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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성
작품등록일 :
2024.01.12 17:53
최근연재일 :
2024.01.28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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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9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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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평화 (3)

DUMMY


"이런 망할!"


로베르트는 책상에 주먹을 내리쳤다. 벨리베의 집에서부터 부리나케 도망치느라 얼어붙은 손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은 단지 추위 때문만이 아니었다.

굴욕과 공포, 분노와 모멸감에 의한 떨림. 스스로의 의지로 제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상대는 초라한 행색을 한 떠돌이에 고작 낡은 검 한 자루만을 들고 휘두를 뿐이었다. 그에 비해 자신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20명의 호위들과 함께였다.


그럼에도 도망칠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격차가 느껴졌다. 다시 맞선다 해도 절대로 다시 이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벨리베······."


그 사내를 오늘 처음 만났다는 벨리베의 반응은 분명 거짓이 아니었다. 어떻게 운이 이렇게도 없을 수가 있는가.

하필이면 그녀를 도와준 인물이 그렇게나 강한 인물이었고, 그 자를 만난 게 하필이면 오늘이라니.


"아마도 기사 급의 인물로 보입니다, 도련님."

"···나도 알아."


인간이 생기고 수없이 많고 긴 역사가 생겼지만, 단 한 번도 최강이라 불리지 않은 적이 없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었다.

바로 마법사와 기사.


마력을 다루며 숙련된 이들의 마법은 가히 천재지변이라 불러도 될 만큼 가공할 만한 힘을 다루는 마법사.

그리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육체를 극한으로 단련하고, 그 육체를 다시 마력으로 강화하는 인간인 기사.


그들의 앞에서 재래식 병기는 의미를 잃었고, 한 명 한 명의 전투력은 걸어 다니는 전술 병기나 다름이 없었다.

로베르트는 턱을 괴고 고민을 했다.


필요하다면 이쪽도 기사와 마법사를 동원할 수는 있었다. 문제는 그 귀한 인력을 끌어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명분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로베르트의 아버지, 뒤폰 악실에게 대체 무엇이라 보고를 해야 할까. 벨리베란 계집을 잡아들이려고 하는데 옆에 기사 급으로 보이는 떠돌이 검사가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라고 할까?

자신의 무능력함을 떠벌릴 생각이 아니라면 그냥 조용히 있는 게 나았다.


차라리 호위 몇 명이 아까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면 명분이야 생겼겠지만, 그 검사는 충분히 빼앗을 수 있었음에도 무기만을 부쉈다. 아마 전투를 이어갔더라도 호위들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고민을 하며 책상 위를 툭툭 두드렸다.


"먼저 벨리베 쪽에 사람을 붙여둬. 그 남자에게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도 잘 살피고."

"회유를 할까요?"

"그래. 돈이든 뭐든 다 준다고 해. 그냥 무시하고 갈 길 가라고 해도 좋고, 고용할 수 있으면 더 좋고."


그리고 만약 회유가 되지 않는다면 무조건 죽여야 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있어 그 남자가 큰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맥 에단. 제국의 최북단 지방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며, 혹한에 가까운 날씨 때문에 찾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었다.

사계절 내내 눈이 내리는 날씨와 산과 호수가 새하얗게 얼어붙는 신비로운 풍경은 이따금씩 관광객들을 불러모았고, 이곳의 사람들은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모습일 뿐, 현재의 맥 에단은 알려져 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끝없이 펼쳐져 있던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은 부서지고 깨졌으며 그 위로는 검은 매연을 기다랗게 내뿜는 거대한 공장 단지들이 들어서 있었다.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굴뚝들이 설치된 공장들은 끝없이 가동되어 열기를 내뿜고 주위의 얼음과 눈을 녹였으며 그 밑으로 드러나는 것은 새까맣게 타들어가 죽어버린 썩은 토지였다.


매캐한 공장의 매연은 도시의 대기를 뿌옇고 만들 정도였고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 중 몇몇 이들은 그치지 않는 기침을 하며 괴로운 얼굴을 했다.

그나마 맥 에단을 찾아오던 관광객들 역시 이전과 달라진 모습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였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모두 얼마 머물지 못하고 떠나기 일쑤였다.



벨리베의 집에서 나온 알렌은 맥 에단의 한 주점에 있었다. 주점의 이름은 마녀의 보금자리.

과거 맥 에단의 혹독한 추위와 날씨는 모두 어떤 마녀의 강력한 저주 때문이라는 전설 이 있었는데, 가게의 이름을 그 전설에서 가져온 듯 했다.


알렌은 테이블에 앉아, 이제는 끊을 수 없게 된 술과 담배를 조용히 즐기고 있었다.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한 중년 남성이 다가와 시비를 걸었다.


"어이,지금 정신 나갔어? 여기 금연 구역인 거 안 보여?"


터무니 없는 시비였다. 주점 안은 흡연을 하고 있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애초에 테이블 위에는 흡연자를 위해 재떨이가 준비되어 있었다.


알렌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완전히 벗겨진 4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

구릿빛 피부에 근육질이었으며 키와 덩치가 무척 컸는데 배가 언덕처럼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오크와 고블린 등의 얼굴을 끔찍할 정도로 자세히 묘사한 문신이 양 팔 전체에 그려져 있었고, 칼자국 같은 진한 흉터가 얼굴과 팔 등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알렌은 단지 외모로만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남자가 지금 그에게 보여주고 있는 말투와 행동은 결코 선한 사람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은 경험을 통해 알렌은 이런 이상한 시비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낯선 외부인에 대한 배척과 차별을 할 때나 타인의 금품을 갈취하고 싶을 때.

아니면 그저 술기운을 빌려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고 싶을 때.


그리고 이 남자의 경우, 그저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고 싶은 그저 그런 양아치였다. 그의 동료로 보이는 이들은 잔뜩 취해 보이는 얼굴로 반쯤 눈이 풀린 채 테이블에 앉아 알렌을 향해 야유를 날리고 있었다.


알렌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꼬맹아, 지금부터 아저씨가 기회를 줄테니 그냥 이 자리에서 꺼지던가, 아니면···."

"뭐. 마침 잘 되긴 했네."


적어도 이 남자는 관광객은 아닐 것이었다. 관광객이었다면 굳이 타지까지 와서 이렇게 난동을 부리진 않을 테니 말이다.


알렌은 남자를 올려다 보며 그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자신과 남자의 신장 차이는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는데, 남자는 적어도 머리 하나 정도는 더 높은 위치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보가 필요했거든."

"무슨 개소ㄹ···!"

-쿠웅!


알렌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을 주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남자는 자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힘에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순간적으로 무릎을 꿇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에게 붙잡힌 어깨엔 유리가 산산조각나듯 통증이 날카롭게 거미줄처럼 퍼졌으며 신경 하나하나가 울부짖듯이 파르르 떨렸다.


"무, 무슨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무릎을 꿇게 된 남자는 물론, 그들을 지켜보던 일행이나 주점의 다른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얼어붙으며 행동을 멈추었다.


마법일까? 아니었다. 마법으로 무릎을 꿇린다면 굳이 어깨에 손을 올릴 필요가 없었을 뿐더러, 통증이 느껴지는 시작점은 분명 알렌의 손이 닿고 있는 어깨의 부위였다.


그저 알렌의 순수한 완력만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기, 기사입니까?"

"···비슷한 거라고 해두지."


알렌의 대답에 남자의 눈빛은 순식간에 착하게 변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자신은 팔을 잃을 것이오, 팔을 살짝 움직이며 목이 날아갈 터였다.


3류 양아치에 불과해 보이지만 눈치가 재빠른 그의 변화에 알렌은 어깨에 올렸던 손을 떼고 다시 자리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름은?"

"지, 지미. 지미 크로커스입니다!"

"지미···그래, 지미 씨. 당신은 여기에 산 지 얼마나 됐지?"


그의 질문에 지미는 자신에 대한 인적사항을 죽 나열했다.



지미 크로커스. 나이는 45세.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곳에 정착하였으며 현재는 뒷골목 범죄 조직 중 하나인 '하얀 까마귀'의 수장이었다.

그의 주요 상품은 약물 판매였는데, 그 주 타겟은 삶에 의욕을 잃은 평민들이나 새로운 자극을 찾는 귀족들이었다.


그의 약물이 제법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운이 좋아 입소문을 타서인지 그는 금방 귀족들과 인맥을 맺을 수 있었고 빠르게 사업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조직의 규모도 점점 커지게 되고, 이제는 맥 에단 뿐만이 아닌 다른 북부 지방의 여러 귀족들의 인맥까지 얻게 된 그는 앞으로 승승장구할 앞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별 이상한 이야기에 알렌은 한숨을 쉬었다. 필요가 없는, 아니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정보였을 뿐더러 애초에 그는 자신이 보았을 때 딱 3류 양아치. 그 정도 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걸치고 있는 옷만 조금 더 나을 뿐이지, 자신과 비슷한 행색을 하고 있었으며 정말 그렇게 잘 나가던 조직의 수장이라면 지금 이런 곳에 있을 게 아니라 어디 값비싼 환락가에 드러누워 있는 게 맞았다.


"저, 정말입니다! 이게 다 그 녀석들 때문에···!"


뒤폰 악실과 로베르트 악실 부자. 그들이 2년 전부터 맥 에단을 통치하게 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도시에서 각종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그저 방관하며 자신의 잇속만 챙기기 바빴던 이전 영주와 달리, 악실 부자는 도시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바꾸려고 했다.


바닥까지 떨어진 치안부터 시작해 잘 찾아오지 않는 관광객들만을 바라보며 생활을 이어가야하는 도시의 경제 사정까지.


그들은 약물과 인신매매, 살인 청부 등의 범죄를 강력하게 다스리고 도시의 깊은 뿌리까지 숨어있던 모든 범죄 조직을 소탕하며 치안을 끌어올렸다.

공장을 건설하고 일자리를 제공해 더 이상 사람들이 불안정한 생계를 이어가지 않도록 만들었다.


도시는 깨끗해졌고 사람들은 이제 안정적인 수입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범죄 조직에 몸을 담았던 자들은 하루 아침에 경비대에 쫒기는 신세가 되었으며 그들은 단 하루도 발 뻗고 마음 편히 잘 수 없게 되었다.


지미의 정보, 아니 하소연을 들은 알렌은 악실 부자가 무척이나 훌륭한 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알렌은 매우 꺼름칙한 느낌을 받았다.


로베르트 악실. 분명 어제 벨리베의 집으로 찾아왔던 남성의 이름도 로베르트였으며 그 역시 귀족으로 보였다.

이름이 흔하기는 하지만 이 근방에서 그만큼의 호위를 대동할 수 있는 인물은 아마 맥 에단을 다스리는 귀족인 로베르트 악실 뿐일 것이었다.


알렌이 느끼기에 로베르트라는 인물은, 지미가 말한 것처럼 훌륭한 일을 할 만큼의 성품을 가진 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전 영주처럼 자신의 배를 불린다면 모를까.


"공장··· 공장은 뭘 생산하는 거지?"

"얘기를 들어보면 그냥 고철 같은 걸 다시 가공해서 판매할 수 잇도록 만든답니다. 근데 일하는 사람들하고 좀처럼 이야기할 수 없어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어째서? 범죄자이기 때문인가?"

"그것도 그렇지만··· 공장 안에 숙소가 있습니다. 식사도 무료로 제공되고 주거비도 받지 않는 시설이니,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서 숙식하며 지내고 있죠."


지미의 말과 표정으로 보면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모두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단순히 철을 2차 가공하여 상품을 만드는 곳이라고 하기엔 공장의 규모가 너무 크고 많았다.

또한 관광 상품을 버리고 그 가공품을 도시의 주력 상품으로 바꾸었다고 하기엔, 다른 지역에서 맥 에단 산의 금속 관련 상품을 본 기억이 너무나도 적었다.

저 정도 규모의 공장으로 상품을 만들어 판매를 한다면 적어도 인근 지역에서는 그 모습을 흔하게 볼 수는 있어야 했다.


하지만 마냥 의심만 하기엔 익살 일가가 도시에 끼치는 영향력은 분명 좋은 것이었다.

공장 단지가 수상하다고 느껴지는 것 또한 자신의 의구심일 뿐, 그것은 이 도시의 사람들로 하여금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깨끗하게 만든 치안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 약물에 의존하며 인생을 구렁텅이로 떨어트릴 일이 없어졌으며 밤거리를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알렌은 찝찝한 느낌을 도무지 떨쳐낼 수 없었다.


악실 일가의 등장 이후로 너무나도 쉽게 깨끗해진 도시의 치안.

단순히 철을 가공한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규모가 큰 공장들.

그리고 어젯밤, 벨리베를 찾아와 심장이라는 것을 요구하던 로베르트.


알렌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한 번 살펴보는 게 낫겠지."


괜한 오지랖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알렌은 제발 자신의 불안감이 틀린 것이길 기도하며 주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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