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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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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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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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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324화

DUMMY

안 박사는 공자묘로 쳐들어가는 폭도들과 같이 가고 있었다. 그는 다른 곳을 통해 중국인 거리로 접근하던 폭도들이 어떤 꼴을 당하고 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조직을 편성한 것도 아니고 연락망을 구축한 것도 아니었기에. 그저 안 박사는 이 정도의 맹렬한 기세라면 오늘 안에 중국인 거리를 전부 불태워 버릴 수 있을 거라 확신할 뿐이었다.


공자묘는 중국인 거리 외곽에 있었다. 중국인들은 공자를 위대한 가르침을 말한 성인임을 넘어서서 원시천존, 태상노군, 영보도군이나 이랑진군, 탁탑이천왕, 나타삼태자처럼 신앙의 대상이자 복을 내리는 신령으로 추앙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중국 대륙 이곳저곳에 공자묘를 건립하고 공자와 그의 대표적인 10명의 제자들의 목상을 만들어 그들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매며 복을 빌었다. 개항 이후 중국 외 다른 나라에 진출한 화교들도 마찬가지로 정착한 곳에 공자묘를 세웠다. 군자는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는다고 명백히 말했던 공자가 바랬던 일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공자는 중국인들에게 그렇게 기려지고 있었다.


안 박사는 폭도들과 함께 가며 그들의 기세를 높일 선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공자! 노나라 사람 공구! 상갓집 개! 그야말로 이나라의 모든 억압과 탄압과 퇴보를 초래한 장본인입니다! 공자의 억압적 사상이 우리를 발전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유교의 기술 천시 때문에 우리 조선은 바늘도, 철망도 못 만들어서 외국에서 수입해오고 총의 규격 하나 못 맞춰서 엉망진창인 무기만 가져야 했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에 벗어난다 하여 사문난적 낙인을 찍어 사상의 자유를 질식시켰습니다! 죽어버린 윤리인 삼강오륜과 예의범절을 내세워 신분차별과 남녀차별을 정당화했습니다!”


그의 연설에 폭도들이 환호한다.


“그렇다!”


“이게 모두 유교 성리학 탓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지옥에 있는 공자놈 나와라!”


안 박사는 폭도들의 파괴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와 같은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는 공자놈의 사당을 불태우며 지난 500년 동안 뒤쳐지고 또 뒤쳐졌던 조선민족의 새출발을 선언할 것입니다! 과거 묘청대사가 평양으로 천도하려 했을 때처럼, 그리고 세종임금이 훈민정음을 만들며 그랬던 것처럼, 짱꼴라 사대주의와 중화사상과 유교 성리학에서 벗어난 진정한 조선민족의 재출발이 여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폭도들은 “와아아!”하고 반기는 소리로 화답한다.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폭도들은 공자묘로 쇄도한다. 공자묘의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폭도들은 대번에 문을 열어젖히고 담장 안으로 난입한다. 인천의 공자묘는 규모가 크지 않았다. 담장 안에 있는 건물은 공자의 목상과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대성전(大成殿), 그리고 제기를 보관하는 창고가 전부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대성전은 폭도들이 든 횃불로 밝혀진다.


대성전 안쪽은 아직 시커먼 어둠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어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작디작은 불빛 하나가 있었다. 그 불빛은 너무 작아서 어두운 배경 속의 붉은 점처럼 보였다. 그것에 신경쓰는 폭도들은 없다.


“갑시다! 저기서 공자놈의 우상을 끌어내려 불태웁시다! 가서 우리의 자유를, 유교사상에 속박된 우리의 자유를 얻읍시다!”


안 박사가 뒷 대열에서 소리쳤다. 그 말에 앞 대열에 선 폭도들이 좋답시고 달려든다.


“지옥에 있는 공자놈 나와라!”


제일 먼저 달려든 학생이 기세 좋게 내지른 말이었다. 그는 공자상을 직접 불태운다는 기쁨에 겨워 대성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문제가 일어난 건 그때였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외쳐대던 이들이 기겁해 침묵한다.


“어억!”


가장 먼저 뛰어든 그 학생의 환호는 바로 비명으로 바뀌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비척거리며 뒷걸음질치며 나오더니, 뒤로 푹 고꾸라져 버렸다. 그의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제야 폭도들은 대성전 안의 어둠 속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후욱 하는 깊은 숨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누가 문선왕(文宣王)의 사당을 모독하느냐?”


그 목소리의 주인이 저벅거리는 발소리를 낸다. 그 발소리가 지극히 무겁다.


“누가 백대 제왕의 스승을 모독하느냐?”


그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앞으로 다가온다.


“누가 성학의 가르침을 모독하느냐?”


대성전 안 어둠 속에서 들리는 낮게 깔린 목소리에, 폭도들은 그 자리에 굳어서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저 목소리일 뿐이였다. 그저 중년 남성의 굵고 낮은 목소리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처음 듣자마자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마음 속에 일으키고 있다. 그들 로서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스스로 오랑캐 되길 택한 것들아.”


저벅거리는 무거운 발소리 후, 목소리의 주인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 괴인은 수염을 거칠게 기르고 나무로 만든 도리깨를 꽉 잡고 있었다. 대낮이었다면 눈부실 정도로 흰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말총갓을 썼다. 완전히 의관을 갖춘 선비였다.


폭도들의 횃불에 비친 그는, 자신의 눈길이 닿은 모든 이들을 그 자리에서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 그의 눈은 어둠 속에서 그만큼 빛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흡사 맹수처럼 안광을 뿜는 것 같았다. 살의로 가득한 그의 눈을 마주친 순간, 그 대상은 무력한 사냥감이 된다는 착각에 휘말린다.


공포로 숨죽인 폭도들에게, 그가 선언한다.


“너희는 살 자격이 없다!”


그리고 그 순간, 그가 폭도들에게 달려들었다. 손에 잡힌 도리깨가 거세게 날아든다. 도리깨의 자편이 철컹거리며 종으로 횡으로 휘둘러진다.


“아아악!”


순식간에 공자묘를 불태우겠다고 기세등등했던 폭도들이 공포에 겨워 비명을 지른다. 그 무시무시한 괴인이 잡은 도리깨가 맹렬한 타작을 시작한다. 그 한번에 수명의 머리가 깨져 나간다. 가슴팍을 얻어맞아 갈비뼈에 뚝 하는 느낌과 함께 오는 헤아릴 수 없는 격통에 몸부림친다.


괴인의 눈을 벗어나고 또 그가 한 명임을 안 폭도들이 “짱꼴라 새끼!”하며 각목이니 몽둥이니 쇠파이프니 하는 것을 휘둘러 대며 뒤와 양측방에서 달려온다. 그러나 괴인은 도리깨를 자기 몸처럼 휘두른다. 괴인은 도리깨를 머리 위로 올려 빠르게 원을 그린다. 도리깨가 휘둘러지는 범위에 그의 눈에서 벗어난 곳까지 공격범위에 들어간다. 그 때문에 뒤와 옆에서 달려들려던 폭도들이 얻어맞거나 무기를 거세게 맞아 놓치거나 또는 함부로 그 범위 안에 들어가지 못하던 때, 괴인은 도리깨 모편의 아래쪽을 오른손으로만 잡는다.


그리고 더더욱 큰 비명이 터져 나온다. 괴인이 이로서 공격범위를 늘린 후, 커다란 원호를 그리며 도리깨를 사방팔방으로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괴인의 도리깨는 폭도들이 차마 어찌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그의 도리깨가 모든 것을 부순다. 폭도들의 몸도, 그리고 증오와 파괴욕에 가득한 정신도.


폭도들이 아무리 전후좌우에서 덤벼들어도 소용이 없다. 날아드는 도리깨의 자편을 막으려 무기를 처들지만, 그 무기들이 도리깨 타작질에 부서진다. 아니면 그 타작질의 맹렬한 힘 때문에 무기를 놓쳐버린다. 그러고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한명이라고! 쫄지 마!”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며 쇠파이프를 휘두르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그는 “으아아······”하고 쇠파이프를 차마 휘두르지 못한다. 괴인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기 때문이다. 괴인이 내뿜는 안광에, 그의 증오심은 공포로 전환되었다. 오밤중에 산을 헤매다 만난 맹수, 영역을 침범한 사냥감에게 포효 하나 없이 날카롭기 그지 없는 이빨부터 드러내는 맹수, 낮게 그르렁대는 울음소리만으로 사냥감을 제압하는 맹수, 그것이 바로 그 괴인, 장백대호 천남건이었다.


천남건은 과거 정우의 아버지인 이항진 훈장의 집에서 기거할 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 시절 천남건은 무뢰배이자 마적으로서의 과거를 청산했다. 공자, 맹자, 정자 형제, 그리고 주자의 가르침이 이항진 훈장을 통해 그에게 전달되던 나날, 그 잊을 수 없는 나날이 싸움과 계략, 음모와 배신만으로 가득했던 이제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이항진 훈장에게 성리학의 가르침을 배우며 새로 태어났다. 그의 과거가 어떻건 간에, 배우고 노력하면 모두 성인의 반열에 들 수 있다는 주자의 가르침에, 그리고 주자를 조선에서 계승한 모든 이들의 가르침에 눈물을 쏟았었다.


그런 그에게, 주자의 근본가르침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한 우암 송시열이 지금 몇몇 자들에게 모독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시절의 남건은 이항진 훈장의 말에 격노했었다. 이항진 훈장은 현재 개화사상을 말하는 자들이 우암의 행적을 잘못된 방향으로 해석하려 한다고 조용히 탄식했었다. 그들은 우암이 윤휴나 박세당 같이 주자의 가르침을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해석한 자들을 사문난적으로 비판한 것을 가지고 그것에 ‘사상탄압’이니 ‘조선유학의 교조화’라는 딱지를 붙인다고 하였다. 윤휴나 박세당 등 사문난적으로 비판 받은 이들이 그 때문에 죽었다고 말이다. 실상 그 둘의 죽음은 사문난적이란 비판과 아무 관계가 없고, 그 비판 이후에도 둘은 벼슬자리를 이어갔다는 역사적인 사실은 전혀 고려되지 않거나 알려지지가 아니하였다. 이 훈장은 우암의 그러한 태도가 조선에서 이른바 ‘사상의 자유’를 질식하게 만들고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로 만들었다는 말을 이른바 개화되었다는 자들이 입에 담는다 하며 씁쓸해 하였다.


이에 남건은 격분하였다. 그때 남건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매섭게 말하였다.


“우암 선생께서 실수하셨습니다.”


그는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입에 담았다.


“제가 우암 선생이었다면 그런 자들이 송시열이란 이름 석자를 입에 담지도 못할 정도의 공포를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삼족을 멸하고 구족을 멸하여 그 피붙이까지 다 끝장내 그들의 삿된 망언들이 후세에 전달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았을 것이옵니다. 올바른 가르침에 분탕을 치려는 자들은 오직 공포만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관대하게 대하였음에도 무슨 사상의 자유 탄압이니 하는 소리를 들을 바에야 차라리 그게 더 합당한 방법이지 않았겠나이까?”


그때 남건은 그가 크게 실수하였음을 깨달았다. 이항진 훈장이 자신을 보는 표정에는 더 없는 안타까움이 서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남건의 말은 분명히 성학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행위였다.군자의 길도 장부의 길도 아니었다. 남건은 더 이상 무뢰배로 살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다시 무뢰배 시절의 잔학한 버릇이 나와버렸다고 생각하자 스스로를 두들겨 패 주고 싶은 심경에 휩싸였었다.


“죄송합니다! 이 못난 놈이 도리에서 벗어난 망언을 했습니다!”


남건은 방바닥에 머리를 찧을 기세로 무릎 꿇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다행히 이항진 훈장은 빙그레 웃었다.


“부끄러워 할 것이 없습니다. 그대의 모습은 공자님의 제자 중 한명인 자로와 같습니다. 자로 또한 공자께서 모독당하면 그러한 모습을 보였었지요. 가르침을 무력으로 수호하겠다는 그대의 뜻이 강고하기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공자께서 자로를 아끼셨음과 동시에 자로의 경솔함과 과격함을 여러 차례 꾸짖으셨음도 기억하십시오. 맹자께서 혈기를 다스리지 못하였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하신 것도 기억하십시오. 그것을 기억하신다면, 그대는 계속 군자와 장부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훈장의 위로와 지적에 남건은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부끄러움이 그날 남건을 온종일 휘감았었다. 남건은 자신이 계속 이런다면 결코 정인군자가 될 수 없을 것이라 여겨 한숨짓고 또 한숨지었었다.


하지만 이항진 훈장과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학살당한 뒤, 남건은 정인군자가 되기를 포기했다. 세상에 정인군자는 적고 소인배가 한가득이라는 결론에 다다르자, 남건은 정도에서 벗어나기를 택했다. 정도에서 벗어나서, 소수의 군자들을 다수의 소인배들로부터 지키는 길을 걷기로 맹세하였다. 그것이 사도와 악도라고 할 지라도, 이 때문에 자신이 비난 받을 지라도, 손에 수백 수천의 피를 묻힐 지라도, 그를 통해 마땅히 세상에 있어야 할 군자들을 소인배들의 음모와 망동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 여겼다.


장백대호 천남건은 지금이 바로 그 의무를 실천할 때로 받아들였다. 폭도들이 공자묘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직후, 그는 날아가듯 공자묘로 달렸다. 그는 공자께 앞으로 이곳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 사죄를 드리기 위해, 의관을 정제하고 대성전에 들어가 손수 향을 피우고 절을 올렸다.


비록 처음부터 살상을 전제로 하면 안된다는 의형 장 대인의 당부 때문에 그의 장기인 쇠도리깨, 무수한 적들의 두개골을 부수고 뇌수를 흩뿌린 편곤을 가져오지는 못하였다. 천남건은 명백히 이 자리에서 피를 보여서 폭도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공포를 안겨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겼지만, 물론 그는 의형과 의형의 조직 옥룡회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였다. 하지만 비록 쇠도리깨가 아닌 나무 도리깨를 가져왔어도, 그는 충분히 폭도들의 공포가 되고 있었다.


“하찮은 것.”


천 지부장이 그렇게 나직히 뇌까린 때는, 등 뒤에서 “짱꼴라 개새끼야!”라고 고함지르며 달려들려던 폭도 한 명의 목을 왼손으로 잡았을 때였다. 천 지부장은 그가 품속에 숨기고 있다 내지른 단도를 몸을 조금 튼 것만으로도 피했다. 그가 고개를 휙 돌려 칼을 내지른 폭도를 노려본 그 순간, 그 폭도 또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갑작스레 밀려오는 공포에 입을 딱 벌린 채였다. 그 직후 천남건은 비어있는 왼손으로 그의 목줄기를 틀어쥔 것이었다.


“커억······.”


그 폭도가 숨막히는 소리를 내뱉은 순간, 천남건의 왼팔이 높이 들어올려진다. 그 폭도의 양발이 지면에서 떨어져 발버둥친다. 손에서 단도가 떨어져 바닥에 쨍 소리와 함께 구른다. 대낮이었다면 숨막혀 컥컥대는 그의 얼굴이 자줏빛으로 물들고 있음이 보였을 것이다. 그는 양손으로 목을 조이는 천남건의 손을 풀려 애썼으나, 아무 소용이 없다. 천남건의 손은 그의 목을 단단히 조였다. 마치 교수대의 올가미처럼.


천남건은 왼손으로 그를 사실상 교수하면서, 다른 폭도들에게 안광을 내뿜더니 오른손으로 계속해서 도리깨를 휘둘러 댄다. 그의 타작질에 대항할 수 있는 폭도는 단 한명도 없다. 천남건은 그의 별호 장백대호처럼 호랑이처럼 보였다. 천천히 어슬렁대면서 안광을 내뿜는다. 그러다가 안광에 기가 질린 사냥감들에게 달려든다. 호랑이의 발톱이 사냥감을 후리듯, 천남건의 도리깨가 폭도들을 후린다. 호랑이의 이빨이 사냥감의 경동맥을 한 번에 끊어 놓듯, 천남건의 도리깨는 한 번에 폭도의 몸뚱이를 부순다.


천남건은 그러다가 자신의 왼손에서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끼고 이마를 조금 찌푸렸다. 적들에게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달려들던 한 놈을 잡아 교수하듯 올린 것인데, 다른 폭도들을 상대하느라 그 시간을 너무 오래 끈 모양이었다. 천남건은 이제 그의 손에서 질식사한 시체를 폭도들에게 던져버렸다. 그 시체에 맞은 폭도들이 나동그라진다.


천남건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럴수록 폭도들에게 둘러싸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가 부숴버릴 상대만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용캐 천남건의 타작질을 피하여 그에게 각목을 휘두르려던 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 각목은 천남건의 왼손에 딱 잡혀 버린다.


“무가치한 것.”


천남건이 그렇게 뇌까리며 그를 노려본 순간, 그 각목이 뚝 부러졌다. 눈 앞에서 반토막 난 각목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그 폭도는 천남건의 안광과 눈이 딱 마주친 순간, 몸에서 힘이 주르륵 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다.


머지않아 대성전 앞 마당은 부러진 뼈를 부여잡고 고통에 울부짖거나, 완전히 의식을 잃어 그러지도 못하는 몸뚱아리들로 가득해졌다. 천남건의 흰 도포는 이제 곳곳에서 튄 피로 얼룩졌다.


“이게······ 대체······.”


안 박사는 질겁한다. 저 괴인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것은 완전히 예상 밖의 사태였다. 공자묘를 불태우겠다고 달려들던 모든 이들이 난데없이 건물 안에서 튀어나온 저자 한 명을 당해내지 못하고 있다. 데리고 온 인원이 수백명이다. 그런데 그들이 저 괴인 하나를 상대하기는커녕 바닥에 쓰러져 비명지르고 신음하고 있다.


“아······ 안됩니다! 여기서 물러나면 안됩니다!”


안 박사는 그래도 어떻게든 폭도들의 사기를 북돋으려 한다.


“여기서······. 여기서 물러나면······ 우리의 투쟁이······. 우리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삽니다!”


그의 목소리가, 천남건의 주의를 끓었다. 그의 눈에서 뿜어지는 안광의 대상이, 안 박사에게 고정된다. 그의 도리께가 그를 막아서는 모든 것들에게 휘몰아친다.


“너, 오랑캐 놈.”


천남건이 도리께를 휘두르며 다가온다. 무거운 발걸음을 저벅거리고, 후욱 하는 깊은 숨소리를 내뿜으며. 그의 안광을 직접 접한 순간, 안 박사의 혀가 입천장에 붙은 듯 움직이지 못한다.


“누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천남건이 어떻게든 그를 막으려는 폭도들을 도리깨로 밀쳐내고 떨쳐내고, 한 명의 목을 잡아서는 대열을 향해 던져 무너트린다.


“그 말 다시 입에 담아 봐라.”


천남건이 그러며 안 박사를 향해 가까워진다. 한 걸음 한 걸음 씩. 자기 앞에 쓰러진 몸뚱이들을 짖이기며.


“왜 다시 말하지 못하지?”


천남건은 이제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붙박힌 안 박사 앞에 선다. 그의 도리깨를 휘두를 범위 안이었다.


그는 다시 묻는다.


“왜 다시 말하지 못하지?”


천남건의 도리깨가 머리 위로 처들어진다. 그의 물음이 새로 더해진다.


“왜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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