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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살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구선달
작품등록일 :
2012.09.01 22:09
최근연재일 :
2016.07.08 02:27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349,288
추천수 :
8,515
글자수 :
641,044

작성
13.09.16 06:59
조회
4,269
추천
101
글자
7쪽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서막

DUMMY

북부군은 해산하지 않았다. 전쟁이 일단락 되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그 증거라고 할 만한 보수가 주어졌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금화를 받아쥔 채 군영을 지켰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실제로, 공식적인 해산 명령은 나오지 않았다. 귀환한 병력은 소수에 불과했다.

빌도 귀환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아일 대공의 곁을 지켰다. 그의 아들은 빌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빌은 아들을 뒤쫓지 않았다. 오히려 한결 느긋해졌다. 일단 포착했으니, 언제든 찾을 수 있다. 셀레스테나 여신이 설치는 지금, 빌의 곁에 아들을 두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 될 가능성이 컸다. 지금은 왕과 그 주변의 이야기가 먼저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다음이 남았다.

때문에 틸리는 새 임무를 받았다. 천막 안에서 퍼질러 자다 일어난 그는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대장을 올려다보았다. 빌은 완전무장한 모습이었다. 다만 투구는 벗어서 옆구리에 꼈다. 어디로 가려는 모습이었다. 틸리는 자신이 빌과 동행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빌의 명령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어디요?" 틸리가 되물었다.

"던쉐어. 던쉐어의 마녀." 빌이 대답했다.

틸리의 얼굴이 핼쓱해졌다. 그는 한참 말을 더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제가 왜 마녀한테 가야 되는데요?"

"아까 뭐 들었냐? 내 도끼 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끼를 수리하려면 대장간을 가야죠!"

"내 도끼는 좀 특별한 곳에 가야 돼."

틸리는 어디서부터 반박할까 고민했다. 분명 빌의 도끼는 굉장히 특이했다. 남쪽의 유명한 공방에서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러나 마녀가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요즘 마녀는 대장장이도 겸업하던가? 게다가 던쉐어? 거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촌구석인데?

"남부의 공방만큼은 아니더라도, 유명한 대장장이라면 많지 않습니까? 왜 마녀를 찾으십니까?"

"이 도끼를 만든 년이라서."

틸리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빌의 쇠도끼를 바라보았다. 역시 사연 있는 무기였어. 신화시대의 물건을 보는 듯한 그의 눈빛에 빌은 코웃음을 쳤다.

"마법 걸린 것 아니다.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내 손에 있었으면 이 고생 안 하지."

납득은 가는데 뭔가 슬픈 이야기다. 틸리는 그 생각을 목구멍 속으로 도로 집어넣었다. 마법이 걸린 무기는 특권 중 특권이었다. 기드 왕의 무기고에도 몇 없는.

"뭐, 대장이 시키는데는 이유가 있겠죠. 근데 어떻게 생긴 여자입니까?"

"그 동네 가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 알아."

틸리는 투덜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빌은 그의 사소한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천막 밖으로 나갔다.

불타버린 도시의 안팍이 전부 군영이었다. 여기저기에 천막이 세워졌고, 시끌벅적했다. 돌아온 피난민들, 바늘부터 장작까지 팔아치우는 상인들, 그리고 군인들. 빌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씨가 맑고 바람은 시원하다. 늦여름이 끝났다. 전쟁하기 제일 좋은 때가.

태양궁은 손해가 컸다. 남쪽의 6개 도시는 제국군에 포위당했고, 함락 직전이었다. 황제는 시민들의 안전을 대가로 항복을 제안했고, 태양궁은 이를 막을 수 없었다. 북부의 왕 또한 레와를 포함해 상당한 영토를 받아냈다. 국가끼리 경쟁하고 전쟁하는 것은 수세대에 걸친 일이다. 이번엔 태양궁이 반격 당할 차례고, 그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소원검사는 그걸 감수해서라도 평화를 원했다.

빌은 천천히 남쪽으로 몸을 돌렸다. 세나가 아무 생각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태양궁에게 한 없이 불리한 평화를 만들어놓고, 여신을 해결한 다음엔? 물론 수세대에 걸친 일을 설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빌은 몇 가지를 예상해보았다. 선택지는 제한적이었다. 여신을 물리치고 바로 사라진다는 것은 세나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태양궁을 위해 다시 무력을 휘두르며 북부군을 휩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제2목표는 항구적인 평화다. 아마 그녀는 모든 전쟁을 끝내기 전에는 이곳을 뜨기 어려울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려면, 지금 이 시대에 발판을 만들 필요가 있다.

"다른 세상이라." 빌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색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빌은 다른 세상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인어, 익인, 요정, 외계의 존재들, 둔갑하는 동물들, 괴물들, 심지어 옛 시대의 신도 보았다. 그는 천국과 지옥을 믿었다. 시간 밖에 있기에 영원한 창조주 또한 믿었다.

다른 세계는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세나는 그것에 가까운 기준을 이 세계에 들이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신화시대가 마지막으로 꿈틀거린다. 이 다음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 변화다. 문제는 어떤 변화냐 하는 것이다. 빌은 새 시대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오래 전에 이미 한번 겪어본 감정이었다. 은퇴 전에.

물론, 아직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지금도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것처럼. 빌은 허리춤에 찬 주머니를 풀어 그 안에 든 것을 꺼냈다. 금으로 만든 손가락 크기의 상자였다. 빌은 그것을 열었다. 아일 대공의 인장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붉은 밀랍이 찔끔 묻어있는.

빌은 이 인장이 한 일을 떠올렸다. 전투가 끝난 직후, 기드 왕은 남부의 황제와 비공식적으로 연락할 방법이 필요했다. 남의 인장을 빌려 쓰는 것은 전형적인 수였다. 빌이 왕과 대공 사이를 몇 번 오간 뒤, 황제는 편지 하나를 받았다. 결과는 그럭저럭. 이미 오래 전부터 적극성을 상실한 황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침공을 멈췄다. 기드 왕은 황제의 배후에 여신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황제가 그녀를 배신했다는 것도.

하지만 아일 대공은?

빌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 불쌍한 소년은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빌이 왕의 비밀명령을 들어 인장을 가져갈 때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북부의 가장 큰 손해를 꼽자면 후계자가 잃은 신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왕의 결투에 끼어들어 판을 깼다는 누명.

빌은 인장에 묻은 밀랍을 손톱 끝으로 적당히 긁어낸 다음, 다시 함을 닫았다. 기드 왕이 아들이라도 얻는다면 모를까, 아직 북부의 후계자는 대공이다. 그리고 빌은 왕에게 그를 보필하라 명 받은 셈이다. 아직은 대공이 필요하다. 그리고 빌도 필요하다.

다른 세상이 올 것이다. 적어도 그 중 한 조각은 빌의 것이다.


작가의말

 스트레스와 식중독과 비염과 파탄난 취업계획 때문에 여러모로 우울했던 요즘입니다. 오래들 기다리셨습니다. 슬슬 다시 시동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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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종막 +40 16.07.08 3,018 82 9쪽
94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13 +16 16.07.06 1,653 64 17쪽
93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12 +14 16.05.29 1,527 76 13쪽
92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11 +13 16.04.03 1,626 66 12쪽
91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10 +10 15.12.07 1,574 78 18쪽
90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9 +5 15.11.03 1,531 68 12쪽
89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8 +10 15.09.21 1,608 80 11쪽
88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7 +9 15.08.24 1,534 63 8쪽
87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6 +8 15.08.08 1,588 65 6쪽
86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5 +16 15.07.28 1,596 72 6쪽
85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4 +22 14.10.21 2,163 88 12쪽
84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3 +12 14.06.09 2,382 101 18쪽
83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2 +15 14.04.20 2,150 110 19쪽
82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1 +27 14.03.30 2,099 89 21쪽
»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서막 +16 13.09.16 4,270 101 7쪽
80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종막 +12 13.08.20 2,885 82 10쪽
79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14 +18 13.08.09 2,896 81 14쪽
78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13 +12 13.08.02 2,293 75 18쪽
77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12 +6 13.07.23 2,357 81 8쪽
76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11 +18 13.07.13 2,543 88 14쪽
75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10 +12 13.07.05 2,422 71 22쪽
74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9 +4 13.06.16 3,935 57 18쪽
73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8 +13 13.05.27 2,830 62 14쪽
72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7 +24 13.05.13 4,503 78 18쪽
71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6 +8 13.04.29 3,282 66 18쪽
70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5 +6 13.04.14 3,001 65 15쪽
69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4 +8 13.03.30 2,412 67 18쪽
68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3 +21 13.03.16 2,993 173 19쪽
67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2 +19 13.03.02 3,406 68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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