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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7.2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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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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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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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2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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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 빛 - 5

DUMMY

호연은 전화를 끊었다. 인석은 그를 미쳤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호연은 그가 어떻게 보든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인석은 그의 얼굴을 한참 보다가 지갑을 꺼내며 일어났다.


"이제 일어나자. 들어가면 연락해."


"내가 계산할게. 내가 사기로 한 거잖아."


"아냐, 인마. 오늘은 내가 다 계산할게. 오늘 그 민영이라는 여자 사건도 있고. 다음에 만나면 네가 두 번 사."


하지만 기어코 호연은 계산 중간에 끼어들어서 절반은 자신이 내는 것에 성공했다.


호연은 인석과 헤어진 후 바로 집으로 향했다. 핸드폰을 보니 벌써 그녀의 주소가 와 있었다. 그는 주소를 보내준 강주에게 감사 답장을 보낸 후 그녀의 주소를 저장했다.


날씨가 꽤 더웠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더 더웠다. 여름 밤 하늘을 수놓은 UFO 는 꽤 볼만했다. 볼만하다고? 아무래도 술에 취해 눈이 잘못된 모양이었다. 호연은 UFO 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았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흡연 구역······. 요놈이 어디있나······"


호연의 눈에 흡연 박스 하나가 보였다. 호연은 술에 골아떨어진 다리를 깨워 그곳으로 비틀거리며 향했다. 그는 흡연 박스 안 팔걸이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지포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곳은 우연과 두 번째로 만났던 흡연 박스였다. 한 번은 출판사고, 두 번째는 이곳. 호연은 비틀거리며 쓰레기통 안을 바라보았다. 담배 꽁초와 잡 쓰레기밖에 없었다. 괜히 종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연이 버린 지갑 안 종이들.


호연은 한참 담배를 물고 생각했다. 그리고 행동 했다. 담배를 땅에 집어던지는 행동. 이놈의 담배 때문에 뭔 생각을 하려 했는지 기억이 안 났다. 이놈의 담배를 빨리 끊던가 해야지. 아니면 술을 끊던가. 차라리 생각하는 걸 끊어야겠어.


땅에 떨어진 담배 절반을 발로 비볐다. 마구 비볐다. 신발 밑창이 타들어가라는 듯이. 한참 그렇게 짓밟다가 담뱃갑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담뱃갑을 열고 담배를 전부 쓰레기통에 쏟아넣었다. 얇은 담배개비들이 쓰레기통 안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그는 흡연 박스에 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역시 술은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게 한다. 호연은 담배를 버린 것을 후회했다. 차라리 그 하나를 다 피우고 버릴 걸 그랬다. 그는 얼굴을 감싸쥐고 흡연 박스 벽에 기대어 앉았다. 술기운이 갑자기 확 올라온다.


우연이라는 사람이 계속 머리 속을 괴롭힌다. 호연은 일어나서 비틀거리며 다시 집으로 향했다.


눈을 떴을 때는 아침 10 시였다. 호연은 쓰린 속을 부여잡고 부엌으로 향했다. 갈증이 났다. 그는 싱크대에서 컵을 꺼내 물을 받았다. 그리고 그대로 들이켰다. 여전히 속은 쓰렸다. 호연은 다시 방으로 돌아가 옷을 뒤졌다. 라이터는 나왔지만 담배가 나오지 않았다. 어제 버린 것이 막 기억났다.


"하, 빌어먹을."


호연은 머리를 긁으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난장판이었다. 그는 지금 무척 담배가 끌렸다. 하지만 라이터 뚜껑을 여닫는 것 외에는 기분을 풀 방법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무슨 일을 하고 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핸드폰은 창문 틀에 꽂혀있었다. 그리고 그가 어제 입고있던 셔츠는 창문 밖에 떨어져 있었다. 호연이 아끼는 셔츠였다. 내려가서 그 셔츠를 다시 주워 올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캄캄해졌다.


호연은 통화기록을 훑어보았다. 전부 우연에게 건 전화들 뿐이다. 전부 전화를 받지 않았던 모양이다. 통화기록이 모두 짧았었다. 그는 그녀에게 사과 문자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내야 하지?'


호연은 의자에 앉아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괜히 더 이상한 취급 당하는 건 아닐까? 일단 어떤 식으로 문자를 보내지? 형식적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야 할까? 아니면 좀 친근하게 문체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야 할까? 호연은 또 고민에 빠졌다.


결국 아무 것도 보내지 못했다. 그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는 밖으로 나갔다. 술김에 던진 셔츠를 주워와야 했다.


호연은 셔츠를 집어들었다. 꽤나 사람들이 밟고다닌 모양이었다. 검은색 셔츠에 발자국이 마구 찍혀있었다. 게다가 침까지 뱉고 갔다. 만약 조금 착한 사람이 이 길을 지나갔다면, 이 셔츠는 넝마로 취급 받고 쓰레기통에 버려졌을 것이다. 그는 셔츠를 집어들고 몸을 돌렸다.


호연은 집안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다시 켜보았다. 그리고 제일 먼저 강주에게 받은 우연의 주소를 읽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호연은 그 주소를 종이에 적은 다음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강주의 메시지를 삭제했다.


그는 옷을 갈아입었다. 꽤 말쑥한 검은 정장이었다. 그는 거울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어디 하나 빠질 곳 없는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호연은 목에 맨 빨간색 넥타이를 한참 만지작거리다가 풀었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넥타이였다.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 없는 넥타이였다. 옛 그녀가 선물해줬던 빨간 넥타이. 호연은 처음 그 넥타이를 받았을 때 "난 빨간색이랑 안 어울린다고." 라고 불평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놓고도 정장을 입을 일이 있으면 꼭 넥타이를 맸다. 다른 사람들이 눈에 띈다고 해도 끝까지 매고 다녔다.


그리고 그것을 이별 이후에도 계속 매고 다녔다. 그냥 매고 싶었다. 그녀가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녀의 행동에 배신감을 느껴 막말하고 돌아섰던 호연이었는데.


호연은 거울을 보며 감성에 빠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지금 호연은 넥타이를 매지 않고 있었다.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빨간 넥타이. 그는 조심스럽게 그 넥타이를 들어올렸다.


"왜."


그는 자신 속에 비친 자신을 보며 물었다. 두 얼굴 다 똑같은 얼굴이었다. 호연은 괜히 거울이 울상을 짓고 있다고 생각했다. 넥타이를 들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는 넥타이를 매지 않기로 했다.


호연은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그는 택시를 타며 주소를 말했다. 나이든 노련한 택시기사는 네비게이션을 찍지 않고 택시를 운전했다. 그는 자신의 팔짱을 낀 채 창문 밖을 감상했다. 넥타이 없는 빈 가슴팍이 허전했다.



"어디 중요한 곳 가시나봐요? 양복을 멋지게 빼입으셨네."


택시기사가 농담 삼아 말했다. 호연은 그를 힐끔 바라보았다.


"중요한 곳······. 맞죠, 중요한 곳."


"허허, 중요한 곳이만 중요한 곳이지, 뭐 그리 말을 천천히 하십니까?"


"아뇨, 중요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호연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택시기사는 웃음을 터트렸다. 호연은 대체 뭐가 웃긴지 알 수 없었다.


택시기사는 다리를 건너가며 말했다.


"여기서 얼마전에 내 친구가 사고를 당했수다."


"이 다리에서요? 많이 위험했겠네요."


"다 저 UFO 탓이죠. "


"저 UFO 가 왜요?"


"아실런지 모르겠네. 언제 한 번 UFO 에서 빛이 반짝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도 여기서 택시를 몰고 있었지요."


호연이 놀라 시트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친구 말로는 크게 빛이 번쩍였다고 하더라고요. 그와 동시에 반대 차선에서 오던 차가 그 친구 차 옆구리에 박힌 거고요. 그 친구는 빛을 정면으로 본 게 아니었으니 문제 없었는데, 옆 차선 차는 그 빛을 정면으로 본 겁니다."


택시기사는 갑자기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저는 그 친구 병문안도 갔었습니다. 몸이 엄청 망가졌드만요. 말하는 입 빼고 말입니다. 차가 운전석 바로 옆을 들이박았으니 멀쩡하겠습니까? 살아있는 게 다행이죠. 얼마나 아파하면서 얘기하던지, 내 속이 다 아팠다니까요. 근데 웃긴 게 뭔 지 아십니까?”


“뭡니까?”


“같이 탔던 여자 승객이 있던 모양입니다. 바로 뒷좌석에 앉았다는데, 사고 후 하루 만에 퇴원했더랍니다. 팔이랑 다리 골절로 말입니다. 차가 바로 옆에서 부딪쳤는데 팔이랑 다리 골절이면 기적입니다, 그건.”


역시 우연의 이야기였다. 호연은 한숨을 쉬며 시트에 늘어졌다.


“빨리 쾌유하셨으면 좋겠네요.”


그는 이 말을 남기고 택시기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다른 주제로 넘어간 택시기사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요새는 묵묵한 택시기사도 많던데, 이 양반은 유난히 말이 많았다.


호연은 공책을 펼쳐 자신이 짜낸 이벤트 아이디어를 다시 읽어보았다. 급하게 짜낸 이벤트 아이디어였지만 상당히 그럴싸했다. 새로운 이벤트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홍보부장에게 가져다주면 두 손 들고 환영할 것이 분명했다.


“다 도착했습니다.”


어느새 부탁한 곳에서 택시가 멈췄다. 아파트 단지였다. 호연은 택시비를 계산하고는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우연의 주소가 적혀있는 종이를 주머니 속에서 꺼냈다. 그녀는 10층에 살고 있었다.


“어머, 호연 씨! 웬일이에요?”


호연이 현관문을 열기 위해 세대호출 버튼을 누르자 우연의 목소리가 인터폰을 통해 들렸다. 놀란 목소리였다. 갑작스럽게 집으로 찾아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호연은 헛기침을 하며 들고온 노트북 가방을 들어보였다.


“이번에 보라뭇잎 출판사에서 이벤트 건으로 할 얘기가 있거든요.”


“어머, 출판사에서요? 어서 들어와요.”


현관문이 열렸다. 꽤 좋은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는 자동으로 우연의 층을 안내했다. 직접 층을 눌러야하는 호연의 아파트와는 딴판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에 새겨진 문양을 구경할 시간도 없었다. 단 몇 초 만에 10층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이럴 거면 엘리베이터 문에 왜 문양을 넣어둔 건지.'


엘리베이터를 나와보니 벌써 그녀가 문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녀는 목발에 의지해 서 있었다. 그녀의 상태는 상당히 꾀죄죄했다. 매력적이던 검은 단발머리는 기름기로 번지르르해져 있었고, 이리저리 헝클어져 있었다. 오랫동안 밖에 안 나갔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하얀 박스티를 입고 있었는데, 검은 속옷이 비치고 있었다. 호연은 괜히 부끄러워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우연은 밝게 웃으며 환영했다.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모양이었다. 호연은 몰랐다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우연의 팔과 다리를 가리켰다.


“우연 씨, 그 다리랑 팔 왜 그래요?”


“아, 이거요? 얼마 전에 택시 사고를 당했거든요. 호연 씨랑 헤어지고 난 다음에 사고가 났어요. 호연 씨 탓은 아니니까 너무 울상 짓지 마세요. 일단 들어와요, 호연 씨.”


“아,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작가의말

일단 저녁에 계속 올릴게요! 오타, 문법 오류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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