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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첫 번째 -자객(조선, 168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완결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1.10 16:49
최근연재일 :
2020.11.14 00:38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35,395
추천수 :
306
글자수 :
248,789

작성
20.11.10 17:31
조회
932
추천
8
글자
11쪽

前日談 두 개의 가문(家門) -2

DUMMY

-2-


재산이 아주 많지는 않아도

충청도 홍주 땅에서

나름 양반으로 행세는 하고 살았던,

윤씨 가문의

유일한 종손(宗孫)으로 태어나,

가문의 숙원인 출사(出仕)를 위해

9년 가까이

성균관에서 한양 유학생활을 했던

윤성환은,

사실 멀리 떨어져있는 탓에

고향에 머물고 있는

부모와 아내의 사정에 대해

아주 자세히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의 죽마고우 김종현이

가노 정수를 데리고 한양에 올라왔다.


종가(宗家)의 큰 어르신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좋은 종이를 구하러

급히 오게 되었다고 했다.


고인(故人)을 추모하는

의례(儀禮)와 관련된

제문(祭文)작성에 필요한,

‘상품(上品) 도련지(搗鍊紙)’3)를

홍주에서

어째서인지 도통 구할 수가 없었고,

상회(商會)에 주문을 넣어도

보름은 넘게 걸릴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광천나루터에서

급히 배편을 수배해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전갈도 없이 갑자기

반촌의 하숙방으로 찾아온 고향의 벗이

윤성환은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친구의 일이

종가의 상(喪)과 관련된

워낙 급한 용무였으므로

제대로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김종현과 함께 정수를 대동하고

서둘러 운종가(雲從街)로 갔다.


과거시험을 보러 시험장에 들어갈 때

그에게 종이를 샀던 인연으로

윤성환과 제법 친하게 지냈던

지전상인(紙廛商人) 전택상을 만나


사정을 설명하고

시세보다 다소 싼 값에 물건을 구해

김종현에게 전하자,


김종현은 감사를 표하며

다음엔 꼭 밤새워 술 한 잔 하자 말하고

서둘러 마포나루로 향했다.


종이가 가득한 등짐을 진 정수가

그의 뒤를 따랐다.


오랜만에 만난 죽마고우와

둘이서 오붓하게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었지만,

사정이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윤성환도 그들을 따라

마포나루까지 배웅하던 길이었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아차 하고 소리를 내뱉더니,

김종현이 급히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행장(行裝)을 뒤져

무언가를 꺼내 윤성환에게 주었다.


김종현이 내민 것은

고향에 있는 윤성환의 아내가

손수 지었다는,

겨울에 입을 솜옷이었다.


‘항상 강건하시길

멀리서 기원하고 있습니다’라는

아내의 언문편지도 같이 들어있었다.


김종현은

‘광천나루터에서 배를 기다리는데

여각(旅閣)의 김행수에게

배편으로 배달을 의뢰하러 온

자네 집의 가노 철이 아범을 만났다’


그런데

‘자네한테 보낼 겨울옷이라고,

제수씨가 지으신 거라 하길래

배 삯도 아낄 겸

내가 직접 전해주겠다 하고

받아서 가져온 것’이라 말했다.


초시에 합격한 열일곱 살,

풋풋했던 젊은 시절에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유학을 떠난 한양에서

아들 정호가 태어나기까지

3년 남짓한 시간동안

부부가 같이 지냈을 뿐,


혼인을 한지 십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윤성환이 아내와 함께한 시간은

그게 다였다.


넉넉하지도 않은 형편에

고향에서 시부모님을 모시며

홀로 꿋꿋하게 아들 정호까지 키우고 있는

아내에게 항상 미안해하던 윤성환이었다.


그가 남편으로서 해준 유일한 선물은,

정호가 태어나기 전에

한양에서 아내와 둘이서만

1년 정도 같이 지냈던

행복했던 시절,


방물장수 노파에게 사서 선물한

싸구려 비녀 하나가 다였다.


동문들과 술을 한잔 걸치고

하숙집에 들어가던 길에,

취한 기분에 별 생각 없이 샀던

그 싸구려 비녀를,


아내는 눈물까지 보이면서

무척이나 좋아하였다.


그날 밤,

아내의 행복해하던 미소가 떠오른

윤성환은

갑자기 울적해졌고,

그의 얼굴은 곧 슬픈 표정으로 바뀌었다.


홍주의 아버님이

편찮으시다는 전갈을 받고

돌도 지나지 않은 젖먹이였던

아들 정호를 데리고

아내가 다시 본가(本家)로 내려간 뒤로,

그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아내의 선물을 전해준 벗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잊고,

우울한 표정으로 편지를 읽는

윤성환을 보며

김종현이 말했다.

“그래, 공부는 잘 되고 있나?”


“아니, 요즘엔 통 집중이 되질 않네...

자네와 어울려 다니며 행복했던

고향을 떠나

이렇게 오랫동안

객지밥을 먹으며 노력하였거늘,

아무래도 난

입격(入格)4)할 실력이 아닌가 보이...”


“운(運)이 따르지 않는 것이겠지...

그게 보통 어려운 일인가,

그렇게 자책하지 말게나.”


“저번 달에 어머니의 편지를 받았는데,

내 유학비용을 대시느라

가세가 많이 기울어

무척 힘들어지신 모양일세,

내가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윤성환이 말을 맺지 못하고 끝을 흐리자,

김종현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고

다시 마포나루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포나루에서

한 시진 후에 남쪽으로 출발하는

배편을 수배한 뒤,

마음이 차분해진 둘은

근처의 주막에서 국밥으로 허기를 달랬다.


배를 기다리며

국밥을 안주삼아

싸구려 탁주 한 잔씩을 하던 중,

김종현은

바로 옆 평상에서

열심히 국밥을 먹고 있던 정수에게

잠시 자리를 피하라 말하고,

무언가 결심한 단호한 표정으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가...많이 고민하였네만,

아무래도

얘기를 해주는 것이 좋을듯하네...”


“갑자기 왜 그러나?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


“....사실

자네 집이 사정이 안 좋아진 것은,

근래가 아니고 꽤 오래 전 일일세,

한 2년쯤 되었을 걸세...


재작년 흉년 때 모두가 힘들었지만,

그때가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


지금 자네 집은

아버님의 친한 지인들께서

가끔 십시일반 도와주시는 거 하고,

자네 어머님과 제수씨가

여기저기 빚을 융통하면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네...”


“............그 정도로 안 좋으셨던가...

어머님의 편지로는

그 정도까진 아닐 줄 알았는데...”


“자네가 걱정할까봐

어머님이

사정을 제대로

설명하시지 않았던 거겠지”


윤성환은 답답함을 느껴

탁주 한 사발을 단숨에 비웠다.

김종현이 말을 이었다.


“내가 알기로,

이제 자네 집의 가산이라고 할 만한 것은,

기거하시는 집과

갈산5) 주변의 전답 몇 마지기가

아마 다 일걸세...


그나마도 장터에서 어물전을 하며

뒤로는 고리대(高利貸)를 놓는

박가 놈한테

다 전당(典當)6)이 잡혀있네...


요즘 자네 집안의 수입이라고는

어머님과 제수씨가

밤새워 시침질하여 만드는

옷가지들뿐이네.


두 분 다 시침질 솜씨가 워낙 좋으셔서

자네 집안에서 나오는 물건들은

주변 분들이

시세보다 비싸게 사주긴 하지만...


자네 집 가노인 철이 아범이

장터 포목전을 드나들며

그 옷들을 쌀로 바꿔가는 것을

내가 몇 번 보았지...”


윤성환의 표정이 심하게 구겨졌다.

김종현이 격려하듯

윤성환의 손을 한번 잡아주더니

착잡한 표정으로 술잔을 비우고

다시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네.

그날 귀한 물건이 생겨

오랜만에

자네 부모님을 찾아뵌 적이 있었다네.


멀리 법성포의 지인이 힘들게 보내준

상등품 굴비가 나한테 생겨서,

같이 좀 드셨으면 하고 찾아뵈었었지.


근데 자네 집안에 들어서니

어물전 박가 놈이

제수씨랑 철이 아범한테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군,


아버님은 기가 막히신지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계시고,

어머님은 분한 표정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계시더구먼,


내가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달려가 박가 놈의 멱살을 잡고

귀싸대기를 올려 치며 혼을 냈다네,


장터에서 생선이나 팔면서

뒤로는 고리대나 놓는 천한 것이

감히 누구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거냐고,


관아로 끌고 가서

바로 물고를 내버리겠다고,

그랬더니 박가 놈이 얼른 태도를 바꿔서

무릎 꿇고 싹싹 빌면서 입을 놀리더구먼,


사실은

오늘 밀린 이자를 주시기로 하였는데

없다고만 하시고

도통 답을 주지 않으셔서 그랬다...


벌써 세 번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으셔서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그러면서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머리까지 쳐 박아가며 빌 길래...


어림없는 소리 말라고,

수령에게 고해서

강상죄(綱常罪)로

엄히 다스리겠다고 했더니,


갑자기 제수씨가 나한테

따로 말씀 좀 나누시자고

조용히 청하더구먼,


그래서 뭔 일인가 하고

제수씨를 따라 갔더니,

수령에게까지 고해 송사(訟事)를 만들면

주변에 안 좋은 소문도 크게 나고,

무엇보다 한양에 계신

지아비의 귀에 혹시라도 들어갈까

너무 두렵다고,


그러니 여기서 혼만 엄하게 내시고

없던 일로 해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제수씨의 말씀을 들으니...

나한테 그런 말을 하시는 그 심정이나,

그런 모습을 들킨 속상함이

얼마나 크실지

미루어 짐작이 되더구먼...


그래서 알겠다 말씀드리고

마당에 엎드려 있는 박가 놈에게

내가 들고 간 굴비를 다 줘버렸네,


밀린 이자가 얼만지는 몰라도

이거면 충분할 거라고 혼쭐을 내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벌어진다면

그땐 진짜

네놈 명줄이

끊어지는 줄 알라고 했더니

예, 예 하면서

얼른 굴비를 챙겨서

부리나케 돌아가더구먼.”


“..................”


벗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윤성환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유학비용을 대느라

가산(家産)을 팔아 점점 곤궁해져가는

부모의 사정까지는

어머니의 편지로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장터의 장사꾼들에게 빚까지 내며

자신의 아내가

천한 것들에게 모욕까지 받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순간,


엄청난 분노가 치밀고

심한 자괴감이 밀려와

도저히 입을 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종현이 홍주로 돌아간 그날 밤부터

윤성환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또 한편으론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몇 달 동안 술로 세월을 보냈다.






주석


3) 도련지(搗鍊紙)는

조선시대 각종 문서 등에 사용되었던

종이로,

마른 종이 사이에 젖은 종이를 끼워

다듬이질을 하여

종이의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어

모필(毛筆)이 잘 움직이게 만든

종이이다.


『탁지준절(度支準折)』에 의하면

조선시대 사용되었던 문서지 명칭이

마무리 방법이나 가공방법 등에 따라

상품도련지(上品搗鍊紙),

하품도련지(下品搗鍊紙),

초주지(草注紙), 저주지(楮注紙)로

구분되었다.


상품은 평균밀도가 0.6g/㎤이상,

하품은 0.5g/㎤이상으로

보다 많은 도련과정(搗鍊科程)을 거친

종이가 형태적으로 더 매끄러워

상품으로 인정받았다.



4) 입격(入格)

시험에 합격하는 것,

과거급제(科擧及第)를 말함



5) 현재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6) 전당(典當)

돈을 빌리는 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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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계(劍契)이야기 첫 번째 -자객(조선, 1680)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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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第 一 章 이름 없는 사내 (1) 20.11.10 483 7 5쪽
6 前日談 두 개의 가문(家門) -5 20.11.10 485 7 2쪽
5 前日談 두 개의 가문(家門) -4 20.11.10 575 6 9쪽
4 前日談 두 개의 가문(家門) -3 20.11.10 676 6 13쪽
» 前日談 두 개의 가문(家門) -2 +2 20.11.10 933 8 11쪽
2 前日談 두 개의 가문(家門) -1 +1 20.11.10 2,124 9 6쪽
1 목차 +1 20.11.10 2,169 8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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