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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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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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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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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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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왠지 매우 유명한 사람들일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Don Simpson/Leon Bruckheimer Films 말입니다.”

“아, 레온 부룩하이머!”


<탑건>이 언급될 때 어쩌면 그 이름이 나올 거라고 예상은 했다.

돈 심슨과 레온 부룩하이머는 1983년 <플래시댄스>부터 파트너로서 많은 영화를 함께 제작했다.

최고의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어서인지 돈 심슨은 무척 거만했다.


‘레온 부룩하이머의 파트너라.....’


패러마운틴과 5년 계약을 했으나 현재는 둘의 사이가 나쁘다.

그렇다면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와 제휴를 논의하기 위해 왔을 가능성이 있다.


“트라이-스텔라와 일을 해볼 생각일까요?”

“미팅이 끝나면 메타보이 CEO에게 물어보십시오.”

“패러마운틴과 계약이 되어있는데, 우리와 영화를 함께 할 수 있어요?”

“제휴영화사의 경우 독점계약이 아닐 경우 딜 할 때 우선권을 갖는 것뿐입니다. 제휴영화사가 다른 곳에 투자와 배급을 맡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와 제휴를 체결한 영화사들도 마찬가지라는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른 곳으로 자신들의 영화를 가져가지 않을 겁니다.”

“왜죠?”

“우리는 빅6에 비해 배급수수료를 적게 가져가니까요.”


류지호는 바로 알아들었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배급능력은 빅6와 비교해 아직 멀었다.

그렇다고 해서 배급수수료를 싸게 해 줄 이유는 없다.

일반적으로 할리우드 배급수수료는 7~12% 사이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는 배급수수료에서 최대 10%까지 계약하고 있다.

다만 6,000만 달러 이상의 블록버스터만 12%에 계약하고 있다.


“5년 이라.....”


류지호는 기억을 헤집었다.

레온 부룩하이머의 영화는 주로 LOG 산하 터치스톤 픽처스(Touchstone Pictures)가 배급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패러마운틴과 계약을 파기하고 LOG와 계약했다는 말이 된다.


“샘! 심슨씨와 친해요?”

“함께 일한 적은 없지만, 예전에 Don이 주최한 파티에 자주 참석했습니다. 메타보이 CEO와 더 깊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요?”


류지호는 머리를 굴렸다.

돈 심슨·레온 부룩하이머 필름과 10년짜리 장기계약을 맺게 되면 2000년대 초반까지 블록버스터 라인업을 매년 한 편씩 갖출 수 있다.

레온 브룩하이머의 별명이 ‘미스터 블록버스터’였으니까.

류지호가 도널드 제이콥을 급하게 호출했다.


“레온 부룩하이머와 패러마운틴과의 계약문제 일체에 대해 조사해 주세요.”

“언제까지 알아봐야 합니까?”

“가능한 빠른 시간에 알아봐 주면 좋겠어요.”


도널드 제이콥이 류지호의 지시에 따라 정보를 수집하는 사이.

Don Simpson/Leon Bruckheimer Films이 LOG 컴퍼니와 계약을 앞두고 있다는 소문이 할리우드에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 ❉ ❉


웨스트우드의 GARAM Ventures 사무실.

도널드 제이콥이 그 간 조사한 사항을 류지호에게 보고했다.


“레온 브룩하이머는 영화 제작을 총괄하며 ‘Mr. outside’로, 심슨은 투자와 네트워크 관리로 인해 ‘Mr. inside’로 불리고 있습니다."


프로덕션은 브룩하이머가 책임지고, 살림살이는 심슨이 챙긴다는 의미다.


“유대계 가정 출생인 브룩하이머는 애리조나 대학에서 심리학 학위를 받았고, 그곳에서 제타 베타 타우 클럽 회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로 알려졌습니다.”

“그런 부분은 넘어가고, 현재 상황만 요약해서 말해보세요.”


류지호는 그들의 개인사는 관심이 없었다.

영입대상자도 아닐뿐더러 깊은 인연을 맺을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초에 패러마운티과 5년 투자·배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5년간 프로젝트에 총 3억 달러 내외의 투자를 보장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계시다시피 <분노의 질주>가 6,000만 달러의 예산을 쓰고, 1억 6천만 달러의 매출을 거뒀습니다. 부가시장까지 포함해 결코 실패가 아님에도 패러마운틴은 공개적으로 두 사람을 비난했습니다.”

“도대체 왜 비난한 겁니까?”

“6,000만 달러를 쓰고도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는 이유에서입니다. 지금까지 두 사람의 성과가 과대포장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실정입니다.”

“두 사람은 그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패러마운틴이 기획부터 출시까지 지나치게 서둘렀다고 항변했습니다. 영화에 대한 지나친 낙관적인 태도로 자신들이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였다는 겁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네요.”


영화계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가 잘되면 다 내 덕이다.

안 되면 파트너의 무능 혹은 배급사의 마케팅과 지원이 미비해서 그랬다는 주장.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일도 자주 있는 일이다.

물론 언론에서 이를 부추기기도 한다.

싸움구경 만큼 재밌는 것도 없으니까.


“패러마운틴과의 계약은 완전히 파기된 거랍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제휴 파트너를 찾고 있는 거군요?”

“현재까지 LOG, 콜롬비아스, 트라이-스텔라 세 곳과 만났습니다.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상대를 떠본 것으로 분석됩니다.”

“트라이-스텔라가 끼어있다는 걸 영광으로 알아야 할까요?”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건 아니다.

그저 메이저 스튜디오 다음에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위치했다는 것에 묘한 기분이 들어서 그렇다.

빅6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는 여전히 모든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인수할 당시 암담했던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를 떠올리면 현재 모습은 절로 입가가 씰룩댄다.


“5년 간 3억 달러.....!”


솔직히 독립 프로덕션과의 제휴 계약 규모에 놀랐다.

얼마 안 가서 ‘미스터 블록버스터‘라고 불리게 될 레온 브룩하이머이긴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도 빅6가 아니면 해 줄 수 없는 계약이다.


“두 사람은 대단한 야망가로 분석됩니다. 매년 한 편씩 대작영화를 제작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연 트라이-스텔라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도널드 제이콥이 우려를 드러냈다.


“그렇죠. 트라이-스텔라 자체 대작영화도 있으니까.”


올해부터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는 한 달에 한편씩 개봉하고 있다.

여름과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두 편 정도 개봉할 계획이다.

앞으로 라인업은 더 늘어날 것이다.

메이저 스튜디오처럼 매달 두 편 이상을 개봉해야 할지 모른다.

블록버스터는 무조건 2,000개 이상 스크린에서 광역개봉해야 한다.

그래야 관객몰이에 유리하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배급 영화끼리 스크린을 양보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솔직히 초대박 영화는 두 세편 밖에 없고 말이야.’


레온 브룩하이머는 워낙 블록버스터의 대명사로 알려져서 그렇지 실속을 들여다보면 전 세계 5억 달러 이상 영화는 많지 않았다.

대표적인 영화가 <아마겟돈>과 <캐리비안 해적 시리즈> 정도다.

그가 제작한 영화들 거의 대부분 흥행에 성공하기는 하겠지만, 비용 대비 수익률을 따지고 보면 실속에서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 시대를 풍미한 풍운아임에는 틀림없다.

감독 중심의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프로듀서 중심으로 바꿔놓는 최선두에 있었고, 현대 블록버스터의 영화공식을 확립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음.”


류지호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 고민에 들어갔다.

과연 레온 브룩하이머의 영화들을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로 가져와야 할지.

마침 94년까지 라인업은 갖춰져 있지만, 이후로는 백지 상태다.


‘제휴영화사, 독립 프로듀서들, 쏟아져 들어오는 시나리오들... 내가 아쉬울 건 없지.’


현금 흐름의 지대한 역할을 하는 핵심 흥행 라인업 텐트폴 영화(Tentpole movie) 두 편.

<나 홀로 집에> 같은 저예산 대박 작품 한두 개.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지금의 두 배 규모가 된다한들, 저 정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90년대는 너끈히 안정적으로 돌릴 수 있다.

우려되는 것은 단 하나다.

자신의 개입으로 영화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다른 작가가 글을 쓰는 일이 벌어지거나, 감독이 바뀌거나, 배우가 달라지고, 제작비가 넉넉해지거나 줄어들고, 배급 전략이 달라진다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자신 할 수 없다.


‘세상에 날로 먹는 게 없다고 하더니.’


원유선물 거래와 대중문화 흥행산업이 다른 점이다.

분석과 예측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다고 골치를 싸맬 필요는 없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건 별로 없으니까.

돈만 풍족하다면 더 뛰어난 작가, 더 유능한 감독, 더 유명한 스타를 기용해 영화를 제작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무조건 본전치기는 한다.

그것이 할리우드 영화산업이다.

류지호는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상념을 마무리했다.


“보스.”

“아, 미안해요.”


류지호가 상념에서 깨어난 걸 확인한 도널드 제이콥이 입을 열었다.


“비즈니스와는 상관없는 조사내용이지만 한 가지 참고할 게 있습니다.”

“사적인 부분이군요?”

“심슨은 코카인 중독자입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다.

할리우드의 많은 사람들이 술, 마약, 섹스에 빠져있다.

정점으로 올라갈수록 그것들에 의지하는 경향이 더욱 짙다.

성공에 대한 욕망, 실패에 대한 두려움, 대중의 환호에서 느끼는 쾌감.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었다더라가 아주 자연스러운 동네가 할리우드다.

부와 명예, 대중으로부터 받는 경외에 찬사.

그것들을 대체할 만한 자극은 술, 섹스 그리고 마약 밖에 없다.


“중독이라면 얼마나 심하다고 하던가요?”

“80년대부터 손을 댔다고 하는데, 사용량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코카인 중독 때문인지 몰라도 간혹 감정상 이상한 기복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재활치료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없고요?”

“친구들이 계속해서 충고하고 있지만, 심슨은 당장 그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뭐가 아쉬워서 마약에 손을 대는지....”

“어설퍼서 그렇습니다. 최고정점에 올라가면 더 이상 그런 것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맞는 말이에요. 트라이-스텔라 CEO인 Moe만 하더라도 실패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지요. 언제든지 재기할 수 있으니까. 그의 커리어와 능력을 스스로 어필하지 않아도 남들이 다 알고 있으니까 아등바등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 겁니다. 자신이 전부 이룬 것이 아니더라도 때로는 자신의 공적처럼 냄새를 피울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밀한 이야기를 모릅니다. 알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스도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몸을 사리는 걸로 보이죠?"

“보스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지금까지 이룬 성과들에 다른 자들이 이름을 올릴 겁니다.”

“상관없어요.”


공식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시점을 대학 졸업 후 영화감독 입봉 시점으로 잡고 있다.

아시아에서 온 청년의 성공스토리는 좋은 기사거리다.

찬사도 받겠지만, 그에 반하는 공격도 많이 받을 터.

아직은 그런 공격에 대응할 맷집이 충분치 않았다.


“뉴욕에 있을 때도 느꼈지만 막상 할리우드에 들어오고 보니 유대계가 할리우드의 꼭대기를 다 차지하고 있더군요. 미국에 안 그런 분야가 얼마나 되겠냐만, 할리우드는 유대계 영향력이 유독 심하더군요.”


당장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모리스 메타보이를 비롯해 여러 임원이 유대계이거나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이다.

대표적인 유대인 감독 스티븐 아들러는 자신의 영화 주요배역에 유대인 배우를 자주 캐스팅 한다.

단역배우에 지나지 않았던 해럴드 포드를 <인디아나 존스>에 캐스팅해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만든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할리우드 역사가 8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유대인의 파워는 막강했다.

미국에서 안 그런 분야를 찾기가 더 힘들긴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할리우드 권력도 개편이 되겠죠. 소닉이 들어온 것처럼 비유대계 자본으로 새판이 짜질 것 같아요. 물론 저변에 깔려있는 유대계의 권력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전처럼 유대인들끼리 똘똘 뭉쳐서 다 해먹지는 못할 거라고 봐요.“


도널드 제이콥이 즉각 류지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동의합니다. 보스.”


이미 콜롬비아스는 소닉에, 유니벌스는 마쓰시타에, 팍스는 언론재벌 로버트 폭스에, 워너브로스는 거대 언론 기업 타임에 인수합병되었다.

V&Acom은 패러마운틴 인수를 위해 물밑에서 협상을 벌이고 있다.

LOG 컴퍼니 역시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 여러 통로로 인수할 기업들을 물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만 잘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우리는 메이저에서 훅 하고 불면 입바람에 날아가 버릴 정도로 연약할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조사업무를 재조정하는 것이 어때요?”

“업계동향에 주력하는 걸로 말입니까?”

“방금 전에 말한 것처럼 거대한 자본의 메이저 인수합병과 빅6의 개편이 있을 것 같아요.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치부하기에는 자꾸 신경이 쓰이네요.”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이 움직이면 그에 따라 여러 가지에서 변화가 생길 것은 분명합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중요합니다.”

“조사부 업무는 데본과 논의해서 재조정해보세요.”

‘알겠습니다. 심슨/브룩하이머 필름은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습니까?“

“간을 다 봤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하겠죠.”

“보스의 포지션은 어떻게 잡을 생각입니까?”

“나로서는 그들의 영화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어요.”

“알겠습니다.”


류지호는 문득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레온 브룩하이머가 LOG 컴퍼니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과연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탄생할 수 있을까.

어쩌면 실사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게 될지도 몰랐다.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손을 대면서 전혀 다른 영화가 탄생할지도 모르고.


❉ ❉ ❉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마치 폐부 깊숙한 곳까지 꿰뚫어보려는 것 같은 시선.

탁한 파란색의 눈동자에는 능구렁이가 들어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오만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친절했다.

말투에도 공손함이 묻어있다.

류지호가 상상하던 걸 송두리째 뒤집어 버린 중년 남자.

그 당사자는 다름 아닌 레온 브룩하이머다.


“여기 이 청년은 트라이-스텔라와 무슨 관계입니까?”


모리스 메타보이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최대 주주.”


비상장 기업의 최대주주는 곧 오너와 같은 말로도 쓰인다.

브룩하이머와 심슨이 혀를 내둘렀다.

이 바닥에서 소문은 엄청 빨리 돈다.

중요한 소문을 못 들은 사람은 무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곳이 할리우드다.

두 사람은 실질적인 오너가 젊다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다만 이 정도로 어릴 줄은 몰랐다.

류지호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반응이다.

따라서 놀라는 두 사람을 향해 특별한 반응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


레온 브룩하이머가 류지호를 가만히 관찰했다.

몸가짐이나 행동에서 딱히 품격이 높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뉴욕의 상류층이 주로 구사하는 약간 재수 없는 어휘와 문장, 단어를 쓰고 있다.

게다가 어린 나이임에도 닳고 닳은 자신들의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마주대하는 패기가 있어 보인다는 거다.


“아직은 햇병아리 수준입니다.”


정중하면서도 당당했다.

영화판 괴물들의 소굴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인정할 만했다.

특히나 레온 브룩하이머의 눈이 빛났다.


“이 친구는 미다스의 손이라네. 그가 트라이-스텔라 프로젝트 네 편에 그린라이트를 켰어. 그리고 세 편의 성적이 모두 좋았고.”


모리스 메타보이가 은근슬쩍 류지호를 띄웠다.


“4편이지요.”


류지호가 차분하게 말을 정정해 주었다.


“지금 극장에 걸려있는 <터미네이터Ⅱ>를 빼먹으셨어요.”

“그렇다는군.”


몇 천만 달러 버는 수준이 아니다.

편 당 최소 1억 달러 수익을 거뒀다.

돈 심슨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미안한데, 혹시 어떤 영화들이었는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작년 연말부터 우리가 개봉해서 박스오피스 2억 달러 이상을 거둔 영화들이라네.”

“그 안에 <늑대와 춤을>도 포함 됩니까?”

“당연하지. 이제 고작 20살이라는 거야. 괴물이라고 지칭하지 않으면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심슨과 브룩하이머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늑대와 춤을>의 흥행성공과 아카데미 수상이 한동안 화제였다.

게다가 슈퍼스타가 나오지 않는 영화들로 일궈낸 성공이다.

자신들처럼 노련함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온 어린 친구가 할 법한 배팅은 아니다.

같은 조건으로 시작해서 2년 만에 네 편의 영화를 연속해서 성공할 수 있을지 자신들도 자신 없었다.


“이 친구는 영화에 있어서 남다른 혜안을 가지고 있는 어엿한 비즈니스맨이야. 장담하건데 내년의 트라이-스텔라는 올해와 또 다를 걸세. 왜? 여전히 우리가 준비하는 영화 라인업이 만만치 않거든. 그 가운데 여기 이 행운을 물러오는 친구가 선택한 영화가 다섯 편이 포함되어 있기고 하고.”


류지호가 모리스 메타보이를 돌아봤다.

눈으로 왜 자신을 비행기 태우냐고 물었다.


찡긋.


모리스 메타보이가 능청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캐머론의 영화도 이 청년이 그린라이트를 켰습니까?”

“당연하지.”


돈 심슨이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말했다.


“9,000만 달러짜리 영화라니.....”

“확신이 서면 망설이지 않는다네. 독립영화를 찍는 고언형제에게 1,000만 달러를 선뜻 질러버릴 위인이 이 친구 말고 또 누가 있겠나?”


두 사람은 고언형제의 영화는 안중에도 없다.

대신 망설이지 않는다는 말에 주목했다.


“......그렇군요. 혹시 G&P와는 여전히 좋은 관계입니까?”

“당연하지.”


돈 심슨이 은근히 류지호를 의식했다.

이때다 싶어 류지호가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뉴욕의 Garam Invest와 G&P는 동반자입니다. 그 관계는 결코 쉽게 깨지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설혹 약간의 의견충돌이 있더라고 서로에게 탓을 돌리지 않습니다. 저와 Moe의 관계도 마찬가집니다. 그렇죠?”

“그렇고말고! 하하하.”


모리스 메타보이가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까지 키울 생각인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정확하게 질문을 해주시겠습니까?”


류지호는 브룩하이머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해 되물었다.


“현재 자네 소유 투자회사를 이끌고 있는 매튜 그레이엄은 한 때 G&P에서 기업사냥으로 악명이 높았지.”


영화사를 키워서 팔아먹을 것 아니냐는 물음이다.


“계속 해서 황금알을 낳을 텐데, 거위가 토실토실하다고 잡아먹거나 팔겠습니까?”

“할리우드 일부에서 Garam이라는 곳이 Silver Screen Partners 같이 트라이-스텔라의 투자펀드 운영회사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네.”


Silver Screen Partners는 영화투자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특수목적 금융합작회사다.

1980년 중반에는 이곳 펀드에서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영화의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현재는 LOG 컴퍼니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위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아마 G&P의 부자펀드 일부가 트라이-스텔라 영화에 투자되는 것 때문에 그런 소문이 도는 모양입니다만. Garam은 G&P의 페이퍼컴퍼니도 특수목적 법인도 아닙니다. Garam Invest의 다양한 투자업무 가운데 영화펀드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군.”

“나는 영웅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남을 도와주고도 얻는 것 하나 없이 계속해서 자신을 희생하죠. 배트맨을 무척 좋아하지만 그처럼 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 않다는 걸 돌려서 말했다.

못 알아들을 인물은 이 자리에 없었다.


“푸하핫! 그거 맞는 말이로군!”


모리스 메타보이 사장의 맞장구에 일행이 웃음을 터트렸다.


“개인적으로 두 분이 영화를 다루는 방식이 좋습니다. 남이 이룬 것을 부러워하고 목표로 삼을망정, 그걸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지요. 그런 것에 심력을 소모하지 않고, 항상 재미있는 걸 추구하죠. 영화 만드는 재미 말입니다.”

“재미라... 오랜 만에 듣는 말이야.”


돈 심슨이 낮게 되뇌었다.

눈앞에 청년이 언젠가부터 재미를 잃고 그저 성공만 쫒다가 마약 중독의 빠진 자신의 처지를 꼬집는 것만 같았다.


픽.


심슨의 입가에 씁쓸함이 스쳤다가 금방 사라져버렸다.

후회하지 않는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중독자가 되어가고 있지만.


“....음.”


반면에 레온 브룩하이머는 아버지가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떠올렸다.

아버지처럼 뻔하고 지루한 삶을 살지 말라던.

아버지의 그 말을 가슴에 담고, 지금까지 영화판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다.


“전적으로 동의해.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이룩해야 재밌지. 누군가 해주는 건 너무 심심하잖아. 그래서야 인생이 무슨 재미가 있어? 터지고 박살나고 때론 죽을 만큼 아파봐야 죽을 때, ‘아~ 재밌었다’ 하는 거지. 내가 원하는 삶이 바로 그런 것이야.”


모리스 메타보이 사장이 다시 한 번 큰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핫! 미치도록 무섭구만, 자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는 법이지.”


레온 브룩하이머는 류지호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외모는 영락없는 애송이인데 거물들과 논단 말이지? 자세히 조사해 봐야겠는 걸.’


류지호가 숨기고 싶어 하는 내용까지도 말이다.

직접 몇 마디 나눠보니 알 것 같다.

결코 류지호는 G&P의 할리우드 투자를 위해 내세운 얼굴마담이 아니다.

대주주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오너 행세를 하는 것 같다.

할리우드 거물 프로듀서인 모리스 메타보이와 충분히 교감하며 의사결정 과정에도 참여하는 것 같다.

아시아인들은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 잘만 꼬드기면 통 크게 지갑을 열 수도 있다.

<늑대와 춤을>, <터미네이터Ⅱ>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파트너가 될 날을 위해 친분을 다져놓을 필요가 있다.


“내가 태어난 곳의 속담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영화가 흥행을 해도 배급사가 다 챙기고 제작사는 상대적으로 적게 가져가죠. 그들의 마음에 들기도 너무 어렵고.”


투자와 대외 활동을 책임지는 돈 심슨이 말을 받았다.


”맞아. 메이저는 의사결정이 너무 느려 터져. 조건도 많고.”

“트라이-스텔라는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합니다. 공동 창업자도 없고, 주주명부도 심플합니다. 주요 임원 숫자도 특수부대 분대 수준이죠.”


모리스 메타보이 사장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물었다.


“이보게. 나는 왜 빼? 나는 얼굴마담이라는 이야기인가?”

“Moe가 손님을 접대하면 일주일 안에 가게가 망할 겁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얼굴마담이라는 표현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있다.


하하하.


모두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화제가 돌아갔다.

류지호는 속으로 아쉬워했다.


‘내가 치고나가려니까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려버렸어.’


떡 본 김에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원래는 안면만 트는 정도에서 멈추려고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낚이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말고.

류지호는 호의를 품은 두 사람에게 떡밥을 던져볼 생각이었다.

그것을 모리스 메타보이가 농담 한 마디로 끊어버렸다.

모리스 메타보이가 비록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에 호인이라고 하지만, 성급하게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아니다.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법도 없다.

게다가 충분한 정보를 수집한 후에 미팅을 하고 있을 터.

류지호가 나서서 일을 망칠 수도 있다.


‘일단은 이정도로 만족할까?’


자신에 대해 흥미를 유발시킨 것만으로도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봐도 된다.

자신이 두 사람에 대해 조사한 것처럼 똑같이 자신을 조사할 것이다.

특별히 감출 것도 없다.

자신과 G&P의 돈독한 관계를 두 사람이 자세히 알게 될 터.

그때는 두 사람이 먼저 접근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다 먹으면 체해. 아니, 역사대로 흘러가지 않을지도 몰라.’


류지호는 두 사람이 제작할 영화에 대한 미련을 털어냈다.

선점할 영화나 판권은 아직도 널리고 널렸다.

굳이 레온 부룩하이머라는 이름값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욕심을 덜어낸 류지호가 한결 여유로워진 태도로 두 사람을 상대했다.


씨익.


모리스 메타보이가 남몰래 입가를 씰룩거렸다.


‘똑똑한 녀석.....’


작가의말

한 주 잘 마무리하시고 즐겁게 주말을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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