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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715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7.27 05:23
조회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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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제 3 부 천명 (28)

DUMMY

제4장 근심


-1-


해금강의 삼일포(三日浦)를 향해

바삐 걷던 구대성의 눈에

사선봉(四仙峯)의 절경이 들어왔다.


관동팔경 중 제일이라는

총석정 인근의 경치가 보이자,


구대성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길게 심호흡을 하며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와 동행하던 세 명의 조장 중

정민철이

재빨리 그의 옆으로 다가와

다소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르신,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정민철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구대성이 고개를 돌려

자상한 미소를 보이며

안심시키듯 말했다.


“아니, 불편한 곳 없네.


일 년 만에 이 절경을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워서

잠시 걸음을 멈췄을 뿐이야.


작년에 저 정자에서

한 노사장과

해질녘에 술 한 잔 하던

생각이 나서...”


“아...예. 다행입니다. 어르신.”


평상시 같으면

최소 일주일 이상 걸릴 거리를

‘급박한 사정’으로 인해

나흘 만에 주파한 그들의 다리는,

사실 많이 피로했다.


나흘 전,

목단설의 연락소에 기별을 전하고

단출한 행장을 꾸려

한양을 떠났던 그들은

끼니도 제대로 챙겨먹지 않고

걸음을 서둘렀다.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않아

피로감이 많이 누적된 다리는

무척이나 무거웠으나,


일행 중 가장 연장자이자

명령권자인 구대성이

도통 쉬려고 하질 않는 바람에

조장 셋 중 누구도

속도를 늦추자고

말을 꺼낼 수 없었던 것이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송진우가

앞으로 나서 구대성에게 말했다.


“약속장소인 삼일포는

바로 지척입니다.


일 년 만의 풍경이니

정자에서 잠시 쉬시지요.”


“그러시지요. 어르신.


아까부터

물도 한 모금 안 드셨습니다.

족히 한 시진은 넘으셨어요.”


장종훈도

물이 담긴 대나무 통을

구대성에게 내밀며

한 마디 거들었다.


구대성이

수통을 받아 얼른 목을 축인 후,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닐세.


마음이 무거워서야 어디

경치나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겠는가.


얼른 일부터 보세.


상의 여부에 따라 어쩌면,

이곳에 오래 머물러야 할지도 모르네.


풍경은 그때 가서

금강산 식구들하고 같이

천천히 감상해도 늦지 않으이.”


“...네. 알겠습니다.”


정민철이

구대성의 의향에 따라

다시 앞으로 나섰다.


구대성이 씩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구먼.

나 때문에 괜히 자네들까지...”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어르신.”


구대성의 말을 막으며

송진우가 답한 후

얼른 걸음을 내딛었다.


장종훈도

그 뒤를 따라

다시 걷기 시작했다.


구대성은

그들과 발맞추어

다시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들이 약속시간에 맞춰

삼일포에 도착했을 무렵,


분명히 대낮의 시간임에도

안개가 자욱했다.


어젯밤에 꽤나 큰 비가 내려서인지,

안개로 뒤덮인 호수의 풍경은

음산하고 적막했다.


거센 바람까진 아니었지만,

제법 날카로운 바람이

시커먼 물살을

땅으로 연이어 밀어냈다.


조그마한 나루터에서

안개에 휩싸인 호수를 바라보며,


자신들을 마중 나올 배를 기다리는

구대성의 마음은

무척이나 조급하고 착잡했다.


기다린 지 일각쯤 되었을까.


안개를 뚫고

자그마한 조각배 하나가 나타났다.


배 위에는

세 명의 사내가 타고 있었다.


그 중에 가장 큰 체구의 사내가

노를 젓고 있었고,


나머지 둘은

바람에 부풀어 오른 돛을

바르게 조정하기 위해

열심히 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얼마 후,


작은 돛단배는

무사히 그들의 앞에 도착해

나루터에 멈춰 섰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날씨가 매끄럽지 않아서

좀 늦었습니다.


오래 기다리셨는지요.”


배에서 급히 뛰어내린

탄탄한 체구의 잘생긴 청년이

구대성에게 깊이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그의 뒤를 따라

나머지 두 명의 사내도 뭍에 올라

구대성에게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아닐세.

우리도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일각쯤 되었나?”


“아...그러셨군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렸어야 하는데...”


“금강산의 조장 세 분이

이렇게 모두 나와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신경 쓰지 말게.


그런 것보다 얼른 출발하세.

한 동지께 상의드릴 일이 아주 많아.”


“예. 알겠습니다. 배에 오르시지요.”


청년이

구대성의 일행을 배로 안내했다.


구대성이 배에 오르고

그 뒤를 이어 지리산의 세 조장이

배로 향할 때,


청년이 그들을 향해

다시 한 번 반갑게 인사를 했다.


“세 분을

이렇게 한 자리에서 뵙는 것이

삼 년 만인가요?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사형들.”


청년의 살가운 인사를 받은 셋이

반가운 미소로 화답하며

인사를 전했다.


“우리 막내 사제는

볼 때마다

얼굴이 더 잘 생겨지는 것 같구먼.


제수씨도 건강하시지?”


장종훈이 다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작년에 평양에서 만났을 때 보다

살이 좀 빠진 듯하네.


어디 다치거나 한 건 아니지?”


송진우가 자상하게 인사를 전했다.


“스승님은, 강녕하신가?”


정민철이 짧게 스승의 안부를 챙겼다.


동시에 쏟아진 세 사형들의 질문에

어떤 것부터 답해야할지

고민하던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네, 안식구도 잘 있습니다.

사형들 오신다고 한껏 들떠있고요.


요즘 수련시간을 좀 늘렸더니

제가 살이 좀 빠지긴 했습니다.


그리고 스승님, 아니

노사장 어르신도 강녕하십니다.”


한꺼번에 세 개의 질문에 답하는

청년의 모습이 살짝 우스웠는지,

지리산의 세 조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노잡이 사내가

장종훈에게 크게 소리쳤다.


“장가야,

수다는 그만 떨고 얼른 타기나 해라.


어르신 기다리신다. 이놈아.”


사내의 채근에

장종훈이 배에 올라타며 대꾸했다.


“이 무식한 이가 놈이 미쳤나.


버릇없이 어디다 대고 호통이야?

오랜만에 한 번 맞아볼래?”


“하하,

장가 네놈이야 말로

오랫동안 임자를 못 만나서

겁을 상실했구나.


좋다. 이따 한 번 붙자.


뭐로 할래? 씨름? 수박?

아니면

저번에 네놈이 세 번 내리 진 팔씨름?”


“이놈이...그땐 내가 고뿔에 걸려서...”


입으로는 이놈저놈 하며

서로 으르렁거리지만,

필시 아주 친한 듯 보이는

두 사내의 과격한 농지거리를

옆으로 흘려들으며


송진우가

남은 한 명의 사내에게

반갑게 인사를 전했다.


그들이 ‘사제’라 부르던 청년과 함께

돛을 조정하던,

부드러운 인상에

넓은 등을 가진 사내였다.


“정말 오랜만이오. 김 동지.

그간 잘 지내셨소?”


“마지막으로 본 것이

족히 삼 년은 됐지요?


이따 맛있게 술 한 잔 합시다. 송 동지.”


서로 안부 인사를 마친 사내들이

모두 배에 오르고,

바람을 받은 돛단배가

서서히 물길을 타고 움직였다.


정민철이 ‘사제’라 불렀던,

탄탄한 체구의 미남 청년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류 사제, 한양의 소식은 들었는가?”


“네.


박자흥이 이끄는 북대 패거리...

이름이 흑협(黑蛱)이었던가요?


그놈들 때려잡으셨다는 얘긴

들었습니다.


아무튼

그 검은 나비인지 뭔지 하던 놈들은

저희들도 언젠가는 밟아줄 참이었는데,


지리산 동지들이 알아서 해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뭐.”


“스승님은 별 말씀 없으시고?”


“예.


그런데 갑자기

지리산 어르신께서

급히 상의하실 것이 있다고,


사형들까지 다 데리고 오신다고

기별을 전하셨으니...


오늘 아침까지 계속,

무척이나 사정을 궁금해 하셨습니다.”


“그래...그렇겠지.”


“뭐, 큰일이야 있겠습니까.


나랏님조차 해결 못하는

조선팔도 골치 아픈 일들도,

어르신들께서 나서시면

다 해결되지 않습니까.


저야 어르신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

어디 머리 아플 것이 있겠습니까.


오늘도 그냥 좋기만 합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사형들도 다 뵙고.”


그렇게 여섯 조장의 다양한 대화를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침묵을 지키고 있던 구대성의 눈에

바위섬의 윤곽이 들어왔다.


삼일포의 한 가운데에 떠있는

네 개의 조그만 섬들 중에

가장 큰 와우섬에서,


목단설의 노사장 한용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가 천천히 안개를 가르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마치 그들의 행적을 지워주듯,

두터운 안개가

섬으로 향하는 배의 모습을

순식간에 감춰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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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제 3 부 천명 (44) 21.09.02 129 0 10쪽
101 제 3 부 천명 (43) 21.08.31 128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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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제 3 부 천명 (39) 21.08.21 138 1 8쪽
96 제 3 부 천명 (38) 21.08.19 140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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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제 3 부 천명 (36) 21.08.14 145 0 10쪽
93 제 3 부 천명 (35) +1 21.08.12 149 1 8쪽
92 제 3 부 천명 (34) 21.08.10 145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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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제 3 부 천명 (30) 21.07.31 145 0 8쪽
87 제 3 부 천명 (29) 21.07.29 151 0 8쪽
» 제 3 부 천명 (28) 21.07.27 156 0 8쪽
85 제 3 부 천명 (27) 21.07.24 150 0 6쪽
84 제 3 부 천명 (26) 21.07.22 143 0 7쪽
83 제 3 부 천명 (25) 21.07.20 144 0 6쪽
82 제 3 부 천명 (24) 21.07.17 144 0 10쪽
81 제 3 부 천명 (23) 21.07.15 14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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