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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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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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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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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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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감독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오동석이 류지호를 예전 WaW 픽처스가 사용하던 골방으로 안내했다.

골방 같았던 방이 깔끔한 집무실로 변모해 있었다.

두 개의 방으로 나눠 한쪽은 박건호 대표가 사용하는 사장실이고, 남은 방은 회장실이다.


“저 방은 나 쓰라고 만들어 놓은 겁니까?”

“예.”


류지호가 회장실로 들어갔다.

마치 웨스트우드 GARAM Ventures의 류지호 집무실을 옮겨놓은 것 같았다.

자주 웨스트우드를 오간 오동석이 류지호의 취향을 고려해 집무실을 꾸며놓은 모양이다.

전형적인 회장님 사무실처럼 촌스럽지 않았다.

응접용 소파대신 세련된 회의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는 것이 이채로웠다.

미니멀리즘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실무 중심의 사무공간이다.


“다들 어디 갔어요?”

“<나 홀로 집에> 개봉 때문에 다들 바쁩니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영화로 개봉되었지만, 지연상영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여름방학 특선이 되어버렸다.

아직 콜롬비아스/트라이-스텔라의 전 세계 동시개봉 체계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흥행 스코어는 어때요?”

“터졌습니다.”

“어떻기에?”

“서울 개봉관 기준 27만입니다. 극장에서 추석까지 걸어준다면 100만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국 13개 극장에서 동시개봉이었죠?”

“네.”

“<터미네이터2>는 추석개봉... 겨울 개봉입니까?”

“겨울 개봉입니다.”


이미 WaW 픽처스는 올 3월에 <늑대와 춤을>을 전국 13개 극장에서 아카데미 특선영화로 동시개봉했다.

서울 4개 개봉관에서 984,978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을 기록했다.

동시개봉한 전국의 9개 극장까지 합산하면 거의 300만에 근접하는 관객을 동원했다.

비디오 판권과 공중파 방영권도 거의 최고 수준의 금액에 계약했음은 물론이다.

6월까지 극장에 걸려있던 <늑대와 춤을>의 바통을 이어받은 영화가 <나 홀로 집에>다.


“추석에는 LOG의 <인어공주>겠네요?”

“맞습니다. 겨울방학 특선으로 <터미네이터Ⅱ>가 잡혀 있습니다.”

“올 해 총매출이 100억은 가볍게 넘겠는데.....?”

“물론입니다.”


똑똑.

유세연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어떻게 드시는지 몰라. 둘둘셋으로 탔어요.”


맥심 두 스푼, 크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

다방커피의 황금비율이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유세연이 허리를 넙죽 숙인 후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류지호가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대화를 방해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류지호가 편하게 말을 놨다.


“고생했어, 형.”

“솔직히 난 별로 한 게 없습니다.”

“왜 없어. <인어공주>는 형이 사 온 거잖아.”


후루룩.

오동석이 겸연쩍어 커피만 호로록 마셨다.


“내년에 더 바빠지겠네.”

“할리우드의 높은 기준을 한국영화가 통과할 수 있을까요?”


내년부터 WaW 픽처스가 엄선한 한국영화를 파라맥스 배급망을 통해 미국에 선보일 계획이다.

또한 각종 국제영화제에 단편영화 부스를 열어 국내 단편영화의 해외 세일즈에 나설 계획이고, 더불어 충무로 상업영화도 필름 마켓에 가지고 나가볼 예정이다.

단순히 수입만 해오던 기존의 충무로 관행을 깨고 본격적으로 한국영화 해외 세일즈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그 업무를 오동석이 총괄하게 된다.


“임 감독님은 <장군의 아들> 더빙엔 뭐라 셔?”


오동석이 불퉁거렸다.


“당연히 좋은 소리 못 듣지.”


류지호는 태양영화사가 제작하고 임선택 감독이 연출한 <장군의 아들>1,2편을 영어로 더빙해 북미에서 제한상영으로 개봉해 볼 생각이다.

그를 위해 할리우드 현지에서 영어 더빙을 입힐 계획이다.

이 당시 감독들 마인드로 비춰보면 결코 달가울 리가 없다.

영화를 훼손한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런데 북미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외화에 더빙을 해서 상영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막을 입히는 것보다 비용이 상당이 많이 든다.

그럼에도 더빙을 하는 것이 좋다.

추후 케이블TV 방영권이나 비디오를 출시할 때도 그것이 훨씬 유리하다.


“어차피 <장군의 아들>은 올 후시녹음 영화잖아. 새삼스럽게.....”

“우리 영화를 미국에 판다는 것이 믿기 힘든가봅니다.”

“태양영화사 사장님을 형이 직접 파라맥스로 모시고가서 확인 시켜드려. WaW가 사기 치는 거 아니라고.”

“근데 <장군의 아들>이 미국에서 먹힐까요?”

“형도 알지만 서구권에는 다양한 극장들이 있잖아. 독립영화 극장, 예술영화 극장, B급 영화 전용 상영관, 드라이브인 극장. 파라맥스는 주로 그런 쪽으로 극장 배급을 하고 있었나봐. 거기서 흥행이 좀 된다싶으면 메이저 극장으로 나오는 거고. 솔직히 한국영화 타이틀 달고 메이저 극장으로 못 들어가.”

“액션만 놓고 보면 홍콩영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죽여주는데 말입니다.”

“메이저 극장에 걸면 손해를 볼 거야. 파라맥스가 부가시장 공략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라고 봐.”


오동석이 우려를 드러냈다.


“괜히 생돈만 날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한 거다.

태양영화사는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비용을 WaW 픽처스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우리 영화가 하루라도 빨리 영화제가 아닌 시장에서 평가도 받고, 피드백을 받아야 해. 그래야 경쟁력이 생겨.”


그런 평가와 피드백을 겸허하게 수용했을 때에만 경쟁력도 생긴다.


“원론적으로는 다 맞는 말이지만... 우리가 제작할 영화에만 집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해보자. 시도를 해봐야 깨지든지 넘어지든지 상처를 입든지 하지. 안전한 길만 가서는 맷집을 못 키워.”


오동석이 짐짓 활기차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쫄지 마, 형. 지금 단계에서는 하나하나 배운다고 생각해. 그들의 배급시스템, 극장 시스템 모든 걸 허투루 넘기지 말고 꼼꼼하게 형 머릿속에 담아서 그걸 WaW에서 펼쳐봐.”

“넵!”


불끈!

오동석이 자신의 굳은 의지를 어필하듯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리고 파라맥스나 트라이-스텔라의 오너가 나라고 해서 그들이 WaW가 가져가는 영화를 무조건 OK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그들은 오너에게 수익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수익만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그게 그거 아닌가....?”

“미묘하게 다른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 암튼 형도 직접 그들과 부딪쳐봐. 우리가 볼 때는 융통성이 없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들은 매우 합리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뭐, 서양 사람들이 다 그렇지.... 그건 그렇고 하영씨 <결혼이야기>에 합류하는 건 알고 있지요?”


전하영은 피카디리 극장이 만든 일영영화사 창립작품인 <결혼이야기> 제작부에 합류하기로 했다.

남편 신강 피디가 기획한 영화다.

WaW 픽처스에서도 1억 5천만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일영영화사가 5억의 제작비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지만, WaW 픽처스를 끌어들여 전국배급망을 이용하려는 생각이다.


“우리가 <결혼이야기>를 일영영화사와 함께 배급하면 꼬이는 건 없대?”

“대표님 말씀으로는 별 문제 없다고 하십니다. 내년에 프린트 제한이 한 벌 더 풀리잖습니까.”

“총 14벌까지 뜰 수 있는 건가?”

“그렇죠. 우리가 가진 배급망에서 6개 극장은 <결혼이야기>를 걸고, 남은 8개 극장에 우리 영화 걸었다가 흥행이 잘되는 영화 쪽으로 교체하기로 합의를 봤습니다.”

“피카디리는 8개까지 동시개봉할 수 있는 모양이지?”

“예.”


할리우드 직배사들이 한국의 배급망을 새롭게 구성하면서 충무로에서 영화를 만들고 배급을 하려면 흥행판을 좌지우지하는 할리우드 직배사들의 배급라인을 빌려야만 했다.

많이 만들어도 2년에 한 편 정도 만드는 토착 제작사가 일 년에 약 10편 정도의 라인업을 갖춘 할리우드 직배사의 배급을 따라 할 수는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할리우드 직배사의 라인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한국영화를 위해 스크린을 자진해서 열어주는 극장은 단 한군데도 없는 실정이다.

스크린 쿼터 일수를 채워야 해서 11월에 주로 한국영화를 집중적으로 개봉하는 이상한 풍조까지 나타났다.

충무로 1세대 기획피디들의 참신한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극장가는 할리우드 직배사가 가지고 온 할리우드영화만이 최고였다.

한국영화를 배급 하려면 극장에 찾아가서 머리 숙여 읍소를 해야만 겨우 극장을 잡을 수 있었다.

뇌물도 찔러 줘야 하고.

한국영화의 마지막 보루는 있었다.

스크린쿼터 제도다.

영화법 5차 개정으로 스크린쿼터 즉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는 연간 146일로 강화되었다.

국내 영화관이라면 연간 상영일 중 4/5 이상은 한국영화를 의무 상영해야 하는 거다.

물론 약 20일 정도의 증감이 가능하긴 했지만.


‘빛 좋은 개살구.’


영화제작자의 처지가 딱 그랬다.

영화 제작자 하면 돈도 많이 벌고, 흥행산업의 멋진 기업인 같아 보인다.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극장개봉만으로 한 달에 억 단위를 버는 메이저 영화제작자가 있는 반면, 돈이 없어서 자신의 전셋집 보증금을 빼서 직접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도 있고, 사채까지 써가며 영화를 완성시킨 영세 영화사 대표가 수두룩하다.

류지호가 심심치 않게 듣던 말이 있다.


‘이번 영화도 망하면 그냥 한강 가서 빠져 뒈져야지!’


90년대만 해도 제작한 영화가 망하면 제작자가 재기하기 무척 힘들었다.

미래도 마찬가지지만, 영화 한편에 인생이 걸렸다는 것이 과언이 아니다.

화려한 재기사례가 있긴 했다.

너도나도 그들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망상을 품게 된다.

재기사례는 백 명 중에 한 두 명일뿐이다.

류지호의 눈앞에서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는 오동석 역시 이전 삶에서 그랬다.


“형, 이번에는 절대 사채 쓰면 안 돼.”

“사채?”


류지호의 뜬금없는 말에 오동석이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업계 최고 대우를 받고 있는데 내가 사채는 왜 쓰겠습니까?”

“무조건 그 쪽은 기웃거리지 마. 내가 형이 먹고사는 데 아무 지장도 없이 해줄 테니까.”


오동석이 따끔하게 충고했다.


“왜 자꾸 퍼주려고 하십니까. 올해 WaW가 번 돈 다 직원 월급으로 나갈 판입니다.”

“형하고 준영이형은 내가 퍼줘도 돼. 형은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만 해줘.”

“우리 전생에 부부였답니까? 준영이는 자식 쯤 되고? 혹시 점쟁이가 그래요?”

“설마! 형은 내 스타일 아니거든요!”

“난 감독님 스타일 좋은데요?”

“시끄럽고! 열심히만 해. 내가 팍팍 밀어줄 테니까.”

“부담 팍팍 주시네. 내가 영혼까지 탈탈 털어 WaW에 모두 바치겠습니다. 됐습니까?”

“응. 됐어.”


킥킥.

큭큭.


두 사람이 동시에 웃었다.


“그나저나 박 대표님은 충무로로 출근하나봐?”

“응.”

“배급 업무하고 <하얀 메달> 제작까지 동시에 감당할 수 있대?”

“제작실장 한 분 모셔왔더라.”

“이름이 뭔데?”

“백상기.”

“아, 백 실장님?”

“알아?”


이전 삶에서 연출부 막내시절 백 실장과 한 편을 작업한 적이 있었다.

정통 충무로 제작부 같이 거칠거나 무식하지 않았다. 드물게 스마트한 사람이었다.


“작년에 미국 로케 작품도 경험했다고 해서, 대표님이 특별히 모셔왔다더라.”


류지호는 대충 무슨 영화인지 감이 잡혔다.


‘그 양반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지.’


류지호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형, 바빠? <하얀 메달> 프로덕션 오피스 한 번 넘어가 볼래?”

“보스가 움직이는데, 당연히 수행을 해야죠.”


그길로 두 사람은 충무로에 마련한 <하얀 메달>의 제작 사무실을 찾아갔다.


“안녕하십니까?”


류지호는 정호영 감독, 유성길 촬영감독, 김용호 조명감독에게 인사를 드렸다.


“......”


김영복의 촬영팀들과도 눈인사를 나눴다.

백상기 제작실장 곁에는 김재욱이 서있다.

정호영 감독은 류지호의 외모를 보며 적잖이 놀랐다.


“자네가 WaW 영화사 회장이라고?”

“회장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고....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허허. 젊은 사람이라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생략된 말은 ‘애송이였을 줄이야‘였을 터.


“회장.... <플래툰>이나 <지옥의 묵시록>을 기대했을 텐데 아쉽지 않겠나?”

“전혀요.”

“어째서?”

“할리우드 영화처럼 화려한 볼거리는 없겠지만, 베트남 전쟁과 서울의 봄을 엮은 원작에 감독님만의 재해석이 들어간 아이디어가 좋았습니다. 전쟁을 겪은 이들의 고통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는 시나리오였습니다. WaW가 수십억을 지원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감독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류지호가 이 영화에 투자한 20억 원은 이 당시 한국영화 최대 제작비다.

또한 원작자에게 지불한 저작권료 8,000만 원 역시 역대 최대 금액이다.

이 영화에는 최초, 최대 타이틀이 많이 붙게 된다.

한국영화 사상 최초의 베트남 로케이션, 사상 최고의 저작권료, 최대 제작비 등등.

류지호는 이 영화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

다만 문제적 작품을 제작해 영화사 인지도를 올리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이다.

류지호의 똑 부러지는 말에 정 감독의 표정이 대번에 호의적으로 변했다.


“자네 술 좀 하나?”

“남들 마시는 만큼 마십니다.”


정 감독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백 실장을 향해 말했다.


“회장도 왔는데, 회식 한 번 합시다.”


백 실장을 대신해 류지호가 나섰다.


“감독님, 제가 저녁 살 테니 함께 나가지죠? 뭘 좋아하십니까? 유 기사님과 김 기사님도 함께 가시죠.”

“회식입니까 아니면....”


사무실에 있는 모든 인원이 가는 것이냐 아니면 감독급만 따로 가는 것이냐를 물은 것이다.


“다 함께 가야죠.”


김영복이 불쑥 튀어나와 한 말 보탰다.


“거, 사람 차별해요? 누구 입은 입도 아닌가?”

“누가 뭐래?”


김영복과 백 실장이 티격태격했다.

전부터 안면이 있었던 것인지 두 사람이 격이 없이 투덕거렸다.

일행 모두가 충무로의 고깃집으로 몰려갔다.

류지호가 회식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발을 들고 있는 김재욱에게 다가갔다.


“김재욱씨!‘

“네! 감독님!”


김재욱이 힘차게 대답하고 류지호에게 다가왔다.


“이 영화 제작부 하게?”

“이 영화까지 작업하고 군대 가려고 합니다.”

“베트남도 따라가는 거야?”


김재욱이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며 류지호에게 바짝 다가왔다.

류지호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아쉽지만 막내인 나는 못가.”

“가고 싶어? 보내 줄까?”

“아니야. 영장 나와서 군대 가야 돼.”

“군대 가기 전까지 열심히 해라.”


김재욱의 어깨를 두드려준 류지호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감독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말인가?”

“이 영화는 우리 국민들 가슴에 새겨진 자긍심을 훼손하는 걸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월남전에 대해 누군가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겠나?”

“질문입니까?”

“질문이지. 그 전쟁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희생당한 것이 어떤 의미가 있고, 도대체 우리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 감독이 확고한 신념을 담아 류지호에게 말했다.

영화 <하얀 메달>은 원작소설이 전하는 전쟁의 잔혹성과 반인간주의 본질에 유신이 붕괴된 80년대 서울의 봄을 연결시켜 군사정권 아래에서 파국을 맞는 개인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베트남 전쟁의 당사국 미국도 아닌 우방국이란 명목으로 용병으로 파병된 백마부대원을 통해 이 땅의 젊은이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 한다.

<하얀 메달>은 누가 뭐라고 해도 소위 ‘코리안 뉴 웨이브’라는 한국영화 사조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단순히 반미의식, 군부 독재에 대한 부정적인 재평가를 상업영화에 접목한 것뿐만 아니라, 이 시기 영화계 내부적으로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직접배급 반대와 스크린쿼터 사수 의지까지 담긴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윤 일병이 부비트랩에 걸려 전사할 때, 다른 병사가 울분을 터트리는 장면이 있다.


[이 씨발! 양놈들은 포탄에 맞아 뒈져두 닦아주고, 꿰매 주고, 이 씨발! 성형수술까지 시켜서 냉동장치가 된 관에 넣어 집에까지 배달해 준다는데, 이 새끼는 전투수당은커녕 먹으라고 준 C-레이션까지 꼬박꼬박 마누라한테 갖다 부치더니만...]


정호영 감독이 각색한 시나리오에 마음에 드는 대사가 꽤 많았다.

유독 류지호는 저 대사 와 닿았다.

아마도 다시 한 번 군대에 가야할 입장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 ❉ ❉


장마가 완전히 물러갔다

그리고 무더위가 찾아왔다.

자퇴한 후로 실로 오랜 만에 류지호가 신포고를 방문했다.

교감 한 명 사라졌다고 해서 학교가 딱히 바뀐 것 같진 않았다.

여전히 폭력적 체벌로 유명한 교사들은 몽둥이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빈 교실에 류지호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모여 있다.

짝꿍이었던 강용석을 비롯해 모두 아홉 명이다.

강용석을 제외하고 반만 같았지 그렇게 친한 녀석들은 몇 없었다.

사교적이었던 강용석이 불러 모은 녀석들이다.

조용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다들 눈만 껌뻑이는 상황.

류지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강용석이 침묵을 깼다.


“후래쉬 맨도 아니고 뭐라고?”

“flash mob.”

“아씨, 그러니까 그게 뭔데?”

“일종의 놀이야.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사전에 미리 약속을 해놓은 사람들끼리 맞춰놓은 행동을 하고 사라지는 놀이.”

“야, 그래도 선생님 결혼식인데 그 중요한 자리에서 첫 제자라는 놈들이 놀이판으로 만들면 되겠냐?”

“쉽게 말해서 놀이판이라는 거야. 내 말은 선생님과 사모님께 추억이 될 수 있는 이벤트를 열어주자는 거야.”


<영웅본색>의 장궈룽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날라리 송태형이 물었다.


“우린 뭘 해야 되는데?”

“태영이 너는 닭장 좀 다녀봤지?”

“앙앙에서 좀 놀았다.”

“그럼 네가 얘들 춤 좀 가르쳐 줘.”

“뭐?”


교실에 모여 있던 녀석들이 일제히 놀람을 표출했다.


“어려운 춤 아니야. ‘오직 하나뿐인 그대‘ 알지?”

“총 쏘는 거?”

“어렵지 않잖아?”


강용석이 딴죽을 걸었다.


“결혼식에서 무슨 춤을 춰. 환갑잔치도 아니고.”

“하기 싫은 사람은 빠져. 대신, 이건 알아둬. 이번에 연정훈 선생님 결혼식은 방송부 후배들도 찍어 갈 거야. 플래시 몹 하는 거 찍어서 방송제에서 틀기로 한 것만 알아둬라.”


방송제에서 자신들이 축가 부르는 모습이 상영된다고 하자 입을 다문 강용석이다.


“다들 이리로 와봐.”


송태형이 동창들에게 <오직 하나 뿐인 그대> 총알춤을 알려줬다.

며칠 후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녀석들이 몇 명 더 참여했다.

응원부 출신까지 섭외해 춤을 배우는 열성을 보였다.

허공을 손가락으로 찌르고, 어깨를 씰룩씰룩 하는 모양이 어딘지 우스꽝스러웠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춤을 배우는 동창들의 모습은 진지하기만 했다.


❉ ❉ ❉


중·고등학교의 여름방학 개학을 일주일 앞 둔 일요일.

동인천 신신예식장 마당에 가온 웨딩 주안점 촬영팀, 신포고 방송부 후배들, 류지호의 동창생 여럿이 모여 있다.

정종택 사장이 촬영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 류지호에게 다가왔다.


“류 감독, 진짜 하려고?“

“그럼요.”

“예식고객이 하겠다는 걸 막을 수 없지만, 진짜 괜찮겠어?”

“재밌잖아요.”

“어른들이 엄숙한 결혼식을 망쳤다고 화를 내실지도 몰라.”

“그래서 카메라를 두 대 더 가지고 왔어요.”


류지호는 방송용으로도 쓰이는 베타캠과 이번에 새로 구입한 최신캠코더를 포함해 가온 웨딩에서 세 대, 신포고 방송부의 VHS카메라까지 모두 네 대의 카메라를 동원했다.

고등학교 은사인 연정훈의 결혼식을 촬영하기 위해 준비한 것들이다.


“카메라 네 대가 돌아다니는 걸 보시면 하객들도 행사나 페스티벌 같은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류지호가 카메라를 어깨에 걸쳤다.


“저는 이만 일하러 가볼게요.”

“고생해.”


정종택과 헤어진 류지호가 메이크업을 마친 신부에게 향했다.

간단하게 결혼식을 앞 둔 소감을 영상에 담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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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4) +7 22.05.28 6,362 181 26쪽
176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3) +9 22.05.27 6,309 181 25쪽
»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2) +4 22.05.26 6,288 179 21쪽
174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다! (1) +13 22.05.25 6,429 184 24쪽
173 우리는 항상 승자 쪽에 있어야 한다! +5 22.05.24 6,495 180 25쪽
172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5) +11 22.05.23 6,517 200 24쪽
171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4) +7 22.05.23 6,257 165 21쪽
170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3) +8 22.05.21 6,674 177 25쪽
169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2) +7 22.05.20 6,638 188 25쪽
168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1) +6 22.05.19 6,669 179 23쪽
167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7) +9 22.05.18 6,281 191 24쪽
166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6) +5 22.05.17 6,337 167 23쪽
165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5) +7 22.05.16 6,331 174 23쪽
164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4) +6 22.05.14 6,380 176 21쪽
163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3) +6 22.05.13 6,367 159 22쪽
162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2) +9 22.05.12 6,542 172 22쪽
161 단편영화는 언제나 미래영화다! (1) +9 22.05.11 6,717 179 22쪽
160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 +8 22.05.10 6,774 182 25쪽
159 괜찮은 인디배급사 하나 인수합시다! +14 22.05.09 6,877 182 30쪽
158 부자(父子)에게 부자(富者)란..... +8 22.05.07 6,896 184 23쪽
157 나 홀로 집에서 늑대와 춤을! (3) +6 22.05.06 6,867 187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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