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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네브 알파의 서재

미몽-비명의 미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메리디안
작품등록일 :
2020.05.11 22:23
최근연재일 :
2020.07.2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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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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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년_11

미몽




DUMMY

벌써 해가 지는 시간인가?


하늘은 오색 찬란한 빛들이 가득한 채 끝없이 펼쳐져 있고, 지평선과 맞닿은 끝에 해가 걸려있다.


그 방향으로부터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놀리자 볼이 간지럽다.


허공에 떠 있는 발아래는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빛이 닿지 않아 온통 검다.


앉아 있는 곳은 분명 절벽 끝 같은데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옆에 함께 앉은 사람이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미래 “반, 오랜만이야.”


반 “날 기다렸어?”


반은 오늘도 항상 입는 목 늘어난 면 티셔츠에 검정 운동복 바지 차림으로, 촌스럽게 씩 웃고 있다.

미래 “나, 조금 무서워.”


반 “무섭다는 감정은, 자신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거야. 근데, 네가 모르고 있는 게 없는걸?”


미래 “나 못할 것 같아.”


반 “아직 해보지도 않고서?”


미래 “아무도 와주지 않을 거야! 너무 힘들다고.”


반 “아니, 분명 올 거야.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뭐가 되었든.”


미래 “···”


반 “참! 너 연극의 3요소 알아? 아, 나는 이거 오래되어서 그런지 생각이 영~ 안 나네.”


미래 “아, 뭐였지? 배우, 관객, 희곡이었나? 그게 희곡의 3요소랑 헷갈렸던 것 같은데?”


반은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양손을 들어 박수를 짝! 치고는 덥수룩하게 자란 스포츠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쳐 앉았다.


그때 그의 몸이 기우뚱하며 중심을 잃는 바람에, 신고 있던 오른쪽 삼선 슬리퍼 한 짝이 끝이 보이지도 않는 어둠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미래 “어, 어떡해!”


미래는 꿈을 꿨던 모양이다.


처음 현실을 느끼게 한 감각은 자신의 볼에 맞닿은 차가운 바닥의 감촉과 주유소 냄새였다.


고개를 들고 싶어도 손과 다리는 뒤로 묶여 있고, 뒤통수가 욱신거리며 깨질 듯이 아팠다.


지금이 몇 시쯤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걸음 정도 앞쪽으로 밖에서 비치는 햇살이 문틈 아랫부분으로 들어오고 있는 거로 미루어 낮인 것 같다.


정신을 가다듬고 가장 최근의 기억을 되돌려 보니, 박물관에서 나와 편의점으로 향하던 길이 생각났다.


그 길에서 누군가가 뒤에서 미래를 불렀는데,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머리에 큰 충격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아무런 기억이 없는 거로 봐서, 아마도 기절을 했었나 보다.


최대한 몸을 움직거리며, 어둠 속에 가려진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냥 창고로 생각했다가, 눈 앞에 쌓여 있는 크고 작은 덩어리들의 정체를 파악하자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것들은 도자기다.


다양한 크기와 컬러의 도자기들이 벽에 붙은 선반에도 한 가득, 작은 단처럼 보이는 나무 상자 위에도 쌓여 있었다.


미래 ‘여기 그럼 혹시?’


가장 안 좋은 예감이지만, 미래의 머리통을 후려갈긴 것이 그 방화범이고 이 곳은 아마도 그가 곧 불을 지르게 될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입은 테이프로 막혀 있는 상태고 손 발은 움직이지 않는다.


절망적인 상황에 눈물이 흐른다.


분명히 꿈에서 보았었다. ‘태평성시도’ 중에서 병과 도자기가 많은 상점에서 불이 나는 것을.


이대로 있다가는 그 불길에 자신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아 한참을 멍하니 눈물을 흘렸다.


미래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뭐라도 해보자.”


손과 발을 결박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포장용 끈인 것 같다.


무엇이 되었던, 칼이나 가위 같은 뾰족하고 날카로운 물건이 필요하다.


미래는 자신의 다리에 가장 가까운 선반을 양 다리로 힘껏 찼다.


몇 번의 충격을 가하자, 선반 위에 있던 중국풍의 도자기 조각상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 중 적당한 조각을 집어서 손목의 끈에 긁었다.


자세를 바꿔가며 끈을 끊기 위해 버둥거리면서 간신히 얼굴을 돌리니, 문 쪽에서 안으로 길게 이어진 끈이 보였다.


언뜻 보면 두루마리 휴지자락이 풀려서 바깥까지 이어진 것으로 착각할 것 같은데, 계속 나는 주유소 냄새의 정체가 아무래도 저것 인 것 같다.


***

-서울중서부 연쇄방화사건 합동수사본부-


김계장 “어제 박물관부터 신미래씨 집과 직장 쪽으로 연결된 거리의 CCTV를 확보하기 위해 형사팀 8명이 지금 방금 나갔다. 뭐라도 가지고 올 거야 인우야.”


김박사 “아무래도 장운수가 어제 경찰 움직임을 눈치채고 신미래씨를 뒤쫓았을 테니, 신변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인우 “CCTV를 확인하기 전에 더 빠른 방법은 없을까요? 어제 납치 된 사실을 파악한다고 해도, 지금 어디 있는지를 알려면 수사시간이 더 필요 할겁니다.”


김박사 “맞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8차에 걸친 범행에서 장운수는 밤 10시부터 새벽4시까지가 주된 범행시간 이었습니다. 패턴대로 범행을 계획했고, 만일 오늘 사건이 일어난다면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김박사의 말에 다 같이 사무실의 시계를 보자, 바늘은 저녁 7시 4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박사 “그럼 일단 태평성시도를 기반으로 범죄지리분석 프로그램에서 일부라도 알아낸 부분을 우선 확인해 보지요.”


인우 “김박사님, 그 프로그램 안에서 특정 테마를 먼저 확인 할 수도 있나요?”


김박사 “뭔가 짚이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실제 지도와 태평성시도의 어느 부분이 매칭되는 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인우는 수사 지원팀에서 대형으로 출력하여 화이트 보드에 붙여 놓은 태평성시도 앞으로 가서, 손을 짚어가면서 무언가를 찾았다.


평상시의 인우 라면 미래가 했던 꿈 이야기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은 위협이 닥친 상황에 시간이 별로 없다.


인우 “여기 입니다. 이 병과 도자기가 많은 상점을 먼저 확인 부탁 드립니다.”


강팀장 “그건 무슨 근거로? 확신이 있는 거야?”


인우 “확신은 없습니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신미래가 했던 얘기에 한 번 속아 보기라도 해보려고 합니다.”


***

-도자기 창고 안-


밖에서 문틈으로 들어오던 햇빛이 사라져 버렸다.


아까보다 어두워지기는 했지만, 대신에 문 위와 천정이 맞닿는 부분의 작은 쪽 유리를 통해 비상구 전등으로 보이는 옅은 초록 불빛이 반사되어 들어왔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손을 묶고 있던 끈을 풀었다.


대신 도자기 조각에 긁혀 손목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아픔보다는 빨리 이 곳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인데, 범인이 혹시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먼저 문을 두드려 보았다.


밖에서 기척은 없었다.


용기를 내어 목청껏 소리를 지르면서 문을 밀어보았으나, 그 누구의 답도 없고 문은 밖에서 자물쇠로 잠겨 있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범인이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기름 냄새가 나는 흰색 끈을 만져보고 나니 안 좋은 확신이 들었다.


문 밖, 흰 끈의 끝은 기름통에 담가진 채 어디엔가 고정 되었는지 당겨도 더 딸려오지 않았다.


손까지 기름 범벅이 되었고, 창고의 내부에는 공기 중에 휘발 된 기름 냄새가 가득했다.


이대로라면 불꽃 하나에 그대로 폭발할지도 모른다.


밖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도, 점화를 해버리면 불은 그대로 안으로 밀어 닥친다.


미래 “아··· 어떻게 하지? 생각을 해보자! 생각해라 미래야.”


이런 중요한 순간에 반은 꿈에 나와서 쓸데 없이 연극의 3요소나 물어보다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미래 “미래야. 연극의 3요소는 잊어 버리고, 불을 막아야 해. 불의 3요소.”


그렇다. 불의 3요소는 연료와 열 그리고 산소다.


타버릴 연료는 이 창고 안에 가득 차 있고, 불일 지필 열은 아마도 밖에서 타고 들어 올 것이다.


일단 도자기 조각으로 흰 끈은 끊어 낸 후, 희미한 빛에 의지해서 창고 안의 모든 장을 열었다.


대부분의 캐비닛에 가득한 서류를 보니, 이곳은 도자기를 파는 곳이라기 보다는 감정하는 곳인 모양이다.


그러다 마지막 캐비닛에서 커다란 자루를 발견했다.


자루의 겉에는 ‘Kaolin clay’라는 영어가 크게 적혀 있고, 한자로 ‘고령토’라고 작게 적혀있다.


고령토 자루 옆에는 증류수 병 몇 개도 보였다.


낑낑대며 자루를 옮기고, 창고 한구석에 쌓여 있던 시루를 가져와서 문 앞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밖에서 들어오는 불꽃을 막으려면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위 아래가 뚫린 시루의 안과 밖에 고령토 가루를 붓고, 그 위에 증류수를 뿌려서 진흙을 만들어 문틈과 문 앞을 막는 작업을 계속 반복했다.


***

-서울시 인계동-


실제 지도와 그림이 매칭되는 위치는 대략 보아도 종로구의 인계동 주변으로, 인우와 몇몇 형사들은 데이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일단 그쪽 방향으로 출발을 했다.


도착할 즈음, 김박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김박사 “아까 말씀하신 부분만 먼저 분석을 완료했습니다. 장소와 키워드가 맞는 업종은 3군데가 나왔습니다. 자료 보내드리겠습니다.”


김박사가 제시한 3곳은 각각 유리와 도자기를 취급하는 수입 인테리어 소품점과 도자기 산지로 유명한 용천시 도자기 직판장, 그리고 전통주를 직접 담가서 제작한 도자기와 함께 판매하는 주점 겸 매장이었다.


인우 “세 군데가 모두 이 인근이니 각자 흩어져서 확인하시지요.”


각자 흩어지고, 인우와 용석은 그 중에 용천시 도자기 직판장 쪽으로 달려갔다.


시간은 저녁 9시 40분이 다되어 가고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인지, 도자기 직판장은 셔터를 내린 상태였다.


인우는 플래쉬를 켜고 유리문을 통해 안 쪽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고 있었다.


용석 “행님! 여기 옆 가게 가서 물어봐 가, 매장 매니저라는 사람 전화 연결 됐는데요. 여기 지금 영업이 안 돼가 지난주에 물건 다 뺐다 캅니다.”


그때, 전통주 매장에서 확인했으나 이상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마지막 남은 인테리어 소품점을 향해 뛰어가고 있을 때, 인우의 눈에 글자 하나가 들어 왔다.


[미술품, 골동품 감정 및 매입, 판매 대행 – 도자기 전문 – 고려 청자, 이조 백자, 중국 송, 원, 청 고도자 비파괴 검사···..]


멈추어 서서 그 작은 간판이 어느 점포의 것인지 살펴보니, 간판 아래에 간략한 위치가 표기되어 있었는데 ‘ㅁ’자형의 옛날식 상가 저 안쪽 코너에 있는 가게였다.


인우는 순간, 태평성시도 안에서도 ‘ㅁ’자 형태의 상가 모서리에 그 점포가 그려져 있던 게 기억났다.


인우 “여기다.”


상가 전체가 문을 닫아 버린 건물 앞에서 어떻게 문을 열어야 할지 살펴보고, 건물 뒤편으로 통하는 골목길은 없는지 살폈다.


문을 두드려도 상가 안에서는 소리가 없었고, 이웃한 상가들도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시간을 확인하니, 9시 56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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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성냥팔이 소년_09 20.06.12 23 0 9쪽
31 성냥팔이 소년_08 20.06.12 25 0 12쪽
30 성냥팔이 소년_07 +2 20.06.11 43 0 13쪽
29 성냥팔이 소년_06 +6 20.06.10 39 3 9쪽
28 성냥팔이 소년_05 +6 20.06.09 29 3 10쪽
27 성냥팔이 소년_04 +6 20.06.08 33 2 10쪽
26 성냥팔이 소년_03 +2 20.06.06 47 1 9쪽
25 성냥팔이 소년_02 20.06.05 39 0 9쪽
24 성냥팔이 소년_01 20.06.01 32 0 10쪽
23 향기 없는 꽃_에필로그 20.05.31 27 0 16쪽
22 향기 없는 꽃_14 +2 20.05.31 41 2 15쪽
21 향기 없는 꽃_13 20.05.29 30 0 11쪽
20 향기 없는 꽃_12 20.05.28 30 0 9쪽
19 향기 없는 꽃_11 20.05.27 31 1 12쪽
18 향기 없는 꽃_10 +2 20.05.26 37 1 11쪽
17 향기 없는 꽃_09 20.05.26 31 0 8쪽
16 향기 없는 꽃_08 20.05.24 35 1 13쪽
15 향기 없는 꽃_07 20.05.24 33 1 12쪽
14 향기 없는 꽃_06 20.05.22 30 1 10쪽
13 향기 없는 꽃_05 20.05.21 43 0 11쪽
12 향기 없는 꽃_04 20.05.21 30 3 12쪽
11 향기 없는 꽃_03 +2 20.05.19 45 3 9쪽
10 향기 없는 꽃_02 20.05.18 37 0 8쪽
9 향기 없는 꽃_01 20.05.17 34 1 9쪽
8 사랑의 묘약_06 20.05.16 34 2 8쪽
7 사랑의 묘약_05 20.05.15 35 1 8쪽
6 사랑의 묘약_04 +2 20.05.14 51 3 8쪽
5 사랑의 묘약_03 20.05.14 49 3 8쪽
4 사랑의 묘약_02 20.05.12 58 2 8쪽
3 사랑의 묘약_01 +2 20.05.12 66 2 9쪽
2 미로의 입구에서_02 +2 20.05.11 83 3 8쪽
1 미로의 입구에서_01 +8 20.05.11 166 2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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