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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돌집님의 서재입니다.

콜로세움의 추언마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이돌집
작품등록일 :
2023.05.10 14:57
최근연재일 :
2023.07.18 22:18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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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3
추천수 :
145
글자수 :
223,650

작성
23.07.0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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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검투사(5)

DUMMY

적막이 감도는 양성소 안에 비시우스의 신음이 울려퍼졌다.


“끄으윽······.”


검투사들의 시선이 나와 쓰러져있는 비시우스를 향했다.


“비, 비시우스가 일격에······.”

“아니, 검을 들고 주먹으로 쳤어.”

“나는 보이지도 않았어······.”


나는 검투사들의 대화를 들으며 미소 지었다.

다행히도 비시우스가 외친 ‘항복’을 들은 녀석은 없어 보였다.


검투사들의 웅성거림이 커지자, 관리인이 나와 내 손을 들어 올렸다.


“오, 오리엔티누스 추언마 승!”

“······.”

“······.”


아쉽게도 환호는 나오지 않았다.

승자를 알리는 관리인의 말에, 검투사들이 다시금 입을 닫았던 탓이다.

수석 투사였던 비시우스가 너무도 쉽사리 제압당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때, 적막을 깨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짝짝.


“잘했네.”


만면에 한가득 미소를 띤 채 다가오는 아우렐리우스. 그는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쓰러진 비시우스를 내려다보았다.


“만용을 부린 대가로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끄으흑······.”


눈물과 콧물, 침을 질질 흘리며 부들대는 비시우스를 보며 웃고 있는 아우렐리우스.

고통받는 이를 보며 웃는 아우렐리우스를 보니, 역시 이 자도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그 아비에, 그 딸이랄까.


마치 벌레를 구경하듯 비시우스를 내려다보던 아우렐리우스가 몸을 돌려 내게 걸어왔다.


“자네도 킹 호른같이 조금 특이하군.”


“······?”


“킹 호른도 병종에 구애받지 않던 강자였지. 자네도 그런 부류라고 생각되는데······ 아닌가?”


“······.”


나는 말을 아꼈다.

지금 내 경지는 고작해야 일류와 절정, 그 사이의 어딘가다. 지금의 경지가 불만족스러운 건 둘째치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는 내 침묵을 다르게 이해한 모양이었다.


“겸손하군.”


“······.”


나를 바라보는 아우렐리우스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그 눈빛은 아주 익숙한 눈빛이었다.


탐욕.

하지만 내가 가진 배경과 재력을 탐내던 자들의 눈빛이 아니었다.

저 눈빛은 ‘나’라는 사람 자체를 탐하는 눈빛이었다.


마치, 나를 제자로 들이던 스승님의 눈빛처럼 말이다.


꿀꺽.


나를 보며 미소 짓던 스승님의 얼굴이 떠올라서일까?

소름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자네는 참 특이하단 말이지. 노예답지도 않고······.”


“······.”


“그래서 아주 마음에 들어.”


나는 작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했다. 아우렐리우스는 그런 내 어깨를 두드리곤 관리인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일 가이우스에게 전하게. 경기를 치러야 할 검투사가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대신할 검투사를 보내겠노라고.”


“아, 알겠습니다.”


“돌아가지.”


아우렐리우스가 휘적휘적 양성소를 빠져나가 마차에 올랐다.


마차 안에서 기다리던 안니아가 아우렐리우스를 맞이했다.


“저도 가고 싶었어요.”

“콜로세움에 가서 보지 않니.”

“그래도 가까이서 보고 싶단 말······.”

“안된다.”


아우렐리우스가 단호히 안니아의 말을 끊으며 고개를 저었다. 과보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관리인의 말에도 통제가 안 되던 검투사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결정이었다.


입술을 비죽 내밀고 뾰로통한 표정을 짓던 안니아.

그녀는 말없이 마차를 따라오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양성소에 맡긴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필요 없겠더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기서 뭔가 배울 게 없다는 말이다.”


“······.”


나는 저들 부녀의 대화를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에게 상의도 없이 저 땀내 나는 검투사 양성소에 나를 처박아둘 생각이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추언마.”


“······?”


“잠시 이리 와보게.”


아우렐리우스가 내게 손짓했다.


“자네가 원하는 건 힘을 되찾는 건가?”


“··· 그렇습니다.”


“힘을 되찾으면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그래봤자 개죽음을 당할 뿐이었다. 이 몸뚱이로 그 먼 길을 떠날 용기가 없기도 했고.


잠시 고민하듯 창틀을 두드리던 아우렐리우스가 내게 다시금 물었다.


“자네는 노예라는 신분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데, 맞는가?”


“······?”


“자네가 힘을 되찾아도, 주인이 보내지 않으면? 자네는 그래도 갈 거 아닌가? 주인의 명령을 무시하고 말이지.”


“······.”


아우렐리우스의 말은 정답이었다.

내 소유주인 파우스티나. 내단이 없는 그녀는 더 이상 내게 가치가 없다.

지켜야 할 대상도 아니고, 섬겨야 할 대상도 아니다. 내가 그녀를 지키고 따랐던 것은 조용히 내단을 손에 넣기 위해서일 뿐이었으니까.


“쯧. 새아가만 불쌍하게 되었군.”


“······.”


아우렐리우스가 말한 새아가가 파우스티나임을 모르지 않았기에, 나는 이번에도 침묵을 선택했다.


물론, 마차 안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안니아는 달랐다.

그녀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나는 파우스티나의 노예이고, 파우스티나는 그녀의 친구였으니까.


근데 내가 알 바인가? 사람을 납치해서 노예로 만들어놓고 충성을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보석으로 힘을 되찾는다고 했었지. 얼마나 필요한가?”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하나?”


“예.”


안니아가 가진 공청석유의 결정. 그거 하나면 된다.

문제는 그 결정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선 최소 초절정의 경지에 닿아야 한다는 것.

최소 초절정이라는 이야기다.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도 그 결정을 전부 소화해내기엔 부족할 것이 틀림없었다.

한마디로, 경지를 잃기 전의 나였더라도 그 공청석유의 결정을 온전히 흡수하기는 역부족이라는 뜻.


“혹시 안니아가 가진 그 하얀색 원석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


아우렐리우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완벽한 무표정. 생각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이들이 보이는 특징이었다.


“돌아가야 하는 기한은? 존재하는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 음.”


다행인 점은, 아우렐리우스는 생각 중이라는 사실 자체를 숨기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생각 중이라는 것조차 숨기던 노괴들이 득시글거리는 신교에서 지내다 보니, 이정도면 감지덕지라는 생각이 들 지경.


“그 보석. 자네에게 주지.”


“아빠!”


안니아가 소리를 빽 질러댔다.

아우렐리우스는 귀를 문지르며 웃을 뿐이었지만.


“귀 떨어지겠다.”


딸의 재롱을 보듯 미소 짓던 아우렐리우스가 뒤늦게 안니아를 달랬다.


“더 좋은 거로 사주마. 추언마의 사정이 딱한데 두고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니?”


“왜 저놈 사정을 내 걸로 챙겨야 하는데! 그리고 그건 다시 구하지도 못한다니까!”


“나는 분명 더 좋은 거라고 말했는데?”


“그거보다 더 좋은 건 없어!”


안니아가 단언하듯 소리쳤다. 옳은 말이었다. 공청석유의 결정보다 더 좋은 건 없다.

저 여자는 단순히 내게 그걸 주기 싫어서 우기는 것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곤란한 표정으로 허허 웃음을 짓는 아우렐리우스. 그는 딸에게만큼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 * *





아우렐리우스가 딸 안니아를 자신의 서재로 불러들였다.


추언마가 듣고 있던 곳에서는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원석을 그놈에게 주라는 말을 할 거면······.”


“안니아.”


아우렐리우스의 묵직한 목소리에, 안니아가 입을 닫았다.

그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꺼낼 때는 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네가 생각하는 추언마는 어떤 자니?”


“동방에서 온 강한 호위 노예······?”


“그는 킹 호른과 동급······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강자가 분명하다.”


“······.”


안니아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추언마가 파우스티나의 저택에서 괴한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았으니까.


“그리고 그 말은, 그자가 마음만 먹으면 나나 혹은 너를 죽이고 그 보석을 가져갈 수 있다는 말이지.”


“하지만 추언마는 노예잖아요. 그러면 안 되는······.”


“우리야 값을 주고 산 노예지만, 노예로 팔려 온 사람도 그리 받아들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얼마 전에도 노예가 주인을 찌르고 도망치다 잡힌 일이 있었잖니.”


“······.”


“추언마는 네가 가진 그 보석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네가 그 보석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아주 위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너를 노릴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주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안니아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여자는 아니었으니까.


“그 보석을 주는 대가로, 그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해볼 생각이다. 그 보석이 필요한 건 맞지만 당장에는 필요가 없다지?”


“맞아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힘을 되찾기 위한 ‘단계’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단다. 그러니 우리는 그 단계를 하나씩, 천천히 그에게 제공하며 그가 가진 것들을 이용해야지.”


“어떻게 이용하실 생각이신데요?”


아우렐리우스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마침 사자가 없어졌으니, 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


아우렐리우스가 말한 사자. 그건 바로 킹 호른이었다.


콜로세움의 절대자로 군림하던 북방의 전사이자, 루디스의 주인.


그가 없어진 콜로세움에, 새로운 신성이 등장할 시간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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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가이우스(3) 23.07.11 37 0 9쪽
45 가이우스(2) 23.07.10 33 1 9쪽
44 가이우스(1) 23.07.06 38 1 11쪽
» 검투사(5) 23.07.05 46 1 10쪽
42 검투사(4) 23.07.04 48 1 10쪽
41 검투사(3) 23.07.03 53 1 10쪽
40 검투사(2) 23.06.30 50 1 9쪽
39 검투사(1) 23.06.29 47 1 10쪽
38 각성(2) 23.06.28 52 1 9쪽
37 각성(1) 23.06.27 53 1 10쪽
36 공청석유(3) +2 23.06.26 63 1 10쪽
35 공청석유(2) 23.06.23 50 2 10쪽
34 공청석유(1) 23.06.22 55 2 10쪽
33 심문(3) 23.06.21 4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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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습격(1) 23.06.14 57 3 9쪽
26 새로운 관계(4) 23.06.13 58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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