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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714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9.02 01:34
조회
128
추천
0
글자
10쪽

제 3 부 천명 (44)

DUMMY

-5-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앞으로 곧 너에게 일어날

중요한 일들이다.


그 일을 맞닥뜨렸을 때,

네가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라고 생각해도 된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궁의 부름을 받아

그곳에 들어갔을 때


반드시

여러 번 사양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용상에 오르라고

조정대신들이

모두 나서서 청하더라도

계속 사양하며

겁먹은 모습을 보여라.


중전께서

직접 나서서 청하실 때까지

너는 사양해야만 한다.


그들에게 착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어라.


그래야 첫 단추가 잘 끼워지고,

너를 더 우습게보고

방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네.”


아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부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아무리 양자결연의 형식을

갖춘다 해도,


정통성이 약한 너의 입지를

조정의 모두가 흔들려고 할 것이다.


아직 혼례도 올리지 않은

너의 입장 상,


중전께서 수렴청정을 하시며

너의 배우자를 고르고


그 일을 통해

차기의 권세가들을 조정하시겠지.


물론 그 반대일수도 있다.


권세가들이 중전마마를 흔들어

자기 잇속을 채우려할 수도 있겠지.”


“.......”


“너의 반려가 될 사람을

고르는 것부터가


그들의 힘을 과시하고

그들의 세력을 끌어 모으는 일이 된다.


너와 같은 방계 출신이

그 자리에 오른 선례가

아예 없는 이상,


그들은 너를 매우 쉽게 보고

쉽게 흔들려 할 것이다.


그 때는,

그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어라.


서로 죽일 듯이 물어뜯게 만들어라.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거죽이 벗겨지고

이빨이 빠질 것이다.”


“네.”


아들의 표정과 대답에서

단단한 의지가 느껴지자,

부인은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말했다.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누구의 편도 들지 말라는 것이다.


너의 가장 중요한 힘은,

인사(人事)를 결정하는 것이다.


때로는

파격적인 등용을,


때로는

무섭도록 잔인한 처벌을 내려야한다.


그동안 계속 그래왔듯이 그들은,


잇속을 맞춰 파당을 짓고,


예전의 사례들을 들추어내고,


공맹의 도를 내세워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너를 압박할 것이다.”


“.......”


“설령 그들의 청을 들어주더라도

어렵고 간절할 때 마지못해 들어주고,


혹시라도 내쳐지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그들에게 각인시켜라.


그들이 예상치 못한 인사를 펼치고

정국의 주도권을 계속 네가 잡으려면


가장 중요한 능력이

사람을 보는 눈이고,

반박할 수 있는 너만의 논리다.


그들에게 설득되거나

지지 않을 명분이 되는 것이니

반드시 명심하여야 한다.”


“네. 어머니.”


거기까지 얘기한 부인은

아들의 손을 꼭 잡으며

잠시 침묵을 지켰다.


마치 자신의 생각과 결심이

자식의 심신으로

녹아들길 바라는 것처럼,


그녀는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마당의 꽃 하나가 흔들리며

꽃잎 하나가 떨어져

하늘로 날아올랐다.






-6-


“사람을 보는 눈...

즉, 인사의 원칙은 아주 단순하단다.


절대 어렵지 않아.


오직 딱 하나만 알면 된다.


남들이 뭐라 하던

너에게 가장 좋도록,


그저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되는 거야.


세상의 명분이니 질서니,

태평성대니 치국이니 하는

허울만 좋은 말 같은 건

다 필요 없다.


그들이 지겹도록 떠들어대는

선왕의 고사니

성군의 길이니 하는

헛소리들도 다 무시해라.”


“.......”


“네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아주 잠깐이라도

자기 잇속 때문에

너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자들이다.


사람이라는 존재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고,


그저 너에게 필요한 부분만

필요할 때 빼서 쓰면 된다.


그럴 때를 위해 필요한 것이

정보와 공부다.


정보에 관한 것은,

내가 따로 준비해 놓은 것이 있으니,


넌 평상시엔 공부에 힘써라.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열심히 써라.


많이 알고 쓸수록

그들이 너를

더 어려워하고 두려워할 테니.”


“네. 명심하겠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절대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자신이 평상시에 생각해 왔던

왕의 처세술에 관해

아들에게 전한 그녀는

다시 침묵을 지켰다.


세상에서 얘기하는

‘왕도(王道)’와는 아주 많이 다른

그녀만의 왕도였지만,


그것이 그녀가

어미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 유용한 방법이었다.


한 번 길게 숨을 고르고

그녀가 마지막 당부의 말을 전했다.


“나마저 네 곁을 떠나면,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아무도 남지 않겠지.


그것이 너무 가슴 아프구나.


하지만 어쩌겠니.

그게 너의 운명인 것을...


용상에 앉은 자는,

힘을 얻은 대가로

항상 외로운 법이란다.


꼭 명심해라.


모든 일을 판단하는 기준은,

너의 안위다.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 없다.”


그녀의 자상한 말에

갑자기 소년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도록

아무리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한다 해도,


어차피 열여섯 소년이었다.


그녀가 떠나면

자기 혼자 오롯이

세상 속에 홀로 남는다는 것이,


소년은 많이 두렵고 외로웠다.


아들의 눈물을

굳은 표정으로 닦아주면서

그녀가 냉정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오늘만 용서하마.


앞으로 남들 앞에서는

절대 이런 모습을 보이지마라.”


“...네...어머니...”


“이제 좀 소소한 얘기를 해주마.


내가 만든,

네 곁에 남을 사람들에 관한 얘기다.”


어머니의 말투가

다시 자상하게 바뀌자,

소년이 흐느낌을 그치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애쓰는

아들의 모습이 대견한 듯,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을 꺼냈다.


“네 아버지도 세상에 안 계신 지금

나마저 세상을 떠나면,


어차피 우리 집안에 관해서는

그들의 눈이 멀어질 것이다.


그건 아주 다행이지.


그래도 혹시 몰라 당부하자면,


너희 외숙들 중에

큰 외숙인 창서삼촌은

되도록 멀리 하여라.


그릇은 간장종지보다 작은데

욕심은 하늘만큼 큰

용렬(庸劣)한 사람이다.


네 형들이야 어차피

알아서 잘 처신할 수밖에 없는 위치지만,


네 큰 외숙은

반드시 너에게 기대어

권세를 누리고 싶어 할 것이니

꼭 경계하렴.”


“네, 알겠습니다.”


“둘째 외숙인 창수삼촌은,


무인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우직하고 미련한 사람이니

크게 걱정할 것 없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네 곁에 남겨두렴.


권세에 관해 큰 욕심도 없으니

지금의 위치에 계속 있도록

놔두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 놓은,


너를 위해 음지에서 일할 사람들을

누군가 관리도 해야 하는데

창수삼촌이 그 일에 적격이다.”


“네, 어머니.”


“어떤 사람에 관해

판단하기가 쉽지 않거나,


어떤 사람을

네 곁에서 떨궈내야 할 때


그 자에 대한

다채로운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 때가 오면

그들을 움직여


이면에 감춰진 진실들을 찾아내고


너에게 가장 좋은 방향으로

일을 처리하렴.”


“.......”


“그들은 네 명령이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들이니

잘 써먹도록 하렴.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좋은 먹이만 제때 주면 되니까...


그런 음지의 인간들을 다룰 땐

하나만 명심하면 된단다.


일을 잘하면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많이 주고,


일을 잘못하면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때리고.


알겠지?”


“네.”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이라는 말에

소년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그 말이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더욱 무서웠다.


그런 아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7-


“이제 어느 순간이 오면,


정신없이 바쁘고 힘든 날이

너에게 다가올 거다.


그때가 지나

어느 정도 숨을 돌리면


둘째 외숙이

내가 남긴 서책을 가지고

너를 찾아갈 거야.


지금 그걸

내가 너에게

직접 전해주지 않는 것은,


혹시라도

너의 마음에 동요가 생길까봐서다...


너에 대한 어미의 마지막 사랑이자

충고라고 생각하고


나중에 용상에 앉아 천천히,

때때로 읽어보렴.


이 나라의 주인이 되더라도

이 어미를 잊지 말아달라는...


내 마지막 소원이란다.”


부인의 마지막 말에

소년은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유언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열여섯 소년은

어미의 몸에 기대어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죄송해요...

또 울어서 죄송해요...


죄송해요. 어머니...”


소년의 탄식은

안타깝게 방안에 스며들었다.


부인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열하는 막내아들을,


부인은 아까처럼

차갑게 제지하지 않았다.


그녀의 두 눈에서도

굵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손으로 아들의 등을 토닥이며


나머지 한손으론

아들의 머리를

자상하게 쓰다듬어주었다.


아들의 슬픔을 가슴으로 받아내며

병상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나,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참으며

결코 소리만큼은 내지 않았다.


소리 없는 그녀의 흐느낌이

아들의 서글픈 오열과 섞여가며

방안의 공기를 무겁게 데웠다.


그때 마치 그들을 달래주듯,


마당에 머물고 있던 시원한 봄바람이

열려진 문을 건너 방안으로 들어왔다.


바람의 쓰다듬을 받으며,

그들의 슬픔은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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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제 3 부 천명 (47) 21.09.09 12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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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제 3 부 천명 (45) 21.09.04 127 1 7쪽
» 제 3 부 천명 (44) 21.09.02 129 0 10쪽
101 제 3 부 천명 (43) 21.08.31 128 0 7쪽
100 제 3 부 천명 (42) 21.08.28 132 0 8쪽
99 제 3 부 천명 (41) 21.08.26 136 0 10쪽
98 제 3 부 천명 (40) 21.08.24 137 1 8쪽
97 제 3 부 천명 (39) 21.08.21 138 1 8쪽
96 제 3 부 천명 (38) 21.08.19 140 1 8쪽
95 제 3 부 천명 (37) 21.08.17 157 0 9쪽
94 제 3 부 천명 (36) 21.08.14 145 0 10쪽
93 제 3 부 천명 (35) +1 21.08.12 149 1 8쪽
92 제 3 부 천명 (34) 21.08.10 145 0 8쪽
91 제 3 부 천명 (33) 21.08.07 144 0 9쪽
90 제 3 부 천명 (32) 21.08.05 147 0 8쪽
89 제 3 부 천명 (31) 21.08.03 151 0 8쪽
88 제 3 부 천명 (30) 21.07.31 145 0 8쪽
87 제 3 부 천명 (29) 21.07.29 151 0 8쪽
86 제 3 부 천명 (28) 21.07.27 155 0 8쪽
85 제 3 부 천명 (27) 21.07.24 150 0 6쪽
84 제 3 부 천명 (26) 21.07.22 143 0 7쪽
83 제 3 부 천명 (25) 21.07.20 144 0 6쪽
82 제 3 부 천명 (24) 21.07.17 144 0 10쪽
81 제 3 부 천명 (23) 21.07.15 147 0 8쪽
80 제 3 부 천명 (22) 21.07.13 159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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