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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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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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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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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328화

DUMMY

“극도 놈들이?”


기타무라 소좌가 눈썹을 까닥인다. 지금 시점에 지나정에 조직원들을 투입하려는 야쿠자 조직은 하나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아토베조로군. 난 그 놈들 부른 적 없는데?”


그의 작전계획에서 아토베조의 투입은 존재하지 않았다. 소좌는 배화폭동 진압을 명분으로 폭도들과 옥룡회 모두를 쓸어버릴 계획이었지 그 중간에 야쿠자를 개입하게 할 의도는 없었다. 이를 통해 아토베조에 빚을 지워둘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옥룡회가 쓸려나가 무주공산이 된 지나정과 인천 항만의 이권을 아토베조가 차지할 것이고, 그렇다면 아토베조는 자기들을 대신해 희생을 감수하며 옥룡회를 정리해 준 헌병에게 깊은 은혜를 입은 셈이다. 그것을 명분 삼아 헌병이 나섰다가 공개되면 다소 곤란해지는 일에 아토베조를 활용하려는 것이 소좌의 계산이었다.


그 때문에 아토베조가 난데없이 등장한 것은 헌병에게 빚을 지지 않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소좌에게는 불쾌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필요한 일이기도 하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호리 대위의 물음에 소좌는 바로 답한다.


“일단 놈들이 맘대로 하도록 내버려 둬. 공세개시는 잠시 미룬다.”


“그렇다면 언제 개시하시겠습니까?”


“상황 봐서. 어느 한 쪽이 나가떨어질 때.”


소좌에게는 아토베조의 개입으로 새로운 진압명분 수단이 추가된 셈이었다. 앞으로 써먹을 수단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것은 아쉽지만, 지금 당장 진압명분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었다.


그 무렵, 중국인 거리의 경계인 응봉산에서는 환호가 치솟고 있었다. 응봉산 고지를 넘어오려 달려들던 폭도들은 무너졌다. 본정과 송월정의 다른 진입로들과 마찬가지로, 응봉산도 폭도들의 비명과 신음으로 가득했다. “착한 짱꼴라는 죽은 짱꼴라다!”라고 고함을 지르던 폭도들은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져 울부짖고 도주하느라 바빴다. 응봉산에는 옥룡회가 빈틈없는 방어선을 조성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폭도들이 그 틈으로 들어와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음이 증명되었다.


“하하하하하!”


흡족함을 가득 담아 거센 웃음소리를 터트리는 이는 다름아닌 장카이셴 대인이었다. 폭도들이 진지 사이 사이로 들어와 달려든다 할 지라도, 그래 봤자 아무것도 아님을 목도하였기 때문이었다. 적에게 기습당하지 않고 대비를 갖추고 있던 부하들은 우회당하건 포위당하건 상관하지 않았다. 오직 눈 앞으로 달려드는 폭도들을 봉으로 미친 개를 패듯이 두들겼을 뿐이었다.


장 대인은 각 거리에서 오는 신호들을 보았다. 진압이 끝나면 폭죽 세 번을 올리기로 되어 있었다. 중점적으로 막아야 하는 거리마다 폭죽이 빠지지 않고 올랐다. 장 대인은 거리의 모든 1차 방어선에서 방어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음을 확인하고 껄걸 웃었다. 그 와중에 폭도들이 방어선의 틈을 통해 들어오자 여기서 더 상황보고만 받고 지시만 내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서 싸움판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장 대인은 인천경찰서와의 관계 때문에 손속을 봐주어서 청룡언월도는 옆의 나무에 걸쳐 놓고 목봉 하나만 들고 달려들었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남았다. 한 손으로 몇 번 웅웅 휘두를 때마다 수 명이 얻어맞고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비어있는 손으로는 폭도 한 명의 다리를 붙잡고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었다. 거한인 데다가 젊은 시절부터 괴력을 뽐내온 장카이셴이었다. 무공 하나 익히지 않고 증오만 가득 차 달려드는 폭도들 따위, 그에게는 벌레만도 못한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하도 목봉을 강하게 내리치다 보니 뚝 하게 부러졌다. 물론 장 대인에게는 전혀 당황할 일도 아니었다. 그의 적수공권 자체부터가 충분히 흉기의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일장과 일권에 폭도들은 저항조차 못한 채 엎어지고 깨지고 난리였다.


“귀찮다!”


얼마 안가 권각을 휘두르는 것 조차도 하찮다고 느낀 장 대인은 이제는 손에 잡히는 대로 언덕 아내로 내던져버렸다.


폭도들은 “아이고야!”하고 비명을 지르며 연속으로 굴러떨어졌다. 주변에 더 잡아 던질 폭도가 없어지고 수하들만 있자, 흡족하게 웃음을 터트린 것이었다.


“하잘것없는 소인배들! 네놈들이 뭐라고 오밤중에 설치느냐!”


장 대인의 비웃음이 응봉산 전체에 울리는 듯 했다. 기세가 바닥에 떨어진 폭도들에게 남은 것은 결국 도망질할 뿐이었다.


장 대인이 그꼴을 보고 수하들과 유쾌하게 웃던 와중, 어느 새인가 웨이샤오바오가 쪼르르 달려와서 아부다.


“대인! 과연 대인은 천하무쌍, 만부부당, 만인지적이십니다요! 대인이야말로 역발산기기세, 초패왕입니다요!”


그러나 장 대인은 껄껄거리면서도 호통이다.


“이놈아! 초패왕은 한고조에게 망했다! 나더러 초패왕처럼 망하란 거냐?”


이에 웨이샤오바오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납작 엎드려서는 “대인! 이 멍청한 놈이 제 18대 조상까지 욕보이겠습니다!”라고 하니 더욱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래. 다른 쪽은 다 어떻게 되었냐?”


장 대인이 물으니 웨이샤오바오가 신나서 대답한다.


“폭도들은 죄다 박살이 났습죠! 어디서건 다 도망치느라 난리입니다요!”


“하하하! 잘 했다! 그 누가 다시 이 거리를 건드리겠느냐!”


장 대인이 기분이 좋아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린다.


그런데 상황이 변한 것은 그때였다.


“저건 뭐야!”


조직원 중 한 명이 놀라서 소리쳤다. 도망가는 폭도들 앞으로 새로운 자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 간간히 횃불을 든 자가 있었기에 외양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하나같이 머리를 짧게 깎은 험상궂은 거한들이었다. 개중 얼굴에 그어진 흉터가 있는 자들도 알아볼 수 있었다. 모두 다 검은 하오리에 가슴팍 양쪽에 문양 같은 게 꿰어져서 장식된 하카마를 입고 있었다. 수십여명을 넘어서 100명도 넘어 보이는 그들은 언덕 위를 무섭게 보더니,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들을 일제히 스르릉 빼드는 것이었다. 잘 갈린 도신이 횃불에 비춰져서 시퍼렇게 빛난다.


“저놈이 장카이셴이다! 쳐 없애라!”


이들이 하는 말은 일본말이었다. 이들이 와아 하고 함성을 지르며 발도돌격을 시작했다.


“물러나라! 모두 무구를 챙긴 다음에 와라! 그리고 제1방어선 전체에서 철수하라고 신호하라!”


장 대인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어느 조직의 놈들인지는 몰라도 분명 일본 야쿠자들 같아 보였다. 폭도들을 최대한 살상 없이 진압하느라 목봉 정도만 무기로 들고 나온 자들만 여기 있었다. 그것으로 일본도를 빼어 들고 달려드는 야쿠자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날붙이는 위엄을 보이기 위해 장 대인이 가져온 청룡언월도밖에 없었다. 지금 방어선을 고수하다가는 피해가 심각해질 것이었다.


“대인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웨이샤오바오가 급히 묻는다. 장 대인은 호쾌하게 대답하였다.


“난 저놈들과 좀 놀고 있겠다!”


이에 웨이샤오바오 등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부디 무탈하십시오!”하고는 빠르게 자리를 이탈하였다. 날붙이 하나 없는데 있어 봤자 장 대인에게 방해만 됨을 알기 때문이다.


칼든 야쿠자들이 30보쯤 앞으로 온 순간, 장 대인이 청룡언월도 자루를 바닥에 쾅 하고 내려찍었다.


“하찮은 구이쯔 놈들아! 내가 누군지 아느냐!”


장 대인의 벽력 같은 고함에 기세를 올리며 돌격해오던 야쿠자들이 일시 주춤했다. 그들은 응봉산 위의 장카이셴이 그제야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 지 알 수 있었다. 이제 하늘에 떠오르기 시작한 달빛 아래 그가 서 있었다. 그의 그림자가 스산하게 드리워진다. 그 틈에 장 대인의 고함이 다시 내리쳐진다.


“내가 바로 관제묘(關帝廟, 관우의 사당)의 주창(周倉)이다!”


삼국지연의에서 관우의 충직한 부하장수로 나오는 주창의 상은 관제묘에서 청룡언월도를 들고 관우상을 좌측에서 호위하고 있다. 그 말인즉슨, 이 이상 넘어오는 자들에게는 그의 손에 들린 청룡언월도의 무시무시함을 보여줄 것이란 엄포였다. 물론 이 야쿠자들은 중국말을 전혀 모르기에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저 저 하북옥룡이란 장카이셴의 기세가 과연 대단하다고만 느낄 뿐이다.


“이 자라새끼에 개잡종들아! 한번 올라와 봐라! 네놈들 모가지를 다 가져가 주마!”


그 다음 순간, 청룡언월도가 웅 소리를 내며 대기를 갈랐다. 이것으로 이 싸움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이 야쿠자들을 이끌고 온 와타베 류사부로는 일본18은행 뒤 한 건물 옥상에 올라 초조하게 상황을 보고 있었다. 계획은 완전히 어긋난 상태였다. 그는 폭도들이 지나정을 완전히 휩쓸기 기대했다. 작년 폭동 때 그랬던 것처럼, 증오에 광기까지 발산하는 폭도들이 양적우위를 앞세워 거리를 들이쳐 옥룡회를 압도하길 기대했다. 아무리 평소 싸움이나 무술과 거리가 먼 자들이라도 증오에 눈이 돌아간 데다가 수적으로도 천여명 이상의 폭도들이 몰려든다면 제 아무리 악명높은 하북옥룡과 그 수하들이라도 속수무책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 폭도들이 중국인 거리를 휩쓸면, 아토베조가 진입해 거리를 완전히 장악할 작정이었다. 헌병이 투입되기 전에 반드시 차지해야 했다. 그는 처음에는 군부와 협력관계를 갖는 것이 조직의 이익을 크게 보장해 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들의 뿌리인 흑룡회와 대륙낭인들도 메이지 정부의 하수인 역할을 하며 중국과 조선에서 큰 사업들을 하여 흥성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봉천특무기관과는 달리 기타무라 소좌와 헌병들은 그들을 대등한 존재로 보지 않고 있었다. 첫 만남에서부터 상급 유녀의 접대를 공짜로 원하는 그 우악스러운 해군육전대 장교가 바라는 대로 다 하라고 한 자였다. 소좌는 이후의 논의에서 일이 잘 될 시의 보상을 분명 말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토베조를 자기 발 밑에 두고 싶어한다는 의사를 숨기지 않았다. 뒷세계 사람인 와타베는 상위조직이 산하조직에 손을 더럽힐 일을 맡기고는 위기의 때가 오면 꼬리를 잘라버리는 일을 많이 듣고 보아 왔다. 그는 군사조직도 암흑가 조직과 차이가 없다고 알고 있어서, 헌병이 아토베조를 이용만 해 먹고 곤란하면 버림패 취급하리라 직감하였다.


그 때문에 헌병의 개입 전 지나정을 장악해야 했다. 헌병에게 빚을 지우면 지웠지, 빚을 지면 안되었다. 지나정 장악을 아토베조의 힘만으로 해야 헌병이 채우려는 족쇄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합동수사본부와 일말의 상의도 없이 미리 조직원들을 끌어모아 인천에 대기시키고 있다가, 폭동이 시작되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바로 출진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빛나갔다. 폭도들은 무너졌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공포에 질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도망치거나 아니면 부상을 당해 바닥에 널브러져 울고 있다. 저 너머 바리케이드에서는 옥룡회의 중국인들이 봉을 처들고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계획은 처음부터 실패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물러나야 할까? 그럴 수는 없었다. 이 계획은 그의 체면과 조직에서의 위신이 걸려 있었다. 병든 오야붕이 괜히 군부와 잘못 관련되어 조직이 이용만 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하던 것을 그가 병상까지 가서 한사코 설득해 진행한 일이었다. 지나정과 인천 항만 이권을 손에 넣더라도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 헌병에게 종속당한다면 그는 조직을 위험으로 몰아넣는 자로 몰려 그의 자리를 언제 노릴 지 모르는 의형제들에게 찍혀나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폭도들은 그 수효가 매우 많았었다. 아무리 옥룡회가 폭도들을 지금 격퇴했다 하더라도, 그들을 물리치느라 체력을 적잖이 소진했을 것이다. 게다가 보아 하니 손에 살상력을 가진 무기는 들고 있지 않았다. 지금 치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있는 기회도 사라질 것이었다.


“돌격해라. 죄다 목을 쳐버려!”


그의 지시를 수하들은 신속하게 이행했다. 도망치는 폭도들을 경멸감 가득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밀쳐내고, 각종 길이의 칼들을 빼들 었다. 일렁이는 횃불 아래 시퍼렇게 빛나는 도신들이 희생물을 찾는 듯 번뜩인다.


그리하여 폭도들이 도망친 자리에 야쿠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는 제1방어선 수호를 자축하고 있던 옥룡회 조직원들에게 대단히 당혹스러운 사태였다. 다행이도 그들은 응봉산에서 오르는 다섯발의 폭죽을 볼 수 있었다. 제1방어선에서 철수하라는 신호였다.


“물러나라! 괜히 목숨 버리지 말아라!”


각 통로에서 지휘를 맡은 자들이 빠르게 인솔하여 야쿠자들이 당도하기 전에 철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뒤를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 시간을 끌어야 했다. 후위가 필요했다.


송월정에서는 정우가 그 역할을 자연스럽게 담당했다. 이곳에서 정우는 제1방어선 바리케이드 앞에서 포곤을 휘두르고 있었다. 자연히 발도돌격을 가해오는 야쿠자들을 정면에서 마주 대할 수 밖에 없었다.


“저놈들이!”


옆에 있던 재호가 목봉을 꼬나쥐었으나 정우가 제지한다.


“그걸로는 상대하기 어렵다. 일단 물러나서 쓸만한 걸 가져와 형제들과 다 같이 상대해라.”


정우가 그러면서도 움직일 기색이 없자 재호가 묻는다.


“그럼 너는? 여기서 시간 벌게?”


정우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호는 대단히 걱정스럽다는 얼굴이 되었으나, 목봉보다는 포곤으로 적들의 날붙이를 상대하는 편이 더 낫다고 스스로 판단한다.


재호는 여기며 봉을 거두고 “조심해라.”한 마디를 남기고 바리케이드를 훌쩍 넘어 사라졌다. 그 직후 바리케이드가 치워지기 시작했다. 정우의 퇴로를 확보하려는 조치였다.


정우는 돌격해오는 적들이 초식 범위 아래 들어오자마자 바로 첫 공격을 가했다. 윙 하고 포곤이 너울거리며 적들을 덮쳤다. 적들의 머리를 노린 이 초식에는 손속을 두지 않았다. 입에서 금강경도 외지 않았다. 분명한 살초였다. 그러나 이 야쿠자들은 폭도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들은 빠르게 칼을 처들어 정우의 첫 공격을 방어했다. 개중 그 타격의 위력 때문에 손이 잠깐 흔들린 자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바로 자세를 안정적으로 잡는다.


정우의 포곤이 다시금 날아든다. 한 번에 다수를 치려고 움틀이는 구렁이처럼 횡으로 덮친다. 그러나 이 타격 또한 빠르게 막힌다. 적들은 과연 싸울 줄을 아는 자들이었다.


저들은 정우가 거리 전체를 공격범위로 삼는 포곤을 쓰자 우선 돌격을 멈추고 서서히 압박해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군을 자칫 배지 않기 위해 각자 도신 범위 밖으로 분산되어 진형을 이룬 적들은 정우를 매섭게 노려보며 날아드는 포곤을 막는 동시에 칼날로 배어내려 한다. 휙휙 거리며 휘둘러진 일본도들이 매섭게 덮쳐오는 포곤을 받아낸다.


정우는 초식 전개를 위해 회수한 포곤을 얼핏 보았다. 단단히 뭉쳐졌음에도 날붙이들에 베여진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정우는 한발 한발 뒤로 물러나면서 계속 포곤을 휘둘러대었다. 포곤이 꿈틀거리고 넘실거리며 적들의 진로를 차단했다. 하지만 적들은 당황 한번 하지 않고 강력하게 내리쳐지는 포곤을 막고 받아치며 차츰차츰 전진해온다. 공격받으면 막고, 공격이 멈추면 다가왔다. 한쪽이 막으며 전진하면 다른 한쪽은 전진했다.


어느새 정우는 제1방어선 바리케이드가 있던 자리를 넘어 계속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정우는 목덜미에 땀이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저들이 급하게 들이치지 않는 것이 그로서는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이었다. 수십명의 적들은 정우의 체력만 빼놓아도 충분하다는 듯 여유롭게 공격을 막아내며 압박해 들어오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달려들기만 하던 폭도들보다 훨씬 어려운 상대였다.


그러던 중, 이제 적들 중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자들이 나타난다. 정우가 좌측으로 포곤을 한번 휩쓴 그 순간, 적들이 정우의 우측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포위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정우의 시선이 그쪽으로 간 순간, 그리고 포곤이 일시 주춤한 그 순간, 적들이 그 짧은 시기를 놓치지 않았다.


“죽어라!”


적들 중 한 명이 빠르게 달려든다. 찌르기 자세를 취하고 달려든 그는 순식간에 정우의 배를 한 번에 찔러버릴 위치까지 도약한다. 뻗어진 도신 끝이 정우의 배를 파고들기 직전이다.


그러나 정우는 빠르게 대처했다. 찰나의 순간, 정우는 몸을 우측으로 휙 비틀었다. 매섭게 찌르고 온 도신은 순식간에 허공을 찌른다.


그 야쿠자가 “엇!”하고 당황한 기색을 보인 순간, 정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찌르고 들어오느라 빈 적의 명치로 왼쪽 무릎이, 그리고 등에 왼쪽 팔꿈치가 동시에 날아들었다. 적은 숨이 넘어가는 소리 한 번 내뱉고는 정우가 무릎을 떼자마자 그대로 엎드린 채 엎어진다. 하지만 정우는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볼 시간도 없다. 적이 근접해 공격한 위협에 대처하느라 오른손에 들린 포곤이 일시 동작을 멈추었다. 그 바람에 공격범위 내로 적들이 빠르게 달려든다.


이에 정우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포곤을 휘둘렀다. 더 이상 적의 근접을 허락하지 않고 거리를 벌리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 순간, 지극히 곤란한 사태가 일어난다.


“잡았다!”


근접해 달려든 적들이 파괴력이 덜한 포곤 중간에 일본도를 걸친 것이다. 그 바람에 포곤이 출렁거리며 꺾여버린 그때, 적 여럿이 칼을 잡던 양 손 중 한 손을 놓고는 일제히 달려들어 포곤을 붙잡아버렸다.


정우는 한 번 힘을 써 보았다. 그러나 적어도 다섯 명이 달려들어 잡아버린 포곤을 어찌할 수는 없다. 그의 장기인 포곤술은 이제 무력화되었다. 하는 수 없이 정우는 손에서 포곤을 놓아버린다. 정우는 이제 적수공권이 되었다.


“훌륭한 재주였소.”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나오더니 칭찬의 말을 건낸다. 하지만 그 다음의 말은 섬짓하다.


“우리에게 괜찮은 볼거리를 보여준 대가로, 그쪽은 고통 없이 한 번에 가도록 깔끔하게 베어 드리지.”


그 말에 이제 야쿠자들이 승리감을 얼굴에 떠오르며 실실 웃는다. 그들은 베거나 찌르는 시늉을 하며 정우를 에워싸며 압박해 들어가려 한다.


이때 정우는 빠르게 뒤를 향해 곁눈질을 한다. 그리고 차분히 묻는다.


“그렇게 말씀하실 여유가 있소?”


“뭐요?”


그들은 곧 죽을 놈이 난데없이 허세냐며 코웃음을 친다. 그런데 이때 그들은 언덕 위에서 무엇이 오는지 그제야 볼 수 있었다.


“저······ 저거!”


정우의 뒤로 한 무리의 중국인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첫 대열에는 왼손에 등패를 잡고, 오른손에 대도와 유엽도를 잡은 자들, 그리고 그 대열 뒤에 도열하여 날카롭게 빛을 발하는 각종 창을 손에 쥔 자들. 그들은 하나같이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구이쯔를 죽이자! 구이쯔를 죽이자! 구이쯔를 죽이자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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