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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성
작품등록일 :
2024.01.12 17:53
최근연재일 :
2024.01.28 06:06
연재수 :
8 회
조회수 :
67
추천수 :
1
글자수 :
46,691

작성
24.01.16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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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따뜻한 평화 (2)

DUMMY


로베르트의 말에 벨리베는 무심코 알렌의 눈치를 보며 짜증 섞인 말투로 대꾸했다.


그제서야 식탁에 앉아 아직까지 식사를 이어가고 있던 알렌을 발견한 로베르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벨리베. 저런 버러지 같은 놈보다 내가 훨씬 잘 해주겠다고 몇 번이고 말했잖아. 이런 허름한 집구석 쯤은 화장실로 딸려있는 저택도······."

"뭐, 뭐라는 거예요! 저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난 분이거든요?!"

"···아하?"


그는 벨리베를 슥 밀치며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알렌은 로베르트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자 식사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로베르트와 눈을 맞춘 알렌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로베르트는 귀족이었다. 그것도 이 지역에서 제법 힘이 있는, 보유한 재산 또한 상당한 그런 귀족 집안의 아들.


그런 이들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특유의 거만함이 들어 있었다.

자신보다 낮은 이들을 본능적으로 무시하고 차별하고야 마는 선민 의식이 가득한 그 눈빛이 너무나도 한심해 보여 알렌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특별히 좋은 말로 할 때 여기서 꺼질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지. 이 로베르트 님을 마주하고도 살아남았다고 자랑해도 좋다."


밖은 여전히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어, 지금 차림으로 나가면 마을이나 도시에 도착하기도 전에 동사하고 말 것이었다.


그럼에도 로베르트의 말에는 한 점이 거짓이나 기만도 없었으니, 그의 말은 타인에 배려가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순수한 이기적인 호의에서 나온 것이었다.


"잠깐, 제 생명의 은인한테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음? 이딴 놈이? 푸하하하! 이 낡은 검으로 멧돼지나 잡을 수 있나?"


벨리베의 만류에도 그는 알렌을 조롱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뒤로는 완전 무장을 한 호위 수십이 있었기 때문에 초라한 행색에 낡은 검을 찬 알렌이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뭐···. 이 새끼는 나중에 처리하기로 하고, 벨리베. 그래서 심장은 어디 있지?"

"말했잖아요. 만들지 않는다니까요?"

"······하."


여전히 자신에게 날카롭게 반발하는 벨리베의 태도에 로베르트는 낮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그는 있는 힘껏 팔을 휘두르며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이 년이 오냐오냐 해주니까!"

"꺄악!!"

-짜아악!


자신보다 훨씬 큰 체격의 성인 남성에게 뺨을 맞은 벨리베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넘어졌다. 로베르트는 방금까지 그녀에게 부드러운 말투를 썼던 것이 다 연기였던 것처럼 마귀가 들린 듯 새빨개진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내가 분명 이번 달까지 완성하라고 말했잖아, 벨리베. 내 마음도 받아주지 않고 심장도 만들어주지 않으면 난 결국 폭력을 쓸 수밖에 없어."

"미, 미친 새끼."

"또 그런다, 또."


뺨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충격에 일어서지 못한 벨리베가 욕설을 내뱉었다. 로베르트는 있는 힘껏 그녀를 내리 찍을 생각으로 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결국, 더 이상은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알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쯤 해두지 그래?"

"너는 또 뭐···."

-스륵


로베르트는 말을 내뱉던 입술과 몸짓을 그대로 멈추었다. 분노에 가득 찼던 목소리도 끊기고, 터질 듯이 새빨갛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알렌이 조금 움직였다고 느낀 순간, 이미 그가 검을 뽑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던 것이었다. 바로 눈앞에 있음에도 그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그것은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호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 너······!"

"움직이지 마. 베이면 병 걸릴 수도 있으니까."


알렌의 말에 허둥거리며 어설프게 알렌에게서 벗어나려던 로베르트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무리 낡은 검이라 하더라도 연약한 인간의 피부를 찢는 것은 금방이었다.

거기에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이 낡은 검은 대체 손질을 언제 한 것인지 녹이 잔뜩 슬어있었고 언제 묻었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 오래된 핏자국들이 잔뜩 엉겨있었다.

알렌의 말대로 조금이라도 스치면 파상풍이든 뭐든 병에 걸릴 수 있을 것 같은 형태였다.


"밖이 많이 추워 보이니까 집 안으로 초대하고 싶긴 한데."


알렌은 무기를 빼들고 자신을 노려보는 로베르트의 호위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허튼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금방이라도 로베르트를 베어버릴 것 같은 알렌의 태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 들어오기엔 집도 좁고, 여긴 또 내 집이 아니란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알렌은 검을 거두었다. 검이 목에 닿아있는 동안 숨을 참고 있었던 로베르트는 겨우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헐떡였다.


알렌은 그런 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비슷한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로베르트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올린 알렌은 그를 밖의 호위들에게 던져주었다.

그들은 재빠르게 뛰어와 로베르트를 받아, 그가 눈밭에 파묻히는 것을 겨우 막았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란 뜻이야."

"씨, 씨발! 저 새끼 죽여버려!"


알렌에게서 완전히 벗어나고 나서야 수치심과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로베르트는 자신의 호위들을 밀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던 호위들은 그를 향해 겨누고 있던 소총의 방아쇠를 일제히 당겼다.


-타타다다당!!


순간적으로 주위의 어둠이 걷힐 정도로 많은 불꽃이 튀기며 화약 먼지가 일었다. 총알들은 알렌을 향해 빠르게 날아와 벨리베의 집 내부에 박히며 부서졌고, 가구들과 바닥과 벽이 터지듯이 깨지며 나무조각들이 튀어올랐다.


그러나 분명 총에 맞았으리라 생각했던 알렌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지근거리에서 확실히 조준하고 발포하였기에 절대 빗나갈 리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눈 앞에서 알렌의 기척을 놓쳤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대체 어디로······."

"위다! 위!"


알렌은 인간이 뛰어오른 것이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높은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시야를 극단적으로 짧게 만드는 거센 눈보라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는 가볍게 눈밭에 착지하며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채애앵!!

"무슨 힘이···!"


알렌이 검을 휘두르는 동시에 다섯 명의 호위가 그를 향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지만, 도리어 뒤로 물러나게 된 것은 그들이었다.


전문적으로 훈련 받은 자신들이 고작 한 명의 남자에게 힘으로 밀렸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얼이 빠졌지만 그들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소총을 겨누고 검을 바로 잡으며 자세를 고쳤다.

그러나 그들은 곧이어 다가온 거대한 충격에 금세 전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와 검을 맞댄 이의 검들은 물론 총들마저도 어느 틈엔가 부서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낡은 단 한 자루의 검 때문에.


"도, 도련님! 아무래도 지금은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말이 돼?! 우린 20명이고 저 새낀 한 명이야!"


알렌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인물이라 느낀 눈치가 빠른 한 명이 재빠르게 말하자 로베르트는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 역시도 겁에 질린 것은 마찬가지. 알렌과 마주하면 원초적인 것에 가까운 공포가 차가운 공기를 타고 자신에게 흘러오는 것 같았다.

마치 절대적인 포식자와 마주한 것처럼, 그의 본능은 어서 도망치라며 미치도록 애원하고 있었다.


"···젠장. 가자! 어서!"


결국 로베르트는 본능을 따르기로 했다.

피가 날 정도로 아랫입술을 세게 깨문 그는 전의를 상실한 호위들을 이끌고 눈보라 속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들은 혹여나 알렌이 자신들의 뒤를 쫒지 않을까 수시로 뒤를 확인했지만, 알렌은 도망치는 이들은 굳이 쫒지 않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 벨리베를 살폈다.


"괜찮아?"

"네, 뭐."


벨리베는 로베르트에게 맞은 한 쪽 뺨이 부어올라 있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는지 그 외에는 멀쩡해보였다.


다만 그녀의 표정은 단순히 고통과 수치심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복잡해 보였는데, 마치 무언가에 대한 잘못을 참회하는 듯한 후회가 섞인 얼굴이었다.

알렌은 유일하게 부서지지 않은 의자에 앉아 그녀에게 물었다.


"저 녀석이 말한 심장이라는 게 대체 뭐길래 너한테 이러는 거지?"

"그건······."


그의 물음에 입을 열던 벨리베는 선뜻 대답을 하는 것이 어려운지 입을 다물었다.


"죄송해요. 말씀드릴 수 없어요."

"그래?"


알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그녀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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