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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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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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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5
추천수 :
60
글자수 :
441,567

작성
21.05.1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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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죽은 자의 회상

DUMMY

다음날 아침. 낡은 여관에서 일어나 주인에게 부탁해 아침을 준비하던 마리는 문 앞에서 자신들을 기다리는 마이크를 볼 수 있었다. 어딜 다녀 온 것일까?


"치안청에서 검사받아도 삼일 정도는 견딜겁니다"


어느새 밖에 나와 찻잔을 기울이던 마노 백작에게 마이크가 건낸 것은 신분증이었다.

그곳에는 마리와 마노라 적혀 있는 아주 간단한 형식의, 자신들의 신체적 특징과 연령 및 출생지가 적혀 있었다.


"뭐..그걸 제출할 상황이면 그딴 건 의미가 없을 테니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게 좋지요"

"편지는 전했나?"

"전했지요"


마이크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으나 무언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어딘가 탐탁치않아한다 해야 할까? 납득이 가질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정말.."

"거기까지 하게 마이크"

"..."

"나는 자네의 일에 걸맞는 돈을 지불하였네"


마리는 여전히 마노 백작의 단호한 모습이 낯설었다. 허나 그것도 얼마 가지는 못했다.

정작 말을 들은 마이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버린 까닭이다.


"..알겠습니다. 저녁에 뵙지요. 위치는 알고 계실테죠?"

"저녁에 보도록 하지"


마이크는 그렇게 사라졌다.

마리는 점점 더 멀어져가는 그의 표정에서 어딘가 일그러진 무언가를 보았지만 무어라 말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부산스럽네요"


그녀는 대신 다른 화젯거리를 찾기로 했다.

변명이 아니라 실제로 거리 전체가 소란스럽고 북적이는 느낌이 강했다.


"개선행진이니까"


마노 백작의 말을 들으며, 마리는 어젯밤 여관 주인에게서 들은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피나르 제국 북부의 오크 영토를 정벌하고 돌아온 황태자의 개선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그는 우리를 미워하겠죠?"


마리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그나 왕국..저들은 마왕의 땅이라 부르는 자신들의 고향을 좋아하는 이는 분명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왜 그리 생각하지?"

"..마그나의 학자가 저술한 도서조차..마그나를 욕하고 있더군요"


그곳에 살고 있는 국민들조차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부끄럽다 말 할 진데, 저 수많은 환호의 주인공은 어떠할까.

마리는 성 안의 먼지덮힌 책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 그 누구도 찾으려 하지 않았던, 불편하고도 잔혹한 서사를.


"저들은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마노 백작은 꽃바구니를 든 채 환호하는 군중만을 가리킬 뿐이었다.


"하지만 황태자는 오히려 우릴 좋아할걸?"

"..네?"


마리는 의아함에 되물었으나, 그 순간 군중들의 환호성이 강해졌다.

수없이 뿌려지는 꽃들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조차 않는 그들의 모습처럼, 백작의 말은 그들의 소리에 묻혀 마리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얼마나 고맙겠어? 황제보다 더한 권력을 갖게 해줬는데 말이야"





*





사람들이 춤추고 떠들며, 술에 취하고 술에 젖는 한낮의 시간이 끝났다.

어느덧 노르스름해진 태양은 평원 위의 지평선에 몸을 뉘이며 스물스물 하루의 고된 피로를 녹여내고 있었다.

마노 백작은 마리와 함께 광장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외곽의 낡은 주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마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전과는 다르게 가볍고 단정한 차림을 하고 있는 마이크가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이크?"

"그래. 나다"

"왜 여기 계신 거죠?"

"여기가 내 가게니까"


마리는 아..하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크의 직업이 뭔지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썩 달갑지 않은 장소였던 탓이다.


"위쪽에 방을 잡아놨습니다"

"그래. 고맙네..마리..내 짐도 가지고 올라가주게. 손님이 올 예정이라"


손님?


난생 처음 온 제국에서 만날 사람이 있단 말인가?

마리는 이곳에 온 이후로 계속해서 놀랄 일만 생기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안쪽의 방은?"

"비워놨습니다. 이곳 전체에 사람이 없으니 그 점은 걱정 마십쇼"


마노 백작은 마이크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1층 가장 안쪽의 방을 향해 몸을 돌렸다.


"손님이 오면 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게"

"그리합죠"


마이크는 멀어져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 이윽고 얼굴을 찌푸렸다.


'젠장..어딘가 불안한데'


어젯밤. 마노 백작이 알려준 곳으로 편지를 가져갔을 때, 그에게서 편지를 받아간 사람은 어딜봐도 평민이 아니었다.

귀족적인 느낌이었던 것은 아니다. 마노 백작과는 다른 움직임이었으니까.

그건 굳이 따지자면..


'궁중 예법..'


황궁의 시종이나 시녀가 익히는, 귀족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예법이었다.


'설마 손님이라는 게..;


딸랑.


"어서 오십시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마이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그의 얼굴은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고개를 숙이며 흘낏 보게 된 손님의 얼굴이 너무나도 익숙했던 까닭이다.


"그 자는?"

"제일 안쪽 방에 있습니다"


오늘 개선식의 주인공, 황태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이크는 무심코 이를 갈았다. 후드를 눌러써 나름대로 정체를 숨기려 한 모양이지만 사냥꾼이자 밀수꾼인 마이크의 관찰력을 속이기에는 무리였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는 것은 그가 가장 잘 하는 것이었으니까.


"젠장.."


마이크는 황태자가 사라지는 순간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조직의 윗선이라는 게..'


마리가 수도의 경계를 넘는 방법을 물었을 때, 마이크는 굳이 알려하지 말라 답했지만, 사실 마이크 역시 그 방법을 아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마이크 역시 말단 조직원에 불과했으니까.


물론,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목숨과도 관련된 일이었으니까.

제국의 수도 내에서 당당하게 밀수를 하도록 지원해주는, 골렘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고위직 귀족의 정체가 누구일지, 당연히 궁금해 하지 않겠는가.


'어느 정도 지위가 있긴 할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허나 그 정체는 차라리 모르는 편이 좋을 것이었다. 황족이 밀수조직의 후원자라면 그야 물론 성장이야 쉽겠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버린다면 단숨에 자신들을 처리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떤 위정자가 자신의 정치적 치부를 남겨둔단 말인가.


'도망쳐야 해..!'


조직의 윗선이 그것을 모를 리는 없을 테니, 필시 황태자나 마노 백작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서로 간의 의중이나 물품들을 밀수라는 형태로 주고받은 것에 지나지 않으나, 이렇게 직접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이상 조직의 생명 역시 그리 길지는 않을 터.


자신이 단숨에 눈치 챈 황태자의 정체를 다른 누구라고 모를 리 있겠는가.

자신이 눈치 채지 못하리란 생각을 과연 했겠느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너무 뻔한 것이 아닌가?


"어딜 가지 마이크?"


마이크는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만 아니었어도 진작 이루어질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무시하고 도망칠까?


불현듯 치미는 상상, 그러나 마이크의 본능은 그것이 위험함을 알리고 있었다.


"손님이 온다는 것을 깜빡하고 미처 차를 준비하지 못했거든요"


마이크는 최대한 자신의 동요를 누르며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차갑게 굳은 마노 백작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마이크는 그와 알게 된지 2년이 지났지만, 저런 표정은 단 한 번도 보질 못했다는 것을 장담할 수 있었다.


평소에도 냉막한 얼굴을 하고 있기야 했다지만 지금의 그 표정은 마치 얼어붙을 것만 같지 않은가.


"그렇군, 그래서 시장에 다녀오려는 건가?"

"아니요. 오늘은 개선식 때문에 상점들이 모두 일찍 닫았습니다. 그래서 아는 가게에서 빌려오려 했죠"


마이크는 최대한 거짓말임을 들키지 않도록 노력하며 답했다.

그런 노력이 통한 것일까? 차갑게 굳었던 마노 백작의 얼굴이 조금 풀린 듯 했다.


"그런가? 이것 참 미안하군..우릴 그렇게나 챙겨주다니"

"아뇨, 뭐..준비를 제대로 안 한 게 잘못이죠"


마이크는 그리 답하며 문손잡이에 다시 한 번 손을 댔다.

문이 열리는 순간, 자신의 속도를 따라잡을 사람은 제국 내에서도 몇 안 될 것임을 자부하는 만큼 연기고 뭐고 곧장 도망쳐버릴 작정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자신의 발밑으로 굴러들어오는, 찻잎통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찻잎..여기에 있잖나?"

"이런 젠..!"


콰득!





*




그것이 마이크가 기억하는 마지막 기억이었다. 아니..기억이었을 터다.


"되살아나지만 않았어도 말이지"


나는 새삼스레 다시 붙어버린 자신의 목을 보며 신기하다는 감정을 숨기질 못하고 있었다.

단숨에 목뼈를 꺾으며 몸에서 분리시켜버린 당사자도 무섭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살아나버린 자신은 어떠한가.


과연 그를 괴물이라 부를 자격이 있긴 한 건가?


"젠장.."


몸에는 여전히 쓸데없이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누가 내 몸을 보고 방금 전에 죽은 사람이라 생각할까. 스스로의 처지에 웃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고역스러웠다.


"도망..아니지.."


마노 백작에 대한 분노 때문에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을 뻔 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저들의 뒷배가 황태자 아니던가.

조직의 눈을 피해 도시에 숨는 것도 힘들기는 하지만 골렘의 눈을 피해 도시 밖으로, 수사망을 피해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우선은 돈이다"


그렇다면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준비만 잘 해둬도 산에서 살아남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산으로 숨어들면 나를 쫒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위습 랜턴"


나는 방 안쪽을 살폈다. 황태자는 이미 돌아간 것인지 안에서 느껴지는 생명반응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곧바로 일어났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짧은 시간 안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던지.


"안 좋은데"


나는 내 발밑에서 흐르고 있는 내 피 위에 손을 댔다.

아직도 열기가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죽음의 충격에서 허우적거린 시간은 길어봤자 1분도 채 되지 않았을 텐데..


'황태자는 어디로 갔지?'


내 가게이니만큼 이곳에 비밀통로가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위험해보일지 모르지만 통로라는 것이 안에서도 나갈 수 있지만 밖에서도 들어올수 있느니만큼 수도라는 통제된 환경에서는 오히려 좋지 않았다.


'시녀는?'


그런데 그런 환경에서 사람이 두 명이나 사라졌다. 그것도 단 1분 만에..


이것이 정상인가?


'안에 있는 것은 분명 마노 그 작자다'


들어가야 할까?


상황은 조금 전과는 다르다. 문은 열려 있고, 원한다면 순식간에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나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골렘과 결계로 지켜지는 이곳에서 빠져나가기란 무척 힘들지만 돈이 없다면 만에 하나 수도를 빠져간다 해도 살아남기 힘들다.

로버트였을 때와는 다르다. 로버트는 개척지의 방랑자였지만, 이곳은 제국의 심장이었으니까.


돈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텅 빈 주머니는 늦게 죽냐 일찍 죽냐의 차이만을 낳을 뿐이다.


"..무슨 짓을 하신 거죠?"


문 열리는 소리에 뒤이어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리의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그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감지할 수 없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위습의 힘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알려준다. 숲이나 강, 산과 바다라면 살아있지 않은 것들마저도 알려준다.

그런데 고작 시녀 한 명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혹시 시체인가?


나는 산에서 내려오며 그녀를 업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 온기로 말미암아 판단컨데, 그녀는 분명 살아있었다. 그렇다면 무언가 다른 힘이 있다는 것이겠지.

부스러기에 불과할지언정, 정령의 힘마저도 거둬내는 무언가가.


'인질로 삼는 건 포기해야겠군'


죽고 싶은 마음이 없는 이상 알 수 없는 것에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지금은 수수께끼를 풀 시간이 없었다. 나는 우선 방으로 다가갔다.


삐걱..


마룻바닥을 보수하지 않은 것이 원망스럽군.

사냥꾼의 기술 중에 마루 소리가 안나게 하는 것은 없었으니 참고 감내하는 수밖에.


"조용하게 만들어줬다네..영원히 말이야"


마노 백작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전히 황태자의 기척은 없었다. 나는 조용히 방문 앞에 서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피 냄새..'


안쪽의 상황은 처참했다. 방 안 가득 흩뿌려진 피와 목을 잃고 널브러진 몸뚱아리.

그것을 밟은 채 창밖을 응시하는 거구의 백작과 입을 가린 채 경악하는 시녀의 모습.


"뭐 이런."


방 안에서 뒹구는 것은 다름 아닌 황태자의 목이었다.


"빌어먹을"


나는 몸을 숨기기를 포기했다. 그것이 의미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거지?"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당신 머리는 어떻게 돼먹은 거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마노 백작의 표정에 조금은 즐거워질 법도 하지만 시궁창에 처박혀 버린 듯한 기분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도망가기를 포기했다.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딴 짓을 저지르고 살아남길 바라는 건가?"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

"당신이 내 목을 뽑은 순간부터 오해 따윈 안 해"

"..기묘한 일이군"


기묘하다고? 우습기 짝이 없는 소리다.


"대체 어떻게 살아난 거지?"


그 의문에 답할 도리는 나에게도 없었지만 나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려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나는 최대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그를 비웃었다.


"좆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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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헤벨 21.05.18 31 0 15쪽
11 헤벨 21.05.17 32 2 13쪽
10 재의 마녀 21.05.16 38 2 8쪽
9 재의 마녀 21.05.16 37 1 7쪽
8 산맥의 거인 +2 21.05.15 52 3 15쪽
7 산맥의 거인 21.05.14 52 1 14쪽
6 산맥의 거인 +1 21.05.14 68 2 15쪽
5 황족 암살 21.05.13 76 1 15쪽
» 죽은 자의 회상 21.05.13 86 1 14쪽
3 죽은 자의 회상 21.05.13 111 3 17쪽
2 죽은 자의 회상 21.05.13 177 3 16쪽
1 시작 21.05.13 425 1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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