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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돌집님의 서재입니다.

콜로세움의 추언마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이돌집
작품등록일 :
2023.05.10 14:57
최근연재일 :
2023.07.18 22:18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3,365
추천수 :
145
글자수 :
223,650

작성
23.06.11 23:05
조회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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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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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새로운 관계(2)

DUMMY

고개 숙인 남자 비텔리우스.

놈은 연신 사과를 건네며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자신은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둥, 오해라는 둥 같잖은 소리를 늘어놓으며 말이다.


등을 돌려 빠져나가는 비텔리우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쫓아가서 죽일까? 아니, 최소한 저 왼팔이라도 받아야······.'


도망치듯 떠나는 녀석을 보니, 다시금 살심(殺心)이 솟구쳤다.


게다가, 나는 이미 귀족을 상대로 검을 한번 뽑았었던 상황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일이 마무리되는 듯 보여도······.


'녀석이나 녀석의 아비가 내 신병을 요구하면, 과연 이 여자들이 나를 보호해줄까?'


답은······.

아마 아닐 거다.


이 여자들의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진 모르겠지만, 비텔리우스 녀석의 집안도 만만치 않아 보였으니까.


녀석이 작정하고 내 신병을 요구하면, 아마 넘겨줄 수밖에 없을 거다.


노예 하나 지키겠다고 가문 간에 껄끄러운 일을 만들진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 요구가 당장 오늘이나 내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스페냐드가 분명 내일 일을 벌일 거라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저놈을 베고 내단을 취하는 것이 맞다.'


물러서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나는 이미 멀리까지 도망친 비텔리우스를 바라봤다.

거리는 대략 십 장.


'안 되겠군.'


녀석을 쫓아 베고, 다시 돌아와 내단을 취하기에는 무리였다.

지금의 내 몸 상태로는 소화할 수 없는 동선.


결국 순서를 바꿔야 했다.


저놈을 베고 내단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내단을 취하고 저놈을 베는 것으로.


동선을 정하고, 나는 파우스티나를 바라봤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녀가 차고 있는 목걸이를.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화리의 내단이 있었다.


꿈틀!


나는 단번에 목걸이를 낚아챌 심산으로,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고작 여인의 목에서 목걸이를 뺏으려고 배운 금나수는 아니지만······.


턱!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았다.


움찔!


목걸이를 낚아채려고 준비하던 나는 깜짝 놀라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아주 잘했어."


뒤를 돌아보니, 안니아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 마치 만세를 하는 듯한 모양새.


나는 급히 손에 힘을 풀었다.


"네가 나서 준 덕에, 저 잡놈도 꽤 놀랐을 거야. 그러니 그쯤 해둬."


안니아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낄낄댔다.


"······."


굳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투명한 눈동자로 나와 눈을 맞춰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생각인진 알겠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허튼짓을 할 만큼 멍청한 놈은 아니거든. 저놈이나, 저놈 아비나."


안니아는 내 어깨를 연신 두드리며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안니아의 행동을 의아하게 지켜보던 파우스티나가 물었다.


"이게 지금 무슨 소리야?"


"못 봤어? 방금 얘가 비텔리우스를 쫓아가서 죽이려고 하던 거?"


"어!?"


파우스티나가 화들짝 놀랐다.

물론, 나도 놀랐다.


'이 여자가 내 미약한 살기를 읽었다고?'


내력조차 품지 않은 내 살기를 읽었다는 것. 그것만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 여자가 엄청난 기감(氣感)을 가졌다는 뜻.


나와 파우스티나가 동시에 놀라자, 안니아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우리 둘을 바라봤다.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몰랐어? 게다가 죽이러 가기 직전에는, 널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던데?"


"······."


파우스티나가 당황한 듯, 나를 바라봤다.

나는 파우스티나의 시선을 피하며 인상을 구겼다.


'저 미친 여자가 뭐라는 거야?'


분명 비텔리우스를 쫓기 전, 파우스티나를 바라보긴 했다. 정확히는 목걸이였지만.

설마, 내가 목걸이를 바라본 걸 오해한 건가?


안니아는 우리 두 사람의 반응을 즐기는 듯, 더 호들갑을 떨어댔다.


"나도 이런 노예 가지고 싶다! 같이 지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충성스러울 수가 있지?"


"······."


"걱정하지 마! 이 누나가 지켜줄게!"


안니아가 내 등허리를 두드리며 깔깔댔다.

미친 여자인가 싶다가도, 그녀의 가벼운 태도에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걱정하던 문제가 해결됐으니까.


비텔리우스가 허튼짓을 못 한다고 하면, 굳이 오늘 무리해서 일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스페냐드의 말대로라면, 당장 내일이면 내단을 취할 수 있기 때문.


“아 그래도 열받네. 저 새끼 처음에 말 걸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었어. 아빠한테 말할까?”


안니아가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앉은 꼴을 보면, 마치 동네 왈패 같아 보일 정도였다.


얼마나 대충 앉았는지, 의자 좌판에 등이 닿고, 등받이에 목이 닿을 정도.

금방이라도 미끄러져서 바닥에 엉덩이를 찧을 것만 같은 자세였다.


"아, 안니아."


파우스티나가 그런 그녀의 태도를 제지하려는 듯 말을 꺼냈으나······.


"아까 저 변태 새끼 말 못 들었어? 황제 폐하도 없는데 뭐 어때?"


안니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네 눈엔 저기서 눈치만 보는 다른 귀족들이 안 보이는 거냐?


남아 있는 귀족들이 구석에서 안니아를 훔쳐보고 있었다. 육식 동물을 마주한 소형동물들처럼 말이다.


'도대체 어떤 집안이기에, 이렇게 막 나갈 수 있는 거지?'


비텔리우스라는 놈의 아버지가 법무관이라고 했었나?


녀석이 꼬리를 말고 도망칠 정도라면, 그 이상의 가문일 텐데······.


아쉽게도 나는 이 나라의 정치체계나 구조 따위는 잘 모른다.


‘신교로 치면, 장로의 자녀쯤 되려나?’


침묵한 채 콜로세움을 내려보던 안니아. 그녀는 어느새 시작한 검투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기분도 안 좋은데 그냥 가자!”


안니아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쳤다.


“응?”


“재미없어졌어. 그냥 가자.”


안니아가 파우스티나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나는, 그녀들의 뒤를 쫓아 콜로세움을 벗어났다.





* * *





잘 포장된 도로 위로. 마차가 지나간다.


마차 안에서, 작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내일은 뭐 해? 내일 뭐 없으면 나 놀러 와도 돼?”


“응?”


“반지 줘야지! 가지고 싶다고 했잖아.”


“아, 맞다.”


건네받기로 한 반지 때문일까? 파우스티나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일정 없어. 어차피 매일 집인걸.”


“그래! 그럼 나 내일 온다?”


“응, 응.”


두 여인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마차는 쉬지 않고 달려 파우스티나의 저택 앞에 멈춰 섰다.


호위 노예가 조심스레 기별을 넣곤 마차의 문을 열었다.


파우스티나가 내리고, 안니아는 마차 안에서 손을 흔들었다.


“들어가! 내일 봐!”


“응. 잘 가.”


호위 노예가 마차의 문을 닫으려는 찰나.

안니아가 문을 잡으며 나를 불렀다.


“오리엔티누스!”


“······?”


“추언마였나? 아무튼!”


그녀는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파우스티나를 잘 부탁해! 오늘처럼 말이야!”


“······.”


그녀는 내게도 손을 흔들곤 문을 닫았다.


쿵!


마차는 그렇게 곧바로 다시 출발했다.


“······.”

“······.”


파우스티나와 단둘이 남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고압적인 태도로 내 턱을 들어 올리던 것이 바로 오늘 아침이건만, 어째서인지 내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


“들어가지.”


“예.”


나와 파우스티나가 정원에 발을 딛자마자, 문이 열리며 가사 노예들이 튀어나왔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탓일까? 부랴부랴 파우스티나를 맞이하는 노예들.

그리고 거기엔 스페냐드도 있었다.


“오셨습니까.”


스페냐드가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파우스티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파우스티나는 그런 스페냐드를 무시하고 지나쳐······.


“오리엔티누스. 아니, 추언마. 잠깐 이야기 좀 하지.”


“······ 예.”


파우스티나가 자신을 무시하고 나를 부르자, 스페냐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거참. 답답한 녀석이다. 저렇게 대놓고 적대적인 표정을 짓다니?

일을 꾸미는 녀석이 저렇게 멍청해도 되는 건가?


나는 녀석에게 꺼지라는 눈짓을 보냈다.

조용히 파우스티나의 뒤를 쫓았다.


파우스티나는 말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가사 노예들이 그런 그녀의 수발을 들려는 듯, 그녀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그녀는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이따 부를 테니 지금은 나가 있어.”


“아, 예.”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혼나리라 생각한 모양인지, 빠른 속도로 방을 나서는 가사 노예들. 그녀들은 나가면서도 연신 내 눈치를 살폈다.


파우스티나는 노예들이 모두 나가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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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검투사(2) 23.06.30 5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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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각성(2) 23.06.28 52 1 9쪽
37 각성(1) 23.06.27 5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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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공청석유(2) 23.06.23 50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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