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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교 님의 서재입니다.

마도술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정원교
작품등록일 :
2021.10.21 08:10
최근연재일 :
2021.10.24 11:11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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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수 :
37,368

작성
21.10.2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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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태사의 직업

DUMMY

***

태사의 일과는 별들이 잠드는 꼭두새벽부터다.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밀린 일들을 처리할 수가 없어서다.

오늘도 그는 습관처럼 새벽에 눈을 떴다.

하지만 그는 벌떡 일어나지 않고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간밤에 천향원에서 배달을 시켜서 무희와 나눠 마셨던 술기운 탓이다.


공연히 애매한 사람만 잡을 뻔했으나 오보추혼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용서해 줬다. 덕분에 상처 치료에 좋다는 불로주를 마신다는 것이 도가 지나쳤다.

무슨 여자가 그렇게 술이 드센지 몰랐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그녀는 정신이 또렷해졌고 자신은 반대로 취하고 말았다.


그래서다.

늦장을 부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새우잠이라도 조금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굴뚝 같았다.

일어나기 싫어서 미적거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았다.


저만큼 가깝고도 멀찌감치 떨어진 침상에 그녀가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앞쪽에는 무명천이 쳐진 상태다.

선을 넘어오면 죽이겠다고 설치했는데 잠버릇이 고약했다.

코를 심하게 골았고 잠꼬대까지 하면서 몸부림을 치는데 당한 재간이 없었다.


‘제기랄! 난리 칠 때가 언젠데 저렇게 태평하게 잠자누.’

자리에서 일어난 태사가 이불을 걷고 침소를 정리하며 무희를 쳐다봤다.

자면서 몸부림을 쳤는지 이불이 엉망이다.


거의 반라의 몸을 드러낸 상태다. 이불을 정리해주고 밖으로 나섰다.

저만큼 멀리서 오보추혼이 어느새 등장해 있었다. 이슬에 흠뻑 젖은 모습이면 틀림없다. 밤새워 침실을 지켜봤음이 분명했다. 태사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지 마시고 들어오셔서 한잔 마시지 그랬어요?”

“아직 용서할 정도는 아니라서······이름이 뭐랍디까?”

“무슨 공주라고 하면서 이름이 무희라고 하던데요.”

태사는 솔직하게 말했다. 숨겨봐야 좋지도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녀가 틀림없겠군요.”

태사는 그가 그녀의 신분을 알아차렸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되묻지는 않았다.

질문해봐야 알려줄 일도 아니기에 입을 다물었다.


대신에 걸음을 빨리해서 대문을 벗어났다. 새벽 안개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저만큼 멀리다. 지하 동굴을 가리듯이 작은 사당(祠堂)이 보였다.

처마 밑에는 사체보관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태사가 안으로 들어가자 오보추혼이 따라붙었다. 송장 썩는 냄새가 진동하자 태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하지만 오보추혼은 달랐다.

숨결을 급하게 멈추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태사에게 말했다.


“오늘은 상흔의 흔적으로 범인을 찾아낼 수 있겠지요?”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이미 윤곽은 드러난 상태입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저도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만·····,”

“들어 오시죠. 다만 한 시진 정도만 허락할 뿐입니다.”


태사는 그 말을 끝으로 오보추혼의 존재를 아예 잊은듯했다.

그가 취하는 행동을 보면 비릿한 시체 냄새에 굶주린 고독한 산짐승처럼 비쳤다.

넉넉한 눈동자에서는 강한 빛이 흘러나왔고 입가에 머물다 사라진 조소를 감추듯이 탁자에 놓인 시신들을 오행검진 방식대로 능숙하게 배열하기 시작했다.

태사가 방금 옮겨 놓은 시신까지 합쳐서 다섯 구의 시체에 가해진 상해가 모두 똑같았다. 사지가 잘리고 가슴이 뭉그러진 것을 보면 시대에 보기 드문 무공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듯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들 모두가 자신들에게 닥쳐온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알을 부라리고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태사가 알고 싶은 것은 바로 그들의 눈동자에 남겨진 의혹의 덩어리였다.


“뭡니까요? 혹시 그렇다면 말입니다. 썩은 저들의 동태눈깔에 놈을 죽일 수 있는 비법이라도 들었단 말입니까요?”

태사가 마음 좋은 사내처럼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확실치는 않습니다. 다만 이들처럼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최소한 어떤 수법에 당했는지 알아야 하겠지요.”


오보추혼의 미관이 절로 찌푸려지고 말았다. 그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시각이 얼마인지 몰랐다. 새벽부터 휴식은 물론이고 아침 식사도 거의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가 마신 것이라고는 빗물이 전부였다. 그리고 다루고 있는 시신만 해도 열 구가 넘었다. 그런데도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도 없을 정도여서 오보추혼은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완전히 귀신에 씌운 놈이군.”


오보추혼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구역질이 날 만큼 부식된 시신을 매만질 수가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태식호흡을 연성한 자신도 참기 어려울 정도로 냄새는 정말로 역했다. 그런데도 녀석은 피가 그리운 한 마리의 고독한 짐승처럼 숨도 쉬지 않는 듯싶었다.

자신의 몸뚱이보다도 반 배는 족히 넘어 보이는 시신에 달라붙었다 하면 떨어질 줄 몰랐다. 내장을 들어낸 몸통에 얼굴까지 처박고는 외부에서 가해진 상처를 통해서 죽음에 이르게 된 직접적인 사인을 찾는 작업에 치중하는 모습에 그만 질렸는지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어휴! 이거 정말 미치겠군.’

오보추혼이 한숨을 죽이고 태사를 지켜보고 있는 까닭은 따로 있었다.

그가 어떤 식으로 시신에 가해진 상처를 통해서 사인을 알아내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새벽부터 기다리면서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오보추혼의 얼굴에서 주름살이 짙어졌다. 이를 알기라도 하듯이 태사는 검진의 중심에서 목검을 들고 있는 시신 앞으로 다가섰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짓이겨진 상태였다. 사지에 남겨진 상처는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잘린 상태였다. 살점을 비집고 삐져나온 뼛골은 장대했지만 뒤엉킨 혈관 속에서 푸른 기체를 발화한 흔적이 있는 것을 보면 검기에 상해를 입은 것이 분명했다.


태사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검기에 상해를 입고 즉사한 것이 분명한데 가슴에 남아 있는 흔적을 보면 각기 특징이 틀렸다.

어떤 수법에 당했는지를 좀처럼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당했는지는 알고 있는 눈치였다.


시신이 놓인 중심에서 다섯을 베어낸 검법을 흉내를 내면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어서 왼손으로는 앞쪽으로 내밀자 오보추혼이 갑자기 미친 듯이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태사가 밖으로 벗어났다. 자만큼 동녘에서 여명(黎明)이 밝아왔다. 태사가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자 그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었다.


“왔어?”

“네. 돌아왔습니다. 근데 무슨 음식을 했기에 이렇게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진동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호호호! 오랜만에 솜씨 좀 부려봤지. 어서 씻고 와서 밥이나 같이 먹자.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서 식었단 말이다.”

“고맙습니다. 너무 행복해서 밥이 넘어갈지 모르겠네요.”


태사가 웃었다. 익숙하지 않은 미소,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목욕탕으로 달려갔다. 욕조에 따뜻한 물이 넘치도록 가득 담겨 있었다. 옷을 벗고 욕조에 몸을 담그면서 따뜻한 물처럼 훈훈한 기운을 느끼었다.

이래서 사람은 혼자보다는 둘이 같이 살아가는 모습이 훨씬 좋다고 생각해 보는 태사였다. 집안에 쓸쓸함도 없어지고 혼자라는 외로움도 줄어들어 너무나 좋았다.

행복감이 저절로 느꼈다. 고작 하룻밤에 불과한 만남이었지만 벌써 정이 들었다. 무희를 돌려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둘이서 알콩달콩 살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는 태사였다. 비록 그것이 허망한 꿈일지라도 최대한 오래도록 꾸었으면 더없이 기분이 좋을 정도로 흐뭇했다.

태사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식탁으로 다가서자 무희가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얼굴을 붉히며 반갑게 반겼다.

“음식이 맛이 없다고 탓하면 정말로 평생 미워할 거야.”


“맛이 없다니요. 소생은 음식을 눈앞에 두고 그런 말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냄새가 아주 기막혀 죽여주는데요.”


태사가 군침을 연신 삼키더니 수저를 집어 들기 무섭게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오도독, 냠냠, 쩝쩝, 정말 아귀가 따로 없을 지경이다. 무희가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게눈 감추듯이 음식을 먹어 치우자 무희가 말했다.


“정말 그렇게 맛있단 말이지?”

“네. 처음으로 정성이 담긴 음식이라서 그런지 입안에서 살살 녹습니다. 씹지도 않았는데도 저절로 넘어가네요.”

“호호호! 천천히 먹어요. 그러다가 체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여기에 밥과 국이 있으니까 이것도 마저 잡수세요.”


무희가 자신의 밥그릇을 태사에게 내밀며 웃고 있었다.

“그건 당신이······, 아니 무희 소저께서 드셔야지요.”

“호호호! 난 아까 음식을 하면서 이것저것을 먹어서 배고프지 않아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얼른 잡수세요.”


“그건 안됩니다. 출혈이 심해서 식사를 거르면 회복이 더딥니다. 오보추혼을 물리치려면 얼른 잡수셔야만 합니다.”

“호호호! 성의는 고맙지만 사양하겠네요. 난 절정고수의 끝자락에 도달한 상태라서 밥보다는 환약이 더 어울려요.”


“환약이요? 그렇다면 혹시·····,이거라도 복용하시지요?”

태사가 옷장을 뒤져서 작은 비단 주머니를 꺼내왔다.

“이게 뭔데 소녀에게 먹으라고 내미는 것입니까요?”

“환약이 들었는데 무엇에 쓰이는 약인지 저도 모릅니다.”


무희가 주머니를 열어서 확인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이건 소림파의 대환단(大丸丹)이 아닙니까요?”

“그 환약이 정말로 전설로 전해지는 대환단이라고요?”

“그래요. 약효에 천년 동자삼이 들어가 있어서 한 알을 복용하면 환골탈태한다고 알려졌지요. 이렇게 귀한 환약이 다섯 알이나 가지고 있었다니 정말 놀랄만한 일입니다.”


“어이쿠! 그렇다면 주인에게 돌려 드려야 하겠군요.”

“흥? 돌려주다니, 당신 미쳤어요? 이것을 복용하면 백 년의 내공을 단번에 증진할 수 있단 말입니다. 거기다가 어떤 난해한 무공도 쉽게 연성할 수가 있지요. 소녀가 먼저 복용하고 확인한 다음에 돌려줘도 되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무희는 망설이지 않았다. 대환단을 꿀꺽 삼키고는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그녀의 몸에서 실안개가 무럭무럭 솟아나더니 금방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운기를 하다가 눈을 번쩍 떴는데 붉은 광채가 번개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 눈빛이 얼마나 사납고 강한지 몰랐다.


태사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다닐 정도로 아주 강력했다. 태사는 자신도 모르게 시체의 상처를 연구하다가 깨닫게 된 검법을 펼치게 되었다.

둥글게 원을 그리다가 왼손을 내밀자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바로 무희가 태사의 손길을 그대로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때부터 태사는 얻어터지기 시작했다. 다정하게 밥을 먹었다가 이게 무슨 회개한 일인지 몰랐다. 사랑싸움도 아니건만 무진장 얻어터졌다. 얻어맞다가 기절했고 그녀의 성난 매질에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뼈다귀도 추스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사가 누더기처럼 변한 다음에서야 겨우 그녀의 혈도에 침을 꽂을 수가 있었다. 안정을 되찾게 해주는 침술인데 한숨을 길게 내쉰 무희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깨달음은 찰나의 순간에 왔다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무희는 그런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무희의 손짓을 가만히 살펴보니 오보추혼이 펼치던 검무와 많이도 닮았다.


무형지검(無形之劍),

검기로 물체를 벤다고 알려진 전설적인 검법이다. 무희는 그렇게 무형지검의 끝자락을 붙잡고 깨달음을 얻으려고 애를 쓰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끝끝내 정신 줄을 놓은 태사는 자신도 모르게 기절해서 쓰러지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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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장(序章), 21.10.21 22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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