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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2,686
추천수 :
60
글자수 :
441,567

작성
21.05.20 11:58
조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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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3쪽

몰락한 영웅

DUMMY

400년 전, 북부 대륙에는 전 왕국에 의해 칭송받던 다섯의 영웅이 있었다.

마왕에 의해 남부 대륙이 사실상 괴멸한 이상, 대륙 전체의 희망이었다 해도 좋을 다섯 초인들.


그 중 첫째가 피나르의 마법사 오스턴 폰 버나르. 연금술과 인형술의 대가이자 영웅들의 수장이었던 남성 영웅.

둘째는 당시 괴멸한 성국의 사제이자 이단 심문관이었던 얄냐 크라임 법원장. 상처의 치유와 저주의 해주, 추격술의 달인이었던 여성 영웅.

셋째는 툴카 왕국의 용병이자 용병왕이라 불리던 단타르크. 온갖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달인이자 오러 마스터라 불리던 남성 영웅.

넷째는 이제는 멸망한, 옛 왕국의 기사 티탄 경. 검과 방패를 다루는 오러 나이트이자 기마술과 용병술에 있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었다.


화르륵.


수도의 광장에 도착한 이들은 그 네 개의 동상이 불타는 것을 목도하고 있었다.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수백 년간 지켜오던 광장이 불꽃에 휩싸인다. 준비된 마법은 무너지고, 봉헌된 추모는 녹아내려 쥐면 흘러내릴 물처럼 덧없이 사라져간다.


마리는 그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모든 참상의 범인은 다름아닌 그곳에 서 있었다.

떠 있는 것인가? 아니,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딛고 서 있는 것 같다.


"올가..론디아르"


마리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다행히도, 그것을 들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혹여나 반 수사관이 그 이름을 들었다면 쓸데없는 오해를 샀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것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모든 것이 타오르는 그곳에, 홀로 공중에 서있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기괴하고 충격적이었던 탓이다.


"눈치가 좋구나"


그러나 그녀만큼은 마리의 읊조림을 들은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를 모르는 이들은 혼란스러워 했지만, 마리만큼은 그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하여 충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올가 론디아르.


본래라면 다섯 영웅 중 하나로 기록 되었어야 할 불꽃의 마녀.

다른 네 명의 영웅과는 다르게 뒤늦게 합류하여 일행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그들과 필적하는 업적을 쌓았던 위대한 아크 메이지.

지팡이학의 창시자이자 스태프의 장인이기도 했던 그녀는 본래라면 대대손손 칭송받으며 마법학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날, 그 참혹한 참극이 있었던 결전의 날. 연합군이 목숨을 걸고 괴물들의 발을 붙잡으며 다섯의 영웅을 위해 싸웠던 그 날.

마왕과 대적하던 다섯의 영웅 중 하나가 그들을 배신했다.

그녀에게 사랑을 말하던 오스턴의 등에 칼을 꽂고, 충격에 빠진 그들에게 불꽃을 퍼부었다.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세 명의 영웅이 목격한 것은 연합군의 전멸..그리고 패배.


광장의 동상은 그 치욕과 분노를 잊지 않겠다는, 언젠가 승리하고 말겠다는 그들의 다짐이었다.


"그런데 왜 너희는 피나르 사람과 함께 있는 거지? 붙잡힌 건가?"


올가는, 아니 자신을 올가라 주장하는 여인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마리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올가 론디아르..그녀는 다름아닌 마노 백작의 시조가 아니던가.


서고에 그려져 있던 그녀의 초상화는 어땠지? 저 모습을 닮았던가?


'아니..전혀 다르게 생겼어'


흩날리는 불티 속에서 일렁이는 흑발만큼은 그녀를 닮았으나,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달랐다. 표현의 차이라고 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나는 치안청 소속 반 폰 쿠르 수사관이다. 당신을 체포하겠다"


반 수사관은 그 와중에도 자신의 의무를 잊지 않고 있었다.

물론, 몸에 익힌 것이라고는 호신술 정도에 불과한 그가 진심으로 아크 메이지를 생포하려 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그는 그저 무언가를 알고자, 그리고 시간을 끌고자 하고 있었다.


"흥"


그러나 그 자존감 높은 모습은 오히려 올가의 심기를 거스른 듯 했다. 그녀의 스태프가 반 수사관을 향해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이 빠르게 추락했다.

그녀가 지면에 도달하였을 때, 의외로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마치 깃털처럼 가벼운 무언가가 떨어진 느낌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군"


올가는 그렇게 말하며 스태프를 휘두르려 했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골렘의 군단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말이다.


"쯧..뭐 좋다. 목적은 이루었으니"


순간적으로 짜증을 내던 그녀는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저만큼의 골렘은 그녀에게도 무리였던 까닭이다.

허나 그 순간, 어디선가 쏘아진 탄환이 그녀의 어깨를 관통했다.


탕!


"엠버!"


반 수사관이 놀라 돌아보자, 그곳에는 총을 겨누고 있는 엠버가 있었다.


"걱정 마세요. 반 수사관 님. 어깨를 노렸으니 목숨에는 지장이.."

"엎드려!"


반 수사관은 경악하며 그녀를 향해 달렸다.

탄환에 맞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고요했던 올가의 모습이 떠올랐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올가에게서 쏘아진 불꽃이 그녀를 향해 쇄도한다. 뒤늦게 상황을 눈치챈 헤벨이 그녀를 밀쳐보지만 오히려 그 충격에 휘말려 함께 쓰러질 뿐이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둘 다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반 수사관은 그들의 모습을 살피고는 이를 악물고 올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멈춰!"


탕!


반 수사관은 그녀를 향해 달리면서 총을 쏘았다.

물론, 그녀를 향한 공격이라기보다는 총성을 통해 위치를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마리!"


그러나 반 수사관은 이내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끌려가는 듯한 모습의 마리가 그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경악한 유라가 그 뒤를 쫒았으나, 보이지 않는 힘을 어찌 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지금 비무장 상태가 아니던가!


"젠장..! 이걸 받게!"


반 수사관은 그제야 상황을 눈치 채고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그녀의 무기를 돌려주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 그런 무거운 추를 달고 있었던 자신의 어리석음이 믿기질 않았다.


"마리!"


단숨에 대도를 뽑아낸 유라가 감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베어나갔다.

그러나 걸리는 것은 없었다. 잠시 마리의 몸이 움찔하기는 했지만 무언가를 베었다는 느낌 자체가 들지 않았다. 허나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신! 총으로 스태프를 노려!"

"..그렇군!"


올가를 허공에 서있게 만든 힘과 지금 마리를 붙잡은 힘이 저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까닭이다.


"젠장..!"


그러나 안타깝게도 반 수사관은 차마 총을 쏘지 못했다.

사격술은 언제나 만점이었지만, 달리면서 총을 쏴본 적은 없었던 까닭이다.

움직이고 있는 지팡이 따위의 면적이 좁은 표적을 노리다가는 오히려 마리가 다칠 것 같았다.


"후우.."


그것을 눈치챈 것인지, 유라는 올가를 향해 있는 힘껏 돌진하기 시작했다.

맹렬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속도다. 초원을 달리는 맹수와도 같은 그녀의 모습이 굽이치는 골목길을 빠르게 누빈다. 거리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유라는 좁은 골목에서는 휘두르기 힘든 자신의 무기가 이토록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던 것 같았다.


그러나 어렵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 법이다.

하단에서 출발한 그녀의 대도가 반원을 그리며 부드럽게 휘었다. 골목 상단의 빨랫줄이나 간판과도 같은 것을 손목의 움직임만으로 비껴내며 그녀는 올가의 지팡이를 내리쳤다.


"윽!"


올가가 신경질적으로 그것을 떨쳐내려 지팡이를 쳐올렸다.


탕!


그제서야 쏘아지는 탄환.

반 수사관은 어느새 그들의 앞에 서 있었다. 도주 경로를 예측하고 앞질러간 것이다. 올가의 신경이 유라에게 집중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솜씨가 좋군. 혹시 내 보좌관 해보지 않겠나?"

"미안하지만 꼰대 말투 쓰는 사람은 별로야"


유라는 그렇게 말하며 꼰대를 넘어 400년 전의 말투를 사용하는 여자를 향해 자신의 무기를 겨누었다.


"경고할게. 다시는 내 호위대상을 건드리지 마"

"내가 네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나?"

"이유는 없지. 그냥 내가 너의 적이 될 뿐이야"


올가는 말없이 웃으며 지팡이를 내리쳤다. 같잖다는듯한 태도였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갖고 있는 것이라고는 커다란 날붙이 하나뿐인 사람이 아크 메이지에게 덤벼들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올가의 실수였다.


불꽃이 쏘아지고, 화염이 유라를 향해 쇄도한다. 그러나 유라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올가가 스스로 만든 화염에 시선을 빼앗긴 찰나, 그녀는 이미 그녀의 옆에 도달하여 그녀의 팔을 가르고 있었으니까.


"..."


유라는 그녀의 팔을 자름과 동시에 스태프를 발로 차 뒤로 보내버렸다.

마리는 무심코 그것을 받아들었다. 묘한 감각이 그녀를 건드리고 있었다. 올가는 흥미롭다는듯이 유라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팔은 언제 잘려나갔냐는 듯 다시 붙어있었다.


"흠..확실히, 내가 오래 잠들어있긴 했나 보군. 아니면 너무 신이 났던 건가? 아니..그보다도.."


유라는 올가의 혼잣말을 무시하며 달려들었다.

물론, 그녀 역시 올가를 베어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은 알았다. 하지만 베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지?


그런 것은 없다. 의미가 없을 지언정, 그녀는 그저 끊임없이 베어낼 뿐이다.

복부보다는 팔과 다리다. 급소를 잘려도 상대방은 반응하지 않지만, 팔과 다리가 없다면 걷거나 마법을 사용할 수 없으니까. 생각은 그 다음이다.


"대단하군"

"입 다물어!"


유라의 대도가 폭풍처럼 몰아친다. 주위를 가로막는 골목의 벽 따위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듯, 필요한 것 외에는 베지 않는 검이 오직 적만을 겨냥한 채 날뛰고 있었다.

그 뒤에 서 있던 반 수사관은 분쇄기처럼 적을 갈아버리며 전진하는 그 모습에 기가 질려 물러서고 있었다.


저런 사람에게 무기를 압수하려고 했었다니 소름이 끼치는군..! 그런데 왜 본부에서는 저 여자의 계약을 해지하지 않는 거지? 정령의 힘만 빼앗는다면..


'아니 어쩌면..설마?'


"단타르크 같은 녀석이군"

"..생각 중이니까 입 다물라고!"


유라의 우세는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지금 이 순간에조차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라는 그저 필사적으로 시간을 끌고 있을 뿐이었다.

베지 못하는 상대와 베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의 능력을 비교하면서..


그러나 해답이 없는 문제는 체력만을 갉아먹을 뿐이다. 유라는 이 답이 없는 상황에 절망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유라!"


그러던 중 마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그들을 향해 스태프를 겨냥하고 있었다. 유라는 문득 그 모습이 어딘가 올가의 것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설마 마법?"

"저 아이가 메이지라고?"


올가는 그럴 리 없다는 듯 반문하며 마리의 모습을 보았다. 기묘한 자세다. 스태프의 끝을 자신을 향해 정확히 겨누고 있지 않은가.

휘두르거나 내리쳐야 마법이 발동되는 스태프의 사용법에서 벗어난 자세였다.


하지만 저 아이에게서는 메이지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데?


올가가 혼란스러워하던 찰나, 유라는 마리의 그 결의에 찬 모습에 무언가를 걸어보기로 했다. 그녀의 무기가 다시 한 번 광폭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만을 가르며 견제하던 종전과는 다르게, 이번만큼은 진정으로 살의를 담은 필살의 공격이다.

팔과 다리를 떨쳐냄과 동시에 상체를 사등분하고 그대로 목을 가르는 그녀의 무기에 올가의 육신이 일순, 무기력해지는 그 순간.


"이야아아아!"


올가와 유라는 그대로 스태프를 꼬나쥔 채 돌격하는 마리의 모습에 당황했다.

그 모습을 관찰하던 반 수사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지? 지금 설마 저걸로 찌르려는 건가? 고작 나무 막대기로?


의도를 알 수 없는 행동이다. 물론, 그것이 의미가 있다면 문제는 없겠지.

그러나 그것마저 실패하는 모습에는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달려오던 마리가 그대로 발이 꼬여 철푸덕 넘어져버린 까닭이다.


올가는 그 모습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보고 있었다.

저런 녀석을 메이지라고 생각했다니..


'아니, 잠시만..'


그러나 유라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 쪽으로 날아드는 스태프를 보며 생각했다.

올가가 허공을 딛고, 마리의 몸을 끌어당기던 그 기묘한 힘에 대하여..


"..그래, 일리 있는 의견이네. 이전에 몸이 잿더미로 변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당신도 그런 몸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소리야"

"..그것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스스로의 약점을 알고 있어?"


유라의 질문을 들은 올가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당혹이 스쳤다.

유라는 그대로 스태프를 차올리며 그녀를 향해 있는 힘껏 휘둘렀다. 대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가벼운 그것은 믿기지 않는 속도로 내질러지고..


콰직!


그대로 박살나며, 올가의 몸을 한없이 멀리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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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꼭두각시 황제 21.05.22 29 2 15쪽
15 꼭두각시 황제 21.05.21 31 3 16쪽
» 몰락한 영웅 21.05.20 30 2 13쪽
13 마리의 기억 21.05.19 30 1 14쪽
12 헤벨 21.05.18 31 0 15쪽
11 헤벨 21.05.17 32 2 13쪽
10 재의 마녀 21.05.16 38 2 8쪽
9 재의 마녀 21.05.16 37 1 7쪽
8 산맥의 거인 +2 21.05.15 52 3 15쪽
7 산맥의 거인 21.05.14 52 1 14쪽
6 산맥의 거인 +1 21.05.14 68 2 15쪽
5 황족 암살 21.05.13 76 1 15쪽
4 죽은 자의 회상 21.05.13 86 1 14쪽
3 죽은 자의 회상 21.05.13 111 3 17쪽
2 죽은 자의 회상 21.05.13 177 3 16쪽
1 시작 21.05.13 425 1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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