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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712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8.14 04:49
조회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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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10쪽

제 3 부 천명 (36)

DUMMY

대사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임 두령의 성격상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어.


나에게 그러더군.


자기가 이기면,

더 이상 자신의 길을 방해하지 말라고.


그래서 내가 말했지.


오해다.


추설이나 목단설은

자신들의 길을

스스로 생각하여 판단한 것이다.


내가 이 대결에서 지던 이기던,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총사님의 그런 말씀에,

대두령은 뭐라고 하던가요?”


한용덕이 물었다.


대사가 간단히 답했다.


“정말 그 사람다운 말이었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만 눌러버리면

나머지는 결국 내 뜻대로 될 거라고.


어차피 우리 같은 족속은,

종국엔

힘의 논리를 따르게 되어있다고.


그러니 어차피 결과는 같다고.


당신을 시작으로,

나머지 모두를 힘으로 눌러

복속시켜버리겠다고...”


“네...대두령다운 말이네요.”


구대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대사가 목이 탔는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무튼...

그래서 결국 대결은 피할 수 없었네.


금강굴 근처에서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한 시진 가까이 최선을 다했지만,


내가 지고 말았어...”




의외의 결과에

두 사내는

정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임꺽정이라는 사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둘 모두

뼈에 사무치도록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기에,


서산대사는

자신들과 결이 사뭇 다른 존재였다.


무공의 결로 따지면,


임꺽정이

외가(外家) 계열의 고수라면


대사는

내가(內家) 계열의 고수였다.


자신들도

임꺽정과 같은

외가 계열의 무술을 익힌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일까,


대사가 그에게

대결에서 패했다는 사실이

결코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기술이 좋고

경험이 많다 해도,


하늘에서 내린 용력(勇力)에는

정말 당할 수 없더군.


초한쟁패에 나오는 항우가

이 시대에 환생했다면

아마 이랬겠지 할 정도로,


진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무시무시한 위용이었지.”




대사의 고백에

두 사내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차를 홀짝일 수밖에 없었다.


대사도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




“결국...

나와의 대결에서 이긴 임 두령은


더 이상 자신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만약 또 다시 내가 방해한다면

그땐 정말

목숨을 가져가겠다 말하고서...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나갔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자네들도 알고 있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고...”


“그래서 갑자기

금강굴에서

면벽수련을 시작하셨던 건가요?


삼년이 넘도록?”


구대성이 묻자 서산대사가 말했다.


“그렇다네...


어차피 타고난 힘으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으니,


호흡법에 기초한

내가수련법에 몰두했지.


이렇게 물러나서는 안 된다.


다시 맞설만한 힘을 길러

임 두령을 제지하고,


결과가 뻔히 예정된

모두의 비극을 막아야만 한다.


그러나...”


“...너무 빠르게 파국이 찾아왔지요.


대두령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배반자 하나 때문에...”


한용덕이 대사의 이야기를 받아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결국 난, 그를 막지 못했지.”


대사의 그 말을 끝으로

긴 침묵이 다시금 찾아왔다.


한참동안

셋이서 차를 마시는 작은 소리만이

방안의 적막을 가끔씩 깰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느새 차가 다 떨어졌다.


다시 차를 끓이며

대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흑호 그 아이가...

그의 뒤를 따르려 한다면,


이번만큼은 내가 꼭 막아야지.


반드시...”


대사가

무거운 얼굴로 혼잣말을 내뱉으며,

결심을 다지듯 천천히 손을 움직여

찻물을 우려내었다.


그런 대사의 모습을 바라보는

두 사내의 표정엔

안타까움이 역력했다.


어디선가 부엉이가 울었다.


고요하고 쓸쓸한

산사(山寺)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6-


“내가

임 두령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을 들자면 절박함이랄까...


아니,

그 집착에 가까운 감정은

처절함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아무튼 절박함이든, 처절함이든 간에...


임 두령만큼 그렇게,

목숨을 걸면서까지

온힘을 다해 싸워야 할 이유가

나에겐 없었기 때문인 것 같네.


싸움에 임하는 마음의 차이랄까...”


대사가

다시 우려낸 차를

두 사내에게 따라주며

긴 침묵을 깼다.


“처절함이라 하시면...


어떤 마음을 말씀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구대성이 물었다.


대사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임 두령이

반역의 깃발을 올린 이유는,


점점 커져가는 권력에 대한 갈망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의 꿈이랄까 소망이랄까...


아무튼

꼭 이루고 싶어 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네.”


“그게 무엇입니까?”


“그는

민초를 위한 나라를 세우고 싶어 했어.


그가 도적으로 활동할 때

팔도의 백성들에게

활빈당으로 이름이 높았던 것도,


실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움직였기 때문이야.


협객 흉내를 내기 위해

허세를 부리거나


흉악한 도적의 본성을 숨기려고

겉치레를 하는 게 아닌, 진심으로.”


“......”


“그에겐


이 땅에서

백정으로서 살아가면서 받은,

깊은 상처와 처절한 원한이 있었네.


끔찍할 정도의 수탈에 대한 기억도

아주 많지.


나한테도 그런 말들을 가끔 했었는데,


그는 항상 생각했어.


도대체 왜,


모든 피와 땀은

우리 같은 민초들이 흘리는데,


모든 수확물과 모든 권리는

저 무위도식하는 쓸모없는 자들이

다 가져가는 것인가.”


대사가 전하는 임꺽정의 생각에

두 사내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이 아닌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대사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이 땅을 일구는 수많은 사람들...


성실함을 미덕으로 아는

선량한 자들은

왜 항상 눈물을 흘려야하고,


한줌도 안 되는 높은 사람들...

쌀 한 톨마저도 악귀처럼 빼앗아가는

사악한 자들은

왜 그걸 당연한 권리인양 누리는가.


왜 우리 같은 민초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작은 보답조차 받지 못하는가.


이 고통의 굴레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는가...


그런 고민들을 계속 했었지.”


“네...”


“그런 고민을 계속 하면서...


점차 세력이 커지고,


민초들의 지지를 얻고,


관군과 맞서 싸워 이기고,


결국 도성의 양반들까지

벌벌 떨게 할 정도의

위치가 되었을 때...


그 생각의 결실이

비로소 싹튼 것 같아.


민초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




가만히 대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용덕이

문득 입을 열어 물었다.


“글쎄요...


저희가 보았던 대두령의 모습을 보면,

지금 그 말씀에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정말로 그가

그런 훌륭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면,


자신의 주변사람들이나 동지들에게

어째서 그리도

흉포하게 굴었던 것입니까?


대두령에게

끔찍한 일들을 겪은 이들 중엔

아무 힘없는 민초들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부녀자와 어린 아이도 있었지요.


이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구대성도 한 마디 거들었다.


“대사님의 위치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그런 말들을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제가 본 대두령은

정말 영리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심지어 동지들까지 미끼로 쓰는

무서운 사람이었지요.


대사님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럴듯한 명분을

지어낸 것이 아닐까요?”


두 사내의 반박에

대사도 두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쉽게 답할 문제가 아니었다.


대사가 알고 있는 임꺽정의 모습과

두 사내가 알고 있는 임꺽정의 모습은,


모두

임꺽정 한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양면성을 가진 존재라 해도,

그 차이는 너무 극단적이었다.




차 한 모금을 마신 후,

대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오직 하나,


내가 진짜라고

확실히 느낀 것이 있다면,


아까도 얘기한 그의 의지네.


한 시진 가까이 혈투를 벌이면서

나도 그도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갔지만,


결국 승부를 가른 건

의지의 차이였어.


절박하다 못해

처절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력했던,


그의 의지를 막아서는 나의 각오가

너무 약했던 것 같아.


나를 쓰러트릴 마지막 한 방을,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


“총사께서

그렇게 느끼실 정도였다면,


그건

욕심이나 계략의 영역은 아니었겠지요.


대두령도 아마 진심이었을 겁니다.


단순히 승부만을 보고 싶었다면,

그렇게까지 할 사람이 아닙니다.”


구대성이

대사의 말에 동의하듯 말했다.


대사가 마지막 회상을 전했다.


“패배한 직후에 내가 물었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그가 그러더군.


설령 죽게 되더라도

그 길을 가고 싶다고.


민초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나라를

꼭 만들겠다고...


그건 자신의 마지막 꿈이자 목표고,


그 길이 설령

수라(修羅)의 길이라 해도

꿋꿋하게 갈 거라고.”


“수라의 길이라...


정말로

대두령의 인생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네요.”


한용덕이 대사의 이야기에 공감하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대사가 차를 마시며 침묵했다.


두 사내도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대사가 회한이 섞인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그가 죽어버렸기 때문에,

진실은 영영 알 수가 없겠지.


사람이란

부처와 악귀를

한 몸에 같이 지니고 있는 존재니,


나에겐 한없이 좋은 사람도

누군가에겐

끔찍하게 나쁜 사람일 수 있지.


자네들이 본 모습도, 내가 본 모습도,

모두 다 그가 보여준 외피일 뿐이니

진실은 오직 그만이 알겠지.


사실 지금에 와서

그걸 따져봐야 뭐하겠는가...


다 부질없는 일이지.”


“네.


이젠 되돌릴 수도 없는

과거의 일입니다.”


구대성이 씁쓸한 표정으로 덧붙이자,

대사가

다시 진중하게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이제 당면한 문제를 상의해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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