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정철이 포로를 심문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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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보았다.
우에스기 가게카츠가 생을 포기했는지? 달리던 함선이 멈췄다.
그리고 멀리서 보인 행동이 가관이다.
갑주를 벗고 안에 입은 비단 전포까지 벗는다. 그리고 양 무릎을 바닥에 대고 작은 소도를 손에 쥐었다.
“저 녀석이!”
놈이 하려던 짓을 알았다.
가이사쿠(할복) 제 딴에는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절대로 그냥 둘 수 없는 멍청한 짓임에는 분명했다.
특히나 놈은 우리를 위해 해줄 일이 많았다.
“가만히 둘 수 없지. 어디서 도망치려고.”
손을 뻗어 조총을 쥐었다. 나를 위해 개조된 총포. 포르투갈 상인이 팔아넘긴 조총이 아니라 나만을 위해 개조한 조총을 손에 쥐었다.
먼저, 우에스기 목을 치려는 사무라이가 먼저.
조준점에 놈이 들어왔다. 검을 꽉 잡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무는 모습.
나는 방아쇠를 지그시 눌러 놈의 의지를 꺾었다.
탕!
검은 연기가 치솟고 검을 든 사무라이의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우에스기는 복부를 가르려던 동작에서 몸을 움찔거렸다. 생을 포기하려던 자의 행동치고 우스웠다.
“어디서, 겁많은 자가 죽으려고 해!”
머리가 터져나간 사무라이를 바라보는 우에스기.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든 자를 찾아 고개를 돌린다.
난 놈의 눈동자에 손을 흔들었다.
“헤이! 여기라고. 여기야 여기!”
반갑게 웃음 지어 보였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인상을 구긴다.
내게서 도망치려고.
죽음으로도 도망칠 수 없다. 어디서 어쭙잖은 명예를 들먹여. 우에스기 네놈은, 조선의 시커먼 감옥 속에서 조리돌림을 당해봐야 해.
“붙잡아! 우에스기는 한양으로 보낸다.”
내 명령에 부하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사백구, 사쇄문의 함선에서 병사들이 뛰어들고 우에스기가 탄 아타케부네는 백병전이 벌어졌다.
배를 나포하고, 그 안에 탄 우에스기를 붙잡으려고.
우에스기는 몸을 일으켜서 검을 잡았다. 그러나 놈 하나 추가된다고 대세가 달라질까?
놈은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붙잡혔다.
그리고 질질 끌려서 내 앞에 왔다.
놈은 고래고래 욕설을 질렀고,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해줬다.
“한양으로 끌려가면 정철에게 심문받겠나.”
“정철?”
“그런 자가 있어. 동인 잡는 개백정이라고, 고문을 그렇게 잘한다고 해.”
“고, 고문을··· 이보시오, 아케치 대장군. 날 좀 그냥 보내주시면 안 되겠소?”
“안 되지. 너 같은 배신자는 혼쭐이 나야 해.”
“나도 어쩔 수 없었소. 그건 아케치 장군도 알지 않습니까?”
“어쭙잖은 변명은 그만해. 너와 모리, 쵸소카베는 끝까지 날 기만했어. 그러니 쉽게 죽을 생각일랑 말고.”
“아케치 대장군. 내게 기회를 주시오. 그리고 원하는 게 있으면, 다 말할 테니 나를 조선 조정으로 보내지는 마시오.”
“싫은데. 그리고 기회라면 3번이나 줬다고.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3번이요? 그럴 리가. 고작 한 번을 배신한 것으로 아는데...”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3번이나 줬다고. 그러니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
우에스기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억울하다는 얼굴. 그가 배신한 건 어쩔 수 없다는 표정.
하지만 내 입장에선 이미 3번의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배신을 이어갔으니 더는 자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우에스기는 질린 표정으로 정철이란 말을 입에 담았다.
정철이라니?
정철이란 자는 조선의 고관대작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자가 고문을 그렇게 잘한다니.
시간이 지나 우에스기는 압송되었다.
이는 이순신과 아케치의 승전을 알린 결과물. 원균과 박홍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대단한 성과였다. 그리고 그것에 따른 청원으로 삼도 수군 통제사를 이순신에게 내려주기를 원했다.
물론 이순신 본인이 아니라 내가 쓴 추천장과 같았다. 멍청한 원균이나 겁쟁이 박홍 같은 자에게 돌아갈 통제사 자리가 아니기에 더 그랬다.
***
웅성웅성.
사헌부 한편의 국문장.
처음으로 거물급 포로가 잡혀 온 자리였다. 그것도 에치고의 영주.
우에스기 가게카츠는
우에다 나가오 가문의 당주. 나가오 마사카게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우에스기 겐신의 친누나였음에, 우에스기 겐신의 양자가 되어 지금의 우에스기 가문의 당주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다 갔으며, 지금은 사헌부 한편의 국문장에서 몸이 묶였다.
그것도 말로만 듣던 정철이란 인물이 지그시 쳐다보고 우에스기는 어쩔 줄 몰라 고개를 흔드는 게 전부였다.
“나는 아는 게 없소이다.”
우에스기가 말하자 정철이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어허! 네놈은 초반부터 거짓말이냐?! 나는 아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묻고 싶은 말도 없어. 그러니 일단 고신拷訊부터 시작하자.”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서 물어보시오. 아는 걸 순순히 말하겠소.”
“어허! 아직이라고. 그리고 초반에 내뱉은 말이 진실일지? 어떻게 알지. 난 말이다. 처음부터 이것이 진실이네, 이놈이 이런 짓을 저질렀고, 저놈이 딴 놈과 배를 맞혔네. 하는 소리를 믿지 않아.”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배를 맞히지 않았소. 나는 남색하는 자가 아닙니다. 남색이라면 오다 노부나가가 했지.”
“어허! 어디서 그릇된 말을. 네놈의 소향이 부족하구나. 네가 널 위해 시 한 수 지어줄 테니 들어보게.”
“시라니요? 여기서 그런 이상한 말을...”
우에스기는 발악했다. 정철의 말에 끌려다니지 않으려고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정철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
그리고 고문은 어찌나 잘하던지, 지나가던 사람이 동인이란 헛소문만 있어도 사돈의 팔촌까지 탈탈 털어 죄인으로 만들곤 했다.
그런 정철이 시를 읊기 시작하자 그걸 바라보는 우에스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죽기 전, 밥 한술 먹이는 것처럼.
죽기 전, 술 한잔 먹이는 것처럼.
“으으흑. 이걸 내가 당해야 해.”
우에스기는 손발을 비틀었고, 정철은 부하들을 시켜 그를 옥죄게 했다. 이제는 형틀에 묶인 몸. 그리고 우에스기를 바라보며 내뱉는 시라는 요상한 질문.
“저기 가는 저 여인, 어디서 본듯한데.”
“천상 백옥경은 어디 가고”
“해 다 저물어 가는 날에 누구를 보려고 가시는지?”
해석하자면,
[나, 너 아는데.]
[네놈, 권세가 좋았는데? 지금은 이러고 있네?]
[다 늦은 저녁에 또 누구를 만나서 헛짓거리를 하려고?!]
비꼬는 말이다. 속미인곡의 한 편을 사헌부 관헌 앞에서 읊조리고 있었다.
기괴한, 그러면서 겁을 잔뜩 주게 만드는,
정철만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걸 들은 우에스기 가게카츠는 참지 않았다. 몸부림을 심하게 치면서 소리쳤다.
“칫쇼! 네놈이 이런다고 내가 굴복할 줄 알고. 나도 이판사판이다. 절대 내 의지를 꺾지 못할 것이야.”
그 말에 정철이 웃는다.
“허허허. 그것이지요. 이제야 바른말을 하십니다. 그리고 처음의 허튼말이 기만인 걸 알았지요. 그러나 고위급 귀족이니 내 알아서 하지요.”
“알아서 한다니, 뭘?”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말에 진실이 가득하지요. 그리고 그걸 뽑아내는 게 내 일이고요.”
“그, 그게 무슨.”
“그런 게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심문한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겁니다.”
그 말에 우에스기는 흠칫 놀랐다.
정철은 뱀 같은 눈으로 우에스기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이어진 고문.
“으아아아악! 제발! 말하겠소!”
“아니에요. 멀었습니다. 빠르게 내지른 말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가 듣고 싶을 때 말하세요.”
“제발, 들어주시오. 나는 노부나가에게 속아서 조선에 온 겁니다.”
“그래요? 그거 유감입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지요.”
“크아아악! 그만! 그만 치시오. 고문을 거둬주시오. 아는 걸 말 할테니 제발.... 조만간 큰 공격이 있을 겁니다.”
“공격이면? 거제도의 시바타 말이지요. 그들이라면 전라 좌수영의 함대가 포위하고 있지요. 절대, 거제도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겁니다.”
“그 말이 아닙니다. 노부나가의 본대가 올 겁니다. 15만 병력이 2차로 출격해 부산과 김해를 공격해....”
“노부나가가?”
“정말입니다. 그리고 3차 공격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이면 큰일인데... 도대체 언제?”
“내 말을 믿는다면 조만간입니다. 어쩌면 출진했을지도 모르고요. 그러니 거제도의 시바타를 경계할 게 아니라 부산을 방어해야 합니다. 2차로 들이칠 본대는 부산을 노릴 게 분명합니다.”
“......”
정철은 침음을 삼키며 때리던 몽둥이를 거두었다. 그리고 손에 묻은 피를 탁탁 털어내며 기다란 수염을 매만졌다.
그리고 우에스기를 쳐다보니 놈이 겁에 질린 강아지처럼 고개를 숙인다.
정말일까?
진짜 노부나가의 본대가 오기는 할까?
매를 덜맞아 내뱉는 거짓이 아닐까?
정철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거짓이다. 우에스기 가문이라면 고집스러운 자들이라고 했다. 쉽게 발설하고 뜻을 꺾지 않을 놈들. 그런 우에스기 가게카츠가 이만한 고문에 굴복한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매가 부족한 게야.
바로 그 눈빛으로 우에스기를 바라보자 우에스기는 고개를 흔들었다.
알아차렸다. 지금의 정철의 눈빛.
“끄응.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러니...”
이어서 다오는 하소연.
자기는 할 말을 다 했다고.
정말로 노부나가가 오기는 할 거라고.
2차 출병이 15만이고,
3차 출병도 비슷한 숫자인 15만 병력이라고.
그걸 들은 정철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큰 일인데···. 거제도에 왜성을 쌓은 시바타와 비교할 수 없는 큰일이 노부나가였다.
“믿을 수 없다. 그 많은 병력을 이렇게 빠르게 보낸다고?”
정철은 그 말을 하며 뭉둥이를 들었다. 그러자 우에스기가 질린 표정으로 눈을 찔끔거렸다.
이어진 매타작.
퍽! 퍼벅!
“사실이요.”
퍽! 퍼벅!!
“정말 사실이란 말이요.”
퍽! 퍼버버버벅!
“끄응. 난 사실을 말했는데....”
퍼벅! 퍼버버버버버벅!!!!!!
“죽이시오. 단번에 때려 죽이란 말이요.”
그 말에 정철이 웃는다. 이제야 우에스기가 진실을 말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죽기를 각오한 것 같으니 이제 진실이 나올 것 같다.”
“그, 그게 무슨. 내 말은 그게 아니라...”
퍽! 퍼버버버버벅!!!!
말할 기회 따윈 없었다. 그저 몽둥이 찜질. 무릎 위에 올린 압슬형. 무거운 돌덩이가 점점 오금을 짓누른다. 우에스기는 땀을 뻘뻘 흘렸다.
거기다가 기다란 장침을 들어 손톱 밑을 찌를 때는 오줌을 지렸다.
사헌부에 마련된 국문장은 오물이 넘쳤다.
우에스기가 싼 똥과 오줌으로 냄새가 심했다. 그걸 맡고도 정철의 심문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멀었어.”
“아닙니다. 제발 기회를 주시오. 내 말 좀 들어보란 말이오. 항복하겠소. 조선을 위해 힘을 쓰겠단 말이요.”
“그건 내가 듣고픈 말이 아니다.”
정철은 힘차게 몽둥이를 내리쳤다. 우에스기는 혈인으로 붉게 변했다.
똥오줌을 지리는 혈인. 긍지 높던 우에스기의 당주는 어디 가고 정철의 눈빛에 오줌을 지르는 죄인이 되었다.
“허어! 이렇게 긍지가 없어서야. 일본의 영주들은 모두 이런 것인가?! 다 늙은 이발(동인의 수장)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차라리 혀를 깨물고 말지.”
정철은 혀를 찼다. 그리고 귀가 열렸다고 싶었는지 우에스기의 말들을 들어줬다.
노부나가가 쳐들어오는지?
얼마의 군병을 가져오는지?
2차? 3차? 30만? 너무 많은데....
정철은 유용한 정보를 뽑아냈고 그걸 비변사에 알렸다. 그리고 그걸 들은 비변사의 관헌들은 난리가 났다.
-어서 지원병을.
-어서 부산으로 더 많은 군병을 보내야 한다.
-경상 좌수영의 박홍에게 부산 앞바다를 지키라고 명령하고.
-경상 우수영의 원균에게 대마도로 나가 정말로 노부나가가 올지 탐망하라고...
웅성웅성. 조선 조정은 바빠졌다. 그리고 전쟁에 능한 장수들을 각지의 지휘관으로 보냈다.
그 결과로 도원수 김명원과 부원수 이빈 같은 자들이 부산을 지키기 위해 포진했고, 원 역사와 달라진 상태로 방어진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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