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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성
작품등록일 :
2024.01.12 17:53
최근연재일 :
2024.01.28 06:06
연재수 :
8 회
조회수 :
65
추천수 :
1
글자수 :
46,691

작성
24.01.15 21:36
조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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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따뜻한 평화

DUMMY


오크들에게서 구해주긴 했으나 숲 속은 언제 다시 위험한 상황이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벨리베를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한 알렌은 그녀를 따라 한 허름한 나무 오두막에 도착했다.


집이라 부르기보단 창고라 부르는 것이 조금 더 어울릴 것 같은 작은 크기의 집 앞에 선 벨리베는 싱긋 웃으며 문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그녀의 안내에 집 안으로 들어선 알렌은 조금이나마 몸 주변을 맴돌던 추위가 벗겨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벨리베의 집은 겉보기처럼 내부도 크게 볼 것은 없었다. 주방과 거실, 침실의 구분이 따로 되어 있지 않은 원룸형의 작은 공간이었고, 그 안에는 침대나 옷장 등의 가구들이 놓여져그나마 집의 형태를 띄고 있을 뿐이었다.


창문이 있는 벽면은 침대보다 더 커다래 보이는 책상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먼지를 비롯하여 고철처럼 보이는 인형 모양의 잡동사니들이 뒹굴고 있었고, 평범한 사람들은 몇 년을 들여봐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복잡한 설계도들이 이불처럼 잡동사니들의 위를 덮고 있었다.


벨리베는 오크에게 쫒길 때도 품에서 놓은 적이 없었던 커다란 기계를 책상 위에 쿵 올려놓았다.


원기둥 형태의 그것은 매끈한 표면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에 꽂는 용도인 것처럼 끝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솟아있었고 반대편은 끝이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며 펼쳐져 있었다.


알렌이 멀뚱히 서서 내부를 살피는 동안 벽난로에 불을 붙히고 땔감을 넣던 벨리베는 그제서야 집 안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침대의 이불도 아침에 일어나서 빠져나왔던 번데기 같은 모양 그대로였고, 바닥에는 3일 정도 빨래를 하지 않고 널브러뜨린 옷과 속옷들이 먼지와 함께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알렌의 시선이 책상에서 벗어나 침대나 다른 곳을 향하려 하자 벨리베는 비명을 질렀다.


"우아아아악!! 자, 잠깐만!! 눈 감아요, 빨리!!"


갑작스런 그녀의 비명에 알렌은 영문을 모르겠지만 일단 순순히 눈을 감아주었다.


집 안의 상태가 난장판인 것은 사실 그녀가 문을 연 순간부터 보았었지만, 우당탕탕하는 소리와 무언가를 급하게 쓸어내고 치우는 요란한 소리에 알렌은 그녀의 체면을 지켜주고자 모르는 척을 했다.


"헤, 헤엑. 됐어요. 이제 눈 떠도 돼요."


단 5분 만에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집 안의 상태는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깔끔하게 변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텅 비어버렸다.

기적의 청소법으로 방의 청결도를 몇 단계나 위로 끌어올린 벨리베는 숨을 헐떡이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슥 손등으로 닦아냈다.


"···근데 왜 쫒기고 있던 거지?"

"네? 아, 아아······."


알렌의 물음에 벨리베는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도 그럴 것이 벨리베의 집은 오크의 습격을 받았던 숲으로부터 약 20분 정도 떨어진 숲 바깥쪽에 있었다.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긴 하지만 어지간한 생필품들을 다 구할 수 있는 도시 또한 주변에 있었으니, 알렌이 보기엔 굳이 그녀가 위험한 오크나 다른 마물이 사는 숲에 들어갈 만한 이유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죄송해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잠시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알렌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자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기도 했고, 자신이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도 그에게 도망치라고 경고까지 해주던 걸로 보아서 심성이 나쁜 사람 같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자신은 지나가는 길이었으니, 그대로 가던 길을 가면 됐다.


"그러고보니 생명의 은인이신데 제 소개도 못 드렸네요. 제 이름은 벨리베 뤼제베예요."

"알렌 벨."

"···알렌?"


벨리베는 알렌의 이름을 듣고 뭔가 낯설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러나 워낙 흔한 이름이기도 했으니 그 묘한 익숙함은 그리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뭐, 어쨌든. 식사하지 않으실래요? 이래뵈도 제가 요리는 꽤 하거든요."

"아니. 몸도 녹였으니 이제 가야겠어."

"네?! 지금이요?"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창문 밖을 바라보자, 알렌 역시 그녀를 따라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 밖에는 어느덧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새하얀 눈이 짙게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나가면 얼어죽는 것보다 눈에 파묻혀 질식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알렌은 문고리를 잡았던 손을 조용히 놓았다.


"일단 자리에 앉으세요. 조금 기다리시면 식사 드릴게요."

"그럼 신세 좀 질게."


알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 한 가운데에 있는 식탁 앞에 앉았다. 식탁은 언제 마지막으로 닦은 것인지 모를 만큼 많은 먼지와 음식물이 묻어 있었는데 이 위에서 식사를 하다간 병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말없이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대충 식탁의 먼지를 닦았다.


그러나 위생 상태와는 별개로 벨리베의 요리 솜씨는 그녀의 말대로 제법 수준급이었다.

그녀는 일반 가정이나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튜를 냄비 째로 끓여와 그릇에 덜어주었는데 짭조름한 소금간이 적당히 되어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산미와 고소함, 매콤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입맛을 돋구었고 그 따뜻한 국물을 한 입 씩 먹을 때마다 아직 몸에 남아있던 추위와 피로가 조금씩 날라가는 듯 했다.


"먹을만 하죠?"

"그렇네."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벨리베가 눈을 반짝이며 묻자 알렌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근데 혹시 몇 살이시길래 저한테 왜 바로 반말하시는 거예요?"

"···그게 중요한가?"

"아뇨, 중요하진 않은데···. 혹시 모르잖아요. 나보다 어릴 수도 있고."


그 말에 알렌은 굳이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피식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벨리베가 몇 번 알렌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알렌이 워낙 말수가 없는 편이기도 했고 단답으로 대답을 하거나 아예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어색한 분위기로 조용한 식사를 하게 된 벨리베는 말을 거는 것을 포기하고 알렌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눈을 반 쯤 가릴 정도로 길게 자란 잿빛 머리가 얼굴을 가렸지만, 그 사이로 드러나는 부드러운 눈매 안에는 신비로울 정도로 검은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깔끔한 피부나 오똑한 코는 완벽을 추구하는 조각사가 심혈을 만든 것처럼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형태를 띄고 있었고, 누가 보아도 호감형의 얼굴은 적어도 길거리에서 굶어죽지는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성인 남성 평균 정도 되어 보이는 적당한 키와 덩치는 아무리 살펴 보아도 오크는 커녕 불량배 한 명 제대로 이기지 못할 것처럼 보였고,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 또한 얼마나 낡았는지 과일조차 제대로 깎지 못할 것 같았다.


물론 그럼에도 그가 보여준 힘은 벨리베 그녀 인생의 처음, 아니 앞으로의 일생에서도 다시 보기 힘들 만큼 대단했으니 알렌이란 사람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벨리베 뤼제베! 안에 있나!!"


그렇게 서서히 식사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밖에서 한 남성의 목소리가 집 안까지 쩌렁쩌렁 울려왔다.


조용히 내리기만 하던 짙은 눈은 이제 바람까지 합세해 눈보라로 변해 창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고 있었는데, 이 험한 날씨를 뚫고 누군가가 찾아왔다는 사실이 신기해 알렌은 벨리베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누가 찾아온 것인지 알고 있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벨리베 뤼제베! 지금 나오지 않으···."

"아, 좀! 조용히 해요! 이제 나갈 거니까."


벨리베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집 안으로 쳐들어올 것 같던 시끄러운 목소리는 그녀의 대답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녀는 한숨을 푹 쉬며 문을 벌컥 열었다.


문 밖의 풍경에 알렌은 속으로 조금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적어도 수십은 되어보이는 무리의 사람들이 일제히 벨리베를 노려보며 서있던 것이었다.

눈보라를 견디기 위해 방한복을 껴입었다지만 그것만으론 추위를 다 막을 수 없었을 텐데, 차렷 자세로 멈춰선 그들은 조금의 떨림도 보이지 않고 묵묵히 서있을 뿐이었다.


벨리베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 불청객들 중 한 명이 느릿느릿 앞으로 나왔다. 30대가 조금 넘은 듯 보이는 금발 머리의 남성이었다.


그는 무리 중에서 유일하게 벨리베를 바라보는 눈빛이 부드러웠는데, 그 눈빛은 부드러움을 넘어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느끼할 정도로 과했다.


"이 시간엔 어쩐 일이세요, 로베르트 도련님?"

"내가 무슨 일이 있어야 너를 찾아올 수 있었나, 벨리베? 그냥 날씨도 안 좋은데 잘 있나 조금 걱정돼야 말이지."


단순히 안부를 묻고자 찾아왔다고 하기엔 함께 온 일행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알렌은 로베르트의 뒤에 선 일행들을 슥 훑어보았다.


그들은 저마다 검과 창, 혹은 기다란 장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언제든 뽑을 수 있도록 잔뜩 몸에 힘을 주고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만약 누군가에게 이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괴수 토벌을 하러 간다 말해도 쉽게 믿을 정도의 기색이었다.


알렌은 이들의 방문이 로베르트의 말처럼 단순한 목적이 아님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벨리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심장은 완성했나?"

"···제가 몇 번을 말씀 드려요! 그건 이제 만들지 않는다구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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