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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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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2,692
추천수 :
60
글자수 :
441,567

작성
21.05.16 13:00
조회
38
추천
2
글자
8쪽

재의 마녀

DUMMY

마리는 불현듯 인기척을 느끼며 일어났다.

낡은 침대가 삐걱였다. 마리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 이곳이 수도임을 깨달았다.

이곳에 온지도 며칠이 흘렀음에도 이 모양이다. 나고 자란 마그나 왕국의 환경에 어지간히도 익숙해져 있던 탓이겠지.


"유라?"


마리는 문 옆에 의자를 가져다둔 채 거기에 앉아 졸고 있는 유라를 발견했다.

겉모습만 보면 자신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한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마리는 어쩐지 방밖을 경계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일어났네?"

"누워서 주무시지 왜.."

"너희를 지키기로 했으니까 당연한 거야"

"그런데 왜 저만..?"


마리는 혹시나 이 방안에 마노 백작이 있나 싶어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이곳에는 그녀 자신과 유라 뿐이라는 것을 확신할 뿐이었다.


"당신네 백작은 해당되지 않아. 내가 그렇게까지 속 좋은 사람은 아니거든"


마리는 어쩐지 그녀가 마노 백작에게 썩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설마 두 사람이 이전에 만나보기라도 했다는 것일까?


"사적인 원한은 아니야. 그랬다면 아무리 탄캄의 부탁이라도 수락하지 않았겠지"

"..그럼 마이크는 어디에 있죠?"


유라가 이 화제에 대해 무척이나 껄끄러워 하는 것 같았기에. 마리는 주제를 돌렸다.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거나 슬프게 하는 일은 마리가 가장 꺼려하는 일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마리의 그 질문에 유라가 더 심각한 표정을 짓게 되리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죽었어"

"..네?"

"내 실수야. 꽤 감이 좋은 아저씨 같기에 내버려두었는데 순식간에 당해버리더라구"


그렇게 말하며 유라는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마리는 잠시 그것을 가만히 들었으나 어딘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만난지 얼마 되지는 않았으나, 마이크라는 인물이 얼마나 스스로의 안위에 대해 관심이 많은지는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유라의 설명대로라면..


"마치..죽기 위해 나선 것 같군요"

"그러게 말이야..그렇게 겁 없는 아저씨인줄은 나도 몰랐어"


유라는 어쩐지 변명하듯 대답하였으나 마리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이전의 마이크라면 모를까. 지금의 마이크는 무척이나 겁이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어쩌면 죽음보다 무서운 것을 피해 도망쳤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아저씨가 그런 건 없다고 하던데?"


유라는 부정하였으나, 마리는 어젯밤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한, 그녀와 마이크만이 들을 수 있었던 탄캄의 이야기를..


"..다시 만나기는 힘들겠죠?"

"..그 나이에 벌써 죽고 싶은 거야?"


만류하는 듯한 유라의 물음에, 마리는 그저 쓰게 웃어버렸다. 유라는 어쩐지 그 웃음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





나는 누구지?


아 그래..로니에리 란트. 흔히 로니라고 불리는 소녀이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병으로 인해 죽어버린, 이른바 시한부의 아이.


"마, 맙소사..!"


나는 스스로의 운 없음을 자책해야만 했다.

제법 명망 높은 제국귀족의 자제라는 신분은 분명 행운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지금만큼은 달랐으니까.


"오오.내 사랑스러운 아이."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얼굴의 어머니가 나를 끌어안았다.

오열하는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불과 1분 전만 해도 자식을 잃었던 그녀가 아니던가. 평정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겠지.


열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나 역시 불행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침대 위에서 죽어가는 자식을 십 년 간 지켜본 그녀 또한 불행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오늘 일어날 가장 불행한 일은, 그녀가 자식의 죽음을 두 번이나 보게 되리라는 점이었다.

물론 그것이 질병에 의한 죽음은 아니었다. 매 순간마다 모래시계처럼 삶이 떨어져내리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지금의 몸은 너무도 건강했으니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아, 악마다..악마가 들어온 거야..! '검은 손'의 악령이다..!"


나의 죽음은 태어나면서부터 확정되어 있었고, 제국의 의사들은 나를 포기했다.

그렇기에 부모님은 제국 남부에 위치한 성국으로부터 사제를 초빙해왔었고, 나는 이 열렬한 광신도에 의한 치료를 받으며 목숨을 연명해나가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이 느껴졌던 성국의 사제, 란돌프.

성국의 광신도들이 칭송하는 '이름 모를 그분' 외에는 용납하지 않는..모든 신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에게 조금 전의 광경은 어떻게 비칠까.


'부활은 그들의 교리와는 어긋난 것이지'


오히려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검은 손'의 능력과 닿아 있는 것이니까.


"어머니"


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끌어안은 어머니의 품을 조심스레 밀었다.

다급하게 품에서 제사용의 단검을 꺼내드는 란돌프의 모습이 보인 까닭이다. 이대로라면 그녀 역시 나의 죽음에 휘말리고 말겠지.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숨이 막힐 정도로 나를 끌어안은 채였다.

나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홀로 죽게 내버려두란 말..그런 것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그녀의 마음에 평생토록 남으리란 사실을 알고 있는데..


"물을 좀 주시겠어요?"


그녀가 내 말에 화들짝 놀라는 것도 잠시, 이윽고 환하게 웃으며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나는 그 모습에 죄책감을 느꼈으나, 그로 인해 벌을 받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행동에 벌까지 받게 된다면 운명이란 녀석은 필시 너무도 잔혹한 것일 테니까.


나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 란돌프의 앞에 섰다.

물을 준비하려던 어머니는, 그리고 너무 놀라 주저앉았던 아버지는 그제야 무언가가 잘못 되었음을 깨달은 것 같았다.

나는 어쩐지 묘한 기분이었다. 그토록 싫은 죽음에, 나는 또 다시 몸을 던지고 있지 않은가.


마이크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직도 부족했던 것인가? 나의 죽음이?


불현듯 일어난 의문에 긍정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있었다.

나는 그것이 로니의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로니의 것은커녕 그것은 베키의 것도, 로버트의 것도. 마이크의 것도 아닌 별개의 것이었다.

나의 뿌리와도 같은 정체불명의 무언가. 내가 찾아야만 하는, 그러나 지금은 너무도 이른..잊어야만 하는 것.


'확실히 그렇군요. 탄캄. 차라리 죽음이 낫겠어요'


나는 그 막막함을 눈앞에 둔 채 앞을 향해 걸었다.

로니로서는 처음으로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것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란돌프는 그런 나의 모습에 겁먹거나 위축되지는 않은 듯 했다.

오히려 눈 안의 광기를 불태우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로버트 때와는 다르게 일이 어렵게 될 모양이다.


"악마 녀석..그 가엾은 소녀를 지옥으로 떨어트리다니..!"


나는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성국으로 가게 된다면, 지금의 이 빚을 갚을 수 있게 되리라는 사실 역시도..


"안돼!""멈춰!"


부모님의 비명에도 불구하고, 단검은 내 심장을 향해 내리꽂혔다. 나는 죽음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미약한 통증을 삼키며 짓씹듯 다짐했다.


"다시보자 란돌프. 나는, 로니에리 란트는 이 빚을 결코 잊지 않을 테니 말이야"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한 번 빛에 삼켜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제국의 군인이 되어 있었다.


"정신이 드시나요?"

"..엠버 수사관님"


나는 태양빛에 찬란히 빛나는 금발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누구지?


아 그래. 내 이름은 헤벨. 수도를 지키는 군인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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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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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꼭두각시 황제 21.05.22 29 2 15쪽
15 꼭두각시 황제 21.05.21 31 3 16쪽
14 몰락한 영웅 21.05.20 30 2 13쪽
13 마리의 기억 21.05.19 31 1 14쪽
12 헤벨 21.05.18 31 0 15쪽
11 헤벨 21.05.17 32 2 13쪽
» 재의 마녀 21.05.16 39 2 8쪽
9 재의 마녀 21.05.16 37 1 7쪽
8 산맥의 거인 +2 21.05.15 52 3 15쪽
7 산맥의 거인 21.05.14 53 1 14쪽
6 산맥의 거인 +1 21.05.14 68 2 15쪽
5 황족 암살 21.05.13 76 1 15쪽
4 죽은 자의 회상 21.05.13 86 1 14쪽
3 죽은 자의 회상 21.05.13 111 3 17쪽
2 죽은 자의 회상 21.05.13 177 3 16쪽
1 시작 21.05.13 425 1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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