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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7.25 18:44
최근연재일 :
2022.10.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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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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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1
추천수 :
45
글자수 :
203,653

작성
18.07.2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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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 당신이라는 사람 - 1

DUMMY

세 잔의 컵. 인석은 이 자리를 홀로 지킨 것이 아니었다. 세 잔의 컵을 혼자 비운 것도 아니었다. 호연은 손에 들린 핸드폰을 꽉 쥐었다. 인석보다는 앞에 있는 여자가 원망스러웠다.


"잘······못 지냈지?"


그녀가 물었다. 호연은 진애를 바라보다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지금은 진정이 필요했다.


"잘 지냈어. 아주 잘 지냈어."


이렇게 말하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그는 아직도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샴푸 향을 쫓고있었다. 길을 다니면서도 그 향기를 찾았다. 지금도 호연은 진애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샴푸 향을 은은하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더 우선이었다.


진애는 호연의 반대편에 앉았다. 호연은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30분 밖에 시간 없어, 나."


그가 스톱워치를 키며 말했다. 진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왜? 억울해?"


호연이 그녀의 입술을 보며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어제 네 집 앞에 갔었었어."


"왜?"


"그냥 어떤가 싶어서."


"왜 갑자기 내 생각이 난 건데?"


그녀는 답이 없었다. 아마 자신도 그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단지 그냥 순간적인 이끌림에 온 모양이었다. 호연은 진애의 그런 무책임함이 맘에 들지 않았다.


호연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진애는 의기소침한 눈빛으로 호연을 바라보았다. 호연은 그 눈을 혐오했다. 과거에는 갈구했던 눈이었다. 그리고 사랑했었던 눈이었다. 그는 그녀의 눈빛을 피했다.


그 주제에 대해서 더 할 이야기가 없었다. 호연은 심문 해봐야 나올 게 없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피하고 싶은 대화에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호연은 다른 주제를 꺼내기로 했다. 그다지 좋은 주제는 아니었다. 그녀가 회피하기 좋은 질문이었다.


"성진이는 잘 지내냐?"


예상대로 그녀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앙다문 입술을 바라보다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치며 소리쳤다.


"넌 나한테 끔찍한 검은 물감을 뒤집어씌웠어! 알아? 그 끈적끈적한, 그 검은 물감들을 너는 아냐고! 잘 못 살고 있냐고? 잘 살고 있어. 안 그래도 없던 대인관계 다 끊고, 내 기분 내키는대로 잘 살고 있다고! 그 물감 뒤집어쓰고 내 편한대로 존나 막 살고 있어! 망가지면서 잘 살고 있다고!"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손바닥으로 밀쳐냈다. 핸드폰이 테이블을 벗어나 카페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종업원은 급히 그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그렇게 잘 살고 있는데, 대체 무슨 뻔뻔스러운 낯짝으로 다시 찾아오는 거야? 이번엔 어떤 물감을 뿌려주려고? 왜 다시 연락을 하는 거냐고, 네가! 네가 나한테 어떤 사람인데!"


"그만해."


호연의 오른손을 양손으로 잡고 진애가 말했다. 호연은 더 화가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그녀의 손을 걷어낼 자신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흐느끼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을 꽉 쥐고 흐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원래 울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호연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종업원이 핸드폰을 든 채 서 있었다. 호연은 핸드폰을 돌려받았다. 땅에 떨어진 충격으로 타이머가 꺼져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너는 날 찾고 있어. 하지만 나는 널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아. 내가 겪은 고통, 너도 그 고통 그대로 느끼고 여기 온 것이길 바란다. 그냥 먼저 가볼게."


"성진이 죽었어."


진애가 말했다. 그녀가 손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호연은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성진이 죽었다고. 교통사고로 죽었어."


호연은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진애는 계속해서 말했다.


"걔, 죽어가면서도 너한테 죄책감 느끼고 있었어. 병원 침대에 누워 죽어가면서도 너한테 사과를 빌어야 한다고 중얼거렸었어. 그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찾아왔어."


"그렇다고 뭐가 바뀌어?"


호연이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성진이 미안해하건 말건, 죽었건 살았건 그와는 상관 없었다. 두 사람은 그에게 악몽일 뿐이었다. 호연은 두 사람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오히려 누구 하나가 죽길 바랐다. 호연은 문을 열고 카페를 나왔다.


인석이 제 팔짱을 낀 채 벤치에 앉아있었다. 팔뚝에 솟아난 힘줄이 보였다. 호연은 그를 무시하고 흡연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인석은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카페에 앉아있는 진애를 바라보았다.


손이 계속 떨렸다. 호연은 담배 한 개비를 떨어트려 다시 꺼냈어야 했다. 떨어진 담배를 줍기는 꺼림직했다. 호연은 혹시나 떨어트린 담배를 자신도 모르게 주울까봐 발로 짓뭉겠다. 담뱃재가 겉표지를 뚫고 마구 튀어나왔다. 그는 다시 한 번 담배를 짓밟았다.


불을 붙이는 것조차 이렇게 힘든 것인지 이제 알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누구에게 불을 붙여달라고 하기엔 힘든 상황이었다. 호연은 다시 한 번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부싯돌을 힘껏 돌렸다. 그제야 불꽃이 기다렸냐는 듯이 튀어나왔다.


"젠장······."


집이 코앞이다. 돌아갈 수 있다. 근데 뭐하는 거지? '성진 안 실라르' 라는 원수가 죽었다. 그리고 진애는 다시 나의 앞에 와있다. 둘 다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원수가 되어버린 사람들이고. 대체 나는 어떤 상황에서 길을 못 찾고 헤매는 걸까?


담배는 빠르게 타들어갔다. 어느새 필터 바로 앞까지 타들어가고 있었다. 별로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호연은 재털이에 담배를 쑤셔넣은 후 새로운 담배 개비를 꺼냈다. 그리고 다시 담뱃갑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 다음 땅에 떨어져 있던 담배 개비를 한 번 더 밟은 후 흡연 박스 밖으로 나왔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호연이는 내가 잘 달랠게. 어서 가 봐."


"그럼 잘 부탁해, 인석 오빠."


인석과 진애가 카페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호연은 기가 찼다.


"누구 맘대로 누굴 잘 부탁한다는 거야!"


"신호연!"


호연이 소리치자 인석이 맞받아쳤다. 호연은 인석의 눈을 노려보았다. 인석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진애 상태도 좀 이해해 줘! 성진 씨 죽은지 얼마 안 됐어! 그래도 진애가 그 소식 전하러 왔는데, 넌 뭐하는 짓이야."


"너도 성진이 죽은 거 알았어?"


"성진 씨 죽은 거 알고 있었어! 장례식까지 갔다왔어! 근데 네가 그 말 들으면 가만히 있었겠냐? 2년 전처럼 쇼크에 빠져있을 게 분명한데!"


인석은 머리를 쥐어짜다가 절규하듯 말했다.


"젠장, 나라고 진애가 그 얘기를 할 줄 알았겠냐고!"


바로 옆에 있던 진애가 그의 말에 놀랐다. 인석은 옆에서 놀라는 진애를 신경쓰지 않고 계속 말했다.


"그래, 내가 빌어먹을 겁쟁이였어! 내가 빌어먹을 겁쟁이였다고······. 난 소식을 전해준 다음에 어떻게 널 위로해줄 지 몰라서 꽁꽁 숨겨놓고 모르는 척 했어. 진애처럼 사실을 말해줄 수 없었다고."


인석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진애가 당황해 인석의 어깨를 잡았다. 호연은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았다.


"넌 가."


"응?"


"가라고.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지금은 가. 핸드폰 차단도 풀어놓을 테니까."


그녀는 인석의 눈치를 보았다. 인석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호연은 머뭇거리는 그녀를 보며 고함쳤다.


"꺼지라고!"


그러자 그녀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호연의 눈을 바라보았다. 호연이 진애에게서 처음 느끼는 눈빛이었다. 순간 호연은 감정이 위축됨을 느꼈다. 겁을 먹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았다.


그녀가 급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힐끔 그를 돌아봤다. 다시 원래 호연이 아는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힘 없이 쳐지고 눈물이 맺혀있는 눈빛. 누구든 동정심이 드는 눈빛으로.


빠른 걸음으로 그녀가 떠났다. 호연은 인석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힘 없이 말했다.


"일어나."


인석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연은 그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호연은 주먹을 쥐고 손을 부들거리며 말했다.


"그런 고상한 뜻이 있었다니,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냐?"


인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아, 그렇구나. 고맙다, 정말. 너 덕에 그 쇼크를 안 먹을 수 있었어!' 라고 웃으며 말해야 하냐?"


그는 또 침묵을 그대로 지켰다. 호연은 결국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인석은 호연의 주먹을 그대로 맞고 뒤로 밀려났다. 호연은 주먹이 저려왔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휘두른 손을 털었다.


작가의말

여전히 심란합니다. 전 사람은 왜 이리 정신적으로 괴롭게 하는지. 연애를 하지 말았어야 했나. 오타, 문법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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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 빛 - 4 18.07.26 12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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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 남자가 숨을 쉬는 방법 - 8 18.07.25 115 1 7쪽
8 1, 남자가 숨을 쉬는 방법 - 7 18.07.25 114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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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 남자가 숨을 쉬는 방법 - 5 18.07.25 117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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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남자가 숨을 쉬는 방법 - 2 18.07.25 227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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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독신주의자 - 프롤로그 18.07.25 377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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