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KKA 님의 서재입니다.

경성활극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로맨스

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최근연재일 :
2023.08.15 19:04
연재수 :
332 회
조회수 :
107,539
추천수 :
3,801
글자수 :
2,778,318

작성
22.09.14 21:58
조회
272
추천
3
글자
13쪽

314화

DUMMY

일어날 뻔했던 폭동이 사전에 제압되었다는 정보는 지나정 일대 집결한 경찰들에게 빠르게 전달되었다. 창 밖의 거리에서 소총을 들고 차단선을 형성한 무장 순사들의 대열 사이로 순사 한 명이 오가며 뭔가 말을 전하자 한결 가벼워진 표정이 되어 산만해지기 시작한다. 대열은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지고 소총은 한대 모여 세워진다. 대다수의 순사들이 일어서거나 앉아서 담배를 피우더니, 경찰 트럭이 하나 둘씩 도착한다. 이들은 소속된 경찰서나 파출소로 서로에게 경례를 붙인 뒤 돌아가기 시작한다.


장 대인은 창 밖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싱글벙글이다.


“현제. 정말로 위험한 시간은 끝났다네! 폭동은 일어나기도 전에 끝났고 우리 거리는 안전하다네! 이제 현제와 조카들은 안심하고 군산으로 갈 수 있을 것이야! 이제 슬슬 이 거리도 평소대로 돌아갈 필요가 있겠지. 지난 며칠 간 다들 대단히 고생이 많았네. 앞으로 바쁘겠군. 피난 간 상인들에게 돌아와도 된다고 소식 전하고 보상금도 지급하고 수고한 모두에게 포상을 내려야 하니 말일세.”


그러나 천 지부장은 아직 긴장의 끊을 놓지 않는다. 마음이 놓인 의형과 달리 그는 여전히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버금가는 규모로 일어날 법한 폭동이 시작하기도 전에 제압되었다. 이것이 이상하게 불안하였다. 그 소식으로 긴장되었던 분위기는 풀어지고 거리를 장악한 경찰들이 철수하고 있다. 만약 자신이 적이라면 지금을 최적의 시기로 여기고 새로운 폭동을 일으킬 것 같았다.


“대형. 아직은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그 여학생의 장례식은 다 끝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인천 부내에 폭도로 돌변할 수 있는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인천 외에도 옥룡회의 영채들이 있는 곳에서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흠. 항상 그렇지만 참 신중하구먼.”


장 대인은 의제가 신중론을 내세울 때는 항상 그 말을 귀담아듣는다.


“현제 말을 듣지 않으면 늘 손해만 봤어. 현제의 말이니 당연히 들어야겠지. 며칠 더 두고보긴 해야겠네. 현제 말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 경찰이 대거 빠진 지금이 더 위험할 수도 있겠구먼.”


장 대인은 그러고는 일단 피난간 사람들의 복귀와 거리 순찰 및 감시 인력의 철수는 보류하기로 한다. 그 대신 다른 영채들에서 아무 문제가 없는지 점검한다.


경성, 평양, 의주, 군산, 목포 모두 계전아의 살해 소식이 전파된 직후부터 현재까지 비상대기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인천 본채가 위험해지면 인력을 차출해 파견하겠다고 앞다투어 전문을 보내던 터였다. 장 대인은 인천은 본채 인력만으로 충분하니 각자 영채를 단단히 지키라고 지시하여 그러지 말라고 하였다.


다행이도 장 대인의 지시에 각 영채에 연락을 취해 돌아온 정보들은 긍정적이었다.


“하나같이 별 일 없다 하네. 신의주부터 목포까지 조용하다네. 그쪽들도 다 이미 사건 이후 구이쯔 경찰들이 거리에 깔렸다네. 현제 말대로 아직 마음놓을 상황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불길한 소식은 없는 모양이야.”


“그렇다면 다행한 일입니다.”


“아, 그리고 말일세. 인천경찰서에 폭동을 선동한 놈도 잡혔을 터인데 말이야······.”


장 대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신다.


“서장에게 그 18대 조상까지 욕보일 놈을 넘겨 달라고 요청할 생각일세. 그게 한 놈이건 두 놈이건 세 놈이건 열 놈이건 간에 말이야. 낯짝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 다음, 죄다 우리 형제들에게 조리돌림시키고 가지고 논 후에 배를 갈라 생간을 빼고 개들에게 먹이로 줘야 하지 않겠나?”


“마땅히 그러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 지부장은 의형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의사가 전혀 없었기에 주저 없이 동의한다. 사실 그는 장카이셴이 투견장에서 주도하는 처형이 오랜 친구 미하일 가레예프가 약속한 대로 시베리아에서 반혁명분자들을 격리하는 수용소에서 평생 고통받게 하는 것보다 자비롭고 온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주모자는 인천경찰서에 잡힌 게 분명하고 또 이 사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중화민국간의 일이었다. 경찰이 그래 준다면 폭동 주모자들을 옥룡회에 넘기는 게 더 타당할 것이었다.


“여하튼 다들 수고들 했네. 아직 우리 인원은 빼지 않더라도 휴식은 허용하는 게 좋겠어. 구이쯔 순사들에게도 보답은 해 줘야지.”


“그러하십시오. 저도 제자들에게 상황을 전해야겠습니다.”


정우를 비롯한 형제들은 중국인 거리로 들어가는 골목 초입의 건물들에 분산배치되어 있었다. 건물 옥상에서 상황을 관측 및 보고하며 상황 발생 시 가장 최전선에서 폭도들을 상대하는 임무를 수행할 것이었다.


그 중 정우 주리와 함께 중화루라는 명패가 달린 붉은 벽돌로 쌓은 3층짜리 중화요릿집에 있었다.


이 요릿집은 본디 개항 후 일본 조계지에 조선 최초로 건설된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이었던 곳이었다. 호텔의 운영이 어려워진 후 중국인이 인수하여 중화요릿집이 되어 과거 구미인들이 묶던 흔적만이 남았다.


중화루는 중국인 거리와 과거 일본 조계지였던 일본인 거리의 접경에 있어서 거리 너머 상황을 관측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그와 동시에 폭동이 발생 시 가장 먼저 공격받을 곳이기도 하였다. 작년 폭동에서 분노한 폭도들의 돌팔매에 창문들이 깨져 나간 곳이기도 하였다.


그런 가장 위험한 곳인 만큼 정우가 배치를 자처한 곳이었다. 폭동의 분위기가 인천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할 때, 정우는 옥룡회 사람들의 눈빛에서 어쩔 수 없는 변화를 보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여준 두 차례의 의거와 양국의 우의를 강조하는 천남건의 연설로 한때 멀어졌던 유대는 다시 끈끈해졌다. 그러나 그렇다 할 지라도 바로 다시 작년의 악몽 같은 폭동이 재현될 조짐은 아무리 정우 등을 만날 때 빵쯔라고 멸시했던 것을 사과한 이들조차도 다시금 낯빛에 거리낌을 보이게 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이에 정우와 형제들은 희생을 자처했다. 가장 위험한 최전방 구역에 투입되어 폭도들을 동포가 아닌 진압해야 할 오랑캐로만 보고 옥룡회와의 관계가 영원할 것을 몸소 증명하는 것이었다. 특히 정우는 상황 발생 시 폭도들에게 고립될 위험이 큰 중화루에 올랐다. 정우는 무공을 익히지 않고 증오만 가득 찬 폭도 무리의 포위 정도야 도움만 있다면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주리 또한 정우와 운명을 함께하기로 다짐한 지 오래였기에, 둘은 천 지부장이 지시한 날부터 기한 없이 중화루 옥상에서 중국인 거리 경계 너머를 밤낮없이 교대로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교대하는 옥룡회 사람 한 명이 사부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정우에게 알렸다. 이로서 정우는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럼 끝난 거예요?”


중화루 옥상에 오른 후 긴장감에 이전처럼 재잘거리지 않고 굳어진 얼굴만 하고 있던 주리가 간만에 웃음을 띄운다.


“아니. 사부님은 상황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보고 계셔. 일주일 이상 더 지켜보자시네.”


“지부장님이야 늘 그러시잖아요.”


그렇게 장난스럽게 입술을 삐죽인 주리는 양팔을 쭉 위로 뻗어 기지개를 펴는 것이다. 물론 폭동이 사전에 진압되었다는 말에 긴장이 풀리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더 감시하라는 이상 멋대로 내려갈 생각은 없다. 둘은 그래도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중국인 거리 너머 일본인 거리를 쌍안경으로 계속 관측한다.


시간은 흘러 저녁노을이 서쪽 바다에 깔린다. 지나정파출소 소속 경찰들은 긴장이 풀릴 대로 풀려 있었다. 당장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경보 때문에 24시간 내내 긴장하고 있던 이들은 폭동이 최소한 오늘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소총을 총기함에 집어넣고 제복 윗단추도 푼 채 잡담이나 하고 있다.


이때 파출소에 중국인들이 고개를 디민다.


“응? 무슨 일이지?”


중국인들이 들어오니 순사들이 돌아본다. 이 옥룡회 소속 중국인들과 파출소 순사들은 익히 안면이 있는 터였다. 지나정파출소의 경찰들이야말로 늘상 옥룡회 사람들과 마주보고 중국인거리의 치안을 그들에게 사실상 일임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 옥룡회가 뒤에서 챙겨주는 상당한 부수입을 받으며 뒷골목에서 진행되는 여러 불법적인 일들을 눈감아고 있다. 그런 관계로 이 중국인들이 파출소에 갑자기 들어오는 데 제지를 하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중국 억양이 다분히 석인 싹싹한 말투의 일본어로 말한다.


“순사 나리들. 대인께서 오늘까지 정말 수고하셨다며 나리들의 노고를 치하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작게나마 성의를 보내셨으니 부디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이들은 그러며 가져온 배달통 속에서 각종 중화요리가 담긴 그릇과 술병을 꺼낸다. 파출소장 이하 순사들은 계속 비상근무 때문에 삼시세끼를 간단히만 때우던 차였던 데다가 마침 저녁 때인데 이런 먹음직스러운 중화요리들에 백주까지 나오니 이게 웬 떡이냐 하고 기뻐한다.


“장 대인은 배려심이 정말 깊으시단 말이야. 이러니까 우리가 성의를 다할 수 밖에 없지.”


파출소장이 껄껄 웃으며 옥룡회 사람이 따라주는 술을 받는다. 각자 술잔에 백주가 채워지자 파출소장이 술잔을 든다.


“자, 우리 대일본제국과 지나······.”


파출소장은 그를 바라보는 옥룡회 사람들을 보고는 바로 실수했음을 알고 정정한다.


“아니 중화민국의 우호를 위하여 건배!”


적절하게 수정된 건배사 후 순사들은 요리에 달려들다시피 하며 먹고 마시며 난리통을 피운다. 그렇게 떠들썩해지던 그 때, 전신기가 울렸다. 말단 조선인 순사가 일어나 전신기를 확인한다.


“본서에서 전문입니다.”


“본서에서? 뭐라고 하는가?”


“에······. 그게······.”


순사의 얼굴에서 당혹감이 비친다.


“최소인원만 남기고 모두 서로 오라고 합니다.”


“뭐?”


“사유는?”


“이번 근무로 다들 노고가 많았으니 서장님께서 이번 근무인원 전체에 포상을 내리신다고 합니다. 본서에서 진행될 예정이고 최소인원은 나중에 따로 포상할 것이라고 합니다.”


“서장님이? 당장? 이거 난리 났네.”


파출소장 이하 경찰들은 대단히 곤란하게 되었다. 엄연히 근무시간인데 음주를 한 흔적이 얼굴빛과 입냄새에서 확연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서에서 당장 오라는 데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경찰들은 입에 구취 기능을 하는 약초를 넣고 씹거나 행사 때만 입도록 따로 다려 놓은 제복으로 갈아입느라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그렇게 최대한 말끔하게 외모를 다듬은 경찰들은 앞서 보고한 말단 조선인 순사 한 명만 남겨두고 순찰차에 탑승해 서로 떠난다.


중화루 옥상에서 지나정파출소 경찰들이 우르르 떠나는 것을 본 주리에게는 그저 의아한 일이다.


“갑자기 순사들이 단체로 어디 가네요?”


“무슨 일이지?”


정우도 순찰차들이 중국인 거리를 떠나는 것을 확인한다. 이때는 잠시 어디 문제가 발생해서 지원이라도 가는 거겠지 하고 넘긴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흐르고 거리에는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는다. 중국인 거리의 가로등들이 점등하고 건물 창 밖으로 전굿불이 켜진 게 보인다. 물론 상인들이 다 피난을 간 거리이기 때문에 불은 무장한 옥룡회 사람들이 킨 것이다. 이때 정우는 이상함을 느낀다.


“경찰 차량이 파출소로 돌아온 거 못봤지?”


“예. 전혀요.”


차량 서너 대가 떠났다. 그 정도면 파출소에 한두명 정도만 제외하면 소속된 모든 인력이 떠났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아직도 경찰들이 복귀하지 않는 건가?


그런데 그때, 이변이 일어난다.


“엑?”


주리는 파출소가 있는 중국인 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놀란 소리를 낸다. 정우가 그 소리에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둘은 보고 만다.


인적 드문 밤거리를 비추고 있던 모든 불들이 일제히 꺼져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둘의 눈에 비친거리 일대가 어둠에 휩싸여 버린다. 중국인 거리 초입에서 서성이고 있던 옥룡회 사람들이 놀라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그림자만이 어둠 속에서 어슴푸레 보인다.


“정전일까요?”


주리의 말에 정우는 대답하지 않고 일본인 거리 쪽으로 쌍안경을 돌린다. 순간, 정우는 직감적으로 이게 정전이 아님을 눈치챘다. 일본인 거리와 그 너머 거리의 가로등에서는 멀쩡히 불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기 전에, 정우는 또 다른 이변이 일어났음을 감지한다. 쌍안경을 북서쪽으로 돌렸을 때, 조그많지만 확실한 불빛이,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불빛이 들어왔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불타오르는 어느 건물의 형체였다. 꼭 교회당을 닮은 건물의 형체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경성활극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팬사운드트랙 링크 20.12.18 398 0 -
공지 『경성활극록』 쓰며 영향받은 작품과 참고문헌 +6 19.07.11 1,966 0 -
332 332화 +10 23.08.15 213 5 14쪽
331 331화 +10 23.04.16 183 6 15쪽
330 330화 +6 23.04.02 176 4 19쪽
329 329화 +6 23.03.19 203 4 18쪽
328 328화 +6 23.03.05 214 4 19쪽
327 327화 +6 23.02.26 210 4 15쪽
326 326화 +10 23.02.12 217 5 18쪽
325 325화 +14 23.02.05 240 6 17쪽
324 324화 +10 23.01.22 240 4 18쪽
323 323화 +8 23.01.20 232 4 23쪽
322 322화 +8 23.01.08 230 6 23쪽
321 321화 +14 22.12.25 246 6 18쪽
320 320화 +10 22.12.11 234 4 18쪽
319 319화 +10 22.11.27 251 6 14쪽
318 318화 +10 22.11.20 242 7 19쪽
317 317화 +8 22.11.13 240 5 14쪽
316 316화 +8 22.10.23 262 6 18쪽
315 315화 +8 22.10.02 250 4 13쪽
» 314화 +5 22.09.14 273 3 13쪽
313 313화 +5 22.08.15 276 5 29쪽
312 312화 +14 22.07.31 296 7 29쪽
311 311화 +2 22.01.31 302 4 19쪽
310 310화 +7 22.01.15 295 4 21쪽
309 309화 +3 22.01.01 283 6 18쪽
308 308화 +6 21.12.19 290 6 20쪽
307 307화 +4 21.12.12 301 8 23쪽
306 306화 +8 21.11.28 288 6 18쪽
305 305화 +12 21.11.23 291 9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