가 아니라 맨날 사고 치고 다니는 술주정뱅이 새끼들이었지만.'


낭만이 넘치는 파도 소리는 이제 듣기만 해도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휴가철에 보던 바다와 군대에서 보는 바다는 같을 수가 없던 것이다.


‘오늘 새로 입항한 배가 갤리선 네 척에 범선 한 척. 저거 짐수색하려면 정시퇴근은 글렀네.’


게임에선 그냥 항구에 도착하면 무역품이 뚝딱 팔리던데, 직접 해보니까 경비병들의 많은 수고가 있던 모양이다. 저거 까볼 생각을 하니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디 짱박혀서 낮잠이나 잘까?’


그럴만한 짬도 되고, 마침 결투를 보고 왔다는 명분도 있으니 빼려면 뺄 수 있었다. 쩝. 그래도 장교 계급장 달고, 아래 애들만 고생시킬 순 없는 노릇이다. 지휘관이면 같이 고생은 해줘야지.


‘승진하니까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야.’


일하기 싫다. 월급 루팡으로 지내고 싶다······


* * *

“제 1초소! 화물 하역은 잘 돼 가나?”

“국왕 폐하 만세! 서전트님! 어서 오십시오!

“국왕 폐하 만세! 모두 키마누 왕자님이 오시길 목 빼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두에 도착하자 산더미처럼 쌓인 화물 상자들과, 정감 넘치는 부하 놈들이 반겨줬다. 모두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놈들이다.


그런데, 놈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난다. 내가 아니라 내가 가져온 소식이 기다려졌던 모양이다.


“왕궁에서의 결투는 어찌 됐습니까?!”

“소드마스터 가리온 경이 이기셨지요?!”

“젊은 것들은 이래서 문제야! 태양신님의 축복을 받으신 로드릭 경께서 이기셨겠지!”

“요즘 기사 싸움은 힘보다는 기교라고요!”

“무슨 망발이야! 소드오러는 귀쟁이들의 잔재주지만 축복은 신들께서 내리신 힘이다! 당연히 로드릭 경이 이겼겠지!”


애들아. 그래도 국가 요인이 사망한 사건인데 이걸 무슨 롤챔스 맞다이마냥 말하면 곤란하지 않냐. 사람 목숨 오가는 싸움이 무슨 게임도 아니고.


‘정말 좋은 녀석들이지만, 이렇게 헬중세의 문화 컬쳐가 올 때면 거리감을 느낀다고.’


그래도 이건 중대한 소식이라 제대로 전달해야한다. 나는 헛기침을 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오았다.


“오늘부터 우슈르테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칼라야 공주님이야. 그리폰하트 왕실 만세.

““아,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결과가······””

““성전사왕 엘다니온과 칼라야 공주 만세!””


부대원들의 절반은 환호를, 나머지 절반은 참담한 한숨을 내쉬었다. 지지하는 정치적 파벌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 것이다.


‘총선 결과가 나오면 주변이 늘 이랬지.’


이번 결투 결과는 칼라야 공주의 파벌이 당분간 왕국정치를 주도할 것을 의미했다. 한국으로 치면 총선 결과가 나온 셈이다.


헬중세의 평민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있고, 활발히 정치적 참여에도 관심을 지니더라. 차이점은 투표를 검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1인 1표의 원칙은 없어도 1검 1표의 원칙은 있더라고. 아무리 신분제 사회여도 무력을 지닌 이들의 여론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물론 같은 1검도 실력이나 신분에 따라 표의 개수가 달라지긴한다. 동네 청년의 1검은 1표에 불과하지만 훈련 받은 병사면 5표, 기사는 100표, 소드마스터는 1000표는 된다.


즉, 우슈르테툼은 어디서나 무력에 따라 발언권이 결정되는 살벌한 사회다. ‘장검 민주주의’ 체제 정도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보다 왕자님.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부하들이 갑자기 한통속이 되어 모여들어, 무척 진지한 태도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실제로는 누가 더 예쁩니까?”

“·········”

“실제론 공주님과 여백작님 중에 누가 더 이쁜 분이 누구입니까?”

“당연히 꽃다운 나이의 여백작님이시지!”

“그래도 완숙한 공주님에 비할 바는 아니지!”

“·········그건 말이지.”


에라이. 이 모자란 놈들은 왜 외국인 보고 자꾸 지들 정치인 서열을 정해달란 건지 모르겠다. 뭐라고 둘러대면 좋으려나······


“이 새끼들이 빠져가지고는!”

“배, 백인대장님?!”


빠악!


난데없이 나타난 근육질의 사내가 신병의 뺨싸대기를 후렸다! 병사의 이빨이 부러지며 바닥을 뒹굴었다.


“아아악!”

“해골 원위치!”

““원위치치치이이이이!””

“니들 상관은 짐 내리고 있는데 이 새끼들은 떠들고 있어?! 전부 대가리 박아! 당장!”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군생활 끝나야아아아!”

““아닙드아아아아악!””


우리 제 1초소 전부가 재빨리 대가리를 박았다. 이 모자란 새끼들 때문에 내가 왠 고생이냐! 끝나고 아주 작살을 내버려야······


“잠깐! 왜 왕자님도 대가리를 박으십니까?”

“부하가 잘못을 저질렀으니 지휘관도 책임을 져야지요!”

“끄으으응·········”


백인대장은 당혹스럽게 한숨을 쉬더니 손바닥을 까딱까닥 올린다. 제 1초소 전원이 기상했다.


“왕자님만 남고 전부 짐을 나르러 가도록.”

““성전사왕 엘다니온 폐하 만세!””


제 1초소 대원들은 쌓인 화물상자로 걸어갔다. 백인대장은 나를 데리고 한적한 곳으로 가더니, 꾸벅 고개를 숙였다. 부담될 정도로 정중했다.


“왕자님께 이 천한 놈이 본의 아니게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닙니다. 명령권자로서 합당한 지시를 하셨을 뿐입니다. 부하관리를 못한 제 불찰이지요.”


내가 손사래를 쳐도 백인대장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다양한 세파를 겪은 험상 궃은 사내임에도 표정에 미안함이 묻어나왔다.


“아무리 명령권자라도 어떻게 평민이 왕족에게 고함을 치겠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누구였든 우슈르테툼 근위대에선 한 명의 서전트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편히 대해주십시오. 백인대장님.”

“허허. 이것 참······”


하룬의 얼굴에 난처함과 대견함이 함께 보였다. 내 자세는 마음에 들지만 정말로 편히 대하기엔 신분의 장벽이 가져다주는 부담이 커보였다.


‘신분에 대한 의식이 뚜렷한 사회니까.’


한국 정서로 치자면 60대 외국인이 회사 후임으로 들어온 상황, 일도 잘하고 인간 관계도 원만하다면 함부로 대하기 어려울 터이다.


“그렇다면 남들 앞에서는 가능한 한, 똑같은 처우를 해보겠습니다. 요즘 왕자님을 두고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있긴 하니까요.”


역시 그렇단 말이지.


“수군거리는 이유가 뭡니까?”

“왕자님께서 서전트 승진에서 특혜를 받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서전트 자리를 노리던 고참병들이 많았으니까요.”


서전트는 소대장 정도 되는 지위로 근위대에서는 ‘1개 초소’를 지휘한다. 일단 말단이어도 장교 계급이기에 노리는 사람이 많다. 헬중세에서 신분 상승을 노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 군인이거든.


‘굴러온 돌이 박힌 돌보다 잘 나가면 배알이 꼴리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아무리 내가 왕족이란 풍문이 있어도, 뒷말이 안 나오긴 어렵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꼬우면 지들이 나보다 일을 잘하면 될 문제다.


“하지만 그런 주제도 모르는 상놈들 말은 신경쓰실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왕자님의 활약은 알 사람은 알고 있으니까요.”

“지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믿음에 활약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럼 저도 이만 화물 하역 작업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국왕 폐하 만-”


내가 경례 구호를 붙이려는 순간, 백인대장 하룬이 손을 내저어 내 행동을 멈추었다.


“왕자님께 맡길 특별 임무가 있습니다.”

“특별 임무, 말입니까?”

“예. 제 2초소 놈들이 어제 야간방범을 나갔다가 아직까지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탈영병으로 간주해서 모조리 체포해야합니다.”

“제 2초소장은 근위대장의 조카잖습니까?”


내 대답에 하룬은 골치아프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결심을 내리고 청동 지휘봉을 내밀었다. 백인대장의 지휘권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그래도 탈영만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줄빠따를 쳐서 확실히 군율을 바로 잡아야합니다.”


하룬은 유독 ‘줄빠따’라는 말을 강조했다. 제 2초소가 근위대장 빽을 믿고 문제를 일으킨 게 한 두 번이 아니라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탈영은 좀 심했지.’


지시 불이행이나 경계 근무 태만까진 못 본 척을 해준다고 해도, 탈영은 못 본 척 하기엔 너무 눈에 띄는 군기문란이었다.


“그럼 약간은 거칠게 다루겠습니다.”

“얼마든지요! 불구가 되지만 않게 해주시죠.”


내가 돌아서려고 할 무렵.


“아. 요즘 왕자님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중심이 다름 아닌 제 2초소장입니다. 얼마 전에는 ‘거지왕자’라는 별명을 만들었더군요.”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제 2초소장은 나한테 텃세와 내무부조리를 워낙 심하게 부려서, 감정의 골이 아주 깊게 패인 상태였다. 똥군기는 오지게 잡고 파벌 싸움만 하면서, 정작 근무태도나 싸움 실력은 형편 없는 선임이랄까.


‘그래도 뒷빽이 워낙 강력해서 마찰 없이 지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는데, 이젠 아예 나에 대한 음모를 작당하고 있었군.’


이건 제 2초소장의 삼촌이 근위대장이 아니라, 국왕이어도 참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놈이 탈영을 했고, 나는 헌병으로 임명 됐다고?


‘이건 못 참지.’


나는 청동 지휘봉을 꽉 말아쥐면서 씩 웃었다. 묵직한 그립감이 훌륭해서, 사람 머리통을 수박처럼 깰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유 없이 좆같이 굴었던 새끼들이니까.’


좆같이 느낄 수 있는 이유를 줘야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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