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6.01 09:05
연재수 :
872 회
조회수 :
3,726,527
추천수 :
115,768
글자수 :
9,653,068

작성
24.05.11 09:05
조회
1,190
추천
66
글자
27쪽

조금만 더 분발해주세요!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미국 캘리포니아의 Rancho Palos Verdes 지역에 한국전통공원을 그것도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 궁궐을 재현한다고 하자, 중국에서 난리가 났었다.

동북공정을 주도하고 있는 학자들 중심으로 공사를 중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LA 법원에 공사 금지 가처분 소를 제기했다.

그 동안 동북공정을 종료했다고 중국정부가 공식 발표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동북공정에 참여했던 학자들은 여전히 망동을 부리고 있었던 것.

LA 법원에서 중국 역사학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게다가 LA 법원 입장에서는 동북아시아의 역사 분쟁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미추홀 파크의 설립 취지와 환경훼손 문제가 중요했을 뿐.

정치·경제적으로는 대규모 토목사업으로 지역 경제에 큰 기여를 했으며, 주민 복지차원에서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에 여가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대규모 공간의 조성된다는 점이 중요했을 뿐이다.

결국 중국 역사학자들의 트집은 해프닝으로 금방 사그라졌다.

이 해프닝이 한국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다시 한 번 일본의 역사왜곡 못지않게 중국의 동북공정 역시 잊지 말아야 함을 상기시켰다.


“독일의 통일정은 잘 관리되고 있죠?”

“베를린에 가온그룹의 동유럽 HQ가 있으니까. 수시로 확인하는 모양이네.”

“케냐와 에티오피아에도 우호증진 차원에서 기념 건축물을 선물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요?”

“한국 전통정원은 어떤가?”

“물도 귀하고 먹고 살기 빡빡한 아프리카에 팔자 좋게 전통정원은 좀 그럴 것 같아요.”

“전통건축양식의 서원을 지어서 한국어 학당으로 활용해도 되고. 왜 도산서원이나 뭐 그런 것들 있지 않나.”

“그게 좋겠네요.”


케냐와 에티오피아에서 태권도 인기가 무척 많다는 것이 떠올랐다.


“태권도 클럽도 만들고 한국어, 한류 콘텐츠를 전파하는 거점으로 삼으면 되겠어요.”

“기존에 있던 JHO 아프리카 재단이 교육사업을 전개하고 있지 않나?”

“그쪽은 보건의료와 문맹퇴치가 주력 사업이고요.”

“알겠네. 계획을 세워 보도록 하지.”


비서실장 제니퍼 허드슨이 두 사람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시간 다 되었나 봐요. 가시죠.”


두 사람은 대기하고 있던 세단을 타고 미추홀 파크로 향했다.

수십만 평 대지에 조성된 국내성, 사비성 그리고 각종 한국식 정원과 연못, 성문과 성벽 그리고 누각과 전통양식의 다양한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미추홀 파크 개장식에 참석했다.

슈발츠네거 주지사는 물론이고, 인근 도시의 시장들, 상하원 지역 정치인들, 고위 관료를 비롯해 경찰 및 군 고위직들, UC계열 대학 총장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중역들, 유명 연예인과 영화 관계자들, 지역 언론계 거물들, 대한민국 총영사와 주요 한인단체 수뇌들, 인근 도시의 일반 시민 수백 명이 개장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 있다.


짝짝짝!


이번 개장식에는 미국과 한국의 주요 매스컴뿐만 아니라, 유럽의 언론사들에서도 취재진을 보냈다.

류지호가 설립한 재단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란 것도 있지만, 북미 최대 규모의 아시아 전통공원이라는 화제성도 있었기에.

미국의 모든 주의 식물원과 정원들과 비교해도 보기 드문 규모를 자랑했다.

캘리포니아 주로 좁혀보면, LA카운티 주민들이 자주 찾는 헌팅턴 라이브러리의 규모인 25만 평에 육박할 정도니 그 규모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추후 신라시대의 전통 건축물과 정원이 조성되면 25만 평을 훌쩍 넘는 규모가 된다.

참고로 헌팅턴 라이브러리는 25만 평 부지에 도서관, 12개의 정원, 갤러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빠른 걸음으로 돌아본다면 대략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헌팅턴 라이브러리의 전체 면적 가운데 15만 평 정도를 특색 있는 정원이 차지하고 있는데, 로즈, 셰익스피어 가든, 동백, 정글, 어린이, 일본, 중국 가든 등 12개의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만4천여 종의 각종 식물들이 심어져 있다.

헌팅턴 가든의 자랑거리는 일본정원과 중국정원이 꼽히곤 한다.

특히 헌팅턴 가든의 중국 정원은 중국이 아닌 곳에 조성된 가장 큰 중국정원 중에 하나로 유명했다.

미추홀 파크와 관련해 동북공정 이슈가 해프닝으로 끝이 나자, 중국정부는 헌팅턴 가든의 중국정원에 3개의 건축물을 추가하기로 했고, 4,000평 정도의 부지를 추가로 확보했다.

그래봐야 1만5천 평으로 미추홀 파크 한 구역(5만 평)만도 못했다.

안타깝지만, 헌팅턴 가든에는 한국정원이 없다.

한때 한국정원 건립과 관련해 이야기가 있었다.

한인회와 일부 한인단체들의 엉성한데다 무리한 추진으로 인해 상처만 남았다.

류지호가 LA남부에 대규모 한국전통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하자, 미국의 한인단체들이 추진하던 한국전통정원 조성 프로젝트 대부분이 본의 아니게 좌초되고 말았다.

다만 뉴욕을 중심으로 동부지역에서는 한국전통의 건축물이나 정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예산이 문제였지만.

UCLA 재학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교포 1세대 어르신이 물었다.


“언제까지 모른 척 할 텐가?”


류지호가 웃음으로 얼버무리자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이 대신 대답했다.


“이 사람아.... 거, 사람들이 뻔뻔해도 너무 뻔뻔하잖아. 윌리엄 파커의 저택을 개조하자니. 그게 어디 말 같은 소린가?”

“아휴, 옛말에 오냐오냐 하면 할아버지 수염을 뽑는다고 하더니.... 어째 사람들이 그래. 못난 사람들 하고는 쯧쯧.”

“류 의장이 사람이 좋아서 그렇지... 나 같았으면 주제 파악 못하는 그런 인간들을 그냥 콱!”


파렴치한 동포를 열심히 씹어대던 이들을 향해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시작하려나 보네요.”


둥둥둥!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거대한 성문 앞에서 북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삐리리리~


이어 화려한 색상의 한국 전통의상을 입은 취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명 수문장 교대의식.

1996년에 처음으로 덕수궁 대한문에서 이벤트로 행해졌다.

이어 경복궁에서도 비슷한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

그 수문장 교대의식 행사가 머나먼 이국인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더욱 큰 규모로 재현되었다.

수문장 교대의식이 대한문에서 처음으로 행해졌을 때, 비판을 많이 받았다.

영국, 바티칸 등 유럽 왕실 근위병 교대식을 흉내 내 막연한 상상에만 의존해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그 비판에 많은 이들이 동조할 수밖에 없었는데, 조선시대 수문장 교대의식에 대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기록들은 남아 있다.

광화문 교대식을 주관하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2002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그와 관련한 연구보고서를 냈다.

경국대전을 비롯해서 여러 문헌에서 암호를 받는 법, 문 개폐 시각 등에 대한 기록을 찾아 정리해 발표했다.

여러 역사학자들이 과거 기록들을 샅샅이 뒤져가며 수문장 임명식과 교대의식의 원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광화문과 대한문 교대식은 모델로 삼은 시대가 다르다.

대한문 교대식은 문화가 가장 화려했던 영·정조 시대를 복원한 것이다.

반면에 광화문 교대식은 ‘궁성의 문마다 수문장을 세우고, 수문장패를 만들게 하다'라는 기록이 처음 나오는 조선 초기의 예종시대 의식을 재현했다.

고증 부실에 따른 비판이 크고 외국인 관광객용 이벤트로 시작되었다곤 하지만, 서울의 관광명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고증자료가 하나 둘 쌓이면서 역사적 의미도 점차 갖추어 가고 있고.

그런 수문 교대의식을 더욱 규모를 키워서 미추홀 파크 개장식 기념 공연으로 구성했다.

대한문 수문교대식 보다 인원수를 대폭 늘리고, 의상과 각종 장구에 화려함을 더했다.

수문 교대식과 취타대 연주로는 흥을 돋은 다음에는 무예24 회원들의 무예 시범이 이어졌다.


짝짝짝.



개장 특별 공연은 30분 간 진행됐다.

개장식에 참석한 이들은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다양한 한국의 전통문화 공연에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자 들어가 봅시다!”


드디어 미추홀 파크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미추홀 파크의 매표소와 안내소는 수원화성의 남·북문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 옆으로 성벽 대신 10명이 동시 입장 가능한 정문이 마련되어 있다.

정문을 지나면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잔디밭 중앙으로는 백제의 사비성을 재현해 놓은 궁궐로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수목원, 왼쪽으로는 전통정원으로 직행할 수 있는 길이 나온다.


“오오!”


내외빈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진심이든 아니든, 개장식 참석자 입에서 수시로 감탄사가 나왔다.

미추홀 파크는 한국의 전통 궁궐 건물만 덩그러니 서있는 공원이 아니다.

한국식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일종의 테마파크에 가까웠다.

시대별 왕궁을 잠시 들러보고 기념촬영만 하고 떠나는 공원이 아니라, 한국 전통과 문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2단계 공사가 완료된 시대별 궁궐, 공연시설, 대형 잔디밭, 조경시설, 수목원, 한국식 전통 정원, 호수, 연못과 정자, 레스토랑, 카페테리아, 한국문화 체험관, 기념품 상점 등을 걸어서 돌아보는데 4~5시간이 소요되도록 설계되었고, 자체 교통수단도 마련되어 있다.

가족이나 연인끼리 방문해 잔디밭에서 일광욕이나 휴식을 취해도 된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한복을 입고 파크를 돌아다니며 기념사진을 촬영해도 된다.

고즈넉한 한국식 정원에서 독서를 하거나 사색에 잠겨도 된다.

곳곳에 만들어 놓은 카페테리아와 한국식 전통 찻집에서 차를 즐겨도 된다.

공연장에서는 정기적으로 한국 전통 공연도 진행된다.

무예24기 보존회의 공연부터, 마상무예 시범, 태껸, 아마추어 씨름대회, 사물놀이, 안동하회탈 놀이, 판소리 공연, 농악 등 각종 한국 전통 문화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심지어 한국식 찜질방과 사우나도 있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분기별로 ‘왕의 행차’ 이벤트도 벌여볼 생각이다.

‘예산만 허락한다면‘ 이란 전제가 붙어있지만.

슈발츠네거 주지사가 류지호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은 채 이것저것 물었다.


“운영비를 자네 사비로 모두 충당할 생각이라며?”

“입장료 받아요.”

“5달러라고 들었는데 그걸로 되겠어?”

“충분할 걸요?”

“LA에서 살고 있는 한국계 주민들이 많이 찾을 것 같아서?”

“남가주의 시민들이 부담 없이 와서 쉬다갈 수 있는 휴식처 가운데 하나가 되길 바랄 뿐이에요. 돈 벌기 위해 만든 공원 아닙니다.”

“기부를 했으면 주정부 예산에서 지원받을 수 있을 텐데.”

“제 마음대로 직원을 채용할 수 없잖아요.”

“자네 마음대로?”

“콤프턴과 사우스센트럴의 JHO 청소년센터 출신 대학생들과 한국인 유학생들이 학비를 벌 수 있게 최대한 많이 채용할 계획이에요.”

“주정부도 그렇게 해줄 수 있네만.”

“주정부에 남는 예산이 어디 있어요? 쌓여 있는 부채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잖아요.”


류지호가 정곡을 찌르자 슈발츠네거가 헛기침으로 불편한 심사를 표현했다.

25만 평에 달하는 미추홀 파크의 한 해 운영비는 대략 900만 달러(약 100억 원).

공원 입장료는 평일 성인 5달러, 주말 7달러로 책정했다.

62세 이상과 학생증을 소지한 청소년은 3달러, 5세에서 12세 미만의 어린이는 1달러다.

정비시간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주 6일 오픈할 예정이다.

평일에는 오전 11시에 오픈해서 오후 5시 30분까지 토요일·일요일에는 9시에 오픈해 6시까지 개장하기로 했다.

온라인으로 신청한 방문객에게 한 해서, 매달 한 번 무료입장 및 한국 전통문화 특별체험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이 정도의 테마파크를 5달러에 개방한다는 것은 공짜나 마찬가지지.”


LA 식물원의 입장료보다 저렴했다.

참고로 매년 60만 명 이상의 방문자가 다녀가는 헌팅턴 라이브러리의 평일 성인 입장료는 일인당 20달러, 주말에는 23달러다.


“대신 피크닉을 허용하지 않잖아요.”


때문에 외부에서 먹거리를 준비하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수익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까지 허용하면 파크가 입장객이 버리고 간 온갖 쓰레기로 넘쳐날 것 같아서다.


“남가주 정치인들은 고용창출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던데.....”

“가능한 불우하고 가난한 형편의 시민들에게 일자리 기회를 줄 생각이에요.”

“The Giving Pledge에 참여하는 슈퍼리치들이 자네의 이 같은 모습을 배워야 하는데.”

“그 분들은 그 분들만의 계획이 있으신 거니까요.”


미추홀 파크의 운영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미추홀역사문화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일부 우량주식을 처분하면 몇 십 년 너끈히 운영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매년 전용기 운영비로 500만 달러를 쓰고 있는데, 900만 달러쯤이야... 그냥 전용기 한 대 더 굴린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류지호가 한국말로 중얼거리자 슈발츠네거나 무슨 말이냐는 듯 쳐다봤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급행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사업이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신경 좀 써주세요.“

“걱정 말게.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간소화 하라고 지시해 두었어. 기업이 제일 불편한 것이 절차 지연인데, 공개적으로 이 자리에서 명확하게 약속하겠네.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합의를 본 개발사업에 경우 주정부가 적극 협조하겠네. 만약 실무 단위에서 부당함이나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내게 직접 연락을 해주게. 즉각 조치할 테니까.”


캘리포니아 주의 만성부채와 실업률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슈발츠네거는 마지막까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미국 제3의 초대형 리조트형 테마파크를 텍사스주에 빼앗겼을 때 슈발츠네거를 비롯해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출신 정치인들의 지지율이 상당히 깎였다.

반면에 미추홀 파크도 조성하고 30년 넘게 끌어오던 Playa Vista 지역의 개발까지 진행하면서 지역 경제에 큰 보탬이 되고 있는 류지호에 대한 남가주 지역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특히 해안선의 습지 생태계 보존을 위해 수십 만 평을 주에 기부한 것으로 떼를 쓰듯 반대만 일삼아 오던 환경단체와 일부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잠재워버리기까지 했다.

친환경 스마트 시티를 표방하고 있어서 전 세계 도시들이 주목하고 있기도 하다.


“이 테마파크에 대한 기대가 커. 지역 경제효과는 둘째 치고 앞으로 고용율과 관광객 유입 등을 고려한다면 인근 카운티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야.”

“글쎄요. 캘리포니아 주에는 즐길 곳이 워낙에 많아서.....”

“내 임기가 1년 밖에 남지 않았지만, 자네가 하는 일이라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돕도록 하겠네. 최대한 신속하게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 써 줄게.”


사실 슈발츠네거 주지사는 류지호에게 약간의 빚이 있다.

어쩌면 약점일 수도 있다.

류지호는 가정부와 혼외정사로 사생아를 낳은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라는 충고한 바 있다.

슈발츠네거 주지사는 그와 관련해서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고 있다.

그처럼 사적이든 공적이든, 종종 슈발츠네거 주지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과 충고를 해줬다.

사실 두 사람의 인연은 제법 오래되었다.

류지호가 <터미네이터Ⅱ>에 투자하면서 인연을 맺었으니 20년 지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유독 류지호에게 만큼은 주지사 재임시에 많이 양보하는 슈발츠네거였다.


“내 임기 중에 미추홀 파크가 개장을 할 수 있어 다행이야.”

“가시게요?”

“다음 일정이 있어서.”

“나중에 마리아와 함께 벨에어로 저녁식사 초대할 게요.”

“기다리고 있겠네.”


그렇게 공사가 다망한 이들이 류지호의 배웅을 받으며 먼저 미추홀 파크를 떠났다.

미추홀 파크는 단순한 한국 전통 궁궐을 알리고 소개하는 공원이 아니다.

서부지역의 종합적인 한국문화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공식적으로는 70만, 비공식적으로 120만 명에 이르는 미서부 한인교포들이 이곳을 통해 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2~3세대가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덜 혼란을 겪도록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다.

세계 최고 부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돈을 물 쓰듯이 한다는 지적도 있다.

류지호도 딱히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매년 2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거두고 있다.

영화를 연출하지 않아도 그 정도 수입이 들어온다.

그 돈을 움켜쥐고 있어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미추홀 파크를 조성함으로써 류지호의 명성이 올라가면, 그가 연출하거나 제작하는 영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좋은 이미지를 통해 JHO Company Group에 대한 인식도 좋아질 터.

게다가 미추홀 파크가 폐허가 되지 않는 한 공원의 표지석에 새겨진 류지호의 이름은 오래토록 남을 수 있다.


“누구시라고요?”

“한미동포재단 국장 지미 손....”

“아, 최근에 삥땅치다 걸린 그 한미동포재단이요?”


이름을 밝힌 인사의 얼굴이 벌겋다 못해 목까지 빨개졌다.


“.....”


류지호는 인사를 해온 이와 그의 일행을 철저히 무시했다.

별로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기에.

개장식에 참석한 것 자체도 웃긴 일이다.

초청장을 받았더라도 참석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 있는 사람의 행동인 것을.

류지호가 LA한인회와 그쪽과 연루된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동포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

심지어 남가주 지역의 다른 인종 주민들도 알 정도다.


“동포끼리 서로 도우면서 살아도 모자랄 판에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한인사회를 분열시키는데 앞 장 서도 되는 것인가?”


고령의 노파가 엄한 표정으로 류지호를 꾸짖었다.


“누구십니까?”

“신임 한인회장이네!”

“그래서요?”


류지호의 심드렁한 태도에 칠순이 넘은 한인회장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류지호의 반응이었다.

교포사회에서 겸손함과 예의바름으로 칭찬이 자자한 류지호다.

그런 이가 한참 웃어른에게 보일 태도가 전혀 아니었다.


“나는 알아서 동포들 도우면 잘 살고 있으니까, 굳이 충고 안하셔도 됩니다. 어르신.”


류지호는 신임 한인회장이라는 노파를 매몰차게 외면하고 다른 손님에게 향했다.

신임 한인회장이라는 양반과 그의 측근들만 남아 씩씩거릴 뿐.

누구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LA한인회는 이전부터 문제가 많았다.

특히 30대 회장 선거가 막장의 끝을 보여주었다.

해외동포 사회에서 1962년 설립된 LA한인회가 맏형 격이다.

그런 LA한인회가 지난 5월에 회장 선거를 치루며 부정선거 시비가 크게 붉어졌다.

그로 인해서 교포사회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아휴. LA한인회장 선거가 뭐라고... 그 탓에 회장 선거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한다는 조롱까지 당할 판이야.”


이민 1세대 중에서 진정으로 동포사회에 헌신한 어른들도 많다.

류지호는 지난 LA식물원 한국정원 추진과정에서 보인 한인단체장들의 추태로 그나마 남아있던 정나미가 다 떨어졌다.

류지호가 설립한 자선재단들도 기본도 지키지 못하는 한인단체들과는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교포사회에서 그 일화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안다.

전임 한인회 어른들이 류지호가 나서서 사태를 해결해주면 안 되겠냐고 사정도 해봤다.

류지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1.5세대 대부분이 한인회와 기타 교포단체들에 크게 실망하거나 나쁜 기억만 갖고 LA 카운티를 떠나고 있다.

거듭되는 사건으로 인해 LA 한인회에 대한 이미지는 바닥으로 뚫고 지하까지 떨어졌다.

LA의 교포들은 LA 한인회를 한인 사회의 대표로 인정하지 않은지 오래다.

심지어 LA 한인회라는 단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젊은 세대도 많다.

고인물화 되어서 끼리끼리 다 해먹고 있었으니까.


"한인회? 그냥 할 일 없으면서 자기들이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착각하는 노인네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자리 따먹기 하고 돈 잔치하는 단체 아니었어? 뭔가 커뮤니티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간 몇몇 좋지 못한 사건으로 인해 많은 교포들이 연을 끊었다.

애꿎은 한인교포들이 미국사회에서 망신을 당하기 일쑤고.


“왜 저런 자들이 부쩍 교포사회에서 날뛰는지....”


류지호는 어느 정도 내막을 알고 있다.


“LA한인회장은 규모가 가장 큰 해외동포단체의 장이면서 해외 교포단체를 대표한다는 어떤 상징성까지 있잖아요.”

“한국일보에 나온 기사가 사실이란 말이야?”


2012년 재외국민 참정권 이슈가 해외교포들 사이에서 화제다.

그런 상황에서 미주 지역 한인사회 대표에게 한국의 ‘국회의원’자리가 2~4개 정도는 배정될 거라는 추측성 기사가 나왔다.


“평소 외유 오는 것 말고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던 한국의 정치인들이 뻔질나게 LA에 드나들고 있잖아요. 한인 단체장들이 한국에 자주 들락날락 거린다고도 하고.”


총영사나 대사까지 한인단체장들에게 노골적으로 특정 정당 지지를 부탁할 정도다.

여당을 옹호하면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고 있다.

2009년에 재외국민 참정권이 회복되었다.

해외동포 사회에서 ‘한인회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어왔다.

실제 필리핀 한인회는 현직 한인회장이 한국정치에 대해 중립을 지킨다는 조항을 한인회 회칙에 넣겠다고 공언했다.

한인회가 가진 정치적 영향력에 제동장치를 스스로 알아서 만들어 넣겠다고 한 유럽의 한인회도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해외동포 커뮤니티의 맏형 격인 LA한인회장 선거에서 노골적으로 특정정당과 깊은 연관이 있는 이들이 부정선거를 자행하면서까지 감투를 썼다.

반발이 있을 수밖에.


“쯧쯧. 한인회장이 한국 정치권 쫓아다닐 시간에 미국 정치계와 더욱 밀접하게 관계를 맺어야지.”


본인들이 살고 있는 터전은 미국이다.

당연히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의 처우와 권리 향상을 위해 미국 정부와 긴밀해져야 하는 것이 한인들을 대표한다는 단체가 가야할 길이다.

뒷방 늙은이들끼리 감투싸움하고 저 잘났다 안에서나 큰소리치는 곳으로 전락한지 꽤 오래됐지만.


“그래서 더 문제죠. 관심이 없기 때문에 파행이 계속되니까.”


LA한인회를 보며 류지호가 떠올리는 곳이 있다.

바로 그랜드 벨 어워즈와 그 행사를 주최했던 모 영화인단체다.

너무나 똑같았다.

내분을 겪은 사안이나 패턴 역시 마찬가지다.

감투 그리고 이권.

참정권 이슈로 인해 그 동안 곪았던 것이 터지고 있는 모양인지.

최근 들어서 한인단체들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려왔다.


“한미동포재단이 시끌시끌하지?”


한미동포재단은 LA 한인회관의 관리주체다.

매년 30만 달러에 이르는 한인회관 운영수입을 거두는 재단이다.

그런 단체가 패가 갈려서 내분사태에 돌입했다.


“결국 법정으로 갔나봐요.”


불투명한 회계처리, 이사회 분란, 법정소송, 공금유용 등으로 법정 다툼을 하고 있다.

90년대였다면 류지호가 나섰을 수도 있다.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으니까.

이젠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 시간에 향수병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는 한국 유학생 한 명이라도 더 돌보고, 급작스런 소득감소로 인해 가정불화 등을 극심하게 겪고 있는 교포가정을 돕거나, 마약에 중독된 한인 젊은이들의 재활을 돕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는 일일 테니까.


“자네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뻔뻔하게 이번 행사에 온 이유가 뭐겠어.”

“다 기부금 때문이겠지.”

“우리 류 감독 지지를 얻어야 어렵게 얻은 회장직 해먹는데 힘을 받기도 하고.”


류지호가 인정을 안 한다고 해서 한인회장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포사회에서 존중을 받길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LA 지역의 다른 인종 주민들에게 비웃음을 사지 않으려면 류지호와 척을 져선 안 된다.


“한국인들끼리만 소통하면서 머물면 안 됩니다. 미국 주류사회에 정치적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야 합니다!"


지난 92년 LA폭동 때부터 류지호와 젊은 이민자들이 줄기차게 한인사회에 주장하는 말이었다.

실제로 LA폭동 이후 많은 한인들이 크게 깨달았다.

그래서 정치에 입문하거나 주류사회에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꽤나 노력을 기울였다.

일부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폭동을 일으킨 빈민가 흑인들이 왜 하필 백인 부자동네가 아니라 한인타운에 분풀이를 했을까.

왜 인종차별 문제를 소수민족인 한국계가 뒤집어 써야 했을까.

만약에 한국계 이민자들이 캘리포니아주의 정치·경제·행정 분야에 폭넓게 진출해서 발언권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폭동을 예방했거나 불가피하게 벌어졌어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했을 수도 있다.

친목은 매주 한 번씩만 한인교회에 모여 다지면 된다.

남는 시간에는 다양한 인종들과 어울리며 미국 주류사회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나.

대대손손 미국에서 살아갈 후손들을 위해서.

그래야 다시는 LA폭동 같은 비극도 없고.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장식에 참석해 준 VIP들에게 류지호가 일일이 감사를 전했다.

시민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인구 천만의 LA 카운티와 300만의 오렌지카운티는 일일생활권이라고 봐야했다.

오렌지카운티의 애너하임에는 유명한 미키마우스랜드가 있다.

버뱅크에는 유니벌스 스튜디오도 있다.

남가주는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기에 미추홀 파크도 새로운 관광코스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오렌지카운티에만 대략 9만 명의 한인교포들이 거주하고 있다.

저렴한 입장료로 인해 많은 한인들이 찾아주길 기대하고 있다.

미추홀파크가 그들의 자부심이 되길 기원했다.

그래서 외국에 지어진 전통공원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조성했다.

앞으로 그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이 한다고 정부를 비난하는 언론사설도 등장하고, 그와 함께 류지호를 칭송하는 기사도 무수히 쏟아졌다.

미국 언론은 세계 최고 부자의 기행 정도로 보는 편이다.

중국과 일본 언론은 짧게 단신으로 처리했다.


“자식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여담으로 미추홀 파크 개장 몇 년 간은 그렇게 많은 이들이 방문하진 않는다.

연간 50만 명 정도.

한류가 본격적으로 북미에 상륙한 시점에는 방문객 수가 말 그대로 폭증하게 된다.

한국의 아이돌 슈퍼밴드가 미국에 상륙한 후로는 190만 명 방문기록을 찍기도 하면서 LA 남부의 명소로 자리 잡는다.


작가의말

평안한 주말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소유 기업 & 연출작품 정리(2000년 기준) +8 23.02.16 3,447 0 -
공지 인사말 & 연재시간 +35 21.12.21 60,979 0 -
872 매뉴얼이 다가 아니다! NEW +3 6시간 전 456 34 27쪽
871 Academy Awards! (2) +7 24.05.31 747 51 27쪽
870 Academy Awards! (1) +3 24.05.30 815 53 21쪽
869 아무렴 어때. +1 24.05.29 882 55 25쪽
868 나와 시리즈 하나 더 합시다! (2) +3 24.05.28 900 59 24쪽
867 나와 시리즈 하나 더 합시다! (1) +7 24.05.27 980 59 23쪽
866 호랑이 한 마리가 늑대 떼를 이길 수 없다고? (5) +6 24.05.25 1,023 64 23쪽
865 호랑이 한 마리가 늑대 떼를 이길 수 없다고? (4) +2 24.05.24 1,027 54 24쪽
864 호랑이 한 마리가 늑대 떼를 이길 수 없다고? (3) +7 24.05.23 1,027 57 26쪽
863 호랑이 한 마리가 늑대 떼를 이길 수 없다고? (2) +2 24.05.22 1,093 65 27쪽
862 호랑이 한 마리가 늑대 떼를 이길 수 없다고? (1) +5 24.05.21 1,094 57 24쪽
861 태권도 영화는 안 만들어? +3 24.05.20 1,070 62 26쪽
860 아예 다른 드라마잖아! (3) +5 24.05.18 1,121 73 26쪽
859 아예 다른 드라마잖아! (2) +3 24.05.18 973 59 22쪽
858 아예 다른 드라마잖아! (1) +2 24.05.17 1,120 64 26쪽
857 애쓰면 뭐해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2) +5 24.05.16 1,153 70 25쪽
856 애쓰면 뭐해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1) +9 24.05.15 1,157 70 26쪽
855 앞으로 한 눈 좀 팔아볼까? +4 24.05.14 1,178 65 24쪽
854 축복 받았어. 이런 오너라니.... +7 24.05.13 1,224 78 27쪽
» 조금만 더 분발해주세요! (4) +4 24.05.11 1,191 66 27쪽
852 조금만 더 분발해주세요! (3) +5 24.05.10 1,184 56 28쪽
851 조금만 더 분발해주세요! (2) +3 24.05.09 1,169 63 22쪽
850 조금만 더 분발해주세요! (1) +5 24.05.08 1,163 73 23쪽
849 누가 주인이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5 24.05.07 1,208 71 26쪽
848 남을 돕되 자랑하지 말자! (2) +5 24.05.06 1,209 71 23쪽
847 남을 돕되 자랑하지 말자! (1) +7 24.05.04 1,260 73 25쪽
846 Légion d’honneur. +4 24.05.03 1,278 64 24쪽
845 남에게 비싸게 파는 것도 비즈니스다! +6 24.05.02 1,247 63 2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