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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江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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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
작품등록일 :
2022.01.04 13:06
최근연재일 :
2023.02.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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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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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1.2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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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천공교검天工巧劍

DUMMY

갈관자鶡冠子·태록泰錄에 이르길.

천지天地는 원기에서 비롯되고, 세상 만물은 천지에서 비롯되었다.


왕충이 논형論衡에 이르길.

원기元氣가 분리되기 전에 세상은 혼돈이었다. 만물은 원기에서 비롯되었다.


백호통의白虎通義·천지天地에 이르길.

천지는 원기가 낳은 것으로 만물의 시초다.


도가에선 인간에게 원신元神이 있는데 이를 단련하면 아기 모양이 되어 원영元嬰을 이룬다고 한다.


이에 따라 무림에도 원신을 단련하는 선천기공先天氣功을 익히려는 무인이 있다. 이들은 일반적인 내공심법으로 수련하는 걸 후천기공後天氣功이라고 부르며 얕잡아 본다.


그러나 원신이라는 게 어디 있고 어떤 성질인지도 명확지 않아 성과를 낸 자가 전무하니, 대부분 무인은 선천기공을 익히는 자들을 망상에 빠진 멍청이라고 생각했다.


구후영 역시 대부분에 속했다.


"뭐지? 내공은 거의 그대로인데?"


구후영은 황무지를 혼자서 헤맨 적 있는데 그때도 혼잣말이 많았다. 이번에도 밀폐한 공간에 고립되면서 근래에 혼잣말이 부쩍 늘었다.


"환골탈태를 하려면 내공이 아주 많이 필요한 게 아니었나?"


진한 우유 같던 공청석유가 점점 말갛게 변했다. 그런데도 구후영의 내공은 별로 늘지 않았다.


대신 건량이 다 떨어져서 닷새 넘게 식사를 안 했는데도 기운이 넘쳤다.


"그러고 보니 대소변을 한 번도 안 봤네?"


의미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구후영은 음서를 펼쳐 정독했다.


구후영도 처음엔 그저 손이나 발을 담그고 일각 정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음서에서 혈도를 찾아 순서대로 연기했다.


기해氣海로 불리는 단중혈膻中穴에서 시작해 양쪽 가슴의 유근혈乳根穴을 왕복하다가 밑의 신궐神闕로 의념意念을 보낸다. 다음엔 사타구니의 회음혈會陰穴로 갔다가 무릎의 학정혈鶴頂穴을 통해 발바닥의 용천혈湧泉穴로 간다.


용천혈에서 뒤로 가서 오금의 위중혈委中穴에 머물다가 엉덩이의 장강혈長强穴을 통해 등의 명문혈命門穴로 간다. 다음엔 뇌호혈腦戶穴을 지나 인중혈印中穴을 통해 단중혈로 돌아간다.


이 연기법이 마교에서 애타게 찾는 천마의 내공심법은 아니지만, 공청석유의 기운을 흡수하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됐다.


이 지하도시가 만들어진 게 진시황 시절인 걸 생각하면 그때 당시엔 꽤 대단한 연기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엔 이보다 훨씬 다양한 혈도를 포함한 대단한 연기법이 흔하디흔했다.


그럼에도 구후영은 감히 다른 연기법을 사용하지 못하고 음서에서 유추한 연기법을 견지했다.


송나라 때부터 도사들이 수많은 단약을 만들며 내공을 수련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자질이 부족해 입문조차 못 하던 자들도 단약을 먹고 내공을 얻을 수 있어 연기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부유한 자들이 건강을 위해 내공을 얻는 데 혈안인 바람에 수많은 단약이 제조되었고 단약마다 적합한 연기법이 개발되었다.


명나라에 와서는 대부분 단약에 기운을 최고로 흡수하는 연기법이 따로 있을 정도다.


단, 전설로만 존재하던 공청석유에 알맞은 연기법은 없었다.


"뭐 더 없는데."


내공이 그대로인 게 자신의 연기법이 미흡해서라고 생각해 뭔가 더 찾으려 했지만, 아무리 글자를 뜯어봐도 새로운 혈도를 발견하지 못했다.


"시간이 문젠가? 혹시 해당 묘사에 쓴 글자 수가 기운이 혈도에 머무는 기간을 나타낸 게 아닐까?"


공청석유의 기운이 점점 사라지는데 내공 증진의 기미는 전혀 안 보여 조급했던 구후영은 별의별 생각을 다 떠올렸다.


#


그르릉.


공청석유가 물처럼 맑아지자 욕조가 밑으로 가라앉았다.


구후영은 욕조에 들어가 함께 내려가서 공청석유를 찾고 싶은 마음과 이대로 됐다는 마음이 치열하게 싸웠다.


공청석유의 유혹이 대단했으나 동생과 사부 그리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따르던 어린 사제들을 떠올리며 욕조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아냈다.


"다행이다."


양쪽에서 석판이 움직여 밑으로 내려간 욕조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더는 갈등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구후영은 안도의 숨을 푹 내쉬었다.


욕조가 사라지자 수정 벽도 움직였다. 기관으로 어느 정도 올라갔었는데 욕조가 내려가자 수정 벽은 돌 틈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기관 사내가 세월이 오래면 어떤 기관이어도 삭아서 못 쓴다고 했는데, 이건 용케 버텼네?"


아쉬운 눈으로 방을 한 번 훑은 구후영은 보석을 싼 가죽을 등에 메고 와석을 든 채 공동으로 나갔다.


그간은 혹시나 수정 벽이 내려올까 봐 욕조가 있는 방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어서 십여 일 만의 첫 외출이었다.


반 각도 안 걸려 공동에 도착한 구후영은 입구마다 표기를 남기며 여덟 통로를 모두 훑었다. 형제가 손을 다쳐서 일손이 부족한 탓인지 뚫린 환기구는 없었다.


"그럼 옛 입구들을 훑어보자."


구후영은 옛 입구를 하나하나 찾아 열고 안을 살폈다. 일부 입구는 가다가 그냥 막혔고, 일부 입구는 끝에 방이 있으나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장방선생이 분명히 책이 수십 권 있다고 했어. 그걸 다 들고 나갔을 리 없으니 여기 어딘가에 숨겼을 텐데. 혹시 곤위의 밀실에 비밀 공간이 있는 건가?"


구후영은 내친김에 곤위의 밀실로 가서 벽을 자세히 훑었다. 그러나 어깨 너머로도 배운 적 없는 구후영이 숨은 공간을 발견하는 기적은 없었다.


"그치. 횃불."


구후영은 와석의 빛을 빌어 검은 가루가 있는지 자세히 살핀 다음, 문밖으로 가서 횃불을 켰다. 그러곤 작게 열린 틈으로 횃불을 집어넣었다.


"됐어."


시간이 한참 흘러 안전하다는 확신이 든 구후영은 안으로 들어가 횃불을 벽에 가까이 대고 이동했다. 공간이 작을 경우 불이 잠깐만 쏠린다고 했기에 구후영은 횃불에서 눈을 한시도 떼지 않았다.


"눈이 왜 안 아프지?"


해나 불은 물론이고 달도 오랫동안 빤히 쳐다보면 눈에 빛무리가 생긴다. 그런데 횃불을 꽤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구후영의 눈은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잠깐 의문을 품었지만, 중요한 게 그게 아니라는 생각에 구후영은 다시 보물찾기에 열중했다.


"찾았다!"


불의 쏠림을 발견한 구후영은 횃불을 휘두르며 덩실덩실 어깨춤을 췄다. 그러다 자신이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금세 시무룩해졌다.


'내가 왜 이러지?'


잠깐 자기비판에 빠졌던 구후영은 보물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또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억울하게 죽은 자들을 위해 복수했다고 하늘이 상을 주는 거야."


사실 장방선생을 죽인 건 공청석유다. 구후영이 명문혈에 꽂은 침은 행동을 제한해 자신을 보호한 것뿐이다.

그러나 구후영이 일찍 일각의 시간을 말했으면 장방선생이 살 수도 있었기에 이 목숨은 본인이 짊어지기로 했다.


"장방선생은 끊어진 팔다리가 막 자라고 그랬는데 난 아무것도 없었으니 제발 좋은 보물을 주시오."


구후영은 석판의 한쪽을 밀어서 다른 쪽이 살짝 튀어나오게 한 다음, 침을 꽂아 석판이 도로 밀려들어 가는 걸 방지했다. 그러곤 손가락 끝에 힘을 잔뜩 줘서 석판을 밖으로 당겼다.


내공은 별로 안 늘었지만, 힘이 세졌는지 석판이 순순히 딸려 나왔다.


석판을 뜯고 횃불을 들어 안의 상황을 살피던 구후영은 시커먼 먼지를 보고 기겁했다. 분진폭발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르기에 검은 가루를 보자마자 횃불을 바닥에 던지고 사정없이 밟았다.


횃불이 꺼지자 구후영은 한숨 돌린 뒤 와석을 들어 안을 살폈다. 검은 가루에 덥혔지만, 책으로 보이는 물체 하나와 길쭉한 막대기 하나가 보였다.


구후영은 손을 집어넣어 둘을 끄집어낸 다음 바로 밖으로 걸었다. 검은 가루를 본 탓에 괜히 기분이 찝찝해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제발. 천마의 비급!"


빠른 걸음으로 도착한 공동에서 구후영은 간절한 마음으로 검은 가루를 털어낸 책부터 확인했다.


유일검법唯一劍法.


하나뿐인 검법이라는 꽤 광오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기대를 잔뜩 했던 구후영은 내용을 살피고 크게 실망했다.


안에는 찌르기의 각도와 속도, 베기의 각도와 속도, 방향 전환할 때 손목과 팔꿈치와 어깨에 각각 얼만큼의 힘을 줘야 하는지 등 기초적인 내용만 있었다.


"하긴. 천 년도 더 전의 검법인데 내가 뭘 기대한 거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곁에 검으로 보이는 물건도 확인하기 싫었다. 그러나 검을 확인 안 한다고 따로 할 일도 없어서 결국엔 낡고 해져서 볼품없는 검집을 잡고 검을 뽑았다.


차랑.


날 길이가 사 척 정도 되는 검이 맑고 고운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날에 보라색 줄이 쭉쭉 간 재질이 뭔지 모를 특이한 모습이었다.

날 길이가 사 척 이상인 검은 요즘도 만들기 어려워하는데 천 년 전에 해냈다고 하니 왠지 대단해 보였다.


"글자도 있네?"


손잡이와 가까운 검신에 글자가 음각돼 있었다.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살피니 천공교검이라는 네 글자였다. 검법도 그렇지만, 검 이름도 광오하기 그지없었다.


"무게는 두 근 정도."


균형이 잘 잡혀서 실제 무게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마치 손잡이에 아교가 있어 손에 딱 달라붙는 느낌도 있었다. 실망으로 가라앉았던 구후영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구후영은 기분이 나아진 김에 낙화분분의 초식을 한 번 펼쳤다. 그런데 가볍기만 하던 검이 초식을 펼치자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뭐지?"


의문을 품은 구후영은 검을 천천히 휘둘렀다. 균일한 속도로 느리게 휘두르자 또 검이 한없이 가벼웠다.


"도대체 뭐지?"


구후영은 검을 여러 방식으로 휘두르며 의문을 풀려 했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도 없이 시간만 허비하다가 유일검법에 생각이 미쳤다.


유일검법이 적힌 책자를 펼쳐 내용을 확인한 구후영은 검법서에서 말한 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랬더니 빠르고 강하게 휘두르고 복잡한 변화를 보여도 아까처럼 검이 무겁게 느껴지진 않았다.


"신기하네."


검이 검법을 타고 검법이 검을 가리는 특이한 상황이었다.


"검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질 때면 천하에 적수가 없으리."


검법서 마지막 장의 주해를 본 구후영이 피식 웃었다. 예전에야 단순한 검술로도 천하에 적수가 없었을지 모르지만, 천 년도 더 지난 지금에 어떨지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좋은 검인 건 틀림없어."


어떨 때는 매우 무겁지만, 어떨 때는 아주 가볍다. 검이 손에 익으면 가볍게 휘둘러 큰 힘을 낼 수 있다.


횃불을 아주 깔끔하게 벤 걸 보면 여든 냥짜리 명인의 검보다 절삭력이 나았다. 얼마나 단단한지는 아직 모르지만, 천칠백 년 전에 만든 검이 여전히 멀쩡한 걸 보면 쉽게 부러질 것 같진 않았다.


게다가 검은 검신에 보라색 줄이 죽죽 간 게 왠지 특별해 보이고 그랬다.


"성현께서 배움의 길은 끝이 없으니 그저 매일 정진할 뿐이라고 했지. 딱히 쓸모 있는 검법은 아닌 거 같지만, 익혀서 남 주는 건 아니니까."


그간 깨달은 게 많아서 낙화검법도 수련하고 싶지만, 검이 이상하다 보니 엄두가 안 났다. 괜히 휘두를 때 무거워지는 검으로 수련하다가 오히려 경지가 퇴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구후영은 새로 얻은 검으로 유일검법을 익히며 약초꾼 등이 굴을 뚫기만 기다렸다.


작가의말

교탈천공巧奪天工

교모함이 하늘의 재주를 빼앗은 듯하다.


천공교검의 이름 유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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