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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첫 번째 -자객(조선, 168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완결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1.10 16:49
최근연재일 :
2020.11.14 00:38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35,394
추천수 :
306
글자수 :
248,789

작성
20.11.10 19:17
조회
482
추천
7
글자
5쪽

第 一 章 이름 없는 사내 (1)

DUMMY

-1-


그에겐 이름이 없었다.


그의 아비는

윤씨 가문의 돼지를 돌보던

귀머거리 노비였고,


그의 어미는

그가 젖먹이 적

돌림병이 돌던 해에 죽었다.


부리는 노비에

고용된 하인까지 합하면

넉넉잡아 천 명이 족히 넘어가는

거상(巨商) 윤씨 가문에서


돼지우리를 돌보는

귀머거리 노비의 아들인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열두 살 때 돌림병을 앓아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으나

운이 좋았던지 겨우 목숨을 건진

그의 아비는,


일주일 넘게

고열에 시달리며 사경을 헤맬 때

청력을 잃었다고 한다.


어쩌면 신(神)이 있어서

그의 아비에게

소리를 빼앗아가는 대가로

목숨을 살려주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삼십년 가까이

귀머거리로 지내온 그의 아비는

(말을 할 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당연히 말을 잘 하지 못했고,


어쩌다 입을 열지라도

귀머거리 특유의

어눌하고 기이한 발음 때문에

남들에게 놀림당하기 일쑤여서


극히 필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아예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열세 살이 될 무렵,

그의 아비는

돼지를 돌보는 법과 도살하는 법,

죽은 짐승의 뼈와 살을 분리하여

먹을 수 있는 고기로 만드는 법을

그에게 가르쳤다.


아비의 기술과 사는 법을

물려받는 데 있어서

그에겐

아무런 위화감도, 의문점도 없었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밥을 먹고 사는 것에

어찌 의문이 있겠는가.


그의 아비가

전(前)주인이었던

결성10) 박 좌수의 농장에서 일할 때는

매번 끼니를 챙겨먹기도 힘들었다.


그의 아비와 함께

일청당에 팔려오면서부터는

윤씨 가문이 워낙 풍족한 탓에

명절 때나 제사 같은 행사가 있으면

바깥사람들은 구경하지도 못할

귀한 음식들도 얻어먹을 수 있었고,


외양간 옆이라

벌레들이 끓고

냄새는 좀 나지만,

부엌이 딸린 조그마한 움막도

그와 아비가 사는 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어쩌면

성안에 사는 웬만한 양인들보다

삶의 질은

훨씬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의 겨울,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에

그의 아비는

돼지먹이를 주다가 낙상(落傷)하여

허리 아래를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딘가의 뼈가 부러진 것 같았으나,

그가 손을 쓸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칠일에 한 번씩

쌀과 부식거리를 갖다 주는

본가의 여자 노비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약을 한 첩 가져다 준 것이

그가 아비를 위해 할 수 있는

병구완의 전부였다.


아비의 병은 더더욱 깊어져

입으로 곡기를 넘기지 못하고

나날이 육신이 말라가더니


그해 겨울이 끝나갈 무렵

그의 아비는 결국 숨을 거두었다.


숨을 멈추던 날 밤에

그의 아비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한 번 쓰다듬어 주었고,


입을 벌려

무언가 말하고자 애썼으나

끝내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아비의 장례는

특별한 절차도,

아무런 감정도 없이

본가의 남자노비 둘이 와서는

거적에 시신을 싸서

지게에 짊어지고 성 밖으로 나가

묻은 것이 다였다.


아비가 땅에 묻히던 날에도 그는,

시간을 맞춰 돼지들에게 먹이를 주었고,

그날 저녁에

주인댁에서 잔치가 있었던 탓에

사흘 전에 잡아둔

돼지의 살을 먹기 좋게 바르고 있었다.


아비보다 일솜씨가 나았던지,

일에 있어서 그는

곧 아비만큼 주위의 신뢰를 얻었고

아무런 문제없이

아비의 뒤를 이어

윤씨 가문의

돼지를 돌보는 일을 물려받았다.


아비를 닮아서인지

그도 워낙에 말수가 적었지만,


제일 신기했던 일은

여전히 그의 이름이 무언지,

그의 나이는 어찌 되는지

관심을 갖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유일한 피붙이였던 아비로부터

먹고 사는 기술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배운 것이 없는 터라

그는

사람들과

말을 섞는 법도 교류하는 법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아비가 죽은 지 서너 달쯤 지나서

비가 오던 저녁에,

방구들 한 쪽

아비의 빈자리를 쳐다보며

갑작스런 헛헛함이 밀려와

소리 내어 울어본 것이


그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 본

인간다운 유일한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에겐 이름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자신도,

주위 사람들도

그 어떤 관심이나

의문을 가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무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리라.








주석



10) 결성

지역 명칭,

현재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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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 一 章 이름 없는 사내 (1) 20.11.10 483 7 5쪽
6 前日談 두 개의 가문(家門) -5 20.11.10 485 7 2쪽
5 前日談 두 개의 가문(家門) -4 20.11.10 575 6 9쪽
4 前日談 두 개의 가문(家門) -3 20.11.10 676 6 13쪽
3 前日談 두 개의 가문(家門) -2 +2 20.11.10 932 8 11쪽
2 前日談 두 개의 가문(家門) -1 +1 20.11.10 2,124 9 6쪽
1 목차 +1 20.11.10 2,169 8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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