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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님의 서재입니다.

여주가 XX를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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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작품등록일 :
2022.05.11 16:20
최근연재일 :
2022.07.02 00:14
연재수 :
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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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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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글자수 :
403,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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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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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 거짓과 함께 춤을

DUMMY

아기의 모습을 확인한 나스챠가 순간적으로 동요했지만 그럼에도 주문을 멈추지 않았다.


나스챠는 검은색 가시로 형성된 아기의 요람을 향해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팡이가 충분히 마력을 머금은 것을 확인하고, 요람을 향해 푸른 번개를 쏘아보냈다.


쾅!


요람에 직격한 번개는 사방으로 튀기며 검은 덩어리들을 분해시켰다.


"룬 이거..."

"성가시네."


룬의 오러와 나스챠의 마법 세례는 검은 덩어리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다. 아기가 있던 요람에는 검은색 가지 하나와 그 위에 올려진 콩알만한 검은 덩어리만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느껴지는 기운은 여전해서, 그 사실에 부합하듯 이내 사방으로 흩어졌던 검은 덩어리들이 요람으로 모여들며 다시 형체를 만들어냈다.


룬과 나스챠는 각자 무기를 들어올리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뭉쳐진 덩어리들은 처음 요람에 있던 아기의 모습을 만들더니, 나중에는 소년으로, 결국 완숙한 청년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엔비."


룬의 엔비의 이름을 부르자 검은 색으로 이루어진 청년이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올린다.


"어서와 룬"


엔비는 마치 룬이 올것을 알기라도 했다는 듯 말했다. 그에 화답하듯 룬은 엔비를 향해 검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어째서인지는···묻지 않을게. 촌스럽기도 하고, 번거로우니까."


쌍검에서 황금빛 오러가 타오르자, 검은 세상 속에서 룬만이 홀로 빛나는 듯 했다.


"그냥 죽어,"


분명 엔비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 도시는 비틀려있고, 그 속에서 고통 받던 엔비에게도 그만의 이유가 있었으리라. 사람을 몇 명 죽였다고 했던가, 사실 룬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엔비는 선을 넘었다.


일리야 룬의 사람을, 건드려버렸다.


룬이 검을 내려긋자 황금빛 검강이 엔비를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엔비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강을 향해 웃음지을 뿐이다.


쩌엉.


검강이 엔비에게 직격하자 사람의 몸에서 나는 소리라고 믿기 힘든 소리가 교회에 울려 퍼진다.


검강이 가신 자리에는 상반신이 사라진 엔비가 서 있다.


엔비의 하반신에서 돋아난 가시가 맨 처음 입술을 만들었다.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룬."


공중에 혼자 떠있는 듯한 입술에서 말이 세어나온다.


"내 모든 희생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는데"


입술과 심장을 만든 덩어리는 곧바로 혈관을 만들고 그 위를 근육이 감쌋다. 그리고 그 근육을 피부가 덮자 반신이 사라지기 전과 똑 같은 엔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알겠어. 나를 만든 것은···네가 아니야."


엔비는 그렇게 말하며 판옵티콘 전체를 감싸듯 팔을 활짝 펼쳤다.


"이 도시가 나를 만들었다!"


활짝 편 엔비의 팔에서 검은 가시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룬과 나스챠는 그 모습을 보며 전투 태세를 정비했다.


엔비는 그 모습이 우습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이 빌어먹을 도시가 정상인가?"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에,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룬과 나스챠가 서로를 바라본다.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하는 그들을 바라보는 엔비의 시선에서는, 무지렁이를 바라보는 혐오감이 베어나왔다.


엔비는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지, 아니야. 절대 아니고 말고! 이 도시가 만든것은 거대한 감옥일 뿐이다!"


엔비가 떠드는 사이 룬은 양 어깨위로 불꽃으로 된 날개를 만들었고 나스챠의 지팡이는 전격을 머금었다.


"누가 내 재능을 재단하였나. 보라. 지금의 나를 보란 말이다!"


엔비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네놈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넘어섰다. 결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 내가, 너네들이 멸시하던 엔비가 만들었단 말이다!"


나스챠의 지팡이가 주변의 마력을 엔비의 위로 모으기 시작했고, 룬의 발밑에서는 오러가 피어올라 언제든 도약할 준비를 끝마쳤다.


"나는 선지자다, 후대에 이르러 나를 선지자 엔비라고 부르리라!"


긜고 룬이 엔비를 향해 뛰어듬과 동시에 엔비의 머리위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날개를 단 룬의 속도는 눈으로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다가가던 룬은, 엔비의 눈이 정확하게 따라오는 것을 감지했다. 불길함을 느낀 룬은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룬이 있던 자리에서 검은 가시가 돋아나 주변의 모든것을 삼켰다. 그 모습을 본 나스챠가 소리쳤다.


"저건!"


익숙하게 불길한 그 광경에 룬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티아매트..."


"그대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엔비는 여전히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잘난 그대들이 무얼 알겠나. 모르는듯 보이니 대신 말해주겠다. 이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일테니. 알겠나? 이 도시에는 인간을 좀 먹는 병균에 신음하는 환자들이 가득하다. 빌어먹을 패배감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단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엔비의 등에서도 불길한 날개가 돋아났다. 검은 덩어리들이 뭉쳐져 만들어진 그것은, 괴물의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이 시스템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건 나밖에 없단 말이다!”


마지막으로 생겨난 것은 렌스가 사용하던 창이었다. 창을 높게 치켜든 엔비를 본 나스챠가 곧바로 룬을 붙잡고 워프했다.


쾅.


룬과 나스챠는 아슬아슬한 간격을 두고 검은 가시들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힘이 없는 판옵티콘의 주민들은 그러지 않았다. 교회 근처에 있던 한 주점에서 비명소리가 세어나왔다.


엔비는 술집에서 도망나오는 시민들을 향해 한번 더 창을 찍었다.


그들은 모두 절명했다.


그 광경은 룬에게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익숙하지 않느냐."


"도발이야."


나스챠는 룬이 또 다시 폭주하는 것을 염려했지만 룬의 눈에는 분노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담담히 엔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네 복수구나 엔비."


"···"


그 말에 룬이 숨을 크게 한번 들이키고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가여운 것."


엔비는 룬의 입에서 뱉어진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아는 룬이라면 저런 말을 해선 안 된다. 그건 엔비가 하늘 위에서 노니는 천재들을 끌어내리기 위해 희생했던 모든 것들이,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는 나를 위해 죽음에서 건너왔어. 하지만 네가 복수를 위해 한 것이라고는···"


룬이 검은 가시에 휘말린 시민들을 바라보자 엔비의 시선도 그곳을 향했다.


"죄 없는 시민들을 학살하고 도시에서 난동을 피운 것."


참상에서 눈을 돌린 엔비가 바라본 것은 자신을 응시하는 샛노란 눈동자였다. 그 눈동자 속에서 엔비는 자신이 진정으로 찾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저 특별함이다.


예전에는 쳐다만 보더라도 부러움과 질투에 제 살을 깎아먹는 꼴밖에는 되지 않았던 저 특별함이,

지금이라면 저 눈동자를 빼내어 자신의 것과 맞바꾸고, 그 심장을 꺼내어 씹는다면 언제라도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 말고는 없어. 저들에게 네가 찾는 특별함이 있었나?"


"···그들은 그저 네게 닿기 위한 제물에 불과해. 대를 위한 소의-"


하지만 룬은 언제나 그것을 방해한다.


"-그 시점에서 네 같잖은 철학을 들을 이유는 사라졌구나.”


달콤한 꿈을 그저 거짓이라 치부하며 나를 부정한다. 어쩌면 네가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룬, 네가 잊고 있는게 있다.


딸려오던 티아매트와 렌스의 기억 속에서 나는 그를 보았다. 그와 함께 춤추던 순간이 좋았느냐. 결국 너도 나와 같다. 제 욕망을 숨기지 못하는 애새끼일 뿐이다.


너 또한 거짓 속에 살아가는 존재에 불과함에도 타인을 조롱하는 것이 기뻣느냐. 네가 내게 진실을 말해주었 듯, 나 또한 네게 진실을 말해주겠다.


"그래? 그렇게 당당한 네가 꼭 그 모자란 놈 앞에만 서면 그러지 못하던데, 이유가 무엇이냐?"


엔비는 황금빛으로 넘실거리는 룬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엔비는 일평생 보지 못했던 룬의 비틀린 웃음을 바라보았다.


마치 열등한 것을 비웃는 듯한 그 진심어린 감정이 엔비를 자극했다.


"거 봐. 결국 너도 너를 붙들고 있는것에 끌려다니는 것에 불과하잖아."


말을 이어가던 엔비의 감정이 점점 격해진다.


"그런 네가, 감히 나를 평가해?"


마지막에 룬을 향해 의문을 던질 쯤에는 거의 악을 쓰듯이 소리치던 엔비였지만, 룬은 여전히 하늘로 검을 치켜세운 채 흔들림없이 끈임없이 검로와 엔비를 겹치고 있었다.


가만히 검을 들고있던 룬이 돌연 중얼거렸다.


"더는 못 들어주겠네.”


흔들림없이 끈임없이 검로와 엔비를 겹치고 있었다.


"그래, 네가 맞을지도 몰라. 그래도 엔비···넌 너무 과했어."


그 말에 엔비의 표정이 흔들린다.


과하다라는 인식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선택한 것이다. 그 선택의 결과는 오롯히 엔비의 것이지만, 엔비는 어째선지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째서 자신이 손해를 봐야 하는가 하는, 그런 감상이었다.


"우린 그냥 욕망에 솔직한거잖아."


그러나 그 찝찝하고 불편한 감상에서 끝내 눈을 돌릴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지금의 엔비를 만든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이뤄왔던 것을 모두 부정하고서 도달한 자리였지만, 엔비는 끝내 제 자신을 버리지는 못했다.


그것이 엔비와 세이튼의, 이제는 복수만을 바라는 한 남자의 차이점이었다.


"그것만으로 우리가 칼을 맞댈 이유는 충분해."


룬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치 존재 자체를 쪼개버리려는 것과 같은 태산같은 기운이 밀려온다.


"그리고 그렇게 쓸데없는 이유나 찾으니까···이렇게 시간이나 끌리는거야."


엔비는 이미 자신이 룬의 공격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깨달은 즉시 룬의 기세가 집중되어 있는 곳에 위치한 악마의 핵을 옮기기 시작했다.


같은 순간에 찰나의 시간을 두고 룬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엔비는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만 같았다.


정해진 따라 천천히 검을 내려긋는 룬의 검격에는 검기도, 강기도 없었지만 태산같은 마력이 동조되어 있었다.


룬이 검을 내려긋기 시작하자 공간을 채우고 있던 파동들이 찢기며 엔비를 향해 방출되기 시작한다. 열어재낀 공간에서 불안정한 파동들이 삐져나와 엔비를 향한 길을 만들고 있었고, 그 길 끝에 제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엔비는 그를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룬의 검로가 중간에 이르렀을 때, 이미 룬과 엔비의 사이에는 파동의 길이 형성되어 있었다.


'아직인가?'


아직 엔비가 가진 악마의 핵은 완전히 옮겨지지 않았다.


룬이 일으킨 파동에서 살을 찢어버리는 압력을 방출하며 엔비를 압박했다. 얼마나 압력이 지속됬을까 싶은 순간에, 룬의 검은 순식간에 검로의 끝에 도달했다.


엔비는 세상이 쪼개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더는 생각이 이어지질 않았다.


무형무취의 검이 엔비를 반으로 가르고, 반으로 가른 것을 또 반으로 갈랐다.


그렇게 셀 수없는 파동이 연속해서 엔비의 모든 것을 찢어 놓은 후 남은 파동이 충돌하며 굉음을 만들었다.


파동끼리 충돌한 자리에서 거대한 충격파가 생기며 교회를 헤집어 놓았다.


충격파가 생기기 전 룬에게 이동한 나스챠가 마력으로 만들어진 벽을 형성했고, 충격파가 터짐과 동시에 엔비가 있던 공간을 중심으로 집중되었던 압력들이 일제히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여파에 교회의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날아가며 주변을 휩쓸었다.


"커헉."


검술을 완성한 룬이 가쁜 숨을 내뱉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열기로 시선을 돌리자, 메피스토텔레스에게 받은 반지의 알맹이가 완전히 타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스챠가 다급하게 룬을 향해 마력을 불어 넣었다.


"일단 지금은 말하지 마"


룬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역시 너무 과했나'


룬은 방금 자신이 사용한 기술을 떠올렸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기술을 복기할 때 기억에 손실이 날 것만 같았다. 분명 파동과 에리나의 검술을 겹쳐 사용하던 순간까지는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것이 합쳐진 이후 파동과 검술을 동시에 제어하던 그 감각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 아쉬움에 룬이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스챠가 허벅지를 찰싹 소리가 나게 때렸다.


"가만히 좀 있으라니까!"


생각보다 매운 나스챠의 손길에 흠칫 놀랜 룬이 나스챠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여태 본 적 없던 귀신과 같은 나스챠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룬."


나스챠의 시선에 멋쩍게 고개를 돌린 룬이었지만 다시 나스챠를 돌아보자, 이번에는 슬픈 눈을 한 친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그런 식으로 싸울 순 없어."


"...어, 알아."


나스챠의 손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다. 룬은 그 손을 잡아주는 대신 나스챠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처음에 당황하던 나스챠는 이내 포기한 듯 룬이 좀 더 편하게 기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알면 됐어.”


나스챠의 손길에 이끌린 룬은, 어느새 그녀의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 누워있었다. 나스챠는 그런 룬을 보며 코어에 부담이 간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다.


확인을 끝낸 나스챠가 안심하며 말했다.


“별 다른 이상은 없네. 진짜 무슨 사람이···”


말을 이어가던 나스챠는 저도 모르게 룬을 내려다보았다.그러자 그곳에서는 룬의 황금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결국 나스챠는 더 이상 물어보는 것을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뭐 어련히 잘 하겠지."


그 때, 룬의 검격이 자리했던 곳에서 퍼덕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려온 소리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이전에는 엔비였고, 이제는 작은 사과만해진 악마의 핵이 놓여있었다. 핵은 여전히 제 의지를 가진 듯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움직임이 미약했다.


룬이 바닥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악마의 핵을 가르키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렌스에게 저걸 가져다 줘, 난 좀 쉴게."


아마도 저건 불안정한 렌스의 코어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룬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나스챠는 룬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악마의 핵을 향해 다가갔다. 그렇게 나스챠가 콩알만해진 악마의 핵을 향해 손을 뻗는,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번쩍 눈을 뜬 룬이 재빠르게 달려와 나스챠를 밀쳐냈다.


"떨어져 나스챠!"


마지막 힘을 다해 외친 룬은 정신을 잃었다. 룬의 외침과 동시에 나스챠는 텔레포트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나스챠가 있던 자리에 아까보다도 큰 가시가 돋아났다. 순간 나스챠의 머리 속에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거지?'


나스챠는 엔비의 가시에 휩쓸린 술집을 바라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 사람도 없었다. 마치 뜨거운 것에 녹아버린 듯 뼈만 남은 인간이 있었다.


"빌어먹을년 같으니, 정말 사람같지 않은 힘이구나."


나스챠에게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변조한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자 그곳에는 엔비가 어려진 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당장은 어린아이의 모습이었지만, 검은 덩어리들이 점차 엔비에게 뭉쳐지며 점점 커지고 있었다. 방금 죽인 사람들을 제물이라도 삼은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분노에 입술을 꽉 깨물던 때에, 나스챠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엔비를 향해 모여들고 있는 것은 억울한 피해자들의 시체 뿐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보아라."


판옵티콘에 흩어져 있는 부정한 마력들이 엔비에게 몰려들며 재생을 돕고 있었다. 검은 덩어리들이 뭉쳐질수록 엔비는 점차 어른에 가까워졌고 그에따라 목소리도 변화했다.


엔비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계속해서 목소리가 변했다.


"결국 이 도시는 나를 선택했다. 이 도시의 주민들이 나를 왕으로 추대했단 말이다!"


어린 아이와 같은 목소리에서


"방금 나는 가능성에 절망해 우는 소년의 목소리를 들었다!"


소년의 목소리로


"사랑에 외면당해 우는 소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소녀의 목소리로


"자식을 지키지 못해 가슴을 치는 부모의 목소리를 들었다!"


중년 부부의 목소리로


"이 도시가 만든 모든 패배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단 말이다!"


여러 사람의 것이 합쳐진 목소리로 말했다. 합창과도 비슷한 그가 노래하는 것은, 나락의 생태였다. 엔비는 그가 겪고 전해받은 패자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내 노래했다.


"이제껏 줄곧 나를 애새끼 취급 하더구나. 그래, 너희들이 맞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네가 부정했던 나를, 이 도시는 긍정했다. 나는 이제 왕이 되었다 룬. 패배자들의 왕이 바로 이 엔비란 말이다!"


완전히 재생한 엔비의 손에서 손톱이 길게 자라났다.


끼기긱.


엔비는 발끝까지 닿는 손톱을 바닥에 끌며 룬과 나스챠를 향해 다가왔다.


동시에 불길한 달빛이 나스챠를 향했다.


나스챠는 룬의 손을 맞잡고 텔레포트 마법을 외웠지만 시전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엔비가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신조차 나를 돕는구나!"


그리고 순식간에 룬과 나스챠를 향해 달려온 엔비가 손톱을 높게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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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6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7.01 11 0 12쪽
57 55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27 12 0 13쪽
56 54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25 15 0 12쪽
55 53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24 13 0 16쪽
54 52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23 14 0 12쪽
53 51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22 14 0 7쪽
52 50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21 11 0 17쪽
51 49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20 12 0 16쪽
50 48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19 13 0 17쪽
» 48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19 13 0 17쪽
48 47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18 12 1 13쪽
47 46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17 13 1 12쪽
46 45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16 17 1 13쪽
45 44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13 14 1 10쪽
44 43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12 47 0 15쪽
43 42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11 20 0 19쪽
42 41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10 14 0 13쪽
41 40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9 15 0 12쪽
40 39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8 15 0 12쪽
39 38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7 14 0 13쪽
38 37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6 23 0 16쪽
37 36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5 20 0 13쪽
36 35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4 16 0 20쪽
35 34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3 15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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