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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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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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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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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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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8쪽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IT분야에 나름 강점이 있는 가온그룹이다.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부분이다.


“TF가 아니라 젊은 사원들 중심으로 사내 벤처를 지원해 보세요.”

“스타트업 말씀이십니까?”

“예.”

“비즈니스 모델과 시장성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사업이 구성되었으면 좋겠군요.”

“.....예.”

“한울합성의 젊은 직원뿐만 아니라, 그룹의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활용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2005년에 국내 1호 매장을 낸 유니클로딩은 한국 패션 시장을 완전히 재편했다.

빠른 제품 순환 주기와 대중성으로 외환위기 이후 불황과 침체 늪을 헤매던 국내 패션업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국내 패션 업계에서는 단일 브랜드로 연매출 1조원을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왔다.

해방 이후 60년 동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런데 유니클로딩이 한국 상륙 10년 만에 보란 듯이 그 벽을 깼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2008년부터 세계적인 SPA 브랜드들이 잇따라 한국 시장에 뛰어들면서 한국은 글로벌 SPA 브랜드의 전쟁터가 됐다.

이전 삶에서는 한국의 대기업 계열 패션 업체들이 한참이나 늦은 2012년에 가서야 SPA 분야에서 글로벌 브랜드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한국 SPA 브랜드 빅3가 국내외 합쳐 매출 7,100억 원을 기록할 때, 같은 기간 유니클로딩은 한국에서만 1조 4,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었다.

글로벌 빅3 SPA 브랜드의 해외 매장을 합치면 1만4,000여 곳이었다.

그에 반해 한국 SPA 브랜드 빅 3의 해외 매장은 총 30곳에도 못 미쳤다.


‘동대문과 홈쇼핑 채널, K-마켓의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융합하면 뭔가 나올 것 같기도 하고....’


대한민국의 서울에서만 온갖 패션 분야의 디자이너 2만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일명 ‘동대문 생태계’다.

그곳의 역량을 모아서 부가가치가 높은 SPA 패션 분야에 활용할 수만 있다면.


‘개인 디자이너나 소규모 디자이너팀들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 그들의 창의성과 가온의 자본·생산·유통·마케팅 능력이 결합된 사업모델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류지호는 문득 이전 삶에서 Netube에서 봤던 내용이 떠올랐다.

바로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 Guccio가 도입해서 성공을 거둔 바 있는 일명 ‘그림자위원회(shadow committee)’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였다.

Guccio는 급변하는 패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해 매출이 계속해서 떨어졌는데, 그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마르코 회장 겸 CEO였다.

마르코 회장이 보기에 Guccio가 밀레니얼 세대에게 외면을 받는 것 중에 하나가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봤다.

젊은 고객뿐만 아니라, 회사 내부의 30대 이하 연령대 직원들의 의견을 경영진이 전혀 귀담아 듣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내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을 전격 도입했다.

그것이 바로 밀레니얼 세대라고 불리는 1980~90년대 생으로 구성된 ‘그림자위원회’였다.

임원 회의가 끝이 나면 마르코 회장은 곧바로 그림자 위원회와 똑 같은 안건을 가지고 토론을 했다.

비록 새내기 직원들이지만, 핵심 현안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회장에게 개진했다.

특히 온라인 시장이 커지는 추세에 맞춰 디지털 전략을 마련하는데 그림자 위원회의 의견이 큰 기여를 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의견과 아이디어가 경영에 반영되면서 이전보다 136% 매출 신장을 기록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데이빗에게 관련한 경영기법이 있는지 자문을 구해보라고 하고...’


가온그룹은 그나마 다른 30대 재벌대기업에 비해 꼰대문화가 덜한 편이다.

기업의 중추들이 대체로 60년대 초반 생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직이 비대화되면서 보고와 결재 체계가 길어지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꼭 Guccio가 도입한 방식일 필요는 없다.

비대해진 조직 구조로 인해 경직되고 느려진 의사결정 과정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상관이 없었다.


“다음에 내려오시면 하루 정도 묵었다 마산 어시장에서 떠 온 회라도 드시고 가십시오.”

“회뿐이겠습니까? 소를 한 마리 잡든 돼지를 잡든 합시다.”


류지호는 공장 직원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방문할 필요성을 느꼈다.


✻ ✻ ✻


지난 한 해 가장 많은 기부금 수입을 거둔 사회복지 공익법인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다.

국세청 공익법인 결산공시에 따르면 3,327억 원을 거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1위를 차지했는데, 가온자선재단이 2,189억 원으로 2위를 차지했다.

기업 출연 공익법인이 2위를 차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10위 안에 포함된 기업 출연 공익법인은 가온과 오성 단 두 곳 뿐.

20위권까지 넓혀 봐도 모 금융지주 출연 재단을 제외하고 기업 출연 공익법인은 전멸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이 다울재단이 무려 4위에 랭크되었다는 사실이다.

한 해 동안 무려 610억 원을 모금한 것으로 공시됐다.

그 가운데 400억 원을 류지호가 혼자 기부한 것이지만.

다울재단이 류지호의 가족재단이란 것을 모르는 한국인은 별로 없다.

매해 500억 이상을 모금해 90%를 한 해에 모두 사용한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다울재단은 지난 외환위기 시기에 대전의 한방병원을 지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국 6개 지역 한방병원을 직간접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그러다 올해 3월에 지방의 한 종합병원을 인수했다.

바로 경상북도 경산시의 유일한 종합병원 경산병원이다.

이 병원은 1992년 개원 후 연간 20여만 명의 외래환자들이 이용해 왔다.

2005년에 이사장의 비리 등으로 경영난을 겪어오다 결국 파산 선고를 받았다.


“현행법상 병원 간 M&A는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타 의료법인이 경산병원을 인수하는 것에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 비의료법인 다울이 인수자로 낙점될 수 있었습니다.”


경산병원은 인구 25만 명이 살고 있는 지역의 유일한 종합병원이다.

병원명을 경산다울병원으로 바꾸고, 대대적인 리모델링, 신규 직원 구성 등의 절차를 거쳐 내년 상반기 재개원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중소병원들의 경영난이 심각하다고는 하지만, 규모만 보면 웬만한 대학병원 못지않습니다. 전문적인 경영 컨설팅을 통해 충분히 흑자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울재단의 의료지원팀장이 류지호를 졸졸 따라다니며 열심히 설명했다.


“경산다울병원은 대지 3,400여 평에 지하 2층, 지상 8층 규모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680 병상, 의사 34명, 간호사 160명을 비롯해 물리치료사·임상병리사·행정직 등 4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진료과목은 내과, 신경외과, 외과, 정형외과, 소아청소년과, 피부비뇨기과, 신경과, 안과, 정신과, 치과, 영상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진단검사의학과, 응급의학과, 산업의학과 등입니다.”


경산병원이 파산한 결정적인 이유는 재단 경영진이 병원 수익금을 횡령했기 때문이다.

전임 의료재단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병원이 6개나 되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병원까지 합하면 10여개에 이르렀다.

전임 이사장은 병원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리베이트, 건강보험급여 부당청구 등 다양한 불법 수단을 총동원했다.

2006년 이사장이 해임됐지만, 새로 선임된 법정관리인 또한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새로 온 법정관리인까지 비리를 저지르자, 노조가 장기파업에 돌입했다.

83일간이나 파업이 이어졌다.

의료법인 측에서는 파업기간 동안 일방적으로 병동을 폐쇄했다.

당연히 외래 및 입원환자가 급격하게 줄었다.

매출이 준 것은 물론이고 지역에서 민심도 함께 추락했다.

경산병원은 통합도산법이 개정된 후로 의료법인 중 첫 기업회생을 신청한 곳이란 불명예까지 얻었다.

몇 차례에 걸쳐 M&A 시도가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하다가 최종 파산선고와 함께 매각절차에 착수하게 됐다.

마침내 다울재단에 병원이 넘어가게 됐다.


“재개원시에는 최첨단 의료장비를 도입 및 운영할 계획이며 정확한 진단과 최고의 치료를 위해 진료 과목별로 1~3명씩 모두 30여명의 전문의들이 진료를 맡을 예정입니다. 또한 지역대학 병원에서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세계특허 의료장비... 예를 들어 최신 MRI, 128채널의 3차원 입체초음파 장비, SANYO의 첨단 의료지원장비 등에 대한 도입 계약을 체결할 예정입니다. 최신 기종의 체외충격파 쇄석기,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 촬영 후 실시간 네트워크를 통해 영상을 저장하고 전송하는 디지털 X-선 촬영장비 등도 갖출 계획입니다.”

“지역 내 신뢰도가 상당히 하락했다면서요? 첨단장비 도입만으로 해결이 되겠습니까?”

“부정적인 여론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 보다는 교통편 등 입지, 기존 의사, 경영진, 노조 사이에 뿌리 깊은 불신, 새로 올 병원장이 누구인가 등이 더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불신?”

“병원 경영이 어려웠던 시기에 노조원들이 임금의 70%만 받았던 것과 달리 의사들은 100%를 모두 챙겼다고 합니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와 무능이야 말할 것도 없고. 노조에 빨갱이... 그러니까 민주노총 산하라는 프레임이 씌워져서 지역민들에게 부정적인 편견이 심어져 있습니다.”

“해결책은 뭡니까?”

“의료계의 명망 있는 병원장을 모셔올 예정이고, 고용이 해지된 직원 가운데 불순한 이들을 솎아낼 계획입니다. 의사 가운데 재계약과 관련해 이견을 보이는 이들 역시 과감하게 퇴출하고 새로운 의료진들로 구성할 생각입니다.”


일명 ‘경산병원 정상화와 고용승계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동투쟁본부)’라는 노조단체가 다울재단의 선별고용을 규탄하고 전 직원 고용보장을 촉구하는 농성에 돌입했다.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종합안전진단을 벌이고 있는 병원 입구에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부산지방법원과 인수조건에 고용보장합의서가 있다면서요?”


그 내용 가운데 파산 직전 병원 직원 208명에 대한 전원 고용 보장이 들어가 있다.


- 병원 측이 208명의 고용보장대상자의 고용도 확정하지 않은 채 아예 신규 채용 모집 공고를 내는가 하면, 고용보장대상자 가운데 비조합원 위주로 일부만 선별해 면접을 진행하고 있다!

- 다울재단이 인수조건으로 법원과 체결한 고용보장합의서 조차 이행하지 않는 것은 과잉진료, 부당진료를 근절하고 병원경영의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하는 노동조합을 철저히 배제한 채 개원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공동투쟁본부의 주장이었다.


“노조 대표 한 번 만나봅시다.”

“직접 말씀이십니까?”

“만나면 안 됩니까?”

“굳이.....”

“나도 다울재단 이사회 멤버 아니었던가요?”

“그렇기는 하지만....”

“내가 좀 보잔 다고 전하세요. 난 병원장실에 가 있을 테니.”


20여 분 후.

병원장실에서 류지호와 노조 집행부가 마주했다.


“여러분 입장에서 노조원의 고용승계를 위해 애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나는 그 부분을 존중합니다.”


30분 전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노조 집행부의 기세가 꺾여 있었다.


“그런데... 우선 고용을 약속하기 했지만, 이는 법원을 통한 자산매각 방식에서의 배려일 뿐. 의무는 아닙니다.”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집행부원이 발끈했다.


“비노조원 선별채용을 강행하겠다는 겁니까!”

“이사회는 노조원이든 비노조원이든 구별하지 않습니다.”

“......”

“고용승계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합니다. 다만 매각 과정에서 다울재단의 병원 인수를 반대했던 노조원의 고용승계는 보장할 수 없습니다.”

“보복입니까? 아니면 반재단 노조원들을 걸러내겠다는 겁니까!”

“역지사지해보세요.”


다울재단이 병원 인수에서 마치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지역 신문과 인터뷰하고, 지역 사회 내에서 이간질 하고, 아무 관련도 없는 가온그룹까지 끌어들인 이들이 있었다.

그런 직원들까지 품에 안을 정도로 다울재단은 호구가 아니다.


“노조에 분명히 밝힙니다만. 이 병원을 인수한 다울재단과 가온그룹은 일절 관련이 없어요. 일부 직원들이 가온그룹이 병원을 소유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직원 친인척들을 병원에서 채용해 주길 바라는 모양인데....”


꿀꺽.


대화에 참여한 노조 집행부원 한 명이 침을 삼켰다.

유난히 그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린 것은 노조 집행부만의 착각일까.


“어림없습니다. 경산다울병원의 경영과 복지는 새로운 병원장과 경영진의 손에 달렸습니다. 쓸데없이 가온그룹이나 다울재단 측에 징징거리지 말길 바랍니다.”


가온그룹의 직원복지는 국내 기업 가운데 단연 최고 수준이다.

대표적으로 남녀 육아휴직 같은 부분은 어떤 기업보다 먼저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특히 남녀 직원 공통으로 경력단절(장기 병 치료 및 석·박사학위 취득 목적 휴직, 임신 및 육아) 후 복귀 혹은 재입사 직원에 대한 다양한 지원프로그램까지 마련하고 있을 정도다.


“내가 듣기로 가온그룹이 연관됐다고 자기들끼리 멋대로 오해해서 같이 꿀 좀 빨자고 하는 지역사회 인사들이 많다고 하던데... 그 사람들이 꼭 지역유지만은 아니라지요.”


노조원 일부도 그런 분위기에 부화뇌동하고 있다.


“인수를 반대했던 직원들이 병원에 출근할 경우 기존 직원들의 팀워크를 헤치거나 분란을 초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듣던 것과 다르시군요.”

“......?”

“노동자를 적으로 인식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적도 친구도 아닙니다. 파트너일 뿐. 노동자가 회사를 고를 수 있는 것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마당에 병원 역시 함께 비전을 실현할 파트너를 고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린 끝까지 투쟁할 겁니다.”

“하십시오. 안 말립니다. 표현의 자유 마음껏 행사하십시오.”


그것으로 병원 노조와의 면담이 끝났다.

류지호는 노조의 고용승계 요구가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일부 불온한 노조원까지 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울재단에 병원을 매각하는 것을 극렬히 반대했던 파벌이 있었다.

(주)나래안전의 보고로는 병원과 직원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다울재단이 인수할 경우 그들의 이해관계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일부 노조원이 경산병원에 눈독을 들이던 모 의료법인과 연결점이 있었던 것.

구린 데가 있는 인사까지 떠안을 수는 없었다.

류지호는 경산병원 인수가 불발 되어도 상관없었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의 종합병원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이번이 아니면 다른 병원을 인수해도 된다.

가능하면 인구 100만 급 대도시면 더욱 좋고.

그도 아니면 의대를 가지고 있는 남서대학교를 사들인 후에 대학병원을 새로 설립해도 된다.

어찌 되었든, 의료법인을 갖추게 됨으로써 여흥전문대학교에 이어 4년제 대학 남서대학교 의대 인수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가 있게 되었다.


✻ ✻ ✻


한국의 주요 은행과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기업 구조조정 방식에 대해 류지호는 한심하면서 한편으로 측은하기까지 했다.

오로지 인원감축만을 구조조정의 도깨비방망이처럼 신봉하기 때문이다.

국내외적으로 찾아보면 인력 감축 없이도 괜찮은 구조조정 모델을 제시한 경우가 꽤 많다.

성공사례가 있으면 배워야 하거늘.


“가온모터스 구조조정의 화두는 미래 성장 기반 확보입니다. 무조건적인 감축은 단기처방일 뿐 비전이 될 수 없습니다.”


스페인 출신의 GAON Mobility Corp 회장 겸 가온모터스 CEO 알렉스 미사구에의 취임 일성이었다.

그는 사무실에 앉아서 보고만 받는 CEO가 아니었다.

수시로 현장을 방문하는 타입이다.

언제든 간부들을 배제하고, 현장 근로자들과 직접 대화를 나눴다.

노조에게도 회사 재무상황과 모그룹 투자상황까지 성심성의껏 설명하며 협조를 구했다.

외국인 CEO로서는 이례적으로 3년 간 연봉 동결 선언까지 했다.

흑자경영으로 돌아선 후에 당당하게 성과급을 챙겨가겠다는 호기를 부렸다.


“오너의 의지에 따라서 이미 퇴사한 직원 외에 구조조정 명목으로 인원을 정리할 생각이 없다.”


대신 가혹할 정도의 혁신을 통한 조직 및 생산라인 효율성 제고 작업에 착수했다.


혁신을 통한 흑자 실현(2012년)!

도약(2013년)!

무차입경영(2015년)!


알렉스 미사구에가 제시한 비전이었다.

노사관계, 설비, 제품, 공정, 연구개발 등 7개 부문의 구조조정 방향을 설정하고, 최고경영자가 직접 발로 뛰며 실천을 독려했다.

최고책임자의 위기극복 의지에 사원들이 화답했다.

가장 먼저 사명을 바꿨다.

내부적인 저항이 있었지만, 신임 회장은 밀어붙였다.

망한 것으로 판단되는 차종(액티언, 카이언, 로디우스 등)들을 과감하게 정리했다.

대신 렉스턴 풀체인지, 인기 차종이었던 코란도와 무쏘를 계승하는 신차 라인업, 경SUV(티볼리) 차종 추가, 한국형 픽업트럭 라인업 추가, 유럽 기준을 만족하는 디젤엔진 업그레이드 R&D에 1조 4,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신차 개발을 위해서 PISA의 디자인 센터 본부가 있는 이탈리아 북부에 유럽 디자인센터를, 미국의 Playa Vista에 전기자동차 연구센터와 디자인 센터를, 평택 공장 내 종합기술연구센터를 확대·개편해서 새만금첨단산업 지구로 이전 글로벌 기술협의회를 설립해서 해외 연구센터들과의 교류를 극대화하기로 했다.

5년간 모그룹에서 모두 4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에 노조도 화답했다.

먼저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탈퇴했다.

또한 순환근무 및 미국의 TESLAS 공장 근로자 파견계획안을 받아들였다.

가온모터스는 TESLAS의 지분 4%를 확보해 주주가 되었다.

기술제휴 계약도 체결했다.

TESLAS는 가온모터스에 전기차 기술을 전수하고, 가온모터스는 생산라인 운용, 생산 및 품질 관리 등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기로 했다.

노조가 전향적으로 프리몬트 공장 파견을 합의했다.

가장 중요한 노조와의 합의 사항은 새로운 혼류생산 시스템이었다.

혼류 생산은 한 생산 라인에서 다(多) 차종을 조립하는 것을 일컫는다.

주로 주문은 많고 생산 라인이 한정적일 때, 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동시에 생산하는 방식이다.

가령 생산라인에서 코란도를 몇 대 조립하고 나면 완전 다른 차종이 똑같은 생산라인에서 등장하고, 다시 또 다른 차종이 등장해 조립하는 시스템이다.

아직은 가온모터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시스템이다.

보유하고 있는 차량 모델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가온모터스 평택 공장의 생산능력은 25만대.

공장 가동률은 15만 대를 겨우 턱걸이 하는 것이 현실이다.

경일자동차 그룹처럼 차종이 십여 종을 훌쩍 넘는 것도 아니고.

한 라인에서 최대 5종 이상의 차량을 제조하는 시스템은 그 다지 효율적일 것 같지 않았다.

가온모터스가 혼류 생산 시스템의 차종을 늘리려는 것은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생산성도 크게 높이기 위해서다.

같은 모델의 차량이라도 고객이 원하는 부품을 맞춤형으로 장착할 수 있어 ‘1석 3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에 따라서 점진적으로 스마트 팩토리와 AI가 적용된 물류시스템이 평택 공장에 적용될 계획이다.

기존에는 컨베이어벨트 뒤쪽 수납함에 부품을 쌓아놓고, 근로자가 하나씩 가져다가 조립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작업자 뒤쪽에 별도의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차체와 같은 속도로 관련 부품들이 옮겨지는 시스템을 고안 중이다.

5~7년 안에는 카트 모양의 전기차에 실어 옮기는 방식으로 대체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조립 공장 내 부품을 쌓아둘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작업자가 부품을 잘못 장착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현재는 라인별로 1~3종의 차량을 조립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혼류 시스템이 정착하게 되면 한 라인에서 최대 10종까지도 차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다차종 혼류 생산 방식이 상식에 가까운 제조 방식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의 자동차 회사에는 그 같은 시스템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가 극렬하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경일자동차 노조는 한 라인에서 여러 종류의 차를 생산하면 업무 강도가 높아지고, 생산직 인력 감축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결사반대를 하고 있다.


“이스타나 승합차 모델 부활! 1톤 트럭 재생산!”


류지호가 (주)신진지프를 인수한 후 경영진에게 요구한 사항이다.

그를 위해 트럭과 승합차를 생산할 라인이 다시 필요했다.

이미 두 플랫폼을 러시아와 중국 업체에 팔아먹었기에 새롭게 플랫폼을 설계하고 구성해야만 했다.

거기에.


“가온모터스가 영국의 팬더 권리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칼리스타란 브랜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3년 내에 팬더 디자인을 기반으로 EV 레트로 스포츠카를 개발하세요. 많이 만들 필요 없습니다. 딱 2,000대 한정 생산해서 팔아봅시다.”


류지호가 제안한 레트로 스포츠카는 구 (주)신진지프가 영국의 팬더 웨스트윈드(Panther Westwinds)를 인수해서 작고 예쁘다는 그리스어 ‘칼리스타(Kallista)’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2인승 경량 로드스터의 전기차 버전이다.

칼리스타는 80대도 채 제작되지 않았는데, 전량 수제작으로 이루어졌다.

너무 이른 등장이었을까.

안타깝게도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비운이라면 비운일 수 있는 전설의 차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칼리스타는 구 신진지프 자동차가 만들어낸 그 어떤 차 중에서도 특별한 차량이었다.

류지호는 가온그룹의 자동차 비즈니스 부문에서 Jaguar-Rovers Automotive까지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 김에 영국 밖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정통파 영국식 로드스터를 재해석한 모델로 가온모터스의 첫 전기차 시범 사범을 삼아보기로 했다.


“혹시나 안 팔리면 절반은 내가 삽니다.”


류지호가 구입해서 친구들에게 선물로 줘도 되고, 자신이 공동 구단주로 있는 프로팀들이 우승이라도 하게 된다면 지난번 맨유에 TESLAS 전기차를 선물한 것처럼 해도 된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적다.

류지호가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온갖 사람들이 앞 다투어 살 것이다.

좋은 의도로든 나쁜 의도로든.


“모그룹에서 돈만 넣으면, 우리의 회사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류지호는 죽으려 하면 살 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는 진부한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절박함도 지적하지 않았다.

채권자들이 위기에 처한 기업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진정성을 보이라는 말이다.

즉 인력을 감축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M&A를 한 후에는 가능한 대량해고를 삼갔다.

심지어 미국 기업인 JHO Company조차도 해고를 최소화하고 있다.

기업이 망하는 이유 중에는 노동자의 문제보다 경영진의 무능과 부정이 더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턴어라운드의 성공하기 위해서는 핵심에 집중하고, 내부를 먼저 개혁해야 하며, 망설이지 말고 빠르게 실행하는 것입니다.”


교과서 같은 말이다.

그럼에도 실천하기 무척 어려운 말이다.

위기가 찾아온 근본 원인을 단순하게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혀있을 테니까.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이 CEO의 역할이다.

구성원 전부가 턴어라운드 전략에 동참할 수 있도록 공통 어젠다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또한 외부요인에 대응하기에 앞서 조직 내부의 제도, 문화, 관행, 가치관 등을 먼저 개혁해야 한다.

맞춤형 처방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빠른 결단과 실행력만이 구조조정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습니다. 회생에 성공한 거의 모든 기업들은 대부분 1년 이내에 과감한 턴어라운드 전략을 최우선적으로 결행했어요. 과감해 지세요. 어차피 11만 대 겨우 파는 자동차 회사 아니었습니까? 더 나빠질 것도 없어요. 망설이지도 두려워도 하지 말아요.”


오너의 격려가 자극이라도 되었을까. 가온그룹에 합류하고 단 1년 만에 약간의 판매량이 증가했다.

그에 따라서 적자폭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노조는 명절교통비, 성과급, 상품권, 상여금, 휴가비, 연월차수당, 격려금 등 복지혜택을 자발적으로 대폭 삭감하거나 폐지했다.

회사가 정상화되기까지 분규 없는 임금협상을 선언하기도 했다.

(주)신진지프 자동차는 자산규모 2.5조, 매출 3.5조 기업이었다.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상당히 하락한 것을 물론이고 국내 소비자에게도 외면 받았다.

당장 1조 넘게 투자를 하고 있지만, 풀체인지 모델과 신차 라인업이 출시되려면 몇 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럼에도 기존에 팔리던 차종의 페이스리프트에 가온그룹 로고가 붙으면서 소비자들에게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를 주기 시작했다.

물론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 등.

가야할 길이 구만리였다.

당장은 추락한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과 함께 가온이란 브랜드로 소비자 인식을 전환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그를 위해 해외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를 헤드헤팅하고 있다.

볼프스바겐그룹 브랜드체험관 총책임자, 람보르기니 디자인 개발 주관 디자이너, NASA출신 박사, Horch 등을 비롯해 럭셔리 브랜드를 이끌어온 임원을 공격적으로 영입했다.

외국계 실력자들을 통한 대대적인 체질개선에 나선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을 적극적으로 수혈했다.

그들은 이탈리아와 Playa Vista 디자인 센터에서 지금도 열심히 기존 라인업의 페이스리프트부터 신차 디자인에 매달리고 있다.

(주)신진지프 자동차는 1997년에 DMB AG와 기술 제휴를 맺고 4년간 4,500억 원을 투입해 E클래스(W124) 기반 1세대 체어맨을 만들었다.

2005년에 1만 5천대 판매를 돌파하며 경쟁사 프리미엄 차량 판매를 압도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 시기에도 연간 1만대 판매를 웃돌며 국내 대형세단 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DMB AG와의 기술도입 계약은 일괄이 아닌 차량 판매수익에서 일정 지분을 분배해 주는 방식이었다.

다른 차량 수준의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차량을 더 판매하거나 가격을 올려 수익을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라도 체어맨 브랜드에 대한 방향성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벤츠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게다가 체어맨은 계열사인 프리미엄 세단의 강자 재규어와도 경쟁해야 한다.

몇 년 후에는 경일자동차에서 프리미엄 세단 브랜드를 런칭하게 된다.

국산 브랜드끼리 치열한 경쟁도 벌여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발걸음을 내디딜 필요가 있다.


“가온모터스가 연간 50만대 생산하는 회사로 성장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정통 지프 형태의 코란도를 부활시킬 수도 있습니다.”


류지호는 충분히 고민해볼 문제라고 생각했다.

한국 SUV 명가, 한때 명가, SUV 전문, 한국 SUV의 상징 등.

말로만이 아닌.

실질적으로 정통 SUV 부활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었다.

가온모터스가 저평가되고 있긴 하지만, SUV 분야 특히 디젤차와 4WD에서는 나름 기술력을 가진 자동차 메이커다.

많은 국내 자동차 마니아들이 ‘지프 코란도’ 부활을 바란다.

그 목소리가 실제 수요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또 전 세계적으로 좋은 SUV 모델들이 매년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기도 해서.

섣불리 정통 오프로더를 부활시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부활의 기지개조차 펴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실패라도 한다면 돌아올 데미지도 상당할 것이기에.

그럼에도 망설이다 때를 놓치는 것보다.

저질러보고 실패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 났다고 생각하는 류지호다.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해봅시다, 까짓 거!”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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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 조금만 더 분발해주세요! (3) +4 24.05.10 1,018 54 28쪽
851 조금만 더 분발해주세요! (2) +3 24.05.09 1,025 62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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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 남을 돕되 자랑하지 말자! (2) +5 24.05.06 1,080 71 23쪽
847 남을 돕되 자랑하지 말자! (1) +5 24.05.04 1,137 72 25쪽
846 Légion d’honneur. +3 24.05.03 1,158 64 24쪽
845 남에게 비싸게 파는 것도 비즈니스다! +5 24.05.02 1,124 62 28쪽
844 자기 과시, 거장으로 다가가는 순간... 그 어디쯤. +4 24.05.01 1,118 80 28쪽
843 칸 영화제. (3) +8 24.04.30 1,083 86 26쪽
842 칸 영화제. (2) +4 24.04.30 964 64 26쪽
841 칸 영화제. (1) +3 24.04.29 1,079 73 25쪽
840 자네까지 나서지 않도록 하겠네. (2) +4 24.04.27 1,186 65 27쪽
839 자네까지 나서지 않도록 하겠네. (1) +4 24.04.26 1,196 66 24쪽
838 큰 기대 안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5 24.04.25 1,188 64 24쪽
»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3) +4 24.04.24 1,182 64 28쪽
836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2) +3 24.04.23 1,171 64 25쪽
835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1) +5 24.04.22 1,212 66 23쪽
834 두 배 성장할 겁니다! +4 24.04.20 1,234 68 25쪽
833 불한당(不汗黨). (10) +6 24.04.19 1,174 66 29쪽
832 불한당(不汗黨). (9) +2 24.04.18 1,142 62 26쪽
831 불한당(不汗黨). (8) +7 24.04.17 1,153 7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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