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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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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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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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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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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310화

DUMMY

히로요시는 퇴근하자마자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불안감에 가득한 그의 머릿속에 갖자기 생각이 휘몰아쳤다.


후지무라 중위의 추리력을 간과했다. 아니 그의 추리는 분명 허술했다. 하지만 내가 백부님의 조카인 이상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게 치명적으로 돌아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지부장님이나 정우에게 후지무라 중위만큼은 확실히 사살해 달라고 부탁해야 했을까?


그렇게 복잡한 생각과 긴장되어 차가워지는 속을 안고 약속장소인 육군병원 인근 빈터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곳에서 딱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정우, 민호와 만난 그 3월 2일 조선철도호텔 연회장에서 봤던 장교였다. 체구가 작고 얼굴이 동안이라 중학생처럼 보이는 그 장교였다.


초조한 듯 손에 봉투 하나를 들고 서성이던 그는 바로 히로요시를 알아봤다.


“당신이 그 나카하라 히로요시 사무관 맞소? 후지무라 선배님께 들은 대로 생겼군.”


히로요시는 그 장교의 말투에서 명백한 적의를 느꼈다.


“그렇습니다. 내가 나카하라 히로요시입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냈을 때, 돌아오는 것은 매서운 눈초리였다. 이 체구 작은 장교, 미나모토 신이치 중위는 매서운 눈으로 히로요시를 노려보았다. 미나모토 중위는 처음에는 믿기 힘들었다. 아무리 뛰어난 추리력의 후지무라 토비자루 중위라도 단지 그 불령선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봉천행 열차가 이유 없이 서행했다는 이유만으로 총독부에서 근무하는 5급 사무관을 불령선인과 한패로 판단하는 비약 가득한 추리를 내놓았다는 것이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나카하라 히로요시가 긴장감에 가득한 얼굴로 자기 눈 앞에 서 있는 이상, 후지무라 중위의 추리가 옳았음을 바로 인정했다. 미나모토 중위의 눈에 이 안경 끼고 살찐 골샌님 책상물림은 불령선인의 협력자요, 존경하는 선배들의 앞길을 망쳐놓은 죽일 놈이었다. 당장이라도 군도를 빼들어 목에 겨누고 왜 그랬는지 추궁하고 싶었다.


하지만 후지무라 중위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저 사무관에게 무력을 사용하지 말아야 했다. 대신 왼손에 들린 봉투를 넘겨 주어야 했다.


“이 안에 넘기기로 한 정보가 있소.”


미나모토는 흡사 던지듯이 봉투를 건내주었다. 히로요시는 바로 봉투를 뜯어 내용을 확인하였다.


그 안에는 후지무라 토비자루가 정자체로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나카하라 히로요시 씨.


내 추리가 틀리지 않았다면 당신은 불령선인들과 한패요. 나와 내 친구들에게 있어서는 군인 생활을 사실상 끝장나게 만들어 버린 원흉 중 하나요. 당신을 원망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겠소.


하지만, 그럼에도 난 그쪽에 대해 헌병에 증언할 생각은 없소. 우린 당신네들에 대한 원망보다 우리를 이용하고 버리려 드는 상부에 대한 원망이 더 크오. 그리고 이 정보를 넘기기에 적당한 사람이 없기도 하오.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요. 이 정보를 당신의 백부인 나카하라 가즈오 경무국장에게 반드시 전달하시오. 그리고 여기서 언급한 자들이 경찰의 수사대상이 되어야 하오. 우리의 조건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헌병에 그쪽 이름을 말할 것이오.-


히로요시는 그러니까 이들이 원하는 게 청부수사임을 알았다. 경무국장의 조카인 자신을 통해 경무국장에게 특정인을 대상으로 산 수사를 수뢰한다는 뜻이 분명했다. 그는 한평생 백부에게 누굴 수사해 달라고 말해 본 적이 없었기에 다소 난감함을 느끼며 편지를 계속 읽어나갔다.


그러나 히로요시는 편지 속에 담긴 정보를 보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건 반드시 백부를 찾아가야 하는 사건이란 확신에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우가키 가즈시게 총독과 혼조 시게루 관동군사령관은 어두운 뒷거래를 했다. 관동군의 봉천특무기관은 중국 아편밀매 조직들과 손을 잡고 아편재배와 밀거래 거점을 조선에 두었다. 관동군사령부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이를 수사하려 들자 수사방해를 시도하고 있다. 바로 우가키 총독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뇌물로 바치면서. 일회성 거래를 넘어서서 정기적으로 아편판매 대금의 일부를 상납한다고 약속하면서.


그리고 그 중간에 이시와라 간지 중좌가 있었다. 교활한 혀놀림으로 총독을 설득하고 제안에 넘어가게 한 장본인, 그가 만주사변의 배후 이시와라 중좌였다. 소름이 끼쳤다. 이자는 근 1년 동안 만주를 둘러싼 모든 음모와 공작을 뒤에서 조종해 온 자였다. 이런 음모를 만들고 진행하는 것이 그에게는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가키 총독은 약속에 응했다. 경무국이 진행하는 관동군의 아편밀수 수사를 중단시키고 가장 큰 방해물인 나카하라 경무국장을 치워버린다고 말이다. 여기에 더불어 공식발표 전까지 절대 발표되면 안될 만주철도 종점위치까지 누설하였다. 이는 지금 철도국에서도 모르는 정보였다. 총독은 부당한 뇌물을 받고 수사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부동산 정보 내부거래까지 한 것이다.


이건 예상 외의 정보였다. 대단한 정보였다. 백부가 이 정보를 토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내무성과 경시청까지 공유한다면 일본 정부가 뒤흔들릴 정보였다. 육군성이 기겁하고 헌병사령부가 자체조사를 실시해 관동군의 주요인사들을 체포하고 교체할 일이었다.


이 대단한 정보를 어떻게 얻었는자 물어보려던 차, 편지에 이렇게 쓰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관동군사령관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내 후배가 전달한 정보요. 바로 그쪽에게 이 편지를 전달해준 그 사람이오. 그 친구는 거래 현장에 동석하여 이 대화를 직접 듣고 내게 알려주었다오.-


그 말에 히로요시는 미나모토 중위를 곁눈질했다. 뭘 보냐고 성질을 부리는 것 같은 적대적인 눈빛이 돌아왔다.


-나는 여기 언급된 우리 상관들이 공정한 심판을 받길 바라오. 이들은 우리에게만 책임을 넘기고 자신들은 책임지지 않으려 들고 있소. 우리의 미래가 무너질 동안 저들은 자리를 지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려 하고 있소. 나는 그 꼴을 결코 볼 수 없소. 그래서 내가 그쪽에게 품은 원한이 있더라도, 이렇게라도 협력을 해 주려는 것이오. 그러니 다시 강조하지만 이 정보를 반드시 경무국장에게 전달하시오. 나는 그자들이 끝장나는 꼴을 보고 싶소.-


물론 그렇게 하겠습니다, 후지무라 씨. 히로요시는 만족한 미소를 한번 짓고 편지봉투를 코트 안감에 넣었다. 가장 무서운 적이었던 후지무라 토비자루 중위가 정보제공자가 되다니 세상 일이란 참 알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적에게 심대한 타격과 혼란을 줄 수 있는 특급정보를 입수했다는 점에 기분이 고양되었다.


“이 정보를 직접 들으셨다고요? 정말 고맙습니다.”


히로요시가 미나모토 중위에게 부드럽게 감사인사를 건냈다.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신 겁니다. 어떻게 더 감사를 드려야······”


그러나 히로요시는 자신이 너무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뭐 이 새끼야?”


미나모토 중위가 그 말에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군도에 손을 가져다댄 것이었다.


“이 역도, 반역자, 반국체(反國體) 새끼야!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해? 네놈은 지엄하신 천황 폐하의 은혜를 입어 고등문관시험을 통과해 관리가 되었는데 나라를 뒤집으려는 불령선인들과 한패거리가 되었다지?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가 되어 역도짓거리를 해? 그리고 선배님들의 앞길을 이런 식으로 망쳐 놓아? 내 선배님 지시만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서 널 참했을 거다!”


히로요시는 괜히 입을 놀렸다고 후회했다. 저 자신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실제로는 1살밖에 어리지 않은 이 장교에게는 자신이 감사한다고 한 말이 지극히 비꼬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비록 자신을 적대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지만, 초면부터 반말에다가 욕설까지 퍼붓는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할 생각은 없었다.


“예. 예. 실례했습니다.”


히로요시는 저 장교와 더 엮이고 싶지 않아서 발길을 돌리려 했다. 이 정보를 아마 지금쯤 경무국장실에서 야근을 시작하고 있을 백부에게 전달하고만 싶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뭐 때문에 이딴 짓 하는 거냐, 이 역적놈아! 불령선인들이 네놈에게 뒷돈을 얼마나 먹인 거냐!”


귓청을 때리는 그 말에, 히로요시는 그만 속에서 욱하는 마음이 올라와 참을 수가 없어져 버렸다.


“난 그 사람들에게 한 푼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내가 적금통장 깨가며 돈을 냈지요.”


그는 자신의 신념이 모독받는 건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미나모토 중위는 더욱 흥분할 뿐이었다.


“네놈! 그 정도로 불령선인들에게 동조한다는 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무도한 짓을 저지르는 거냐!”


“당신 같은 군인들이 나라를 망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어서요.”


“뭐라? 네놈은 감히 폐하의 황군을 모독하는가!”


히로요시는 펄펄 뛰는 미나모토 중위와 뭔 대화를 하더라도 평행선을 달릴 것 같은 예감을 받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가고 싶었다.


“멋대로 만주에 처들어갔잖습니까?. 그것도 상부 지시도 없는데 알아서 결정을 내리고! 군인 사회는 관료 사회보다 더 상명하복에 충실하다고 알고 있는데, 이런 하극상 행위나 해대는 초유예 사태를 일으키고도 나라를 위한다고 할 셈입니까? 나라를 지킨다는 군이 앞장서서 국기문란 행위를 저지른 거잖습니까!”


“이······.! 이···.···!”


미나모토 중위는 이 일침에 다시 군도로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러나 차마 뽑지는 못하였다. 히로요시의 지적은 만주사변 이후로 늘 그를 신경쓰이게 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만 그들이 애국적 행위를 했다는 원로 장성들의 찬사나 어떠한 처벌도 없이 오히려 전공을 세웠다고 칭찬을 받아왔다. 그러나 장교로서 교육받은 그에게 정상적인 명령계통을 벗어나 상부 지시도 없이 멋대로 부대를 움직였다는 일은 언제나 그의 마음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국기문란 행위가 제대로 처벌은 커녕 군공을 세웠다고 칭찬받는 판이국입니다. 앞으로 이런 제멋대로의 행동을 하려는 장교들이 얼마나 늘 것 같습니까? 만주 다음은 어디입니까? 연해주? 화베이? 바이칼? 아니면 중국대륙 전체입니까?”


“시끄럽다! 만주는 본디 한족의 땅도 아니었어! 우린 만몽의 핵심이익을 보호하고 거기에 만주인을 위한 독립된 국가를 세워주려 궐기한 거란 말이다!”


“만주인의 독립국가? 그럼 우리 제국은 왜 조선을 독립시켜주지 않는 겁닊따?”


“그건 조선인이 소련이나 지나의 위협에 직접 대처할 만큼 개화되지 않았으니······.”


히로요시는 그 말에 대놓고 코웃음을 쳤다.


“그럼 만주인은 이미 개화되었단 말씀이군요. 근데 만주인은 청나라가 신해혁명으로 무너진 후 중국 국민정부의 통치를 받아왔는데······. 그럼 제국의 문명개화 능력이 중국의 문명개화 능력보다 뒤떨어진다는 말이 되지 않습니까?”


“이······. 이런 무례한!”


“꼭 논지에서 밀리면 무례하단 사람들이 있지요.”


미나모토 중위의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시뻘개졌다. 머리에서 김이 솟아오르는게 보일듯 말듯 한다.


“그딴 궤변으로 반역행위를 정당화하려 들지 말라! 네놈은 폐하의 관리로서 반역의 대죄를 저지르고 있지 않는가!”


그 말에 히로요시는 미나모토를 순간 얼어붙게 만들 언사를 입에 담았다.


“그렇습니다. 내가 히로히토 씨의 관리인 건 맞습니다.”


미나모토 신이치 중위는 입을 쩍 벌린 채 수 초간 가만히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항상 천황 폐하는 현인신이자 만세일계의 혈통을 이은 천황 폐하였다. “히로히토 씨”란 말이 일본인 그 누구에서라도 튀어나올 줄은 생각조차 못한 것이었다. 불령선인의 협력자라 할 지라도!


“감히! 감히 폐하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느냐! 이 역적놈! 반국체!”


미나모토는 이번에는 정말로 칼집에서 군도를 뽑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히로요시는 이 장교가 자신을 해치지 못하리란 확신이 있었기에 당당히 말한다.


“앞으로 장교님도 천황을 그렇게 부르게 될 겁니다.”


“무슨 허튼소리냐, 이노옴!”


미나모토 중위가 군도를 히로요시의 목에 들이댔다. 동맥을 직접 그을 정도로 가까운 칼날이 선뜻했으나, 히로요시는 망설이지 않았다.


“당신네들에게 책임을 다 뒤집어씌우라고 지시한 사람이 바로 히로히토 씨이기 떄문입니다.”


“이 새끼가 어디서 되도 않는 소리를!”


미나모토가 소리를 지르지만, 히로요시가 어조를 강하게 말한다.


“백부님께 직접 들은 겁니다.”


그 순간, 미나모토의 동공이 흔들렸다.


“겨······. 경무국장 말이냐?”


“그렇습니다. 백부님이 듣기로는 히로히토 씨가 그랬다고 하는군요. 책임은 당신들에게 묻고 상부에 대한 책임문제는 불문에 부친다고 말입니다. 사태를 시끄럽게 하지 않고 원만하게 끝내고 싶다는 게 천황 폐하의 지엄하신 어의올시다, 그 말입니다.”


“거······ 거짓말이다! 네놈의 술수다! 어떻게 폐하께서!”


“난 들은 대로 말할 뿐입니다. 히로히토 씨의 성지는 시종무관장실을 통해 정식으로 총독에게 도착했습니다. 명색이 총독부 관리인 만큼 나도 성지가 총독에게 들어왔다는 걸 잘 압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십시오. 해군 건함예산이 횡령당해 관동군으로 가고 있다가 강탈당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걸 히로히토 씨가 좋아 하겠습니까? 천황 뿐만 아니라 총리대신이니 원로대신이니 육해군대신이니 하는 자들이 좋아 하겠습니까? 그들은 사건을 묻어버릴 생각 밖에 없어요. 당신들에게 적당히 책임을 지운 뒤 입을 막아버릴 생각 밖에는 없습니다. 쇼토쿠(聖德) 태자 이래 일본의 국시가 된 와(和) 정신에 의거해서 말입니다.”


미나모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히로요시의 목을 겨눈 칼날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미나모토 중위 또한 군인이었다. 부대에서 근무하며 바깥에 새어나가면 문제시 될 일을 조용히 덮는 일을 여러 차례 듣고 봐온 터였다. 그런 그였던 만큼 최상부에서 사건을 덮기 위해 그들을 희생양으로 써버린다는 말은 대단히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히로요시는 측은함을 느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용당하는 삶에서 벗어날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에 대한 여러분의 충성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진정 나라를 생각한다면, 그런 잘못된 것이 먼저 타파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히로요시는 짤막하게 미나모토 중위를 위로하고 목에 겨눠진 군도를 잡아 치웠다. 미나모토는 힘없이 군도를 든 오른손을 떨구었다.


“그리고 경무국 차원에서 직접 조사하는 것은 힘들 겁니다. 대신 총리대신실로 이 증거자료를 직접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이미 백부님께서 다른 관련자료를 그렇게 보내기로 하셨더근요. 후지무라 중위님께 그 말 전해 주십시오.”


미나모토 중위는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어 고개만 한 차례 끄덕였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 길로 히로요시는 발길을 돌려 떠났다. 미나모토 중위가 “제기랄!”하고 욕지기를 내뱉으며 애꿏은 벽을 주먹으로 치는 소리를 들으며.


히로요시는 그 길로 즉시 경무국장실이 있는 총독부 청사로 향했다. 저녁 시간이 지난 후였지만 여전히 경무국장 사무실에는 불이 밝았다.


“뭐냐? 이 시간에 연락도 없이.”


나카하라 가즈오 경무국장은 야근 중에 갑자기 찾아온 조카를 보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불령선인의 협력자인 조카에 대한 못마땅함, 그리고 조카가 야간근무중인 경찰로 득시글한 경무국에 직접 들어왔다는 걱정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네 동료들 잡았는지 못 잡았는지 소식이라도 들으러 온 게냐? 그런 건 말해줄 수 없다.”


물론 히로요시는 경찰이 어디까지 형제들의 소재를 파악했는지 알고 싶긴 하나 그 문제로 백부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게 아닙니다. 백부님께서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뭔 정보? 너희들을 위해 날 움직여서 육군과 충돌이라도 하게 만들 그런 정보 말이냐?”


백부의 지적이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히로요시는 멋쩍은 웃음을 짓고 말았다.


“망할 녀석 같으니라고······”


나카하라 국장은 투덜거리면서도 히로요시가 내민 편지봉투를 받았다. 불퉁스러운 얼굴로 편지를 보던 국장은 서서히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이······. 이건 보통 정보가 아니구나!”


관동군사령관과 총독의 뒷거래. 이는 그가 불법적으로 총독 전화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알아낸 것이었다. 그 거래가 어떤 거래였는지는 어렴풋이 추리하고 있었다. 관동군 봉천특무기관이 조선 관내에서 시행하고 있는 불법적인 아편거래를 조선총독이 눈감아달라는 것. 그리고 그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자신을 경무국장 자리에서 밀어내는 것. 그런 자신의 추리를 입증해 줄 수 있는 확연한 증거자료가 손 안에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전혀 예상못한 경로였다. 히로요시가 가담한 불령선인들의 음모로 자금을 강탈당한 관동군 하급장교들이 상부로부터 버림받게 된 원한에 정보를 흘린 것이다. 국장은 사건 수사에서 이들의 행동이 변수가 될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이거라면 내가 의심하고 있던 많은게 설명된다! 정말로 총독은 관동군사령부와 뒷거래를 하고 있었구나!”


“이미 그걸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의심이 갈 수 밖에! 내가 아는 모든 정황들이 둘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가리키고 있었어! 이걸로 확실하게 된 게다.”


“그럼 백부님, 망설여하실 것 없습니다.”


히로요시가 단호히 말했다.


“이것도 같이 총리대신실로 보내주세요. 이건 초유예 국기문란 행위입니다. 불법 아편거래에 부동산 내부거래에 수사방해까지 전부 있습니다. 전부 뒤집어 엎고 발본색원하지 않으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 말에 국장은 불령선인들과 같이 노는 조카가 나라의 미래니 국기문란 행위니 하는 말을 입에 담는 게 퍽 우스꽝스럽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지금 조카에게 핀잔 줄 때는 아니었다.


“그래. 이것도 총리대신실로 보내야겠다. 이런 언어도단의 일이 일어난 걸 보고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 뒤에 국장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이런 일을 초래한 모든 자들이 응분의 책임을 지게 만들겠다.”


그 말에 히로요시는 다시금 크게 기뻐하며 “백부님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가 맞습니다!”라고 한 것이었다. 물론 나카하라 경무국장은 조카의 그 말에 전혀 기뻐하지 않고 혀만 끌끌 찼다.

다음 날 이른 아침, 국장이 부인 코즈에와 함께 아침상을 하던 차였다. 국장 부인은 뭐가 좋은지 아침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뭐가 그리 좋소?”


국장은 아직 그가 쫓겨나다시피 내지로 발령되게 되었다고 아내에게 말하지 않은 터였지만, 그래도 자신은 마음이 심란한데 아내는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니 조금이나마 언짢은 마음이 들었다.


“뭐긴 뭐요. 오늘이 계약하는 날이니깐 그렇지.”


“계약? 무엇을?”


“부동산 말이우. 부동산.”


“뭐? 아직도 그런 거 하오?”


국장은 여전히 부인이 부동산 투자를 빙자한 투기를 하려는 걸 알고 짜증을 냈다.


“이건 당신이 뭐라 해도 반드시 도장 찍고 말 거라우! 당신 정년퇴임하고 퇴직금 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애들에게 신세지는 것도 민폐잖아요! 그러니까 이 기회에 한방에 딱, 땡겨서 노후를 즐기며 사는 게 좋잖아요. 안 그래요?”


“거 쓸데 없는 짓 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소! 관리는 모름지기······.”


“아이고. 청렴 타령은 그만 하세요! 당신 정년 몇년 남았다고 이래요?”


이렇게 국장은 아침나절에 결론 안나오는 말싸움을 하고는 투덜거리며 정복으로 갈아입고 출근길에 나서려 했다.


그런데 그때, 현관까지 배웅하러 온 아내를 보고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근데 말이오. 땅 어디를 사기로 했소?”


“아아니. 이 양반이 관심 없는 척 하더니 이러는 거 봐.”


그러며 부인은 손에 입을 가져다대고 풋 하고 웃는 것이었다.


“군소린 됐고. 어디 살 거요?”


“청진이우. 청진. 거기가 만철 종점이 정말 유력하다우.”


“아. 그래.”


그렇게 넘기려던 순간, 국장은 기겁해 소리를 질렀다. 어제 후지무라 중위의 편지 속에는 총독이 나진을 만주철도 종점으로 정했다고 명시되어 있지 않았던가!


“찍지 마! 계약서에 도장 찍지 마!”


“예? 아니 뭔 말이우?”


국장의 기겁한 고함이 집을 쩌렁쩌렁 울렸다.


“청진 아니야! 청진 아니야! 절대 찍지 마!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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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309화 +3 22.01.01 283 6 18쪽
308 308화 +6 21.12.19 290 6 20쪽
307 307화 +4 21.12.12 301 8 23쪽
306 306화 +8 21.11.28 288 6 18쪽
305 305화 +12 21.11.23 291 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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