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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각

곰조카랑 힐링합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공공
그림/삽화
김공공
작품등록일 :
2023.12.02 07:21
최근연재일 :
2024.04.09 14:08
연재수 :
74 회
조회수 :
10,470
추천수 :
324
글자수 :
410,350

작성
24.02.26 18:51
조회
27
추천
1
글자
11쪽

EP13. 아군은 누구인가(1)

DUMMY

난 뜬 눈으로 밤샜다. 부고 문자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근방에 있다는 이모의 답장에 동틀 무렵 단올정을 나섰다.

내일 굿판이 잡혀 있어 근방에 들렸는데 마침 내게 연락이 왔다나, 이런 우연이 다 있나? 하지만 난 적당한 때에 나타나 준 이모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제야 오니? 배가 불렀구나. 딸린 애도 있고.”


겸이를 보더니 한 소리였다.

멀지 않은 펜션에서 머무른다는 이야기를 들어, 웅지는 매형님께 맡겼다.


“배부르기는. 인사해. 조카손주야.”

“김 겸입니다.”


이모는 겸이 녀석을 가만히 보다가 휙 하고 고갤 돌려버렸다.

괜히 날 선 반응인 것 같아 난 녀석을 데리고 이모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근데, 이모는 여긴 무슨 일로 왔어? 서울도 아니고, 우연치곤 너무 가깝잖아.”

“여기저기서 날 찾으니 말이지.”

“그렇게 용하면 강남에 신당을 차리지 그랬어. 그럼, 돈이라도 많이 벌었을 텐데.”

“그런데 안가도 충분해.”


청명한 풍경소리가 고요한 찻집 안을 가득 채웠다.

아침부터 차를 마시러 이 시골까지 오는 손님은 없다 보니 썰렁하기만 했다.


“차, 안 줘?”

“나랑 길게 이야기할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그냥 냉수나 마셔. 여기 사장은 자고 있으니까.”

“주거침입 아니지?”

“친구네 집이다. 이 녀석아.”


테이블엔 내가 들고 온 생수병만 놓였다.


“아버지, 추우세요?”

“추운 정돈 아냐.”

“효자를 뒀구나.”

“아버진 제게 은인이셔서요.”

“지고하신 남해 용왕께서 고작 내 조카 놈에게 은인이라니, 당치도 않군요.”


이모가 녀석을 알아볼까하는 우려가 있었으나, 이리도 단숨에 알아볼 줄은 몰랐다.


“찻물 끓여 올 테니 쉬고 있으시죠.”


나에게만 말을 하던 이모는 겸이에게 존칭까지 써가며 말했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게 안의 불을 다 켜고서 찻물을 끓이고 곁에 있던 난로에 불을 올렸다.


“이모가, 네 정체를 아는데. 우리 이모는 무당이라서···.”

“아뇨, 제가 기색을 숨기지 않은 거예요.”

“왜?”

“저분은 아군이니까요.”

“아군?”

“보기엔 툴툴거려도 하시는 일이 전부 누구를 위한 일인지는 분명하게 알겠더라고요.”


겸이는 공연히 창밖을 보며 말을 줄였다.

이모는 귤피를 말려 만든 노오란 빛을 내는 차를 내왔다.


“드시지요.”

“갑자기 존대야.”

“넌 정녕 이분이 누군지 모르고 모시는 게냐?”

“모시기는 무슨, 내가 데리고 사는 거지.”


그러고 보니 아까 무슨 남해의 용왕? 그런 소릴 했던 것 같은데.

에이, 설마.


“남해의 용왕이시다.”

“···뭐라는 거야. 존대는 왜 하는 거고? 내가 무당들 하는 말로 겁주지 말랬지.”


이모는 어려서부터 이랬다.

무당들이나 쓸 법한 알 수 없는 말에, 각종 신화 이야기, 그리고 귀신 이야기까지 어린 내게 못하는 말이 없었다.

난 귀신이 싫다. 무섭다. 고로, 이모가 하는 말을 들으면 파블로프의 개마냥 몸에 소름이 돋는다.


“어찌 아무 말을 하지 않으십니까. 이토록 무지한 제 조카 놈에게.”

“지금 저는 김겸이니까요.”

“···.”

“정말 용왕이야?”

“왕이면 제가 여기 있겠습니까. 아버지.”


사신수지영력도에 나온 흑룡이야기에, 이모의 용왕이야기까지.

대체 이 녀석은 뭐 하는 놈인지.


“지금은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이모는 나와 겸이 녀석을 매서운 눈을 하고 살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둘을 두고 있자니 내가 여기 온 이유도 까먹고 있었다.


“아, 이모를 보자고 한 이유는 말이야.”

“복채는 천만 원이야.”

“누가 그렇게 받아?”

“내가.”

“돈 많다면서. 이모는 자식도 없으면서 그 돈 다 어디에다 쓸 건데?”

“죽을 때 다 끌어안고 갈 테다.”


난 여전히 어려운 이모의 대화 스킬에, 목을 한번 축였다.

김회장과 대화하듯 몰아쳤다가는 멱살 잡히는 건 나니까. 이모는 손이 맵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어제 죽을 뻔했습니다.”

“돌아가실 뻔이지, 이 녀석아.”

“예, 돌아가실 뻔했죠.”

“···.”


겸이의 말에 이모의 한쪽 눈썹이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놀란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흥미를 끈 것인지 아무튼 관심 있어 하는 눈치였다.


“회귀 전조 증상이 나타났고, 화마가 걷히지 않아 웅지와 제가 직접 들어가 구출했습니다. 그 사건의 용의자였던 학과 조교는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있을 리가요.”


이모는 복잡한 얼굴로 아는 것이 없다 분명하게 말했다.


“···역시, 아버지라면 이렇게 물었을 테고, 이모할머님께선 분명 모른다 답하실 걸 알았습니다.”

“용왕께선 무슨 답을 얻고 싶으신 겁니까.”

“보신 것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제가 어찌해서 그런 걸 말합니까. 우리 신령님들 노하십니다.”

“알고 오셨잖습니까. 어젯밤 급히, 20년 만에 만나는 친구의 집까지 빌려 가며.”


이모는 손을 주춤했다.

이 녀석은 대체 뭘 어디까지 꿰뚫고 있기에 천하제일로 기쎈 무당인 우리 이모를 당황하게 하는 걸까.


“사특한 이무기가 이 근방에서 몸을 트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것을 움직이는 자도 따로 있고요. 용왕께 이런 말씀을 드리기 무엇하오나, 용이 아닌 주제에 힘을 쓰는 이무기는 죽이거나, 그 기세를 눌러야 합니다. 굿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제 말은 틀린 것이 하나 없지요.”

“그렇군요. 우리와 무관하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제 조카 놈은 물론 조카손녀도 무관합니다.”

“알겠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고 가만히 들어보니, 이곳에 분명 무슨 일을 벌이려는 이들이 있었다는 말.

이모가 그걸 눌림굿으로 막겠다는 건데···.


“이모가 어떻게?”

“넌 날 뭐로 보니?”

“이모가 이모지.”

“아무튼, 제가 아는 것들은 떠오르는 대로 이놈에게 전하겠습니다.”

“지금은 해줄 말이 없다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이놈아, 넌 내 전화나 똑바로 받거라.”

“아니···.”


이모는 내게 연락처 다섯 개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이게 다 이모 번호야?”

“그래.”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번호가 5개야, 보이스피싱도 아니고···.


“용왕님. 모든 것을 푼수처럼 줄줄 읊기엔 저 또한 걸린 제약이 많아서요.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그러지요.”


둘은 또 내가 모르는 소리를 해댔다. 하지만 겸이가 한 질문의 뜻은 확실히 알겠다.

이모는 미래든 무엇이든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무관하다 말하면서 뒤에서 우리 일들을 봐주고 있다는 것.


“찾는 놈은 머리를 북향으로 올리고 있으니, 북위의 단단한 바위에 금줄을 올리고 남쪽 꼬리에 불을 붙이십시오. 그곳의 신령에게 미리 고하면 무탈히 마무리될 겁니다.”

“예, 용왕님.”

“겸이라 부르십시오. 이모할머님.”

“···예.”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난 이모에게 줄 것이 없어, 주머니에 나뒹굴던 웅지의 머리핀 하날 줬다.


“복채.”

“참나.”

“연락해요.”

“조심히 가라.”


차에 탄 나는 겸이 녀석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녀석도 날 물끄러미 봤다.


“일부러 확인하려고 물었구나.”

“아버지야말로, 확인하고 싶어서 찾아와서는 순 영양가 없는 질문만 하실 것 같아서요.”

“이모가 너한테 꿈뻑 죽던데. 우리 이모가 그렇게 깍듯하게 대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

“힘의 차이를 아시는 분이니까요. 귀한 존재입니다. 이모할머님은요. 영특하시고, 뭐라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현 상황을 꿰뚫고 있으시죠.”

“무관하다는 말, 내가 이해한 말이 맞지?”

“예. 신을 모시는 존재의 말은 무게가 상당하거든요.”


무관하다는 말이 아닐 것이다.

지금껏 이모가 하라는 대로 해서 결과가 나쁜 것이 없었다. 물론 그 과정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게 빡세기 그지없었으나, 결과적으로 이모가 한 말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그런 능력을 지닌 존재가 우리를 돕는다면, 운명은 어떤 방법으로든 우릴 갈라 놓을 테지.


“이 정도 간격이 가장 좋을 겁니다. 당분간은 이모할머님을 뵐 일이 없겠군요.”


그러니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그럼, 혹시 어머니도 이모처럼···.”

“글쎄요, 그분은···.”

“그래, 어머니와 이모는 다른 사람이니까. 같은 생각했을 리가 없지.”


우리 어머니는 그저, 돈이 더 좋은 여자니까. 자식새끼까지 놓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닐 만큼.


“모두 자기 생각과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사람이니까요.”

“그렇겠지. 그래도 이모가 별 소리를 하지 않은 걸 봐선, 더 이상은 큰 문제가 없을 거란 거네.”

“그렇죠.”


하지만 당장 죽은 민형이는 어떻게 된 일일까.

민형이가 죽은 근방엔 씨씨티비가 없었다. 일찍 출발했던 녀석이 어째서 산 중턱에서 발견되었는지도 의문인데, 그걸 밝혀줄 사람이 없다.

타살이랬다. 누가 민형이를 죽였을까.


“혹시, 그 이무기라는 놈이···.”

“이무기가 승천할 무렵이 다가올 즈음엔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보단 그 이무기를 ‘움직이는 자’가 어떤 존재인지가 중요하죠. 아버지를 죽이려던 자도 그자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증거도 없고 흔적도 없다.

가스관이 잘렸고 방화로 불을 붙였다는 감식 결과 말고는···.


“현장은 다 정리되었으니 우리가 가도 이렇다할 건 못느낄 겁니다. 유랑과 이야기를 나눠보시죠.”

“···그들과?”


하긴, 유랑은 겸이 녀석도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할 정도의 수준급 실력을 지닌 이들이다.


“인간의 일은 인간이 잘 알 테니까요.”


***


어느덧 단올정에 도착한 우리는 차에서 내려, 마당에서 뛰놀고 있는 웅지와 마주했다.


“서울로 가자.”

“에잉, 벌써!?”


귀를 수제비처럼 접은 웅지는 아쉽다는 듯 터덜터덜 걸어왔다. 초봄이라 아직 쌀쌀한데도 땀을 흘리며 논 기색이 역력했다. 그 곁에 선 매형님도 땀이 범벅이었다.

부녀가 닮긴 참 징하게도 닮았다니까.


“벌써 가십니까?”

“네. 장례도 가야하고요.”

“그럼, 웅지는 제가 내일 데려다주는 건 어떻습니까? 아직 더 놀고 싶어해서요.”

“하지만···.”

“하루 정돈 괜찮습니다.”


겸이도 있다가고 싶으면 그래도 된다는 매형의 말에도, 녀석은 괜찮다며 사양했다.

그러곤 웅지 방에 들어가 짐가방을 한번 살펴봐 주곤 제 방에서 짐을 챙겨 나왔다.


“웅지야, 내일 만나.”

“오빠 갈 거야?”

“응, 오빠는 모레 학교 가잖아. 준비할 게 많아서.”

“하지만···.”


겸이는 웅지의 귀에만 들리도록 아주 작게 뭐라 했다. 그러자 웅지 녀석은 연신 끄덕거리며 알았다고 걱정말라며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쌈촌! 내일 만나! 웅지 곧 가께!”

“그래, 잘 놀다가 와.”


웅지가 우리 곁이 아닌 이상 가장 안전한 곳에 맡기고서, 우린 서울로 향했다.


“고우주씨.”

- 네, 가주님.

“할 말이 있습니다. 16층에서 뵙죠.”

- 예, 따라가겠습니다.


아군이 누군지 알려면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작가의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컨디션은 잘 회복되었습니다. 여전히 기침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계속해서 연재는 이어가겠습니다!

행복한 월요일 저녁, 따숩게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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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곰조카랑 힐링합니다> 작품설명과 캐릭터 안내 23.12.02 303 0 -
74 EP18. 회귀자의 봄(4) 24.04.09 11 1 13쪽
73 EP18. 회귀자의 봄(3) 24.04.08 17 2 12쪽
72 EP18. 회귀자의 봄(2) 24.03.29 24 2 14쪽
71 EP18. 회귀자의 봄(1) 24.03.28 24 2 13쪽
70 EP17. 웅지의 하루(2) 24.03.26 22 4 13쪽
69 EP17. 웅지의 하루(1) 24.03.25 21 3 11쪽
68 EP16. 피리 부는 사나이(4) 24.03.22 23 2 11쪽
67 EP16. 피리 부는 사나이(3) 24.03.21 20 3 13쪽
66 EP16. 피리 부는 사나이(2) 24.03.19 20 2 12쪽
65 EP16. 피리 부는 사나이(1) 24.03.18 24 2 13쪽
64 EP15. 회귀자와 비밀의 궤짝(4) 24.03.15 26 2 13쪽
63 EP15. 회귀자와 비밀의 궤짝(3) 24.03.14 21 2 11쪽
62 EP15. 회귀자와 비밀의 궤짝(2) 24.03.12 25 2 13쪽
61 EP15. 회귀자와 비밀의 궤짝(1) 24.03.11 28 2 13쪽
60 EP14. 신학기를 맞이하는 방법(4) +1 24.03.08 31 2 13쪽
59 EP14. 신학기를 맞이하는 방법(3) 24.03.07 27 3 12쪽
58 EP14. 신학기를 맞이하는 방법(2) 24.03.05 29 2 11쪽
57 EP14. 신학기를 맞이하는 방법(1) +1 24.03.04 41 2 12쪽
56 EP13. 아군은 누구인가(4) 24.03.01 30 2 13쪽
55 EP13. 아군은 누구인가(3) 24.02.29 27 1 12쪽
54 EP13. 아군은 누구인가(2) +1 24.02.27 33 1 13쪽
» EP13. 아군은 누구인가(1) 24.02.26 28 1 11쪽
52 EP12. 가족, 여행(4) +2 24.02.10 49 1 14쪽
51 EP12. 가족, 여행(3) 24.02.08 44 1 12쪽
50 EP12. 가족, 여행(2) 24.02.06 50 2 13쪽
49 EP12. 가족, 여행(1) 24.02.05 50 1 12쪽
48 EP11. 힐링은 끝났다(4) 24.02.02 48 2 13쪽
47 EP11. 힐링은 끝났다(3) 24.02.01 4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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