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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양

아이 엠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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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흑산양
작품등록일 :
2021.05.12 15:23
최근연재일 :
2021.12.21 18:20
연재수 :
187 회
조회수 :
38,280
추천수 :
506
글자수 :
979,887

작성
21.07.2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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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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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Episode 12. 두 번째 전환점 (1)

DUMMY

던전을 나가는 문은 친절하게도 입구로 나오게 되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충격에 벗어나지 못했다. 자각할 수 있을 정도로 발걸음에 힘이 없다.

계단을 오르던 나는 문득, 던전을 떠올렸다.


‘처음부터 너무 간단한 던전이었다···. 던전 그 자체가 함정인 경우인가···?’


던전을 공략하면 난이도에 합당한 아이템을 받는다. 이 말은 조금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지나치게 간단한 던전은 그야말로 함정으로 작동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다.


“하아···.”


어쩐지, 던전 공략이 너무 간단했다.

공략의 핵심인 신성 마법은 교회에서 배울 수 있다. 자격증이 없는 나도 간단히 배웠다. 아마, 다른 플레이어들은 더 쉽게 배울 수 있다.

처음 공략하는 던전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랬다.


“어, 어라?”

“아, 안녕하세요. 티리엘 씨.”

“에, 네···.”


티리엘 씨는 어딘가 멍한 분위기다.


‘아니, 당황한 눈치인가?’


계단 너머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다. 그런 티리엘의 반응에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어쩌면 수녀인 티리엘은 내가 저주받았다고 눈치챈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티리엘에게 상황을 설명하려 입을 열었다.

그러나 티리엘이 설명하려는 나보다 먼저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슬로우 씨. 그건 어떻게 된 건가요···?”

“네?”


너무나 갑작스러운 질문이다. 게다가 두리뭉실하다.

티리엘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머릿속에서 다양한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무엇하나 그럴듯한 내용을 떠올리지 못했다.

티리엘이 단순히 나를 가리켰다면, 나는 저주의 이야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머리 위에는 별다른 게 없을 텐데.’


저주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나를 지목해야 한다. 아니면 저주 아이템인 팔찌를 확인하는 게 맞다. 하지만 티리엘이 가리킨 건 나의 머리 위다.

나는 의문과 함께 티리엘의 손끝으로 시선을 향했다.


“···어라?”


티리엘의 손은 여전히 머리 위를 가리키고 있다.

잊었던 사실이지만, 나는 별을 건너는 자(플레이어)다. 플레이어인 나는 NPC와 달리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닉네임이다.


“아무것도 없, 다고···?”

“설마, 슬로우 씨도 모르셨나요?”


머리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분명 플레이어로서 있어야 하는 닉네임도 없다.

닉네임은 반투명한 창이다. 이름을 나타내는 창이다. 그런데 지금 내 시야 어디에도 반투명한 창이 보이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는 저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신부님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슬로우 씨. 일단, 안정을 취해주세요.”

“아, 예.”


머릿속으로 가능성을 떠올려본다. 그 탓에 티리엘의 이야기에는 적당히 대답했다.

떠오른 가능성 중 유력한 건 두 개다. 하나는 던전 공략이다.


‘던전을 공략한 특전. 그런 걸지도 모르지.’


분명, 오늘 아침 로그인했을 때는 닉네임이 있었다.

그 사이에 있었던 특별한 일은 던전 공략이 전부다. 오히려 던전 공략 말고는 없다.


“···일단, 이걸로 NPC 사이에 섞이는 건 해결 된 건가?”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덮어두고, 이득을 따져보기로 했다.

닉네임이 사라진 건 갑작스러운 일이다. 어떤 상황에 돌아올지는 모른다. 그래도 지금 상황이 유지된다면 내 목표에 다가갈 수 있다.

내 목표는 이쪽(가상현실)을 즐기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NPC 사이에 섞일 필요가 있다.


“유지할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인가. 아니, 원인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겠지.”


눈에 띄는 닉네임만 없으면 플레이어와 NPC는 차이가 없다. NPC의 AI가 극도로 뛰어난 탓이다.

냉정히 분석한 나는 지금 상황을 이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슬로우 씨. 신부님이 부르셔요.”

“알겠습니다.”


머릿속 생각이 정리될 때쯤, 티리엘이 돌아왔다.

나는 티리엘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마침 신부님에게 저주받은 아이템도 물어봐야 한다.

나는 티리엘의 뒤를 따라갔다.


- 똑똑.


“들어오세요.”


‘신부님의 방을 빈번히 들어오는데. 이건 괜찮은 건가?’


나는 익숙하게 소파에 앉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신부님은 한순간 머리 위를 확인하더니, 별다른 반응 없이 다과를 준비했다.

처음 마주했을 때도 신부님은 나의 존재에 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는 신부님이 지닌 여유인 모양이다.


“일단, 확인하겠습니다만. 슬로우 씨···. 인가요?”

“예, 맞습니다.”

“그럼···. 그 별을 건너는 자(플레이어)의 표식은?”


곧장 문제를 짚는 신부님의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했다.

신부님 또한 원인을 모르는 모양이다. 이를 설명하려면 귀찮은 일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가능하면 간단하게 끝내고 싶다.

나는 신부님과의 인연을 저울질하며 적당한 변명을 생각했다.


‘저주받은 아이템의 감정도 부탁해야 하는데. ···저주받은 아이템?’


신부님이라면 저주받은 아이템의 저주를 알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떠올린 생각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커다란 가능성이 반짝였다.


“그건···. 이것 때문입니다.”

“이건···?”


반짝인 생각을 순식간에 조립한 나는 하나의 이야기로 엮었다.

어쩌면 지금 상황의 정답일지도 모른다.


‘가능성의 이야기지만.’


“이건, ‘아래’에서 얻은 물건들입니다.”

“이것들이···!”


저주받은 아이템을 눈으로 살피던 신부님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그 모습에 내심 안도했다. 신부님이 저주를 모르고 아이템을 건드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보면 신부님 또한 저주를 눈치챈 모양이다.


“보다시피, 이 물건들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예. 저 또한 이 물건을 착용한 순간,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

“어떻게···. 이런···.”


내가 손목에 걸린 팔찌를 보이며 저주를 언급하자, 이야기를 듣던 두 사람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신부님은 저주를 직접 확인하니 알 수 있다. 티리엘은 신부님과 나의 이야기를 믿는 듯하다.

나는 머리 위에서 사라진 닉네임의 변명을 정했다.


‘저주받았기에 NPC와 같아졌다. 그런 거로 하면 되겠지.’


정말 저주 때문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저주로 가려진 아이템의 능력일지도 모른다.


‘아이템의 능력이라면 더 좋은 이야기지.’


두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며 이야기를 믿었다. 내가 저주에 걸린 건 사실이다. 꺼낸 물건들 또한 저주받은 아이템인 것도 사실이다.

무엇 하나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 물건들은 제가 수납하면 문제는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착용하면 저주를 받는 듯합니다. 그 덕에 저는 지금 NPC와 비슷해진 상황입니다.”

“별을 건너는 자(플레이어)를 땅에 속박시키는 저주입니까?! 그런···. 그런 위험한 저주는 들어본 적도 없군요···.”

“그, 그래도 슬로우 씨의 마법으로 수납하면 괜찮다고 하니 다행인 게 아닌가요?”


신부님은 눈을 크게 뜨면서 놀랐다. 티리엘은 저주에 당황하면서도 인벤토리를 마법이라 칭하며 처치 방법을 이야기했다.

확실히, 저주받은 아이템들은 인벤토리에 넣으면 안전하다. 들고 다니거나 보관하면 자칫 실수로라도 장착할지도 모른다.

그런 위험을 깨달은 신부님은 눈을 감았다. 이제 아이템들의 처분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예상한 흐름대로 대화가 진행되자 내심 안도했다.


‘처음부터 아이템을 줄 생각은 없었지만, 저주의 해주 여부는 파악해야 했으니까.’


내가 안도하는 사이, 신부님은 결심을 끝낸 듯 각오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신부님의 이야기를 반쯤 예상하며 기다렸다.


“···슬로우 씨. 죄송합니다만, 당분간 그 아이템을 맡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지금 상황에선 저 이상으로 적임은 없는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본부에 연락을 넣어 최대한 정보를 알아볼 터이니, 부디 그때까지만이라도 부탁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는 신부님의 모습에 나도 진지한 모습을 연기한다.

이 상황은 필요한 일이다. 이쪽(가상현실)의 NPC들의 자주성은 높다. 그러니 아이템을 보여준 상태로 내버려 두면 자칫 저주를 정화한다며 아이템을 몰수당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교회 본부에서 정보를 찾아준다는 신부님의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 아이템의 역사는 교회에서 시작된 모양이니까. 잘 하면 주인의 정보를 알 수 있겠는데.’


예상하지 못한 소득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대화를 끝내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마을에서의 장사를 통해 정보는 주기적으로 얻었다. 알파 도시의 일도 대부분 파악했다. 그리고 알파 도시를 습격한 몬스터의 정보도 확인했다.

장사 물건은 전부 판매했고, 몬스터의 습격도 끝났다. 알파 도시로 돌아가기에 적당한 시기다.


“연락은 알파 도시로 부탁드립니다. 대부분 상인 길드에서 확인하니, 연락은 상인 길드를 통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벌써 돌아가시는 겁니까?”

“예. 물건도 전부 판매했고, 지금은 제 몸의 상태도 알아봐야 합니다.”

“···그렇군요.”


기껏 플레이어의 표식이 사라졌다.

지금이라면 상인 길드의 시험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시험을 받지 못한 건 단순히, NPC가 아니기 때문이다.

표식이 없는 지금은 아무리 봐도 NPC다.


‘허름한 천 옷 덕분이네.’


상인 길드 외에도 실험할 일은 많다.

플레이어의 표식이라는 제한이 사라진 이상, 나는 원 없이 이쪽(가상현실)을 즐길 생각이다.


“그럼,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편히 지내시길.”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일어나보겠습니다.”


나를 걱정하는 신부님의 시선에서 도망치듯 방을 나섰다. 다소 과장된 이야기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이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걱정하는 건 신부님뿐만이 아니었다.


“슬로우 씨.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습니다. 완전히 NPC와 같아진 건 아니니까요.”


어디까지나 표식이 사라진 정도다. 그래도 신부님과 티리엘은 걱정하고 있다.


‘불사성이 사라진 게 아닌지, 그걸 걱정하는 건가.’


나는 내심 웃으며 티리엘의 걱정 어린 시선에서 벗어났다.

플레이어는 위험한 존재다. 이번 알파 도시의 이야기를 듣고 더욱 확신했다. 그런데도 플레이어가 자유로운 건, 그들이 지닌 불사성 때문이다.

그런 불사성을 지울 수 있는 저주가 눈앞에 있다. 하지만 신부님과 티리엘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다.


‘선인의 비율이 너무 높다니까.’


알파 도시를 시작해서 만난 NPC들 전원이 선인의 반열에 들어간다.

나는 이 상황에 웃으면서도 곤란한 심정을 느꼈다. 자칫 그들이 속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NPC를 위한 대처도 생각해둘까.”


내가 생각하기에 플레이어는 이쪽(가상현실)의 이방인이다.

이방인이 원주민인 NPC를 해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바탕으로 본다면, 그런 일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니 내가 나서서 NPC들의 대처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뭐, 즐기는 김에 하는 거니까.”


진지한 분위기를 날린 나는 던전을 나올 때와는 달리, 가벼우면서도 경쾌한 발걸음으로 교회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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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Episode 15. 플레이어 유도 계획 (3) 21.08.13 158 2 10쪽
67 Episode 15. 플레이어 유도 계획 (2) 21.08.12 153 2 10쪽
66 Episode 15. 플레이어 유도 계획 (1) 21.08.11 159 2 10쪽
65 Episode 14. 영주 파티 (4) 21.08.07 153 3 10쪽
64 Episode 14. 영주 파티 (3) 21.08.06 157 2 12쪽
63 Episode 14. 영주 파티 (2) 21.08.05 157 3 10쪽
62 Episode 14. 영주 파티 (1) 21.08.04 154 2 10쪽
61 Episode 13. NPC 상인 등록 (4) 21.07.31 157 1 13쪽
60 Episode 13. NPC 상인 등록 (3) 21.07.30 167 2 10쪽
59 Episode 13. NPC 상인 등록 (2) 21.07.29 166 2 10쪽
58 Episode 13. NPC 상인 등록 (1) 21.07.28 170 2 9쪽
57 Outside 인터넷. 공식인 듯 공식 아닌 비공식 공략집 21.07.26 166 1 10쪽
56 Behind Story 던전. 은둔자의 거처, 그 진가. 21.07.25 171 2 12쪽
55 Episode 12. 두 번째 전환점 (4) 21.07.24 168 2 11쪽
54 Episode 12. 두 번째 전환점 (3) 21.07.23 170 3 12쪽
53 Episode 12. 두 번째 전환점 (2) 21.07.22 174 3 11쪽
» Episode 12. 두 번째 전환점 (1) 21.07.21 184 3 12쪽
51 Extra 병사대장. 전초전 (3) 21.07.20 187 3 18쪽
50 Extra 병사대장. 전초전 (2) 21.07.19 184 3 12쪽
49 Extra 병사대장. 전초전 (1) 21.07.18 188 2 15쪽
48 Episode 11. 후회와 자책의 망령 (4) 21.07.17 178 2 11쪽
47 Episode 11. 후회와 자책의 망령 (3) 21.07.16 188 2 10쪽
46 Episode 11. 후회와 자책의 망령 (2) 21.07.15 180 2 10쪽
45 Episode 11. 후회와 자책의 망령 (1) 21.07.14 181 2 11쪽
44 Episode 10. 던전 공략 (4) 21.07.10 179 2 11쪽
43 Episode 10. 던전 공략 (3) 21.07.09 181 3 10쪽
42 Episode 10. 던전 공략 (2) 21.07.08 189 1 12쪽
41 Episode 10. 던전 공략 (1) 21.07.07 188 2 11쪽
40 Episode 9. 교회와 은둔자의 거처 (4) 21.07.03 196 2 12쪽
39 Episode 9. 교회와 은둔자의 거처 (3) 21.07.02 20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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