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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무 님의 서재입니다.

한국 헌터 강복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찐돈
작품등록일 :
2020.11.11 17:40
최근연재일 :
2020.12.02 19:0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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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5
추천수 :
107
글자수 :
124,967

작성
20.11.1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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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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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4화

DUMMY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는 건 누구에겐 꿈에 그리는 일일지 몰라도 강복에겐 아니었다.

기대에 부흥해야 한다는 부담감. 실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마저 포기한다면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 상황이 그를 가장 힘들게 했다.


“후우.”


강복은 집으로 가는 내내 오늘 있던 일을 곱씹었다.

모욕감.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 느끼게 될 감정.

하지만 강복은 달랐다. 이미 이런 일은 숱하게 경험해 봤기 때문이었다.


“그래. 무엇보다 살았다는 게 중요하지.”


힘이 없는 사람의 비애는 질릴 대로 겪어 봤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문제.

그런 면에서 강복은 수긍이 빠른 편이었다.


“강해질 수만 있다면 이런 고민도 필요 없을 텐데...”


강복도 성장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숱한 논문들을 살펴봤고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서 미국에도 가 봤다. 혹시나 미국 던전을 돌면 다를까 싶어서 였는데...

결과는 참혹.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고 오히려 쓸데없는 던전 잡지식만 늘었다.


“근데 그게 도움이 될 줄이야.”


설마하니 저번 달에 읽었던 <던전 마나의 고유 성질> 논문이 여기서 유용할 줄이야.

강복은 두 팔로 어깨를 감싸 닭살이 돋는 것을 막았다.


“이제 곧 겨울이구나.”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강복이 서둘러 발걸음을 빨리하자 묘한 감각이 그를 멈춰 세웠다.

이 느낌은 강복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아니, 헌터라면 응당 알아야 할 힘.


“마나?”


순간 강복은 곧바로 몸을 던졌다.

후웅!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귀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단순한 마나가 아니다. 이건 공격할 때 나오는 마나다.

강복은 살짝 찢어진 귓등을 움켜잡으며 뒤를 돌아봤다.


“...어?”


그의 시야 너머로 후줄근한 넝마를 걸친 꼬마가 있었다.

강복은 당황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설마하니 어린 꼬마 아이가 마나를 쓸 수 있을 줄은.

놀라움도 잠시.

갑작스러운 상황을 납득하기도 전에 강복은 다시 몸을 던져야 했다.


“까르르!”


정체불명의 꼬마 아이는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손가락을 튕기기 시작했다.

엄지에 걸린 검지가 앞으로 튕길 때마다 자그마한 마나가 강복을 향해 쏘아졌다.


“우아앗!”


강복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피하지 못할 속도는 아니었지만 그 위력은 대충 가늠이 됐다. 아마 저걸 정통으로 맞는다면 강복이라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강복은 필사적으로 꼬마 아이가 쏘는 마나를 피했다.


“까르르! 까르르!”


그러다 갑자기 꼬마가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아이는 가는 내내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강복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기를 잡아 보라는 식의 숨바꼭질처럼.

평소의 강복이라면 그냥 무시하고 떠났을지도 몰랐지만 오늘은 어째선지 열이 바짝 올랐다.

아닌 척해도 오늘 있었던 일이 그에겐 꽤 큰 스트레스였기 때문일 것이다.

강복이 달려들자 꼬마는 더욱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까르르!”

“우앗! 요놈이!”


어린 녀석이 마나를 쓰는 것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그 응용력이 강복을 놀라게 했다.

자신이 최연소로 각성을 했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마나를 세심하게 조절하진 못했다.

호기심.

강복의 얼굴에는 설마 하는 희망의 빛이 새어 나왔다.

어쩌면.

꼬마 아이는 한눈에 봐도 외국인은 아니었다. 황색 피부에 동글동글한 이목구비.

한국인이 분명했다.


‘설마 나 같은 불량이 아닌, 진짜 한국 각성자일지도 모른다!’


강복은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번뜩임에 눈을 빛내며 꼬마 아이를 쫓았다.

물론 목숨을 걸고 쫓아야 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으앗! 이 자식, 왤케 센 거야?!”

“까르르!”

“웃지 마!”


괜히 자신을 비웃는 것 같자 강복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강복을 골리며 깊은 숲 속으로 향했다.

그렇게 잡힐 듯 말 듯한 숨바꼭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했다.

강복은 험준한 산을 뛰어다니면서 결국 발걸음을 멈추었다. 가파르게 차오른 숨 탓에 머리가 핑 돌았다.


“허억!”


터져 나오는 숨을 내뱉으며 강복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얼마를 뛰었는지 몰랐다. 더 이상은 무리라고 판단한 몸이 사방에서 비명을 질렀다.

설마하니 E급 헌터의 체력을 한계까지 몰 줄이야.

그래서 더더욱 저 꼬마 아이의 정체가 궁금했다.


‘갑자기 잠잠하네?’


한참을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던 강복은 비로소 꼬마 아이가 사라졌음을 눈치챘다. 아까까지 날아오던 마나도 온데간데없었고, 해는 이미 저물어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각성자 능력 덕에 간신히 근처는 분별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고립됐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심지어 알지도 못하는 산 속.

스마트 통신 장비인 홀로렌즈를 건드려 보아도 신호는 먹통이어서 위치 파악도 되지 않았다.

스슥.

그때 풀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복은 자연스럽게 꼬마 아이가 왔다고 생각하곤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다 했더니...”

“헬로우.”


그러나 풀을 헤치고 나타난 자는 강복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키를 가진 푸른 눈의 외국인이었다.

오늘 만났던 조사관, 브래드였다.


“헤, 헬로?”


강복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일단 인사를 받아 주었다. 어색한 공기가 잠시간 흐르던 중, 강복의 눈이 부릅떠졌다.

키잉!

몇 미터는 떨어져 있던 브래드가 한순간에 지척에 다가왔다. 동시에 그는 검을 뽑아 정확히 강복의 목을 노렸다.


“하앗!”


하마터면 목이 달아날 뻔한 상황.

강복은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다. 이런 외진 곳에서 의외의 인물이 나타난 건 그만큼 경계가 들기 마련이었기에 강복은 이미 몸을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그대로 공격이 들어오니 바로 반응할 수가 있었다.


“와이?!”


그래도 의아한 것은 의아한 것이다. 강복은 어째서 그가 자신을 공격하는지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브래드도 그런 강복의 눈빛을 읽었는지 주머니를 들쳐 쉬이 강복이 보기 편하게 흔들었다.

그곳에는 파란 코어 하나가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는 표정.

브래드의 눈에 이채가 서린 것은 그때였다.

쐐액!

귀를 찢는 바람 소리와 함께 브래드의 몸이 부웅 날았다.

강복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장 검을 빼들었다.

채책!

칼과 칼이 맞부딪히는 소리.

헌데 금속음이 맑게 퍼지기보단 어딘가 한 곳이걸린 듯한 탁한 소리가 났다. 강복은 바로 그 이유를 알아챘다.


‘검이...!’


들고 있던 검에 금이 간 것을 확인한 강복은 속으로 탄식했다.

안 그래도 신체적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무기마저 잃는다면?

강복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결말을 애써 떨치고 흙바닥을 뒹굴었다.


“헤이. 와덜유 두잉?”


브래드가 대충 검을 휘적거리면서 강복을 향해 물었다. 대충 뭐 하는 거냐는 질문.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강복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그 자리에서 고발할 걸 그랬나.’


강복은 코어 분실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잠깐 후회했다.

그도 조사관이 코어를 훔쳤다는 건 던전 확인이 끝나고 다시 밖으로 나갈 때쯤에야 깨달았다.

재생성 된 코볼트 하나.

문제는 그 코볼트가 강복이 말했던 것처럼 던전 마나로 인한 코볼트가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건 분명 일반적인 코볼트 시체였어.’


다만 소환 시기가 전에 있던 몬스터들과 달랐다는 게 차이였다.

던전을 완전히 공략하지 않아도 외부로 출입이 가능하다는 F급 던전의 맹점을 이용한, 기만 행위였던 것이다.


‘분명 조사관이 확인차 들어갈 때쯤에 나타난 놈이겠지.’


허나 후회한들 어쩌랴.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고 무슨 방법을 써도 수습은 되지 않으리라.

저걸 고발한다고 해도 아니라고 우기면 강복으로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러면 남은 건?

조사관의 체면도 지켜 주면서 그들이 납득할 만한 다른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밖에.


‘그것도 이젠 무용지물이 됐지만.’


강복이 하필이면 간과한 사실 하나.

그건 조사관들의 변덕스러운 성격.

이따금 그냥 자기 기분대로 막 나가는 외국 헌터가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우월주의자.

헌터 세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인종이었다.


“퍽킹 옐로우 몽키! 컴온!”


브래드가 양손으로 두 눈을 옆으로 찢으며 소리쳤다.


‘미친놈.’


저 조사관은 특별히 우월주의에 심취해 있는 놈인 것 같았다.

강복이 바닥에 침을 퉤 뱉고는 검을 부러뜨렸다. 떨어진 파편이 돌에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브래드는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사적으로 한국인은 깡으로 버텨 왔다.”


포기할 건 과감히 포기하되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진 않는다.

의지의 한국인.

안 될 걸 알아도 너 죽고 나 죽자는 마인드로 한 방 먹여주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항상 생각해 온 강복은 매일 깡을 다짐하며 잠에 들곤 했다.

1일 1깡.

그 힘을 지금 실현할 차례다.


* * *


...졌다.

허무하리만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강복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두 팔이 잘리고 체력은 한계에 달해 서 있기도 힘들었다.

강복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만 빳빳이 들고 있는 게 최선이었다.

브래드가 킬킬거리며 강복 앞에 섰다.


“헤이, 던?”


고작 이것뿐이냐는 느낌의 입꼬리를 보고 강복은 입을 꽉 깨물었다. 턱이 빠질 정도로 힘을 주던 강복의 입가에선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브래드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후로도 브래드는 무언가 강복에게 말을 걸어 왔지만 강복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브래드는 매우 안타깝다는 듯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그러다가 퍼뜩 어떤 것을 떠올리곤 강복에게 보란 듯이 몸짓을 크게 움직였다.


“!”


그가 취한 행동은 강복이 했었던 쏘리 자세.

강복과 달리 두 다리를 곧게 펴고 상체만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그때 일을 재연하는 것이 분명했다.

강복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충혈된 눈은 금방이라도 빠질 듯 바르르 떨렸다.

브래드는 더더욱 과장해서 당시를 따라했다. 그의 웃음소리가 산 전체를 울렸다.


“오우. 벋 데어맂 노 앎...”


한참을 휘적거리던 브래드가 강복의 팔이 있던 부분을 가리키며 눈썹을 씰룩거렸다.

넌 이제 팔이 없으니 어떡하냐는 식의 조롱 같았다.

브래드는 천천히 강복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뵹, 쉰, 슈에, 키.”


발음은 어눌했지만 강복은 똑똑히 이해했다.

참는 건 거기까지였다.

비록 두 팔이 없을지언정 그에겐 아직 두 다리가 남아 있다.

강복은 추진력을 얻기 위해 꿇었던 무릎을 강하게 차 올렸다. 그대로 강복의 몸이 직선으로 쏘아졌다.


“왇떠?!”


브래드도 이는 예상치 못했는지 평소보다 반응이 늦었다.

그리고 결국 강복의 정수리가 브래드의 턱을 제대로 강타했다.


“뻑!”


E급이 D급 상대에게 먹인 공격이라 큰 상처는 주지 못했겠지만 브래드에겐 꽤나 굴욕적인 일격이었다.

브래드는 잇따라 욕을 내뱉으며 살짝 배어나온 피를 바닥에 뱉었다.

강복이 씨익 웃으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정확히 가운데 발가락만 쏙 튀어나왔다.


“뻑큐. 뻑큐.”

“...!”


브래드는 순식간에 검을 뽑아 휘둘렀다.

엄청난 속도의 공격이었지만 강복은 어째선지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는 착각이 들었다.


‘아, 결국 이렇게 죽는 구나.’


그동안 생고생을 깡으로 버텨 가며 포기하지 않았던 삶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자 강복은 왠지 모를 시원함을 느꼈다.

가슴 한 구석이 뻥 하고 뚫린 상쾌함.

그 상태를 잠시 만끽하던 강복은 감았던 눈을 살짝 떴다.


“까르르.”


그의 시야에 꼬마 아이가 잠깐 보였다.

이내 강복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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