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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7.25 18:44
최근연재일 :
2022.10.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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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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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2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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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 빛 - 1

DUMMY

여러 문학에서 빛은 대부분 신성함을 의미한다. 신성함은 악을 몰아내고, 빛은 어둠을 몰아낸다. 재난 속에서의 빛은 구원을 뜻한다. 모든 시련을 이겨내면 구름이 걷히고 빛이 쏟아진다. 그리고 전쟁에서의 빛은 승리를 상징한다.


옛 책이나, 신을 봤다는 종교인들이 얘기하는 신의 등장 장면은 언제나 비슷한 레퍼토리였다. 빛이 하늘에 넓게 퍼지고, 밝은 구름들 중앙에 더 밝은 빛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빛을 등에 진 신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내려온다는 식이었다.


미국의 학자 발터 존은 주장했다. 옛날에도 UFO 가 왔다 갔었다고. 신에 대해 전 세계 기록이 조금씩은 달라도 비슷하다는 이유였다. UFO를 본 사람들이 UFO 에서 뿜어지는 빛을 신성한 것으로 착각하여 신이라 기록해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며 덧붙여 그걸 적은 사람들은 자기 망상에 빠져있거나, 허풍치는 것을 좋아하는 문학가라고 말했다.


후에 종교 집단은 발터 존을 자기 망상에 빠진 문학가로 비난했다.


지금 호연은 그 빛을 보고 있다. 눈이 부셨다. 분명 아까 빛나는 UFO 를 봤을 때는 저정도 빛은 아니었다. 하지만 불과 몇 초 만에 눈을 녹여버릴 것 같은 빛이 터졌다. 호연은 두 눈을 가리고 뒤로 물러났다. 눈을 감으니 빛의 잔상이 거멓게 눈에 남아있었다.


"괜찮아요?"


옆에 걷던 남자가 호연에게 다가와 물었다. 호연은 자신이 뒤로 넘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에 쏟아지는 강렬한 빛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엉덩이에 가해지는 고통도 모를 정도였다. 늦게야 그 고통이 골반을 통해 전해졌다. 호연은 온 몸을 비틀었다.


"빈혈기 있으신 것 같은데 병원 한 번 가 보세요."


호연을 일으킨 남자는 그렇게 얘기하고는 자기 갈 길을 갔다. 호연은 아무렇지 않게 걷는 그의 모습이 이상했다. 저런 강렬한 빛은 놓칠래야 놓칠 수 없을 것이다. 그도 쓰러지고 놀라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호연은 눈을 비비고 UFO 를 바라보았다. UFO 는 흉측하고 새까만 모습으로 떠 있었다. 자신은 빛이 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듯이. 하지만 호연의 눈동자에는 아직도 빛의 잔상이 흐리게 남아있었다. 마치 얼룩처럼 말이다.


호연은 순간 겁이 났다. 그는 잰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눈앞에 얼룩처럼 남아있는 잔상 때문에 걷기가 불편했다.


"잠시만!"


호연이 엘리베이터 층수를 누르고 있는데 누군가가 달려왔다. 호연은 달려오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옆집 남자였다. 괜히 얼굴을 마주하기 싫었다. 호연은 급하게 닫기 버튼을 두들겼다.


"야이, 씨발, 너 내 옆집! 하, 이새끼 듣고도 문 닫은 거지? 얼굴 봤지? 넌 죽었어!"


옆집 남자가 엘리베이터 앞에 도달하기 전에 문이 닫혔다. 아슬아슬했다. 옆집 남자의 고함이 들려왔다. 호연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엿 먹어!" 라고 소리친 다음 집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호연은 집에 들어오자 마자 TV를 켰다. 현진이 마지막으로 본 뉴스 채널이 모니터를 통해 나왔다. 별 내용이 없었다. 아나운서들은 정치, 살인, 연예인 기사만 읊고 있었다.


호연은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어느 채널을 돌려도 똑같았다. 방금 전 빛이라면 TV 곳곳에서 '긴급 속보' 를 띄워두고 'UFO 에서 나온 강렬한 빛에 대해서' 라는 제목으로 떠들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TV 속은 너무도 평온했다. 심지어 생방속 속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은 듯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종교 아이돌 무라네사 아카리가 UFO 에 검지로 삿대질을 하며 농담을 했다.


호연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벌써 노화가 오기 시작한 걸까? 핸드폰과 노트북의 빛이 눈에 영향을 준 건 아닐까? 어쩌면 그때 딱 눈이 문제를 일으킨 것일 수도 있다. 호연은 TV를 끄고 옷을 벗었다. 씻고 싶었다.


"야, 임마! 나와!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옆집 남자가 문을 차고 지나갔다. 생각해보니 옆집 남자는 취해있었던 것 같다. 상당히 혀가 꼬여있었다. 호연은 화장실로 들어가려다가 망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옆집 벽을 두들겼다. 옆집 남자의 고함이 들렸다. 호연은 미소를 지으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유럽 연합, 미국이 미국 내 테러 집단에 대해 강력한 제지를 표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직접 처리할 것.'


'오늘 저녁 교통 사고 많아.'


'중국 내 테러 집단이 UFO 공격 계획을 짜고 있음을 확인. 중국 정부는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특공대를 투입할 계획임.'


'외계인 종교의 교주 '예밀 라마에튀도' 새로운 종교 계획을 발표한다고 통보. 종교계, 과학계에 큰 파동이 될 것이라고 주장.'


호연은 거울에 붙어있는 홀로그램을 넘기며 이를 닦았다. 전부 호연의 눈에 별로 들어오지 않는 내용들이었다. 매일 비슷한 기사들이었다. 미국과 테러리스트들과의 관계. 각 세계에서 일어나는 테러리스트들. 정부를 뒤엎으려는 그들의 모습들. 종교 세력들. 지겨웠다.


그는 갑자기 우연이 생각났다. 우연은 그 빛을 봤을까?


호연은 방에 돌아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우연이 흡연 박스 안에서 그의 핸드폰에 자신의 번호를 저장해 놓은 것이 기억났다. 주소록에 그녀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그는 이상하다는 듯이 저장된 그녀의 번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입을 반 쯤 벌렸다.


호연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차단할 사람'


그는 담배를 마저 피우고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차단할 사람' 그가 저장해 둔 이름이었다. 호연은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 입에 물었다가 내던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차단할 사람이라고 취급했다면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호연은 침대에 앉아 주소록 화면만 주시했다. 대체 그녀가 섭섭해하던 모습이 화면 위에 그려졌다. 마치 영상통화를 하는 것처럼.


호연은 한참 머리를 긁적이다가 탁자 위에 핸드폰을 엎어두었다. 복잡한 생각은 그만두자. UFO 를 본 것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모양이다.


호연은 그날 밤에 홀로 소주 한 병을 비웠다. 그리고 차단을 풀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녀는 받지 않았다. 호연은 수신음만 듣다가 잠에 빠졌다.


다음날 세상은 뭔가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날 점심, 호연은 TV 를 틀었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가 버튼을 누르던 손가락을 멈췄다. 뉴스 채널이었다. 프로그램의 제목이 호연의 눈에 심히 띄었다. 마치 하얀 배경에 빨간색 물감으로 칠한 것처럼.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제 밤 그 빛은 무엇이었는가?'


TV 속에서는 그 주제를 가지고 종교 학자와 종교인, 정치가, 철학가, 과학자들이 떠들고 있었다. 그들 중앙에 있는 모니터는 여러 장면들을 반복해서 틀어주고 있었다. 특히 그 시간 대 생방송에서 UFO 가 빛을 내는 부분만 잘라서 보여주었다. 일반인이 찍은 UFO 영상은 얼마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신의 강림입니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신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이것은 신이 우리들 사이에 내려왔다는 겁니다! 저 짧은 시간에 왜! 왜 빛이 번쩍였겠습니까!"


종교인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러자 반대편에 앉아있던 과학자가 종교인에게 삿대질을 했다.


"명백하게 저것은 만들어진 빛입니다. UFO 의 표면을 보면 이렇게 전선이 늘어져 있는데, 저 전선에서 만들어진 빛입니다. 무슨 신입니까? 그냥 잠시 UFO 가 가동된 걸로 추측됩니다."


과학자는 그렇게 반박하며 작게 말했다.


"사람이 종교에 미쳐도 적당히 미쳐야지."


"아니, 종교에 미쳤다고? 신이 없다면 그 과학도 없었어. 하나님이 당신을 창조하신 거야!"


"아니, 오완주 목사님, 저것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당신의 하나님은 저런 철마차를 타고 우리를 겁주는 존재시군요. 우리를 창조한 신이 저렇다면 차라리 과학에서 손을 놓고 자살하겠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모습과 고등한 생물의 모습으로 오신 거요.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야!"


목사가 과학자에게 달려들려 했다. 그러자 목사의 옆에 앉아있던 정치인과 종교학자가 목사를 말렸다. 정치인과 종교학자는 종교인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종교학자는 종교의 나쁜 점을 비판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종교인의 일부였다.


철학가와 과학자는 그 셋을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종교에서 전혀 먼 유명한 인물들이었다.


호연은 자신의 눈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그의 눈은 아직 늙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눈보다 더 적극적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빛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그 빛은 진짜였다.


"현진아, 지금 뉴스 채널 보고 있냐?"


"아니, 왜? 무슨 일 있어? 미국이 UFO 라도 공격했대?"


호연은 제일 먼저 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진은 지금 시간까지 자고 있던 모양이었다. 목소리가 묻혀 있었다.


"확인해 봐."


핸드폰 너머로 현진이 신음을 뱉으며 침대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여러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 뉴스 채널이었다. 현진은 한참 침묵했다.


"저게 뭐?"


"넌 못 봤지?"


현진은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다. 호연이 고작 '넌 이거 못 봤지? 난 이거 봤다!' 라는 말을 하기 위해 들떠서 전화를 했다니. 어린아이도 이런 식의 전화는 안 할 것이다. 현진은 TV 를 껐다.


"이상하지 않아? 저렇게 밝은 빛을 사람들이 못 봤다니? 그것도 어두운 밤인데 말이야. 분명 너도 봤어야 했던 거야! 아직 버스 타고 있을 때잖아."


"그러게. 이상하긴 한데, 그게 우리 생활하고 직결되는 건 아니잖아. 빛을 냈다고 해서 뭐가 잘못된 것도 아니니까."


"아, 음······. 그, 그렇지."


호연은 그제야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현진의 말이 맞았다. UFO 의 빛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 당시 눈만 부셨다. 현진은 웃으며 말했다.


"평소에는 현실적인데, 자극만 주면 사람이 어린애처럼 들뜬다니까, 형은. 진정하고 우연 씨한테 연락이나 해 봐. 우연 씨는 형 장단에 잘 맞춰줄 거야."


작가의말

문법,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비평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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