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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얼 님의 서재입니다.

나쁜 놈 그보다 더 나쁜 놈.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업경대
작품등록일 :
2022.12.20 19:18
최근연재일 :
2023.04.07 13:41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22,514
추천수 :
719
글자수 :
491,767

작성
23.02.02 12:52
조회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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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2쪽

36화.

DUMMY

"아, 그렇구나, 본부로.. 그건 영전인 겁니까?"


"호호, 어떻게 보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조국 땅을 떠나는 건데 괜찮습니까?"


"전 독일인 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여긴 부모님의 조국이지 제 조국은 아닌걸요."


"허, 그게.. 그렇게 되는 겁니까?"


"그게 뭐 어때서요? 난 정신이상자들이 모여있는 것 같은 나치즘이고 파시즘이고 다 싫은걸요. 부모님도 그런 조국이 싫어서 떠나신 분들인걸요."


"아, 한 가지 물어볼게 있는데.."


"뭔가요?"


"뮌헨 어디엔가 독일군 강제 수용소가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어딘지 기억이 안 나서 말입니다."


"아, 뮌헨의 수용소라면 다하우를 말하는 거겠군요. 제가 알기론 20만 명 이상이 그곳에 수용돼 있다가 4만이 넘는 포로가 학살을 당해 죽었다고 들었었어요. 근데.. 그런 끔찍한 곳은 왜..?"


"한번 가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동물인지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마리아는 강호의 말에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떨었다.


"나, 난, 절대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이에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신이 출몰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곳이다. 그러니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여자들이 가장 끔찍해 하는 게 바퀴벌레와 쥐새끼라고 하지만 다 헛소리다.


처녀때는 몰라도 결혼을 하고 주부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여자들을 보면 태연하게 손바닥으로 바퀴벌레를 때려잡고 앞치마에 스스럼없이 손을 닦는다.


쥐새끼라도 보는 날이면 "요놈의 쥐새끼!"라고 욕설까지 퍼부어가며 부지깽이를 들고 때려잡는다고 설치는 게 여자란 말이다.


그런 여자들이 진정으로 무서워하는 건 바로 이해하지 못할 심령현상인 것이다.

귀신이 나타난다는 그런 끔찍한 학살 현장을 가보겠다고 위치를 물어봤으니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하하, 절대로 같이 가자는 말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고 계세요."


아놀드는 핸더슨의 명에 따라 강호를 당장이라도 귀국 시키고 싶어 했지만 강호의 자유를 억압할 수는 없었다.

CIA가 개입할 여지도 없이 의뢰를 성공시킨 두 번의 작전으로 강호의 몸값은 이미 자신이 조종하기 어려울 정도로 올라있었다.


"쯧, 거기는 왜 가겠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러면 또 나만 욕 얻어먹게 생겼군.. 하루라도 빨리 귀국 시키려면 별수 없이 팔자에 없는 운전기사 노릇이라도 해야겠네."


투덜거리면서도 아놀드의 표정은 밝았다. 강호로 인한 성공이긴 했지만 작전성공의 공로를 인정받아 적지 않은 보너스를 받은 때문이다.


"헤헤헤, 이번 기회에 오랜 꿈이었던 요트라도 하나 장만해볼까? 아니면 조금 더 큰집으로 이사를 갈까? 아, 이거 정말 갈등 생기네."


근데 왜 아직도 안 내려 오고 있는 거지? 혹시.. 둘이 사귀는 건..? 에이 그건 아니겠지. 정신 나간 년이 아닌 담에야 강호의 까칠한 성격을 받아줄 여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걸?


눈을 감고 흐뭇한 기분에 젖어있는데, 벌컥 차문이 열리고 조수석으로 강호가 올라탔다.


"그런데 내 성격이 까칠하다고? 정말 까칠한 게 어떤 건지 보여줄까?"


"어.. 언제 내려온 거야? 보지도 못했는데, 근데 내 말을 어떻게 들었어? 나 혼자서 한 말인데.. 설마 내 목소리가 차 밖에 까지 들렸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말고."


"내 귀가 남들보다 좀 밝아."


"뭐야? 정말이라면 그건 좀 좋은 정도가 아니잖아."


"됐고, 운전을 해준다고 했으면 그만 출발하자고."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바람에 좋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그래, 그래. 알았다.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는지.."


"절대로 내가 먼저 부탁한 거 아니다. 네가 자발적으로 해준다고 한 거지."


"에휴......"


"한숨 쉬지 마라. 복 달아난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흐흐흐, 한국 속담이다."


"좋아 그렇다 치고, 제법 먼 길인데 말이지. 관광지도 아닌 거길 왜 가려고 하는 건지 말해주면 안되나?"


"그냥,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냐. 인간이 얼마나 악랄한 존재인지 여기까지 온 김에 느껴보고 싶어서지."


"흠, 꼭 가봐야겠단 말이지? 알았어, 출발한다."


아직도 전후 복구가 다 끝나지 않은 여러 도시들을 지나치는 지루한 자동차 여행을 아놀드와 농담 따먹기 매치까지 벌여가며 목적지인 다하우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들어간 수용소는 인적 하나 없어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과연,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날 만도 하겠네."


피라도 바른 것 같이 붉은 조적건물이 어쩐지 기분 나쁘다는 아놀드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강호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시체를 태우는 화구가 설치된 음산한 화장장 건물로 들어섰다.


역시 자신이 짐작했던 대로 아지랑이처럼 흔들려 보이는 여우의 하얀 모습이 나타나더니 건물 안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여우가 입을 벌릴 때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먹물같이 짙은 검은 기운이 사방에서 빠져나와 여우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 갔지만 강호는 화장장의 시설을 구경하느라 미처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놈들 멀쩡한 사람들을 잡아다 얼마나 많이 태운 것일까? 설마 아무리 지독한 놈들이라도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을 산 채로 태운 건 아니겠지?'


화구를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끔찍하다는 생각에 눈을 돌렸다.


여우의 현신은 두 번째로 보는 모습이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상식을 부정하는 존재,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마리아는 전혀 모르고 있던데, 저 모습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


'저건 뭐냐? 뭔가 흡수하는 것 같은데? 저게 뭐지?'

여우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던 강호는 뭔지 모를 연기 같은 것이 여우의 입으로 빨려 들어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참 허공을 날아다니던 여우의 형체가 어쩐지 조금은 더 선명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날아와 어깨에 앉았는지 여우는 자신의 꼬리를 다듬고 있었다.


"여긴 끝났어. 다른 곳으로 가보자."


"너 혼자 돌아다닐 수는 없는 거냐?"


"쯧, 아무리 너한테서 떨어져 보려고 애를 써봤어도 아직 2장(1丈 약3m) 거리를 벗어날 수가 없었어.

호홍, 기다려봐. 조금만 힘을 더 모으면 내가 보는 것을 너도 볼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거야."


"네가 보는 것을 나도 볼 수 있게 된다니. 그게, 좋은 건가?"


"보통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볼 수 있게 된다는 거지, 하지만 너에게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할걸?"


"그래? 그럼 처형장이 있었다는 벽 쪽으로 가볼까?"


"당연히 가야지!"


아놀드는 강호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놈은 비 맞은 중처럼 기분 나쁘게 혼자서 뭘 저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거지?'


여우가 강호의 귀에 대고 말을 했다.


'너랑 같이 온 인간이 널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중얼거리지 말고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 그래도 너의 영혼과 연결된 나는 알 수 있으니까.'


흐흐, 아무래도 아놀드가 날 미친놈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로구나. 분위기도 이런 곳에서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네. 앞으로는 주의해야겠구나.


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오! 그런데 여긴 왜 이런 거지?'


여우가 이상하다는 듯 꼬리를 살래 살래 흔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강호에겐 여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알 리 없었다.


'뭐 이상한 거라도 있는 거냐?'


'흠.. 아직은 힘이 부족해서 아주 잠깐 동안이겠지만 궁금하면 너도 볼 수 있도록 해줄게.'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내가 그랬지? 내가 보는 걸 너도 볼 수 있을 거라고. 아직 힘이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잠깐 동안이라면 가능할 거야.'


호기심이라면 누구 못지않은 강호다.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 그 호기심 때문에 권영감도 만나게 된 거 아니었나?


'그럼.. 부탁해도 될까?'


'내 눈을 봐.'


여우의 붉던 눈이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여우의 눈과 마주친 강호는 자신의 눈이 여우의 눈과 마치 끈으로 연결된 것 같다고 느껴졌다.


'자, 이제 됐어. 연결이 끊어지기 전에 처형장을 돌아봐. 뭐가 보이는지.'


'어?'

강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오싹 소름이 끼쳤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물체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두려워 한다는 게 맞겠다. 피하려는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저게 바로 귀신이라는 건가?'


처형장에 죄수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 아니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서 있고 그 앞으로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군복처럼 보이는 것을 입은 헛것들이 총처럼 보이는 길쭉한 물체를 들고 서서 당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사진으로만 봤던 이차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 군복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강호의 생각을 읽은 여우가 알려줬다.


'저기 똑 같은 복장을 입은 놈들은 여기 있어선 안 될 놈들 같은데.. 어째서 같이 있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강호는 여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눈에도 미군의 군복처럼 보였으니까.


'아아.. 그건 저놈들과 싸우던 다른 인간들이 있었는데, 내 짐작으론 그 사람들이 여길 점령하면서 학살 현장을 보고 화가 나서 저놈들을 죽였던 모양이지. 그러다 전투 끝에 죽은 거 아닐까?'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제 알았으니 힘을 채워야지.'


의외로 쉽게 수긍한 여우가 입을 벌렸다.

희끄무레한 물체들은 비명이라도 지르는 것처럼 크게 입을 쩍 벌리고 여우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도망이라도 치려는 건가?

물체들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여우가 뒤를 쫓아가며 숨 쉴 틈도 없이 빠르게 빨아들였다.

그리고 다시 혼자 날뛰고 있는 여우밖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후.. 정말 귀신을 볼 수 있었다니.. 귀신이 맞긴 맞는 건가? 에휴.. 모르겠다. 뭐가 됐든 내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안 믿을 도리가 있나.'


수용소 안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강호의 행동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차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놀드는 어느새 시트에 기대 잠이 들었다.


벌컥.


'헉! 이 씨발.'


문 열리는 서슬에 깜짝 놀란 아놀드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어흐흐흐. 강호였구나?"


"뭘 그렇게 까지 놀라고 그래?"


"으흐흐. 꾸, 꿈이.. 아주, 아주.. 다이나믹하면서도마치 호러물이라도 보는 것 같이 끔찍했어."


"흐흐흐, 뭐야? 무슨 꿈을 꿨기에 그렇게 놀라는 거야?"


"여, 여긴 정말 끔찍한 곳이야. 어우.. 정말 꿈 하고는.. 그런데 넌 이런 끔찍한 곳에서 뭘 한다고 이렇게 늦게 까지 있었던 거야?"


"흐흐흐, 귀신 구경 좀 하느라고, 그러고 보니 내가 너무 늦게 왔나?"


"으흐흐.. 귀, 귀신이라니? 내 꿈속에 나왔던 게 진짜 너였단 말이야?"


"뭐? 이건 또 뭔 돼먹지 못한 개소리야?"


"꾸, 꿈, 내 꿈에 말이다."


"이런 정신 나간 놈. 이건 무슨 정신병자도 아니고..? 니가 뭔 꿈을 꿨는지 내가 어떻게 아는데?"


"그.. 그렇지? 그런데.. 꿈이 왜 이렇게 생생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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