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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 공사판

인연살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구선달
작품등록일 :
2012.09.01 22:09
최근연재일 :
2016.07.08 02:27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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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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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5
글자수 :
641,044

작성
16.07.08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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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종막

DUMMY

태양궁과 살아남은 소원검사들은 누구보다 빨리 전장에서 이탈했다. 남부의 용병들도 모두 이동했다. 죽은 자의 군대는 사라졌다. 뒷정리는 북부군이 맡았다.

하지만 빌은 북부군에서 가장 먼저 전장을 떠났다.

전사한 고위귀족들을 위한 장작더미들이 높게 쌓였다. 요새 안에 쌓여있던 장작들과 잔해들을 이용한 것이었다. 병사들은 남은 기름항아리를 찾아 장작 위에 뿌렸다.

가장 큰 장작더미 바로 아래에는 두 인물이 있었다. 아일 대공, 시론. 왼발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화승총을 지팡이 삼아 선 시론은 장작더미의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아일 대공은 그 반대였다. 그는 제일 밑바닥을 보았다.

"빌의 아들도 저런 장례를 치뤄주고 싶었는데." 아일 대공이 말했다.

시론이 고개를 저었다.

"격에 안 맞습니다." 그가 말했다. "빌 대장은 거부했겠죠."

"그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지."

그건 빌의 가장 단호한 작업방식이었다. 아일 대공은 다시 말을 이었다.

"첫번째 요새가 무너졌지만 여신의 군대는 산맥 안에 온전하다. 겨울이 지나면 이 산맥은 주인 잃은 괴물들의 소굴이 된다. 왕이 돌아올 때까진 섭정의 지위로 내게 주어진 의무를 다할 것이다."

"기드 왕과 세나 드 안느가 돌아올 수 있다고 보십니까?"

"헤네키 듀케즈는 삼백년을 뛰어넘어 죽은 자의 왕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돌아오지 못하리란 법이 어디 있는가?"

시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듯한 이야기였다. 상처를 치유하러 떠난 영웅들, 언젠가 다시 돌아올 영웅들.

"하지만 왕좌를 천년은 비워둬야 할 지도 모릅니다."

"상관없다. 북부는 굳건하다. 잃은 것이 크지만 전리품 또한 크다."

좋은 의지다. 태양궁이 실망하겠네. 시론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검집을 들어보였다. 그는 그것을 아일대공에게 내밀었다.

"빌 대장이 남기고 갔습니다. 받으시죠."

"내게?"

"예. 왕이 되시든 섭정이 되시든, 도움이 될 겁니다. 그는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광전사였으니."

유일한 광전사. 끝까지 왕가 곁에 남았던 에릭슨도 죽었고, 비열하게 웃으며 영원히 살 것 같던 시다크도 죽었다. 다 죽고 빌만 남았다. 사략수적의 지지는 별 볼일 없지만, 마지막 광전사의 지지는 다르다. 아일 대공은 빌의 검을 받아들었다. 은세공이 된 손잡이, 작은 토파즈를 박은 폼멜. 마스타바 연대와 데나리온 연대의 이름이 새겨진 크로스가드. 아일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군대에 남아줬으면 더 도움이 되었을 텐데."

"처음부터, 대장은 아들을 못 찾으면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성지순례나 갔다올 생각이었습니다. 군대에 남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 그랬지."

아일 대공이 수긍하는 순간, 장작더미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새카만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산에서 내려온 바람을 타고 연기는 대륙 동쪽을 향해 흘러갔다.

"영웅들의 싸움은 우리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끝났다." 아일 대공이 말했다. "빌도 그랬지만, 그는 자신의 싸움을 끝냈다. 우리는 아직 싸움이 남았지. 우리에게 행운이 있기를, 그에게 평안이 있기를."

시론은 대꾸 없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 그는 좀 더 아래에서 기다리던 틸리의 부축을 받으며 요새 아래로 내려갔다. 아일 대공과 병사들이 그 다음이었다. 장례식의 마무리를 맡은 자들이 가장 마지막에 떠났다.

남자, 오와 열, 깃발, 군대.



*

투키 시의 북부재단 지점장 모리는 집무실 책상 앞에서 종이를 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편지는 항상 신중하게 쓰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써야 할 내용을 먼저 입으로 천천히 읊어보았다.

"신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투자는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악신의 유혹을 견딘 결과, 북부의 상인들은 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평화가 온 것이 기쁩니다. 부상을 치유하러 신비한 세계로 떠난 왕들과 영웅들을 추억하며."

별로 근사한 문구들은 아니었다. 모리 지점장은 생각에 잠겼다. 추억? 칭송이 더 낫지 않을까? 그는 자신에게 온 편지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남들이 쓴 편지는 어떤 문구를 썼더라? 그는 아무 편지나 하나씩 꺼내 읽어내려갔다.

"이따금 농지에 갈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의 수확량을 계산해보십시오. 지난해의 수확량과 비교해야 합니다."

"우리가 시빌라 퍼스워드에게 충분한 사례비를 지급하지 못했음을 인정합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들의 최고지도자인 호법관은······."

"어린 닭으로 만든 수프에 아몬드와 계피를 가루내어 뿌리십시오."

"사냥꾼 키체커가 극동에서 식인맹수 사냥꾼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지역 주민들은 그를 성인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그는 표범 22마리와 호랑이 10마리를······."

"죽은 자의 왕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소문이 돕니다. 페스트가 게라르디나에서 게헬름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시어진 포도주로 주변을 닦으십시오. 쥐를 잡아 불에 태우십시오. 페스트와 유언비어 모두가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드디어 황제의 야망이 좌초되었습니다. 신께서는 결국 그가 투키 시 이북으로 진출하는 걸 허락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투키 시가 여전히 황제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은 아쉽지만, 이제 남서항로는 안전합니다. 우리 배는 귀족의 배로서 가장 용감한 바닷사람 시론의 지휘를······."

중간쯤부터 모리 지점장은 읊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는 다음 편지를 눈으로 읽었다.

『당신은 돈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훌륭한 제자가 필요합니다.』

나쁘지 않은 문구지만 지금 쓸 건 아니었다. 모리 지점장은 다시 편지를 넘겼다.

『수호자 롭스트릭 서기장, 수호자 브롬 장로께서 지난 5월에 실종되셨습니다. 오래 된 전설대로, 그분들은 아무에게도 최후를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장로회는 그분들의 명예를 기리는 집회를······.』

『아일 섭정공의 결혼식에는 빵 120개, 치즈 50파운드, 수소 반 마리, 양 2마리, 닭 22마리, 돼지머리와 족발 1개가 더 필요합니다. 섭정공과 그 약혼녀가 좀 더 일찍 돌아온다면 추가로 청구하겠습니다.』

『재단의 중요한 편지가 유출되었습니다. 범인은 신 아자투르 지부에서 일하던 자입니다. 재단은 규율에 따라 결단코 그를 용서치 않을······.』

도움이 되는 게 없었다. 모리 지점장은 한숨을 내쉬곤 그 다음 편지를 꺼냈다. 남부제국으로 간 상선대에서 보낸 편지였다.

『우연히 빌 사이커의 마지막 흔적을 찾았습니다. 그는 남부 제국의 칼리키딘이라는 작은 마을에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외양간 뒤에 쓰러져 있던 것을 꼬마들이 목격했는데, 어른들이 불려왔을 때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그의 쇠도끼만이 남아있었는데, 우리가 이를 입수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빌 사이커이며, 죽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빌 사이커는 적법한 상속인을 남겨두지 못했으므로, 그의 도끼는 습득자의 재산이 되거나 국고로 귀속될 것입니다. 왕가는 지금 혼란스러우니, 정당한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재단에서 임시로 보관하겠습니다. 재단은 다음과 같은 규정에 의해······.』

빌 사이커. 익숙한 이름이었다. 모리 지점장은 그 편지에 적힌 날짜를 확인해보았다. 그 도끼는 결국 어떻게 되었더라? 그러나 뚜렷이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어딘가의 무기고나 창고에 처박혀 있으리란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걸 찾는 것 또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모리 지점장은 그 편지를 내려놓고 다른 편지들을 읽었다. 과거가 아니라 오늘 새로 도착한 편지들이었다. 역시 그곳에서도 쓸만한 문구는 없었다. 그래도 그의 관심을 끌 소식은 많았다.

『암염광산이 석유에 오염되었습니다. 목표량을 채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손해가 막심합니다.』

『베르도프 부인께서 혼자 1할 6푼의 이윤을 얻으려 했습니다.』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톨레필 산 포도주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을 것입니다. 포도나무에 역병이······.』

『특권 회수에 대한 대책을 논의해야 합니다. 재단의 다음 회의는 언제입니까? 우리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모리 지점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톨레필 산 포도주와 재단의 특권 회수는 중요한 이야기였다. 그는 이미 읽은 편지들을 모아다가 하나의 서류철로 묶고는 그의 책장에 꽂았다. 그리고 웃옷을 챙겨입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호두나무로 만든 문짝이 닫히자 청동 자물쇠가 절그럭 소리를 냈다. 곧 인기척이 멀어졌다. 쓰기와 읽기는 끝났다.

한 귀퉁이의 기록만 남았다.


끝.


작가의말

후기는 공지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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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13 +16 16.07.06 1,655 64 17쪽
93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12 +14 16.05.29 1,530 76 13쪽
92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11 +13 16.04.03 1,627 66 12쪽
91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10 +10 15.12.07 1,576 78 18쪽
90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9 +5 15.11.03 1,534 68 12쪽
89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8 +10 15.09.21 1,612 80 11쪽
88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7 +9 15.08.24 1,536 63 8쪽
87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6 +8 15.08.08 1,590 65 6쪽
86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5 +16 15.07.28 1,600 72 6쪽
85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4 +22 14.10.21 2,165 8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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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2 +15 14.04.20 2,151 110 19쪽
82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1 +27 14.03.30 2,101 89 21쪽
81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서막 +16 13.09.16 4,274 101 7쪽
80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종막 +12 13.08.20 2,889 82 10쪽
79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14 +18 13.08.09 2,898 81 14쪽
78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13 +12 13.08.02 2,294 75 18쪽
77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12 +6 13.07.23 2,358 81 8쪽
76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11 +18 13.07.13 2,545 88 14쪽
75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10 +12 13.07.05 2,425 7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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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6 +8 13.04.29 3,283 6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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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3 +21 13.03.16 2,995 17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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