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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 공사판

인연살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구선달
작품등록일 :
2012.09.01 22:09
최근연재일 :
2016.07.08 02:27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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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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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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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29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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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글자
18쪽

인연살해 5부: 미친 빌과 북부의 왕 - 6

DUMMY

빌은 투키 시의 일을 떠올렸다. 셀레스테를 만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그는 소원검사를 처음 만났다. 그녀의 의뢰를 받아들였고, 대화를 몇 번 나누었다.

'사람 죽이는 것을 즐기나요?'

그때 세나가 빌을 향해 질문했다. 술집 구석에서 도끼날을 갈던 빌은 짧게 대답했다.

'한 때는.'

빌의 어깨 위로 찬물이 쏟아졌다. 공성탑 안의 병사들은 서로를 향해 양동이에 든 물을 뿌렸다. 고함소리가 어지럽게 얽혔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새어들어온 햇빛은 아수라장을 그대로 보여줬다. 적이 쏜 산탄과 포탄이 공성탑을 때리면서,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빌은 피투성이가 된 기둥에 알알이 박힌 산탄을 보았다. 병사들은 부상자를 끌어내리고 예비 기둥과 판자로 공성탑을 어떻게든 지탱했다.

공성탑이 멈췄다. 뒤이어 아래에서 쿵 하고 진동이 느껴졌다. 1층의 파쇄추가 성벽을 부수기 시작한 것이었다.

때가 왔다.

"도개교 개방! 신의 가호를!" 공성탑 옥상에서 틸리가 외쳤다. 차르륵 하고 쇠사슬과 도르래가 바삐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방패병, 앞으로!" 빌이 소리쳤다. 그도 물방울형 방패 하나를 넘겨 받았다. 그는 허리춤에 찬 작은 약병을 한 손에 들었다.

오늘 식사는 시원찮았어. 빌은 그렇게 생각했다. 빌이 악병을 깨끗이 비우는 순간, 햇빛이 정면에서 쏟아졌다.

"던져!" 성벽 쪽에서 들린 소리였다. 곧바로 돌덩이와 화염병이 공성탑 안을 향해 쏟아졌다.

선두가 방패로 화염병을 막으면서 화염이 터져나왔다. 빌은 방패와 갑옷째로 불덩이가 된 병사들의 비명을 무시하고 달려나갔다. 그는 흉벽 위로 뛰어내려 제일 앞에 보이던 적병 하나를 걷어찼다. 그 병사는 뒤의 무리와 함께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빌은 괴성을 지르면서 적병들을 쳐죽이기 시작했다.


*

"대공 각하, 공성탑 모두가 성공했습니다."

한 병사가 기쁨에 찬 얼굴로 보고했다. 멀리서 보고 있던 아일 대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보고를 받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빌과 시다크, 두 광전사가 성벽 위에 올라서자 적은 저항하지 못했다. 사람이 막 날아다니는데 무슨 수를 쓸 수 있단 말인가?

"선왕은 대체 어떻게 저런 작자들을 수백명이나 거느린 거지? 지금도 그런 군대를 만들 수는 없나?"

"어렵습니다. 대공 각하." 한 수호자가 말했다.

"재료 문제로 오늘날 비약의 공급량은 현저히 줄었고, 통솔에 실패하면 대재앙이 되는데다, 이젠 정예병들의 시대도 아니니까요."

"시대?"

"정예병도 눈먼 총탄에는 골로 가는 법이죠."

아일 대공은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었다. 옛날에는 가능했다. 화살을 무수히 꽂은 채 악귀처럼 싸운 전사들의 이야기가. 그러나 그 시절에도 비극적인 종말이 종종 있었다. 목이나 눈에 화살을 맞고 죽은 위대한 전사들. 정예병도 예외는 아니고, 총탄은 화살보다 더욱 강력하다.

"빌과 시다크는 특이합니다. 그들은 총과 대포에 거부감이 없죠. 많은 정예병들은 총과 대포를 혐오했습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결국 살아남은 정예병들은 신기술을 수용한 쪽이니."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아일 대공은 고개를 저었다.

"예. 부작용도 중요한 문제였죠." 수호자가 답했다.

아일 대공은 문득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성벽 위에 첫발을 딛는 임무는 위험하다. 그러나 지금 비약을 쓴다면, 적장이 준비한 수에 대응할 카드가 있을까? 물론 빌은 생각 없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적당한 양으로 나눈 작은 약병 여럿을 챙겼다. 유사시에는 준비해둔 지혜가 빛을 발하리라.

그때 전장에서 환호가 터졌다.

"대공 각하! 아군의 깃발이 성탑에 올랐습니다!"

대공도 똑똑히 보았다. 첫번째 공성탑 왼편의 성탑에서, 적의 군기들 가운데 익숙한 깃발 하나가 흔들렸다. 아일 대공의 문장이 새겨진 커다란 군기였다. 성탑을 손에 넣었다는 뜻이었다. 아군의 사기는 오르고, 적군의 사기는 떨어질 분기점이었다.

"저 성탑 주변으로 사다리를 더 가져가라! 적은 필히 탈환을 노릴 것이다! 속히 증원하여 승세를 굳혀라!"

사흘 안에 끝나는 공성전. 예상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다. 수로 방벽을 날려버린 것이 컸다. 게다가 적은 공성탑을 하나도 무력화시키지 못했다. 적에겐 비장의 수가 전혀 없는 것인가?

펑!

그때였다. 갑자기 시다크의 공성탑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다. 지옥에서 새어나온 불길 같은 기세였다. 하늘 높이 치솟은 공성탑은 성벽 위로 떨어지면서 허리가 두동강났다. 병사들의 비명 속에서 아일 대공과 참모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마법인가? 수호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요?"

아일 대공의 외침에 장로와 수호자들은 답을 주지 못했다. 그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 수호자가 더듬더듬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저 공성탑은 장로회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태양궁의 마법사라 하더라도 단 일격에 날려버릴 수는 없습니다!"

펑!

그 수호자의 말이 끝나는 순간, 빌의 공성탑도 날아가버렸다. 이번엔 성벽 안으로 떨어졌다. 성벽 안에서 적군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성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아군 사이로 공포가 전염되었다. 뒤로 돌아 도망치는 병사들을 보자 아일 대공은 격노했다.

"장로들과 장교들은 뭣들 하는가? 기세를 유지하라! 공격군이 아직 성탑 안에 있다!"


*

기수 주변에서 정신 없이 싸우던 빌은 공성탑이 날아온 것을 보자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병사들과 한 덩이로 불타는 잔해. 사다리를 타고 성탑에 오르던 병사 하나는 그 자세 그대로 굳었다. 빌은 황급히 그의 멱살을 붙잡아 끌어올렸다.

"공격 기세를 유지하라! 올라와! 올라오라고!"

겨우 사다리 위의 병력들이 뒷걸음치는 사태를 막은 다음, 빌은 공성탑의 잔해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옆에 있던 마누크가 중얼거렸다.

"키체커랑 틸리, 탑 옥상에 있었는데."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누크는 다시 투덜거렸다.

"죽었겠군. 우리도 그 뒤를 따르게 생겼고. 젠장. 방금 그거 뭐지?"

"어떤 종류의 변칙 마법이겠지."

"마법사는 보이지 않았어. 적장이 마법사라고는 들었지만. 두루마리 마법을 사용한 걸까? 여러장을 땅에 묻어놨다던가."

"비싼 물건을 성벽 밖에 묻어놓을 얼간이는 없어. 공성탑이 어디 붙을지 어떻게 알고?"

두루마리 마법을 함정으로 쓰려면 상당히 기계적인 배치를 활용해야 된다. 기계란 건 보통 못 믿을 물건이고, 무엇보다도 이런 식으로 운용하진 않는다. 게다가 여기는 대륙 북쪽이다. 남부 대륙의 마법 두루마리를 대량으로 가져오기 힘든 땅이다.

"어쨌든, 두번째 공격이 있었다는 건 세번째 공격도 가능하단 이야기겠지. 성탑을 포기할까?" 마누크가 건의했다.

"그러기엔 너무 늦었지." 빌은 고개를 저었다.

마누크는 뒤를 돌아보았다. 장로들과 장교들은 몽둥이까지 동원해서 병사들을 독전했다. 상관에게 두들겨 맞은 병사들이 다시 되돌아왔다. 그러나 기세가 오른 적은 성벽 위에서 계속 화살과 총을 쏘며 저항했다. 게다가 성탑을 다시 탈환할 부대까지 뛰어오는 중이었다. 빌은 악 쓰듯이 외쳤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기수를 지켜라! 이 전투에 북부의 운명이 걸렸다!"


*

밤이 되자 틸리와 키체커는 살아서 성탑에 합류했다. 빌은 굉장히 놀랐다. 사실, 공명심에 들떴던 틸리는 그의 뒤를 따라 공성탑에서 내려왔었다. 키체커와 고참병들도 그를 따라왔고. 투덜거리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목숨을 건진 셈이다. 다만 바로 합류하지는 못하고, 시다크가 성탑 하나를 점거하려고 싸우는 쪽에 가담했었다.

"결국 아군은 성탑 2개를 손에 넣었고, 거기서 고착 상태로군."

빌은 한숨을 내쉬었다. 적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성채를 회복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썼다. 기름 뿌린 통나무를 쌓아올려 불을 붙이기까지. 불기둥의 위압에 질린 병사들에게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빌은 간신히 성탑 점거를 유지했다. 키체커와 틸리의 합류는 적어도 빌 본인에게는 큰 심리적 안정감을 줬다.

"대장은 행운의 여신이 편애하는 게 맞습니다. 고참병 상당수를 그 불기둥에서 건졌으니까요. 시다크네 부하들은 또 왕창 죽었던데." 틸리가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빌은 이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오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틸리는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빌과 시다크가 점거한 성탑과 그 사이의 성벽은 온전히 북부군의 통제에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더 전진하지는 못했다. 나머지 성벽과 성탑에서 증원군을 차단하려고 갖은 수를 다 썼기 때문이었다. 아일 대공과 참모들도 적의 신무기에 대항할 방법을 찾기 전에는 보다 적극적인 공세를 꺼렸다.

"놈들이 왜 성탑은 안 태워버리는 걸까?" 키체커가 중얼거렸다.

"성탑 상대로는 효과가 없거나, 성탑이 아깝거나. 그걸 좀 더 일찍 썼으면 우린 여기 없었어. 준비에 꽤 시간이 걸리는 마법인지도 모르지." 빌이 대답했다.

빌은 창문으로 성탑 아래의 문짝을 내려다보았다. 굳게 닫힌 그 밖에는 적병이 우글거렸다. 그들은 문짝을 뚫으려 하거나, 성탑으로 다가오는 증원군을 노려 사격하는 중이었다. 키체커가 빌의 어깨를 툭 치자 빌은 창가에서 물러섰다. 키체커는 자신의 사냥총을 겨누었다. 탕! 그는 빈 총을 내려놓고 다른 총을 집어들었다.

"끝이 없겠는데. 이래서는." 키체커가 말했다.

빌은 고개를 저었다.

"끝 없는 전투는 없다."

병사들의 시선이 빌을 향했다. 빌은 성 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어떤 끝을 보느냐 그게 문제지."


*

공성전은 결국 시간을 더 잡아먹었다.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일 대공의 야전포는 끊임 없이 포격을 퍼부었고, 기술자들은 다섯 곳의 배수구를 폭파했다. 그 결과 두 곳에 추가적인 진입로를 뚫었다. 그러나 적은 좁은 진입로를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수백명이 얽혀 힘싸움을 벌였다. 북부군은 더 이상 추가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아일 대공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분명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두 성탑을 점령했고, 두 곳의 진입로를 뚫었다. 그러나 그 이상을 할 수 없었다. 병사들은 적병들을 뚫지 못하고 도로 도망쳐오기 일쑤였다. 병사들의 사기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그들은 예전의 불기둥을 두려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공격에 기세가 실리지 않았다.

빌은 성탑과 성탑 사이의 성벽 위에서 미친 듯이 싸웠다. 그의 병사들은 계단을 틀어막았고, 그는 사다리로 기어올라오는 적병들을 하나하나 도끼로 후려쳤다. 그는 한 적병의 방패를 세번째 내리쳤다. 박살이 난 방패 너머로 이를 악문 얼굴이 보였다. 그는 방패를 옆으로 치우고 다른 손에 든 검을 내질렀다. 그러나 빌은 찔리지 않았다. 빌은 도끼머리로 검을 쳐냈다. 적병은 다시 검을 휘둘렀지만, 발 밑이 불안정한 그와 달리 빌은 전력으로 도끼를 휘두를 수 있었다. 깡! 중심을 잃은 적병은 아래로 추락했다.

빌은 옆을 돌아보았다. 아군 하나가 화살을 맞아 쓰러지고, 적병 한둘이 사다리에서 뛰어올라왔다. 빌은 다른 손으로 검을 뽑아들곤 그놈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난전 속으로 뛰어들어가 성벽 위로 올라온 적들을 쓰러뜨렸다.

"막아라! 깃발을 지켜라!"

빌이 소리쳤다. 머리 위로 양측의 화살이 빗발쳤고, 깃발은 위태롭게 펄럭였다. 기수들이 있는 곳까지 전투가 안 벌어지는 곳이 없었다.

빌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점점 적의 공세가 강해졌다. 성벽 위에서 교전을 벌이는 적병의 숫자가 늘어났다. 빌은 버럭 화를 내면서 도끼와 검을 휘둘렀다. 성탑의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키체커가 뭐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빌은 그걸 듣지 못했다. 그러나 키체커의 외침을 기점으로 해서 전세는 급속도로 기울었다. 빌은 나중에야 그것이 진입로의 아군이 후퇴한다는 뜻임을 깨달았다.

"이 머저리들아! 돌아와! 여길 빼앗긴단 말이다!"

빌은 성벽 앞의 아군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병사들은 멈추지 않았다. 옆에서 땀에 흠뻑 젖은 마누크가 중얼거렸다.

"곧 다시 올 거야. 아까도 그랬잖아."

"지금은 그때보다 갑절은 더 위험해."

빌이 답했다. 그냥 포기하고 내려갈까? 시다크가 점령한 성탑도 상황은 좋아보이지 않았다. 빌은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입에서 쇠비린내가 났다.

그때였다. 키체커가 다시 소리쳤다. 빌은 이번에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똑똑히 들었다.

"왕의 군대다!"

빌은 키체커가 무슨 소릴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왕? 어디의? 그 순간 아일 대공의 군영에서 커다란 함성소리가 터졌다. 빌은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잠시 뒤 그는 공지선 위에 도열한 기병대와 사람 몇 명은 덮고도 남을 커다란 깃발을 보았다.

그 깃발은 기드 왕의 것이었다.

"왕? 벌써?"

빌이 다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왕의 군대는 성벽을 향해 질주했다.

선두에는 기드 왕이 있었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에 대해, 병사들은 입 있는 자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떠들었다.

왕은 성자의 계시를 받아 아군의 위기를 알아차렸다.

왕은 빛나는 하얀 군대와 함께 왔다. 그들은 신께서 보낸 지원군이었다.

왕은 치솟는 불길을 단기로 뚫고 적들의 지휘관을 베었다!

빌은 웃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런 엄청난 소문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드 왕의 위업이 빛 바래는 것은 아니었다.

기드 왕은 겨우 50기의 기병만으로 진입로를 뚫었다. 수백, 수천명이 힘싸움하던 곳에서. 형세는 단번에 기울었고, 적들은 지리멸렬했다.

빌은 성탑을 내려왔다. 시체를 밟고 밀어내서야 그는 겨우 땅을 딛었다. 동료 병사들과 함께 한참을 걸어가자, 비명과 함성 속에서, 빌은 아일 대공과 왕을 보았다. 그 둘은 말을 탄 채 시청 앞 광장에 서 있었다. 다만 둘의 표정은 판이하게 달랐다. 아일 대공은 마치 패장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럴 만하지. 빌은 혀를 찼다. 그는 천천히 기드 왕 앞으로 걸어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기드 왕은 어디선가 구한 낡은 천으로 턱 밑의 땀을 닦다 빌을 발견했다.

"이런, 빌 사이커. 그대의 용맹은 달리는 와중에도 들리더군. 최초로 성벽에 오르고, 또 이틀 밤을 분전한."

"왕의 위업이 아니었다면 무위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께서 이룬 것입니다."

"그런가?"

왕은 웃으면서 천자락을 땅에 떨어뜨렸다. 그는 주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일, 정말 수고 많았다. 위험에 처한 혈족을 구할 수 있음을 신께 감사드려야겠다."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으니,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 아일 대공이 조그만 소리로 답했다. 왕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충분하다." 그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가 가는 곳은 시청이었다. 빌은 문득 다른 건물을 바라보았다. 교회. 예전에는 신전이었던. 대관식을 하려면 교회가 제격인데. 빌은 다시 왕을 보았다. 왕은 시청 앞에서 다시 돌아왔다.

"이제 대관식을 해야겠군."

"송구스럽습니다. 즉시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이틀만 여유를 더 주신다면……."

"아니, 아니다." 왕이 아일 대공의 말을 잘랐다. 그는 모여서 침묵을 지키는 북부군 앞으로 갔다. 다들 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제군들."

그리고 그 다음 말은 모두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 도시의 건물은 단 한 채도 남기지 말고 모두 불태워라! 이것이 내 대관식이다!"

빌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쩍 벌렸다. 그러나 모였던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거미 새끼처럼 흩어졌다. 도시 전체에서 함성은 점점 더 커졌다. 불길도 같이. 당황한 빌은 결례를 무릅쓰고 기드 왕에게 달려갔다.

"나의 왕이여,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했네. 이 도시에 남은 태양궁의 흔적을 깡그리 불태워버리라고."

"그렇다면 이 도시를 점령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아군의 공성탑을 불태워버린 적의 술수는 어찌 파악합니까?"

기드 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웃으면서 대로로 나아갔다. 아일 대공과 기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빌은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기드 왕은 불타는 도시 속에 서 있었다. 열풍과 불꽃 속에서. 새빨간 불빛 속에서 휘날리는 망토, 늠름한 백마, 빛나는 투구. 주변의 병사들은 검을 뽑아 하늘 높이 들어, 한 마음 한 소리로 외쳤다.

"북부의 왕이여, 찬양 받으소서!"

왕은 그에 화답하여, 자신의 검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의 백마가 도시를 질주했다. 도시는 우렁찬 함성으로 가득찼다.

"북부의 왕이여, 찬양 받으소서!"

빌은 자신의 옆에서도 그 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을 들었다. 그래, 대관식이군. 엄청난 대관식이야. 빌은 천천히 양손을 들어올렸다.

아이들의 울음소리, 여자들의 비명소리, 남자들의 신음소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묻어버린 함성.

정복왕.

"북부의 왕이여, 찬양 받으소서!"


*

태양궁과 소원검사들은 레와의 함락 소식보다, 거기서 벌어진 대파괴에 기겁했다. 그것은 태양궁이 예상한 대관식이 아니었다. 기드 왕이 거기서 만족할 리가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재확인되었다. 더불어, 겨우 수십 기의 기병만으로 한 순간에 이룬 전과는 태양궁을 바짝 긴장시켰다.

진짜 북부의 왕이 나타났다.

태양궁의 여왕은 저울질을 끝냈다. 그녀는 남부 제국의 군세가 주춤거리는 틈을 타서, 가까운 북부군부터 격파하기로 결정했다. 그녀가 직접 이끄는 군대가 태양궁을 출발했다. 태양궁이 30년 전 대학살로부터 복구한 모든 것을 쥐어짠 군대였다.

여왕을 태운 거대한 가마를 포함한 이 군대는 북부군보다 훨씬 많은 8만 대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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