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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하는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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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연어
작품등록일 :
2023.12.31 14:05
최근연재일 :
2024.02.13 12:2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7,171
추천수 :
153
글자수 :
211,759

작성
24.01.17 17:50
조회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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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3쪽

4화 : 사기꾼 (1)

DUMMY

4화 : 사기꾼 (1)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끄으윽···. 아마도?”


레이는 온 몸을 쑤시는 고통을 참으며 대답했다.


대련은 참패였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고, 프렌인지 프라이인지 하는 녀석한테 쥐어 터진다는 것 또한 생각치 못했다.


연금술사가 자기 포션의 약효 시간조차 계산 못하다니! 얼굴을 들지 못할 만큼 부끄러웠다. 나 자신에게 너무나도 화가 난 나머지 네크레스를 째려보기까지 했다.


전생이었으면 상상도 못할 일.


어쨌거나 성내고, 비웃고, 멸시의 눈빛을 보내던 수 많은 병사들을 뒤로 하고, 레이와 데미는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왔다.


“크으윽···.”


“괜찮으세요, 공자님?”


레이는 데미에게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화로로 다가갔다.


글리우텐까지 오며 캤던 약초가 남아 있으면 먼저 회복포션이라도 만들 생각이었다.


“이건 너무 합니다. 다시 가서 제가 따져볼게요, 공자님. 이렇게 다쳤는데 힐링 포션을 한 개도 줄 수 없다는 게 말이 된답니까?”


“힐링 포션?”


레이는 잠깐 기억을 더듬었다. 연금술사가 만드는 회복 포션과 밀리엘 교의 사제가 만드는 힐링 포션은 서로 다른 것이었다.


“예. 제가 대련 끝나자마자 네클레스 경에게 부탁했더니 뭐라고 한 지 아십니까?”


“뭐라더냐?”


“크흠, 안타깝게도 사사로운 이유로 대련을 했기에 글리우텐 마을의 귀중한 힐링 포션을 삼공자께 드릴 수 없다.”


데미는 네클레스의 중후한 목소리를 흉내내며 말했다. 심지어 입가가 씰룩이며 비웃는 표정까지 묘사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어차피 힐링 포션이면 밀리엘교에서 만든 치료약을 말하는 게 아니더냐?”


“예, 그렇죠.”


“필요 없다. 차라리 내가 회복 포션을 만들고 말지.”


“예?”


연금술사가 자신이 만든 포션도 아니고 사제의 힐링 포션을 쓴다니, 이보다 치욕스러운 일은 없을 터였다.


레이는 벽난로 앞에 만들어 둔 화로를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불씨가 살아 있었다.


‘근데, 약초가···.’


혹시나 했는데 글리우텐까지 오면서 캤던 약초들의 양이 턱없이 부족했다.


“끄응.”


몸을 살펴보니 멍든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계란 프라이 녀석을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혼쭐을 내주리라.


그러기 위해선 일단 회복 포션을 만들어야 하고, 재료가 필요했다.


“데미야. 주변에서 약초를 구할 곳이 없을까?”


“약초라면, 으음···.”


데미는 침음성을 삼켰다.


‘공자님께서 왜 이렇게 갑자기 약초에 집착하시는 걸까? 유배온다는 사실에 충격이 너무 심하셔서? 생각해보니 그 때 손목을 그은 것도 그렇고.’


데미는 레이의 상처 투성이의 몸이 아닌 눈을 확인했다.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는 눈빛이었다.


레이를 섬긴 이후로 처음 보는 눈빛이다.


도박할 때 좋은 패가 손에 들어와도 저렇게 고민하는 표정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 너무 충격적이셨던 거야. 살면서 이렇게 맞아본 적도 없으셨을 테니. 안되겠다. 나라도 정신 차리고 보좌해 드려야지.’


데미는 눈가를 훔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제가 지금 각종 시설 관리인들과 함께 지내거든요? 그 중에 소비재 창고 관리인도 있어요. 가서 약초 좀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고 올까요?”


“그래. 근데 오늘은 날이 다 갔으니 내일 부탁하마.”


“예, 알겠습니다. 편히 주무세요.”


쿵.


방문이 조용히 닫히자 레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온통 어둑해진 밤.


고요한 방 안에는 초겨울의 칼바람이 나무창문을 흔드는 소리만 이따금씩 들릴 뿐이었다.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의 해가 뜬다면 또 다시 경계근무를 나가야 할 터.


레이는 맞은 곳이 욱씬거렸음에도 불구하고 온통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빨리 설원에 가서 보라색 꽃이랑 붉은 나무열매를 확인해 봐야 하는데.’


전생에도 매일밤 새로운 재료와 추출물의 조합을 상상하며 잠들곤 했다.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 냈을 때의 황홀감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혹시 또 모르지. 체질적으로 마나를 쌓지 못하는 이 몸을 낫게 할 새로운 재료가 설원에 있을 지도.’


그렇게 글리우텐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



다음 날 아침, 두 남자는 절뚝이는 발걸음으로 소비재 창고로 향했다.


한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절름발이였던 데미였고, 또 한 사람은 대련이라는 이름의 구타로 인해 절뚝이는 레이였다.


“그러니까, 안 됩니다. 네클레스 경의 허락을 받으셔야 입장이 가능하시다고요.”


“아니, 관리인님.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삼공자님께서 직접 오셨는데.”


데미는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밀리엘께서 현신하셔도 네클레스 경의 허가증 없으면 안 됩니다.”


창고 관리인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병사들처럼 군인은 아니었고, 그저 마을에서 전반적인 창고 관리 일을 맡은 아저씨로 보였다.


“이보시오.”


“삼공자님. 여기는 글리우텐 입니다. 아시는 지 모르겠지만, 네클레스 경의 말은 여기서 법입니다. 제게 직접 오셔서 이리 말씀하셔도···.”


“그건 나도 들어서 알고 있소. 근데 아무리 그래도 네클레스 경은 변경백께 영지의 대리통치 권한을 받은 기사 아니오? 결국 서열은 본인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고 보는데.”


“변경백께서 직접 오신 게 아니라면 글리우텐의 그 누구라도 똑같이 말할 겁니다. 아무리 권세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우리를 지켜주고 먹여주는 사람의 말을 들어야지, 누구 말을 듣겠습니까?”


창고 관리인은 엄격한 표정보다는 자부심이 넘치는 기색으로 말했다.


“마치 여기 글리우텐에 사는 사람들은 네클레스 경이 자랑거리인 것처럼 말하는 군.”


“맞습니다. 자랑거리. 고메 가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분이 바로 네클레스 경이니까요.”


대대로 최북단 지역의 기둥이자 방패 역할을 한 고메 가문. 마을 사람들의 전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군. 알겠소. 내 허락을 받아 오지.”


“공자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됐다. 어쨌든 우리는 외지인이 아니더냐.”


레이는 데미의 말을 넘기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창고 관리인이 ‘허락을 받을 턱이 있나.’하며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얼핏 들렸다.


두 절뚝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곧바로 네클레스의 집무실로 향했다.


쾅!


“네클레스 경. 할 말이 있소만.”


“···벌써 세 번째 입니다. 삼공자께서는 노크라는 걸 모르십니까?”


철벽의 기사라는 이명을 가진 기사 네클레스.


글리우텐 마을 주민들의 전적인 신뢰를 받는 그의 모습은 더없이 높은 벽으로 보였다.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오.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 마을에서 쓰는 공용 소비재 창고를 쓰게 해 주시오.”


“창고 말입니까? 갑자기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약초가 필요하오. 아! 오해는 마시길. 힐링 포션을 주지 않았다고 항의하는 건 아니니까. 준다고 해도 쓸 생각은 없소. 차라리 내가 포션을 만들 테니까.”


“포션을 만든다고요?”


네클레스가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소. 지금은 당장 회복 포션을 만들 거고, 마나 포션까지 만들어서 내 기필코 프링 녀석을 꺾어 설원에 나갈 자격을 증명해 보이겠소.”


“프링이 아니라 수색대장 프렌입니다. 어쨌든, 포션을 만드신다는 건 설마 연금술을 말하는 겁니까?”


“오, 네클레스 경은 연금술에 대해 좀 아시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 압니다. 아버지 세대 때 연금술사라는 자가 와서 한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말이 빠르겠군. 그 자가 어땠을 지는 몰라도 나보다 잘 할 리는 없을 테니 얼른 창고를 열어주시오.”


“뭘 잘 한단 말입니까? 연금술사가 우리 마을에 와서 한 짓은 사기였는데.”


“음?”


“저희 아버지께서 통치하실 때만 하더라도 마을은 넉넉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기꾼이 와서 각종 약초로 힐링 포션을 만들어준다며 가져갔을 때부터 쇠락하기 시작했죠.”


“포션의 효능이 별로였나?”


“아니요. 낫기는 커녕 오히려 배탈과 설사병에 시달렸습니다.”


“으으음.”


레이는 침음성을 삼켰다. 얘기를 듣자하니 연금술 자체가 완전히 망해버린 건 아닌 것 같았다. 설사병이라면 연성에 실패한 포션을 마셨을 때 일어나는 증상이었으니까.


엉성한 연금술사들이 사기꾼 취급을 받는 게 현 시대인 모양이었다.


“어디서 이상한 책을 읽고 오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에 의존하지 마시죠. 근력을 키우고, 혹독하게 수련하면서 힘을 길러 이기시면 되는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포션을···.”


“레이 세이첸 경계병!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사내로 태어나서 약물에 의지한다는 게 말이나 된답니까? 아무리 선천적으로 마나가 쌓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쯧.”


네클레스는 말을 심하게 했다는 걸 깨닫곤 뒷말을 줄였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모시는 변경백의 셋째 아들이 아닌가.


사생아니, 저주받은 몸이니 이런 이야기가 연상될 만한 말은 해선 안되었다.


“그건 너무 모욕적인 언사이십니다! 제가 시종이라 말씀 도중에 끼지 못했지만, 얼른 삼공자님께 사과하십시요!”


뒤에 있던 데미가 고개를 빳빳이 들며 네클레스에게 항변했다. 레이를 위해 기사에게 대들 줄 아는 참된 시종의 모습이었다.


“그렇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모욕적인 언사라니! 당장 사과하시오!”


레이 또한 데미의 말에 이어 가세했다.


“크흠. 죄송합니다. 삼공자님. 하지만 여전히 삼공자께서 말단 병사처럼 경계병의 위치라는 걸 어느정도 자각을···.”


“그게 아니라!”


“예?”


“내 포션에게 사과하란 말이오! 내 연금술은 설사병 걸리게 하는 사기꾼 수준이 아니니까!”


“······예?”


레이의 맥락이 이해되지 않는 듯 네크레스는 멍하게 되물을 뿐이었다.



***



오해가 한 차례 지나간 뒤.


“하여튼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재료만 조금 주시오. 그게 어려우면 창고라도 좀 보여주시오. 보고 내가 알아서 준비할테니.”


“삼공자께선 잘 모르시겠지만, 이 곳 글리우텐에서는 자원 하나 하나가 소중합니다. 상상 이상으로요. 밀리엘교 사제가 오지 않는 곳이기에 약초는 더욱 소중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다스리는 마을의 상황을 암담하게 말하는 네크레스가 덤덤히 말을 이어나갔다.


“무엇보다 아이스 트롤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계신 분이 병사들과 주민들의 배고픔과 추움을 아시겠습니까?”


“춥고 배고프다고?”


“예. 당신이 도박에 빠져 있었을 때에도 배고픈 건 모르셨겠죠. 하지만 이 곳에서는 뭐든지 부족합니다. 특히 한겨울이 다가오는 이 순간에는 자원을 더욱 아껴야 하고요.”


레이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자신이 지내고 있는 첨탑 중간 즈음에 있는 방 또한 꽤나 추운 편이었다.


분명 삼공자가 온다고 어쩔 수 없이 괜찮은 방을 내준 것일거라 생각해본다면, 일반적인 마을 사람들은 더 형편없는 집에서 생활할 터였다.


“춥지 않게···. 오?”


레이는 번뜩이는 생각에 탄성을 내질렀다.


냉기 저항 포션!


빙의 전에는 따뜻한 남부에 살았기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레시피였다. 심지어 초급 연금술사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레시피.


“이렇게 자꾸 언쟁할 시간이 없소. 네크레스 경. 창고를 쓰게 해 주시오. 내가 냉기 저항 포션을 연성해 줄 테니.”


“냉기 저항 포션? 그런 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아니, 가능하더라도 함부로 내어줄 수 없습니다.”


“왜?”


“무엇을 믿고 내 달란 말입니까? 방금 제가 아버지 때 사기당해서 마을이 궁핍해졌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레이는 네크레스의 말이 일리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자신은 도박 때문에 유배온 사생아의 입장이 아니던가.


무슨 말을 해도 믿기지 않겠지.


“그럼 내기를 하는 건 어떠시오?”


“무슨 내기 말씀이십니까?”


“내가 만든 포션을 먹은 사람들이 추위를 이겨내면 창고를 자유롭게 쓰게 허락하고. 만약 실패한다면 경이 하라는 대로 하겠소. 여기 있는 동안 내내.”


“정말 도박에 빠진···. 후, 좋습니다. 제 조건은 딱 한 개입니다.”


네크레스는 또 다시 말실수를 할까봐 급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정리했다.


“말씀하시오. 연금술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면 뭐든지 들어줄 테니.”


“제 방문을 열 땐 노크하시고, 만날 때마다 상급자의 예우로 경례를 붙이시죠.”


네크레스는 의미심장한 어투로 말했다.


“그 정도야 뭐. 어렵지 않지.”


레이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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