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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님의 서재입니다.

여주가 XX를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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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작품등록일 :
2022.05.11 16:20
최근연재일 :
2022.07.02 00:14
연재수 :
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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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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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글자수 :
403,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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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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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34화 - 거짓과 함께 춤을

DUMMY

"씨발!"


디그다 엔비가 벽을 세게 내려친다. 뼈를 울리는 진동이 건드린 신경에서 화끈한 감각을 뇌로 밀어올려댔지만, 지금 엔비는 고통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엔비는 가만히 식별정보가 담긴 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카드를 바라보던 엔비가 돌연 중얼거렸다.


"상태창."


=======================

CODE : NORMAL

! 오랫동안 갱신되지 않은 정보입니다.

---------------------------------------

<상태창>


이름 : 디그다 엔비

성별 : 남

나이 : 18

레벨 : 1

종족 : 인간


칭호 : 없음

----------------------------------------

<기본능력>


체력 : 54

힘 : 47

민첩 : 30

지능 : 110

마력 : 35

재능 : 300

----------------------------------------

<Skill>

----------------------------------------

=======================


모든 능력의 합은 276. 그러나 그의 상태창에는 300이 표기되어 있다. 아직 그에게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사실 크게 의미는 없었다.


엔비는 밀려오는 고통을 가중하 듯, 다시 한번 벽을 내려친다.


“씨바알!”


재능의 최소치는 300이다. 저 숫자와 오랫동안 갱신되지 않았다는 상태창의 메세지가 의미하는 바는 잔혹했다.


디그다 엔비는 특별하지 않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곤 했지만 엔비처럼 강렬한 분노를 느끼진 않았다.


디그다 엔비는 게으르지 않았다. 처음 그는 기사가 되는 것을 희망했지만, 그닥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곧바로 다른 모든 분야의 재능을 확인했다.


그 끝에서 엔비가 알게된 건 세상이 재능없는 자에게 한없이 차가울 뿐이라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발헤임 같으니, 그 계집애는 그렇게 챙겨주면서 나는...”


디그다 가문은 대대로 발헤임에 충성해왔다. 그 덕에 엔비는 아카데미의 입학권을 얻어냈다.


하지만 엔비는 그 사실에 만족할 수 없었다. 엔비는 발헤임에서 룬에게 어떤 지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북부의 대공가 발헤임은 변경백이라는 지위를 가졌다. 변경백은 절대로 수도의 정쟁에는 관여하지 않는것이 관례였지만, 이번에 발헤임은 오랫동안 이어진 관례를 계집애 하나를 위해 깨버렸다.


자칫하면, 대대로 내려온 발헤임이 그대로 사라질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이다.


그들은 전혀 관련없는 계집애를 위해서는 가문이 사라지는 위험까지 감수했지만, 엔비를 향해서는 아무것도 내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엔비는 애초부터 룬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과거 발헤임 가에서 아직 아이였던 룬을 확인하기 위해 파견했던 사절에는 엔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 때부터 엔비는 주근깨가 가득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룬의 새하얀 피부는 평생 그럴 걱정이 없어 보였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보다는 동경이 많았던 시기였으니까.


그러나 그 아이는 그 이상으로 특별했다. 다른 어른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지만, 엔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왕립 아카데미에서 엔비와 룬은 재회했다. 어릴 때부터 있었던 어두운 분위기는 여전했다. 그리고 그 또한 룬이라는 아이를 특별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였다.


그 아이를 감싼 어둠은 태양을 피해 도망친 어둠이 아니라, 심야의 초원을 내리쬐는 달빛과도 닮아 있었다.


이번에도 룬과 엔비의 위치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저 아이는 여전히 저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자신은 지면에서 애타게 하늘을 바라본다.


엔비는 룬을 보자마자 그녀가 누군지 파악했지만, 룬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째서 너만.'


고민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 그 가슴 속에는 자신이 상상할 수 없는 특별한 고민을 품고 있으리라. 엔비에게 있어서는 룬의 구원조차 기만에 불과했다.


자리를 떠난 엔비는 기숙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대로 돌아간다면 영원히 품어야할 무언가를 놓쳐 버릴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루 동안 엔비는 하루종일 판옵티콘의 그늘진 곳을 배회했다. 여느 때라면 그곳에 있는 인간군상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튀어오를 것만 같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엔비는 온 세상에 있는 잘난 것들에게 상처입어왔다. 그럴 때면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보며 마음의 위안으로 삼곤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조차 의미가 없었다. 엔비는 어느새 자신의 곁으로 달빛이 내리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빌어먹을···”


자신과는 달랐다. 이 순간에도 룬과 자신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엔비는 달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달빛은 손에 잡힐 것 같으면서도 번번히 손길을 피해가며 엔비를 희롱했다.


엔비는 자신과 달을 이어주는 달빛 사이에 끝없이 펼쳐진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하다못해...'


자신이 특별해질 수 없다면, 하다못해 자신과 같이 나락으로 떨어졌으면 했다. 그러나 이 모든것은 그저 엔비의 바람에 불과했다.


그 순간이었다.


"아하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달빛과 그가 있는 그림자의 경계로, 타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재밌다는 듯 팔짱을 낀채 웃고 있었다.


옅은 기대와 함께 오지 않을 기회를 기다리던 엔비는, 타이의 얼굴을 확인하고서 인상을 팍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씨발, 오늘 진짜 무슨 마가꼈나···”


눈앞에 있는 여자는 위치스 타이가 분명했다. 저 여자와 엮인 남자들의 끝은 좋지 못하다. 그 사실을 떠올린 엔비는 즉시 자리를 뜨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음, 저기요, 제가 묻지 않았나요?"


그러나 어느새 타이는 엔비의 코앞에 도착해 있었다. 엔비가 대답할 새도 없이 타이가 엔비의 심장 부근에 손을 얹고 그를 세차게 밀었다.


"이런 미..."


커다란 바람이 온 몸을 뒤로 밀어버리는 듯한 감각.


뒤로 밀려나던 엔비는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타이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있었다.


엔비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친]


엔비는 마치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것처럼 먼 시점에서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엔비는 급격한 부유감과 추락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참을 헤메던 엔비는 곧 자신이 타이 앞에서 혓구역질을 하고 있는걸 깨달았다.


[나...나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요."


생글거리는 마녀, 타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그냥 재밌어 보여서 말을 건거 뿐이에요."


그 말에 엔비는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판단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다. 어떻게 이런 재주가 가능한지도, 왜 이런 짓을 하는지도 알 수 없지만 되도록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럼 날 돌려보내줘!]


"당신이 원한다면 그렇게 해드리죠. 근데···”


그러나 생전 처음 겪는 특별한 순간에, 엔비의 정신은 순식간에 말꼬리를 흐리는 타이를 향해 집중된다. 의미심장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웃음이 떠오름과 동시에 타이의 입이 열려왔다.


"정말로 괜찮아요?”


그 말에 엔비의 판단은 멈췄다. 엔비는 이 상황이 주는 특별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타이는 그런 엔비의 표정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자신과 같은 존재를 만났을 때 평범한 사람이 해야 할 선택은 딱 하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도망가는 것. 다행히도 눈앞의 미련한 꼬마는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


"좋아요. 그렇다면 돌려보내줄게요."


타이는 그렇게 말하며 엔비의 눈치를 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엔비는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온 것을 느꼈다.


“...원하는 걸 말해.”


들끓는 욕망을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 부족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마녀에게 있어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다.


"나는 네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줄 수 있어요."


타이의 말과 함께 엔비에게 근원을 모르는 기억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한다. 기억 속에는 이 세상의 진실과 신비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 세상에서 엔비는 자신의 부족한 재능을 특별한 방식으로 보충시키고, 온갖 기연을 만났다. 다른 말로 표현할 필요도 없이, 그곳에서 엔비는 특별했다.


타이는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을 보며 웃음짓는 엔비를 비웃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주는 것만큼의 대가에요."


타이는 엔비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환상에 정신이 팔린 엔비는 이를 듣지 못했다. 인상을 찌푸린 타이가 엔비의 뺨을 후려치자 그제서야 엔비는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엔비는 곧바로 타이를 향해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좀 더, 좀 더 보여줘! 원하는 건 다 가져가도 좋아!"


비참한 엔비의 모습에 타이의 얼굴에 걸려있던 생글거리는 가면이 사라졌다. 가면이 사라진 타이의 모습은 오래된 고목처럼 생기가 없었지만 쉽사리 벨 수 없을만큼 단단해 보였다.


"나를 무슨 악마처럼 말하고 그러세요. 그래요, 나는 그저 주는 것만큼의 대가를 받을 뿐이에요."


엔비는 그제서야 눈앞의 타이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체 넌 누구지?"


"가장 먼저 물어봐야할 걸 나중에 물어보시네요!"


엔비의 물음에 그제서야 타이가 흡족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글쌔요, 이름이라. 나를 그렇게 생각해 본적은 없는데."


타이가 엔비의 주변을 빙빙 돌며 말한다. 엔비는 타이에게서 세어나오는 마력이 자신을 건드리는 것을 느꼈다. 기묘한 힘이 코어로 전해져온다.


"그래도 뭐 굳이 가장 대표적인걸 꼽으라면···"


엔비는 그녀가 누군지, 정확하게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에게서 무엇을 가져갈지 몰랐다.


엔비는 그 결과 끝에 파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면서도 불길하기 그지없는 여자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워리에요. 내겐 부모가 없고, 따라서 성도 없으니, 건방지게도 넌 내 이름을 불러야겠네요."


짝.


타이의 말을 끝으로 박수 소리와 함께 엔비는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엔비는 자신의 손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제대로 몸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타이, 아니 워리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생각이 떠오른 엔비는 본능적으로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상태창.'


=======================

CODE : NORMAL

---------------------------------------

<상태창>


이름 : 디그다 엔비

성별 : 남

나이 : 18

레벨 : 1

종족 : 인간

칭호 : 포식자

----------------------------------------

<기본능력>


체력 : 212

힘 : 247

민첩 : 230

지능 : 110

마력 : 0

재능 : 799

----------------------------------------

<Skill>


마력 제어 : 3

악마화 : Unranked

동종 포식 : Unranked


----------------------------------------

=======================


새로 생긴 칭화와 스킬들. 그리고 달라진 능력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후 몇 달간 달라지지 않은 그의 능력치가 달라진 것은 그를 기쁘게 만들었다.


'됐다!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왔어.'


엔비는 속으로 쾌자를 불렀다. 그러자 엔비의 귓속의 타이의 음성이 날아들었다.


[더 많은것이 필요하다면 위치스의 개인 연무실로 오세요.]


"위치스의 개인 연무실."


위치스의 개인 연무실은 베일에 싸인 장소였다. 타이의 남자들을 제외하고서는 그 누구도 그곳에 들어간 이가 없었다. 그곳에 들어간 남자들은 모두 파멸을 맞이했으리라.


하지만 상관 없었다. 엔비는 범인으로 살아갈 평생의 삶보다도 특별하게 살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이 좋았다. 엔비는 자신이 가장 특별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떠올려 자신과 그 사람을 비교해보았다.


'부족해.'


다행히도 타이가 엔비에게 쥐어 준 능력은 아주 직관적이었다.


포식과 악마. 그 단어들이 의미하는 것은 뻔하다. 엔비는 그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을 감싸는 마녀의 비웃음을 듣지 못했다.


***


룬은 진심으로 눈앞의 소년들에 대한 처우를 고민했다.


"빌어먹을 년아. 너 때문에 한스는 퇴학 직전이야!"

"이제 와서 빌어도 소용 없다. 그래도 들어는 주지!"


상투적인 위협대사를 뱉어대는 소년 뒤로, 다른 소년 하나가 건장해 보이는 검사 하나를 안내하고 있었다.


"데인 선배, 이년이에요!"


룬은 갈파고스에 한스와 같은 이름을 한 기사지망생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제야 룬은 자신이 귀를 자르고, 허벅지를 헤집은 소년의 이름이 한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룬이 생각했을 때 데인이라는 남자는 스스로와 룬의 격차를 모를만큼 낮은 경지는 아니었다.


익스퍼트 중급에서 상급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경지.


그 정도라면 룬을 보는 것만으로도 경계심을 가지는 것이 마땅했다. 그리고 실제로 눈앞에 선 남자는,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만 룬을 두려워하고 있었고, 룬 또한 그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데인이라는 남자는 믿는 구석이 있는 듯 룬을 향한 위협에 동참했다.


'시발, 무슨 간격이 이래.'


한편 데인은 룬과 자신의 간격을 가늠하고 있었다.


처음 데인은 그 간격을 세 걸음 정도로 판단했지만, 룬이 사소하게 움직임을 바꿀 때마다 불규칙하게 간격이 바뀌어 더 이상 간격을 예측할 수 없었다.


마치 의도한 것만 같은 행동, 아니 분명 저 아이는 의도했다.


그리고 그건 자신의 검사로서의 격이 저 아이에 비해 한참이나 모자란다는 뜻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무를순 없다.'


"일리야의 룬, 나는 네가..."


데인은 용기를 내었지만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다. 데인은 입술을 세게 물어뜯고는 다시 한번 목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마스터에 올랐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왕세자님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행태를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


데인은 그렇게 말하고서 끼고있던 장갑을 벗어 룬을 향해 던졌다.


"네가 정말로 마스터라면 내 결투 신청을 받아라. 그리고 내일 정오에 검술학부 결투장으로 나와 네 검을 증명해라."


'승부수는 던졌다.'


데인은 룬이 절대로 결투장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룬은 두문분출하며 오로지 수련에만 몰두하고 있었는데, 데인은 그것이 룬 스스로가 지나치게 커져버린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기 위해서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최근 룬에게 집중된 과한 관심은, 그의 판단에 어느정도 개연성을 만들어주었다.


'상부상조 하는거지. 네게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일거다.'


데인은 간절하게 룬이 자신의 의도를 이해하기를 바랬다. 자신은 룬과의 결투를 통해 이름값을 높인다. 그리고 룬은 자신의 존재감을 지운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다.


스스로 생각해도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실패해도 자신은 결투에서 지는 것 뿐이고 왕세자의 눈에 들 수 있는 기회다.


그렇게 데인의 속이 희망과 불안함으로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을 때, 돌연 룬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해했구나!'


빠르게 계산을 마친 룬은 이 상황이 재밌었다. 눈앞에 선 남자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룬이 거절했을 때 룬과 데인 모두 받는 피해가 없다는 점에서 합리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최근에 받은 스트레스를 풀 좋은 기회라고 여겨졌다.


"좋아요 데인. 내일 정오에 내 검을 증명해 보이죠."


룬의 확답을 들은 데인은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소년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나스챠는 떠나는 데인과 소년들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재 미친거야?"

"아마도?"

"진짜로 결투 하게?"


룬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마도.”


나스챠는 한 마디를 남기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룬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재도 너무 변했어."


나스챠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


한편 룬에게 결투를 신청한 데인 일행은 선술집을 빌려 술을 마시고 있었다.


"데인 선배님, 아까는 정말 멋있으셨습니다!"

"한스나 너희들이나 내 동생같은 놈들인데, 당연한 거지. 오늘은 마시자고!"


데인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맥주를 들이켰다. 룬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최고의 결과고, 그렇지 않더라도 후배들의 존경을 얻음과 동시에 왕세자의 눈에 들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근데 선배님 정말로 룬이 마스터면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어떻게하긴 뭘 어떡해. 개같이 맞는거지.'


데인은 속내를 감추며, 스스로 생각하는 당당한 기사의 모습을 연기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한 최대한 멋진 말을 내뱉었다.


"그때는 마스터 룬의 검을 인정할 뿐이지."



'재수없게 그런 말은 왜 하는거야.'


아무리 그래도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여자에게 두들겨 맞을 생각을 하니 데인은 기분이 꿀꿀해졌다. 데인은 테이블 위로 비어버린 맥주잔을 탕탕 두드렸다.


"그것보다 내 잔이나..."


끼이익.


술잔을 채우려던 데인은 자신들이 빌려놓은 선술집으로 멋대로 들어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저거 누구야?"


데인의 질문에 후배들은 자신들도 알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는 조용히 데인 일행에게 다가와 데인의 술잔에 맥주를 채운 뒤 단숨에 들이켰다.


남자가 술잔을 들이키는 과정에서 그의 얼굴을 가렸던 로브 모자가 뒤로 넘어가며 얼굴이 드러났다.


"이게 누구야, 두더지 엔비잖아?"


엔비를 괴롭히는 데 가장 열성적이었던 소년이 엔비를 향해 비죽거렸다.


"오늘은 굴 안파도 돼냐?”

"너네 집은 애비도 광부들이랑 먹고 마신다며, 혹시 똥도 같이 싸냐?”


저급한 농담에 소년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데인은 엔비에게서 느껴지는 기괴한 기운에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이 새끼는 또 뭐야, 마력은 아닌데...'


그러나 기운을 느끼지 못했던 한 소년은, 아무런 대답 없이 술잔을 들이키고 있는 엔비에게 짜증을 느낀 듯이 그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시발, 근데 왜 대답을 안 해?"


소년 하나가 엔비의 멱살을 붙들었다. 엔비는 초췌한 눈으로 그런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처음은 너네가 딱이야."


엔비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새끼가 뭐라는...컥!"


엔비는 자신을 향해 소리치던 소년의 목을 붙잡았다.


우두둑.


뼈가 꺾이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소년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즉사한 소년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비현실적인 광경에 소년들이 얼어붙었다.


데인은 즉시 품속의 칼을 뽑아들었다.


푸욱.


그러나 엔비의 손길이 조금 더 빨랐다.


엔비의 시커먼 손이 데인의 가슴을 꿰뚫었다.


"아저씨한테는 미안해."


데인을 향해 사과를 전한 엔비는 그의 가슴을 파고든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한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눈빛으로 그의 심장을 꺼내든 후, 우적우적 씹기 시작했다.


심장을 모두 씹어삼킨 엔비는 자신의 카드를 꺼내 상태창을 확인했다.


'상태창'


상태창을 확인한 엔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소년들은 순식간에 데인을 죽여버린 엔비를,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몇 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엔비는 소년들의 장난감에 불과했다.


하지만 소년들은 엔비가 이곳에 온 이유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에...엔비 우리가 미안해, 우리는 그저..."


소년의 목소리에 감상에 빠져 있던 엔비가 소년을 돌아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하지만 불행히도 소년들의 판단은 자신의 목숨을 구할 마지막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


"너희들도 있었지?"


서걱.


엔비가 길게 늘어뜨린 팔을 휘두르자 순식간에 소년들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었다.


엔비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 소년들의 심장을 하나씩 꺼내 씹기 시작했다.


"우웩, 진짜 더럽게 맛없네."


심장을 씹을 때마다 검붉은 피와 살점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리고 처음 데인을 죽였을 때 밀려왔던 죄책감도 함께 사라지기 시작했다.


엔비가 아깝다는 듯 땅에 떨어진 살점들을 툭툭 털어내더니, 이내 그것들을 삼켰다.


"아이씨, 아깝게 진짜."


엔비는 소년들의 심장을 씹을 때 마다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신체의 변화를 음미했다. 그러고서 평안한 표정으로 아카데미의 밤거리로 시선을 던졌다.


"저것들은 좀 맛있으려나?"


인간의 심장은 태어나서 먹은 그 어떤 고기보다 맛이 없었지만,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특별한 감각이 식욕을 자극시켰다. 엔비는 그것이 강자만이 맛볼 수 있는 승리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엔비는 아카데미의 밤거리로 향했다.


그렇게 다음 날, 룬의 데인의 결투 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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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4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13 14 1 10쪽
44 43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12 47 0 15쪽
43 42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11 20 0 19쪽
42 41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10 14 0 13쪽
41 40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9 15 0 12쪽
40 39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8 15 0 12쪽
39 38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7 14 0 13쪽
38 37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6 23 0 16쪽
37 36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5 20 0 13쪽
36 35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4 16 0 20쪽
» 34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3 16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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