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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김순성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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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성
작품등록일 :
2024.01.12 17:53
최근연재일 :
2024.01.28 06:06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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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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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따뜻한 평화 (5)

DUMMY


"하아아아······."


거구의 한 남자가 긴 한숨을 내뱉으며 침대 위를 뒹굴거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본다면 굉장하다고 감탄할 정도로 그의 외모는 험악했는데, 날카롭게 찢어진 눈은 미소라는 것을 잃어버린 듯했고 뭉툭한 코와 얇은 입술은 잔뜩 찡그러져 있어 그의 심기가 지금 매우 불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제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떡진 갈색 더벅머리를 벅벅 긁으며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형편없는 외모와 맞바꾼 것처럼 조각 같은 완벽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군살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평범한 자세를 취해도 근육이 움찔거리며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긴장한 상태를 유지하는 모습은 평생 동안 그가 고된 단련을 해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트레이 로건. 악실 가문에 고용된 용병으로 고용된 기사였다.


약 2년 전 맥 에단을 완전히 새로 바꾼 뒤폰 악실이 그에게 공장에 대한 보호를 의뢰했고, 지루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인간이라면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금액을 제시해왔다.


결국 의뢰를 수락한 트레이는 지난 2년 간 이곳 맥 에단에 묶여 있게 되었다.


물론 본인이 선택하여 이곳에 머물게 된 것이니 누군가를 탓할 수가 없다는 것은 스스로가 잘 알았다.


다만, 이곳은 너무나도 조용하고 한가했다. 어느 누구도 굳이 맥 에단이라는 북부 지방의 작은 도시까지 찾아와 철 쪼가리나 생산하는 공장을 습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몸이 근질거리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트레이는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고용된 마법사, 로켈리 러브라는 여자를 찾아가 하소연하며 제발 같이 악실 부자를 찾아가 계약을 끝낼 수 있게 말하자고 제안을 했다.

하지만 너무 심심해 미칠 지경이었던 트레이와는 달리 그녀는 이곳의 느긋한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고 오히려 마법 연구에 방해가 된다며 트레이를 자신의 방에서 내쫓았다.


혼자 단련을 하거나 수습 기사들의 상대를 봐주거나,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며 자연경관을 보는 것도 가끔이지.

트레이 로건은 투견이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로 피와 결투에 중독된 자였다. 그에게 이런 생활에 적응하라고 하는 것은 고문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결국 그는 남은 계약 기간 동안 병에 걸린 개처럼 혼자 끙끙 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억겁으로 느껴질 만큼 긴 시간 동안 고통받으며 지내서일까,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한숨을 내뱉던 트레이는 책상 위의 수정이 붉게 변해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수정은 분명 호위나 경비들에게 지급되는 호출기와 연결이 된 것이었다.


푸른색은 기본 상태였으며 노란색은 경계와 주의, 그리고 붉은색은 침입자를 발견했다는 신호였다. 트레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며 수정의 색을 다시 확인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근무를 해왔던 2년 동안 전혀 보지 못했었고, 그리고 앞으로 1년 더 남은 계약 기간 동안 이 붉은색을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왔었다.


신이 있다면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다 풀어버리라고 준 선물 같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신이 살아온 일생 동안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환한 미소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트레이는 주저 없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팬티만 입고 있었던 그는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던 바지를 대충 올려 입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아주 멀리에서 정말 붉은색의 불빛이 하늘을 향해 쏘아지며 침입자가 발견된 위치를 알리고 있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침입자가 나타났다며 기뻐한 그는 마력을 집중해 있는 힘껏 바닥을 박차며 불빛을 향해 뛰어올랐다.


마치 대포가 쏘아진 것처럼 커다란 파공음이 울려 퍼지며 창문과 함께 벽이 폭발하듯 터지면서 트레이는 하늘로 날아올랐고,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그는 공장 단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일 정도의 높이까지 순식간에 올라섰다.


그는 불빛이 쏘아지고 있는 장소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제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남자가 서로 검을 부딪히며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멀리에서 대충 보더라도 오히려 한 명의 남자가 두 명을 압도하는 듯한 양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름이 루미···아니 무네였나? 트레이는 압도당하고 있는 두 명 중 한 명이 악실 가문에 있는 수습 기사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뭐, 그럼 진짜 기사님이 한 번 나서볼까?"


트레이는 그들을 향해 공중에서 몸을 기울여 빠르게 낙하를 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마지인지 뭔지 하는 귀여운 수습 기사를 괴롭히는 못된 악당이었다.


눈을 뜨기도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공기를 가르며 떨어지면서도 그는 눈을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오히려 흔들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즐거운 표정을 하곤 검을 뽑기 위해 등 뒤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침입자 신호를 보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미친 듯이 뛰쳐나온 그는 검은커녕, 오히려 바지라도 챙겨 입은 것이 다행으로 상의를 완전히 탈의하고 있었다.


그는 아차 싶으면서도 높은 공중에서 빠르게 떨어진 것이 무색할 만큼 빙그르르 돌며 편안하게 공장의 지붕에 착지하며 알렌의 앞을 막아섰다.


-투웅!


신체의 마력을 조절해 자신 충격을 흡수한 트레이는 착지하는 동시에 다리를 들어 올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알렌을 걷어찼다.


갑작스럽게 공중에서 떨어진 트레이의 등장에 알렌은 깜짝 놀라면서도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올려 그의 일격을 막아냈다.


-콰아앙!!


검과 인간의 다리가 충돌하며 일어난 소리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커다란 폭발음이 터지며, 처음으로 알렌은 상대방에게 밀려 그대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지금까지 자신이 상대했던 수습 기사 둘을 합한 것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힘까지 합하더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알렌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빠르게 몸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어디 부러지거나 금이 간 것 없이, 급하게 공격을 막았기 때문에 손목이 욱거리는 것과 바닥에 부딪히며 조금 긁힌 생채기를 입은 것 뿐. 크게 문제가 될 만한 부상을 입진 않았다.


그가 다시 바닥에 내려오게 되자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루시와 루벤을 선두로 수십의 경비들이 재빠르게 그를 둘러싸며 포위를 하기 시작했다.


"야. 그러다 다친다 너희들."


트레이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지붕에서 내려와 그들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데미안이라고 했나? 나 검 좀 빌려주라."

"···루시입니다."


루시는 이젠 비슷하지도 않은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는 트레이에게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검을 넘겨주었다.


자신의 손에 익지 않은 검을 허공에 휘두르며 거리감을 익힌 트레이는 뭔가 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오시. 너희들은 끼어들지 마라. 이건 내 거다."


몇 년 만에 나타난 귀중한 상대였기 때문에 독식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자신과 알렌의 싸움에는 이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도 있었다.


트레이는 알렌이 자신의 발차기를 막았을 때 그의 검이 매우 낡은 검이라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그런 검으로 수습 기사 둘을 동시에 상대하며 압도하고, 어느 정도 진심이 담긴 자신의 일격을 막아내면서 부러트리지 않을 정도로 검을 섬세하게 하게 다루는 자였다.


그런 자를 상대로 조무래기가 몇 명이 도우건, 그에겐 방해만 되며 걸리적거릴 뿐이었다.


"당신, 이름은?"

"············."


그의 질문에 알렌은 침묵하며 검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에 트레이는 씩 웃음을 지으며 똑같이 검을 들어 올렸다.


환희에 찬 미소가 번지다 못해, 그것은 마치 광기에 휩싸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섬뜩했다. 그 악귀 같은 모습에 루시는 순간적으로 섬뜩함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고 루벤과 경비병들 또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트레이는 마치 포악한 짐승이 먹잇감을 사냥하듯 저돌적이면서도 저절로 공포감이 떠오를 정도로 맹렬하게 알렌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알렌이 공격을 하든 방어를 하든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보였고, 그는 방어를 포기한 채 원초적으로 달려들며 힘껏 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검과 검이 강하게 부딪히며 날카로운 불꽃이 튀기며 맞닿은 서로의 검은 심하게 흔들렸다.

손아귀가 모두 터질 것 같은 충격에 알렌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고, 트레이는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드디어 자신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공격은 확실히 수습 기사들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격 하나하나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으며, 분명 빈틈투성이로 보이는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공격할 수 없을 정도로 움직임이 매우 빨랐다.


그러나 트레이 또한 알렌에게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의 공격과 두 번째 공격만 하더라도 그는 알렌이 자신처럼 마력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번 합을 주고받으며 그는 알렌이 전혀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알렌은 오로지 순수한 신체 능력만으로 자신과 동등하게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트레이는 이상함을 느끼고 있는 힘껏 검을 휘두르며 알렌과의 거리를 잠시 벌렸다. 그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너 대체 뭐냐?"


트레이는 궁금증이 어린 목소리로 알렌에게 물었다.

어쩌면 다른 이들이 보았을 때는 트레이가 알렌을 몰아붙이던 중 갑자기 흐름을 스스로 끊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알렌은 아직까지도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고,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왜 오러를 사용하지 않지?"


오러. 기사가 마법사와 더불어 인류 최강의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여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지고, 무기에 오러라는 마력을 입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베어내고 꿰뚫어버리는 존재.

그것이 기사였다.


수습 기사가 반쪽짜리 기사라 불리는 이유도, 그들이 신체 강화를 할 수 있지만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였기 때문이었다.


신체 강화와 오러의 발현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은 마치 달리기를 하는 동시에 그림을 그리거나 저글링을 하듯 일반적인 정신과 육체로는 불가능하며 선천적인 재능과 더불어 오랜 시간 동안 피와 땀을 흘리는 노력을 더해야 했으며, 그렇기에 정식 기사의 자격을 갖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트레이는 알렌을 기사가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누군가는 기분 나쁘게 방어만 하는 자라며 비하할 수도 있었지만, 트레이는 목숨을 건 결투를 수없이 많이 경험해 보았다.


견습 기사와 정식 기사의 차이는 누구보다도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경험상 알렌은 분명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정식 기사,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라 부르기에 아깝지 않은 자였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

"그런가? 그렇단 말이지···."


가볍게 자기 말을 무시하며 자세를 바로잡는 알렌을 보니, 트레이는 자신 또한 수습들과 다를 바 없이 그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승부욕과 함께 제대로 열이 오른 그는 검을 쥔 손에 힘을 꽉 쥐었다.


긴 겨울 동안 땅속에서 웅크리다가 봄을 맞이하며 새싹이 고개를 들 듯, 그의 검 끝에서부터 얇은 물방울 형태의 투명한 푸른 마력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이내 장막처럼 얇고 넓게 펼쳐지며 부드럽게 검을 휘감으며 전체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기사의 상징이라 불리는 오러였다.

이제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상대하겠다는 트레이의 태도에, 알렌은 조금 난감함을 느꼈다.

이제 더더욱이 편하게 탈출하는 것은 글렀다.


알렌은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트레이의 강한 공격들을 막아내고 나니 빠르게 체력이 소진되어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차라리 도망을 치려면 조금이라도 체력이 더 남아있는 지금 도망치는 게 나았다.


"그럼 억지로 끌어내 주마!!"


트레이는 지금까지처럼 아주 정직한 경로로 투박하고 맹렬하게 알렌을 향해 달려들었다.


알렌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호승심과 질투, 궁금증과 호의 등의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고 그 감정들은 모두 하나하나가 반짝일 정도로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다.


그는 한 명의 무인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기사로서 알렌에게 당신도 진심으로 내게 맞서라고 외치고 있었다.


결국 알렌은 도망을 치는 것을 포기하고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공격을 피하는 것은 무인으로서 자신이나 트레이 모두에게 수치였으며, 폭력적이면서도 순수한 트레이의 감정에 알렌의 평온하던 감정이 조금이나마 끓어올랐기 때문이었다.


트레이의 검과 알렌의 검이 맞닿기 직전, 그의 낡은 검에서도 똑같은 오러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전류가 터지듯이 피어난 백색의 밝은 오러는 낡은 검의 균열을 따라 타고 흐르며 아주 빠르게 검 전체를 감쌌고, 다음 순간 트레이와 알렌의 두 오러가 맞부딪히는 순간 폭발이 일어나듯 강력한 충격이 일대를 감싸며 풍압을 일으켰다.


역시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고, 트레이는 속으로 안심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아쉬워했다.

그의 오러는 일정한 형태로 발현되며 검을 안정적으로 두껍게 감싸는 반면, 알렌의 오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시시각각 불규칙적으로 형태가 변하며 두께 또한 종이처럼 매우 얇았기 때문이었다.


트레이는 다음 순간 알렌의 검이 부서지며 자신이 승리하게 될 것이 너무나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이 싸움을 질질 끌어가며 알렌에게 굴욕을 줄 만큼 비열한 인물도 아니었다.

그는 일격으로 모든 것을 끝낼 생각으로 더욱 강하게 알렌을 몰아붙며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을 비웃듯, 오히려 알렌의 검은 아주 부드럽게 트레이의 검을 베어냈다. 불안정하다고 여겼던 알렌의 오러는 트레이의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뚫어내며 검째로 잘라내었고, 순식간에 그의 목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검이 닿기 직전, 알 수 없는 충격이 복부에 전해지더니 트레이는 그대로 몸이 붕 떠오르며 공장 외벽으로 날아가 부딪혔다.


"···어?"


승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기사의 패배에, 그들의 결투를 지켜보던 이들은 혼란에 빠쪄 눈만 깜빡였다.


그들 중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루시였다. 그는 재빠르게 의식을 잃고 쓰러진 트레이를 향해 달려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것뿐, 크게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루시는 두려움과 의문이 가득 찬 눈으로 알렌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가 트레이를 걷어차 날려버리지 않았다면 그가 휘두른 검에 트레이는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었다.


"쿨럭!"


그 때 알렌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기침을 했다. 무언가가 속에서 들끓는 듯한 기침과, 입을 가린 손 틈 사이로 찐득하게 흘러나오는 것은 분명 피였다.


루시와 루벤을 상대할 때와는 달리 지금은 무척이나 지치고 수척해 보일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본능적으로 루시는 지금이라면 알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이다! 전원 공격해!!"


상황을 판단한 루시가 알렌을 향해 달려들고, 그와 동시에 루벤 또한 그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그들을 시작으로 수많은 경비병이 검을 들고 알렌을 향해 달려들었으며 조금의 틈이 생기면 수많은 총탄이 발사되어 그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자신을 조준하는 총구를 피하고 검을 휘둘러 다가오는 검날을 튕겨내던 알렌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정말 육체가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알렌이 어쩔 수 없다며 자포자기를 할 무렵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비겁한 자식들아!"


앙칼진 소녀의 목소리.


총성과 고함이 오가는 전투의 현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은 목소리였다. 알렌을 비롯한 모든 이들은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생기 없는 푸석푸석한 갈색 머리를 뒤로 꽉 묶은 포니테일로 고정하고,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두 눈을 표독스럽게 뜬 소녀. 벨리베 뤼제베가 그들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녀의 양손에는 각각 자기 주먹만 한 울퉁불퉁한 구체 형태의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점차 그녀의 손으로 향하자, 그녀는 얍 하는 소리와 함께 그 구체들을 있는 힘껏 경비병들과 알렌을 향해 집어 던졌다.

그들은 멍하니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구체를 바라보았다.


기계 장치 따위로 조잡한 구 형태를 만들어낸 울퉁불퉁한 그것은 폭탄처럼 삐, 삐 거리는 불길한 소리를 내었고 타이머처럼 붉은색 불빛을 점멸하기를 반복했다.


툭. 폭탄이 바닥에 떨어지고 허무하게 데굴데굴 굴러다니자 벨리베는 머리 위로 올려두고 있던 고글을 내려쓰며 그들을 향해 장난스럽게 외쳤다.


"폭탄이니까 다들 피해!"


누가 봐도 폭탄처럼 생긴 물체가 코앞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으로 몸을 내던지다시피 뛰어들며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파아아아앙!


그러나 그녀의 경고와 달리 터져 나온 것은 화염과 폭발이 아닌, 살상력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매한 냄새의 연기였다.


다만, 그 연막탄은 기존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연기를 내뿜으며 순식간에 모든 이들을 한 치 앞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연기 무리 속에 가두었다. 손을 뻗어도 자신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연기에 경비들은 물론 수습 기사인 루시와 루벨 또한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그 속에서 유일하게 특수 고글을 쓴 벨리베만이 모든 것이 보이는 듯 편안한 걸음을 옮기며 알렌을 찾아냈다.


"따라와요."


벨리베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시야를 잃고 움직이지 못하는 알렌의 손을 이끌고 유유히 연기 속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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