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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살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구선달
작품등록일 :
2012.09.01 22:09
최근연재일 :
2016.07.08 02:27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349,351
추천수 :
8,515
글자수 :
641,044

작성
15.07.28 02:11
조회
1,596
추천
72
글자
6쪽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5

DUMMY

쉬는 시간. 빌은 회의실 정문을 연 다음 옆으로 비켜서 눈을 비볐다. 굳다 만 눈꼽이 장갑에 묻어나왔다. 눈이 따가웠다. 빌은 장갑을 벗어 맨손으로 다시 눈을 비볐다.

전쟁의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수월했다. 기드 왕이 점령한 도시들과 그에게 항복한 지역들은 북부의 것이다. 태양궁은 기드 왕의 동서 파롤 왕 즉위를 인정한다. 또한 태양궁이 북부에 갖고 있던 권한 중, 왕위를 포함한 각 작위 계승의 간섭을 포함한 상당수를 포기한다. 관세조약은 덤.

아일 대공이 당황할 정도로, 생각보다 빠른 진행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의 일은 대공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다. 본론 없이 서론만 맴도는 이상한 회담이 시작된 것이다. 여왕이 기드 왕을 떠보고, 기드 왕은 소원검사를 떠보고. 진짜 본론인 여신의 이야기는 누구도 먼저 꺼내지 않았다.

여신의 존재를 모르는 아일 대공은, 이 방 안의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주제를 꺼내려 하는 것인지 짐작도 못했다.

"인간 같지 않은 사람들의 대화에는 끼지 말라는 게 이런 뜻이었던가?" 아일 대공이 문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빌은 창 밖을 보면서 딴청을 피웠다.

사실, 회의장 사람들은 아일 대공을 강하게 의식했다. 그들의 첫번째 문제가 바로 여신의 존재를 공표하는 방법이었다. 아일 대공을 비롯한 제후들이 왕들을, 장로들을, 소원검사들을 정신병자나 옛 신화에 지나치게 심취한 망상가로 취급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충격을 받을 것은 분명했다.

빌에겐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지루한가요?" 세나가 빌에게 물었다.

빌은 그녀의 충혈된 눈동자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네가 더 심한 것 같다."

세나는 말 없이 웃고는 방을 나갔다.

나가는 사람과 반대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아일 대공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는 제후들, 소원검사들을 기웃거리는 장로들, 빌의 어깨를 치는 동료들.

"뭐 들은 거 없냐?" 흑선 시다크가 제일 먼저 꺼낸 말이었다. 빌은 그를 흘겨보았다.

"나중에 공표되는 거나 들어."

"정보는 빠를수록 좋은 거야. 비싸게 굴지 마."

"어차피 왕들의 회담은 대략적인 수준 밖에 안 돼. 너도 짐작할 만한 것들만 나오지. 세부적인 건 제후들까지 동석한 회의에서 나올 거다."

"그 회의가 언젠데?"

"낸들 아나."

빌은 과자 하나를 집어먹었다. 하얀 밀가루로 만들어 무화과와 설탕을 잔뜩 집어넣은 놈이었다. 입 안에 버터 냄새가 가득 퍼졌다. 시다크도 과자 하나를 집어 씹어댔다. 두 노병이 똑같이 우물거리는 모습은 웃긴 구석이 있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리고 왕의 노 에릭슨은 웃지 않았다.

"손 쓴 구석이 있는 것으로 안다." 에릭슨이 말했다.

"뭐가?" 빌이 질문했다.

"네 부하. 틸리라고 했지. 장로회의 지시로 움직인다고 들었는데."

빌은 쓴웃음을 지었다. 에릭슨은 역시 왕의 측근이라 그런지 귀가 컸다.

"마녀 레페린." 빌이 대답했다.

"레페린? 그 이단자?" 시다크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빌은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알고 있나?"

"교회 장로들의 경고장을 전해주러 간 적이 있었지. 다른 지역의 어린애를 납치한다는 의혹이 있었거든. 토벌 작전까지 잡혔는데, 결국 진범이 잡혔어. 레페린이 아니었지."

"저런."

"그때 장로님들 표정을 네가 봤어야 했는데."

빌은 레페린이 심술을 부리는 이유를 이해했다.

"레페린이 어떤 개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이 시점에서 신화시대의 마녀를 달랠 이유가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에릭슨이 말했다.

그는 빌을 향해 질문했다.

"왕들의 회의에 신화시대가 관련 있나?"

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긍정이었다. 시다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이야기군. 신화시대와 이 전쟁에 접점이 있었나?"

빌은 계속 침묵을 지켰다. 에릭슨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빌은 권력과는 거리가 멀지만, 격은 에릭슨과 비슷했다. 둘 다 한 때 선왕의 정예병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현역인 몇 안 되는 인간들이다. 둘의 차이는 왕궁에 남았는가, 떠났는가 단지 그뿐.

위압이 먹히지 않는단 사실을 재확인한 에릭슨은 결국 물러섰다.

"왕은 비밀을 쪼개서 나눠주길 좋아하지. 신하들을 휘어잡는데 유용하거든. 하지만 국정의 방향을 베일로 가리는 건 심각한 문제야. 자네가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라네."

빌은 생각했다. 이래서 정치싸움이 싫어.

"틸리가 오면 다 알게 될 일이다. 단지 그뿐이야."

빌은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그가 방을 나서자마자 제일 먼저 본 광경은 민화 같았다. 시녀의 물병을 빼앗아 든 채 세나를 희롱하는 기드 왕, 그를 노려보는 태양궁의 여왕. 빌은 아주 손쉽게 그들의 역할을 배정할 수 있었다. 수줍음에 잔뜩 붉어진 얼굴로 말을 더듬는 소녀와 깐죽거리는 기사, 그를 핀잔 주는 수도녀.

빌은 문득 예전 일을 떠올렸다. 세나가 북부의 왕비가 되면 모든 적대행위를 멈추겠다던 장로회의 제안. 그 발상은 왕의 수작에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결국 전쟁이 벌어졌으며, 양국의 전력 상당수를 날렸다. 왕들의 회의 이후에도, 여신 토벌이 끝난 이후에도 크고 작은 싸움이 빈발할 가능성이 컸다. 기드 왕과 장로회는 이 시대를 기점으로 몇 세대에 걸쳐 태양궁을 압박한다는 장기적인 국가전략을 이미 세워놓았으니까.

한 근위병이 빌에게 다가와 쪽지를 건넸다. 빌은 그 쪽지를 펼쳐보았다. 틸리의 글씨였다. 내용을 다 읽은 다음, 빌은 쪽지를 접어 입 안에 삼켰다. 쓰고 텁텁했다.

그건 세나의 실패였다. 그녀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실패했을 것이다.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건강하기를. 살아있기를. 의미심장한 말들이 아닌가.


작가의말

큰 고비 하나를 끝냈기에 연재 재개합니다. 이번엔 안 쉬고 완결까지 가려고 합니다.

먼저 3천자 정도로.

더 쓰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안 나가네요. 차라리 짧게 여러번 쓰는게 낫겠다 싶기도 해서 페이스 조절 중입니다.

근황은 묻지 말아주세요. 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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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종막 +40 16.07.08 3,018 82 9쪽
94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13 +16 16.07.06 1,653 64 17쪽
93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12 +14 16.05.29 1,527 76 13쪽
92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11 +13 16.04.03 1,626 66 12쪽
91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10 +10 15.12.07 1,574 78 18쪽
90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9 +5 15.11.03 1,533 68 12쪽
89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8 +10 15.09.21 1,609 80 11쪽
88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7 +9 15.08.24 1,534 63 8쪽
87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6 +8 15.08.08 1,588 65 6쪽
»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5 +16 15.07.28 1,597 72 6쪽
85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4 +22 14.10.21 2,163 88 12쪽
84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3 +12 14.06.09 2,383 101 18쪽
83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2 +15 14.04.20 2,150 110 19쪽
82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1 +27 14.03.30 2,099 89 21쪽
81 인연살해 6부: 미친 빌과 붉은 세계 - 서막 +16 13.09.16 4,272 101 7쪽
80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종막 +12 13.08.20 2,886 82 10쪽
79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14 +18 13.08.09 2,896 81 14쪽
78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13 +12 13.08.02 2,293 75 18쪽
77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12 +6 13.07.23 2,357 81 8쪽
76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11 +18 13.07.13 2,543 88 14쪽
75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10 +12 13.07.05 2,422 71 22쪽
74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9 +4 13.06.16 3,935 57 18쪽
73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8 +13 13.05.27 2,830 62 14쪽
72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7 +24 13.05.13 4,503 78 18쪽
71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6 +8 13.04.29 3,282 66 18쪽
70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5 +6 13.04.14 3,001 65 15쪽
69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4 +8 13.03.30 2,412 67 18쪽
68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3 +21 13.03.16 2,993 173 19쪽
67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2 +19 13.03.02 3,406 68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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