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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실린더cyli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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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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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1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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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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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사건의 일각

DUMMY

프리드먼Fridmun은 볼을 긁적거렸다.


그는 뛰어난 인간이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말이다. 지온 상회의 십두十頭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실제적인 능력은 그 이상이다. 자신이 일하는 조직에서 그를 더 챙겨주지 않고 봉급이 짜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니었다. 단순하고 사실적인 말이다.


그는 더블Double이었다. 중첩 능력자. 대륙에는 초인들이 존재했고, 그건 세 가지로 분류된다. 기사氣士, 아티피서Artificer, 마법사Staff user. 기사는 방대한 범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돌파력이 가장 좋았고 본신의 무력이 가장 뛰어났다. 아티피서는 기사보다는 못하지만 기동력이 좋았고 다양한 능력을 발휘해 상대의 예측 밖을 넘나들 수 있었다. 마법사는 가장 기동력이 낮으나 거대한 범위를 손 아래 둘 수 있었고 또한 어떤 이의 예상도 뒤엎을 수 있는 히든 카드였다.


한 개의 능력이 다른 종의 능력에 반발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한 가지 능력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고련과 재능, 운과 기적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능력자들은 한 종류의 능력을 가진다. 더블, 이라는 말로 중첩능력자들을 특별시하는 이유였다. 양 종의 능력을 동시에 구사 가능하다는 건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다. 같은 수준의 두 가지 능력을 지녔다면 일반적으로는 그 윗 단계의 일반 능력자와도 견줄 수 있으리라고 보기도 했다.


프리드먼은 별 것도 아닌 세넨 시의 시민이었지만 능력자였다. 그에게는 재능이 있었고, 또 우연히 그것을 개화시킬 수 있도록 아주 약간의 환경도 작용을 했다. 그는 기능력자인 동시에 아티피서였다. 기능력자로서 단계는 소드 폼멜이었으나 그 정도만 해도 훌륭한 편이었다. 육체적인 고련 없이 기능력자의 입문을 들어서는 건 불가능하다.

평범하게 걸쳐 입은 펑퍼짐한 천 옷 아래에 이 청년기의 사내의 체격은 완벽하게 근육으로 짜여져 있었다. 또한 기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또 신체의 연장선으로 한손검을 골라 십여 년이 넘도록 휘둘러 온 그는 어지간한 병사가 상대라면 다대일로도 쉽게 죽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나름대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여유가 있었고, 많은 것들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그의 집안에 고용된 가드Guard는 입문 단계이지만 기능력자였고, 그에게서 훈련법을 사사받았다. 마법사로서의 능력은 마탑에서 주관하는 지역 별의 아카데미가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그곳에 가서 일 년에 몇 개월 정도를 생활 하면서 배울 수 있었다.

마탑에서 세우고 운영하는 아카데미는 그와 같이 SP를 느끼고 다룰 수 있을만한 선천적인 재능자들, 천재들을 발굴하겠다는 의미의 기관이었다.


이 시대에 갈수록 많은 능력자들이 나타나고 있었고, 열왕들의 눈에 차지는 않겠지만 그 기준을 한참이나 낮추어서 바라보면 깨나 많고 또 유의미한 숫자가 전 대륙적으로 발견되고 있었다. 프리드먼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마법사로서 그의 수준은 베어 헨즈Bare hands였다. 목철금장Staff의 단계를 거쳐 공수空手의 경지에 오르는 것과는 정반대의 맨 손이라는 의미였다.

목장에 아직 이르지 못한 게이지 유저들을 일컫는 말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룰 수 있는 게이지의 양은 깨나 유의미한 수준이다.

그 정도만 되더라도, 아티피서나 마법사로서 초상 능력들을 현실에 발현시켜낼 수 있었다.


게이지를 전혀 다루지 못하는 일반인에 비해 저급의 아티팩트라도 제 힘으로 발동시켜서 일구어낼 수 있는 역사의 종류가 다양하다. 하위의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마법을 실행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뿐, 일반적인 사람의 시각으로 본다면 충분히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수치적으로 따진다면 1000보다 확연히 아래의 게이지를 다루고 있는 자들이었고, 이런 이들은 검기를 발현시키는 능력자의 앞에 서면 늑대 앞에 선 양과 같은 신세가 된다. 적으로서 전장터에서 만나게 된다면 말이다.


어쨌든, 그 정도라고 하더라도 프리드먼의 능력은 출중하다. 어느 용병단에 간다면 아주 고급의 대접을 받을 것이다. 지온 상회에서 고작 십장의 역할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 건 단순히 돈 때문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안정적이며 안전한 직장이라는 것도 있었고(비교적), 또 그가 세넨 시의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도 영향을 끼친 일이었다.

그의 부친은 지온 상회의 상단주와 연이 깊은 지인이자 친구였고, 아버지의 권유와 추천으로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된 식이다.


그는 받는 돈에 비해서는 과분한 능력을 갖고 있었으나, 친구의 사업에 도움이 되라는 의미로 부친의 말을 들어 일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무역 상행에 관련된 다양한 업무들을 하고, 휘하의 일꾼들을 부리는 역할이었지만 어지간한 호위 무사 몇 정도는 가볍게 탈구시킬 수 있는 솜씨이다. 여차해서 그가 힘을 써야할 때는 또 그렇게 할 것이고.


다만, 이번 상행에서는 그가 그렇게 힘을 드러내 보일 필요가 전혀 없는 듯 싶었다. 프리드먼 랑셀은 하늘을 처다봤다.


하늘의 파란색과 그 위를 떠가는 뭉게구름. 햇빛이 뜨겁다. 평화롭다. 아무리 먼 길을 가는 것 같아도 하늘은 그다지 변함이 없었다. 프리드먼은 그런 점이 좋았다.

그리고 황무지의 가도를 걸으면서 뒤쪽을 슬쩍 처다보았다. 그가 있는 곳은 열 대 정도가 있는 거대한 짐마차의 행렬 중에서 앞 쪽이었다.


정확히 고르자면 앞에서 세 번째 있는 마차의 왼쪽에 서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십장은 아슬아슬하게 말을 탈 수 있는 지위였다. 그를 비롯해서 간부급에 있는 이들은 배당된 말이 있었고, 또 마차를 끌어대는 튼튼한 짐말들이 있다.


이미 가도를 따라 남부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몇 개의 마을과 도시를 지나쳤다. 황무지라 할 지라도 간혹 가다 보면 물을 마실만한 곳도 있기 마련이었고, 황무지만 이어지지는 또 않았다. 풀들이 자라 있는 목초지 역시 드문드문 나왔고, 그런 곳에서 말들에게 풀을 먹이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어느덧 남부 대륙으로의 길을 가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며 어떤 사람의 형상을 힐끗거렸는데, 중간에서 조금 뒤 쪽에 있는 터라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그들을 아주 주시하고 또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이 상행에 저런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능력자들이 있었다. 그는 실제로 두 눈으로, 그런 현상을 본 게 처음이었다.


중부 대륙 쿄진에서 시작한 상행이 그리 오래 가지 않았을 무렵, 상행 초반에 황무지에서 도적떼들의 습격을 받았다. 거의 수십에서 백여 명이 되지 않을까 싶었던 거대한 마적떼였는데, 보통 그렇게 되면 상단의 인물들이나 물건이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었다.


느닷없이 평야에서 전쟁이라도 치루는 듯한 일을 겪는 것이다. 남부로의 직행로, 잘 닦여진 가도를 따라 내려가는 길은 그런 일들이 유독 잦았다. 어지간해서는 다른 루트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던 이유이기도 했었고.

만일 그런 일을 대비한다면 수십 명 이상의 호위대, 곧 중규모 이상의 용병단을 통째로 계약해서 상행 내내 곁을 지키도록 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였다.


용병들 역시 신뢰할 수 있느냐, 하면 또 다른 문제였지만 적어도 도시에서 인가를 받고 움직이는 자들이 상행 중간에 허튼 짓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정말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거나, 인간적으로 양자 택일의 경우가 온다거나 하면 모르겠지만. 그들 하나하나는 신분이 노출되어 있는 자들이었고, 마탑처럼 강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지만 전 대륙 곳곳에 지부를 두고 움직이는 용병 길드가 최소한의 억제 장치로 기능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런 대놓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면 용병 길드 내부에서 최우선적인 토벌 대상으로 임무가 내려오게 되고, 제법 단가가 쎈 현상금이 붙어서 대륙 전역의 용병들이 순식간에 암살자로 돌변하게 된다.


번듯한 도시에서의 삶은 거의 불가능해 지는 셈이었고, 어딘가의 작은 마을이나 산간지방에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운이 나쁘면 그 주변을 지나다 현상금을 타기 위해 애를 쓴 용병에게 걸려 한순간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어지간한 국가의 사법 체계보다 더 흉악한 처벌법이었다. 요지는 대륙 전역에 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용병 길드가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었으므로, 피할 곳이 마땅찮다는 점이었다.

정말로 작정을 하고 일을 내려면, 확실하게 악행을 저지르고 마적떼로 돌변해 야지에서 야인으로서 살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삶을 번듯하게 견딜 수 있는 인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시대는 살기 좋았다. 이전 어느 시대들에 비해서도 말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있었고, 안락하고 편의적인 삶에 익숙해진 일반적인 시민들은 굳이 그런 모험을 하지 않는다.


한 순간의 범죄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의 양보다, 사회 전체적으로 뿌려져 있어 개인이 누리는 편의적 공공자본과 혜택의 양이 더 많아졌기에 생기는 변화와 체계들이었다.


어쨌든 그런 점에서 대개 상행에는 용병 길드가 주선하는 병사들이 따르게 마련이었고, 혹은 규모가 큰 집단이라고 한다면 상회에서 자체적으로 육성하는 사병들이 호위를 맡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지온 상회 역시 세넨 시에서 가장 규모 있는 상단답게, 그런 병사들을 보유하고는 있었으나 상회에서 움직이는 모든 상행을 감당할 수 있는 수는 아니었다.


프리드먼 랑셀은 상단의 십장으로서 휘하의 인력들을 관리하고 상급자들과 소통을 하면서, 동시에 늘 얼굴이 바뀌는 용병단들과 교류하는 게 주된 업무였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대단한 능력자들이라고 들었었다.

그리고 직접 본 무위武威는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말이다. 고작 두 명이 이번 상행의 안전을 책임지는 호위 인력의 전부였지만, 그들은 그럴만한 자들이었다. 프리드먼은 아직도 생생하게 몇 주 전의 일을 기억한다.


말을 타고 덤벼드는 마적단 일당이 순식간에 토벌되는 광경을 말이다. 그건 정말로 일방적인 토벌이었다. 몇 배의 숫자로 포위를 한 국가 정규군이 온다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작 두 명의 손이 벌인 일이었지만, 끔찍한 폭발이 일어나며 말과 사람이 잡동사니처럼 허공을 날았고, 또 사라졌다.

손 안에 들어오는 기묘하게 생긴 물건에서 폭발을 일으키는 무언가를 쏘아내는 청년이 한 명이었고, 나머지 한 사내는 그보다는 나이가 있어 보였으나 마찬가지로 상상하기 어려운 묘기를 보여주었다.


눈으로 제대로 좇기도 힘들었고,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현실의 일인지 잠시 고민을 해야만 했다. 잡기도 어려운 수준의 순발력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곤충이 사람만한 크기가 되어서 그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그렇게 보일 것 같았다. 잔상이나 그림자 따위가 시야에 남을 것 같다, 고 프리드먼은 생각했다.

순식간에 한 장소에서 몇 미터는 떨어진 자리까지 한달음에 움직이며 사람의 키보다도 훨씬 길다란 검을 휘두르는 광경은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장검의 날을 유지하기 위해 드는 기력의 양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도 잘 가지 않았다.

프리드먼은 그런 수준의 능력자를 눈으로 본 게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사사받는 기능력자는 고작해야 폼멜에서 가드 수준이었다. 기를 유형화시키는 일은 꿈에도 꾸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장정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운동성을 보여주었고, 오래도록 단련한 검술은 탁월했다.


그래, 프리드먼과 그 때의 그 검술 스승이 모자란 게 아니었다. 그가 목도한 저 양반들이 지나치게 규격 외의 괴물인 것 뿐이다.


프리드먼은 인파의 사이 틈새로 보이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별다른 표정도 없이 심드렁한 기색으로 계속해서 걷고 있는 둘이 있다. 하나는 금발의 더벅머리, 젊은이. 그보다도 나이가 조금 앳되어 보인다. 어느 지방의 복색인지 모를 특이한 질감의 재킷과 바지, 내의와 부츠를 신고 있었다. 흰 색이 배경으로 푸른색이나 금색으로 선이 들어간 디자인은 아무래도 찾아보기 어렵다.

완벽한 순백의 옷이라는 건 디자인 업계에서 가장 만들어내기 힘든 종류이기 때문에 그렇다. 온갖 공정이 들어가서 원단을 뽑아낼 수 있었고, 필연적으로 소량에 값이 올라가게 되어 있다.


그런 옷은 거부들이나, 혹은 고위 관료들, 고위 귀족이나 왕실에서 예복으로 사용하는 경우이다. 저런 것을 일반적으로 입고다니는 인간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떤 종류의 직물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약간의 광택마저 비치는 옷차림이었고, 그 내부는 질긴 가죽인듯 두께감이 있었다. 작은 나이프의 공격 정도는 막아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차림새로, 뚜벅거리며 걷는 인간이 하나. 그 옆에는 프리드먼보다는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 30줄로 보이는 사내가 하나 또 있었다.


검은색으로 일부러 맞춘 것 같은 복색이었다. 흑발의 백인이었고, 콧대가 높았다. 색이 아주 진하고 부리부리한 인상의 금빛 눈을 가진 사내였으나 그 얼굴 근육은 분위기를 잡는 것 없이 한없이 풀어져 있어서, 그 강렬한 금안金眼이 전혀 구실을 못하는 남자였다.


프리드먼이 있는 자리에서 그들의 얼굴 낯빛까지는 자세히 확인이 되지 않으나, 그들을 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여러 번 자리를 갈고 또 숙식을 해결하고 다양한 업무를 보면서 그들의 얼굴과 기색은 여러 번 살폈다.


어쨌건, 프리드먼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은 다름없이 그리 걷고 있었다. 프리드먼은 그런 그들의 표정을 머릿속에 그렸다. 둘 다 실없어 보이는 행색이지만, 그 외관에 결코 속아서는 안되는 괴물들이었다.


어디서 대체 저런 인간들을 구해올 수 있었던 건지, 지온 상회의 상단주에게는 경외심마저 들 정도였다. 아니, 저 인간들에게 품어야 하는 걸까 그건. 아무튼 27살의 사내는 턱에 난 뾰루지를 자신도 모르게 매만지면서 다시 앞을 바라봤다.


그의 앞에, 그리고 곁에는 그가 담당하고 있는 마차가 있었고 프리드먼 휘하의 상단 부하들이 있었다. 그보다 나이가 적은 이도 있고 많은 이도 있다. 상단에서 직책이나 계급은 단순히 나이로 나누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경력으로 나누어지는 법도도 아니었다.


단순히 그 직무에 누가 더 적합한가, 를 따져서 하는 것이었고 그도 상단의 말단 인원들을 모두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다. 그가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던 유소년기부터 지온 상회에서 일을 해 온 짐꾼들이나 직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일반 상단원에서 한 단계 위의 선임이나 고문으로 취급받으면서 전체적으로 다른 이들이 실수를 하지 않고 상행을 완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직급으로는 모두 십장이나 오십장, 백장을 비롯해서 상행을 책임지는 행수行首(지휘 직책자들 중에서, 한 번의 상행마다 총책임자를 임명한다. 현재는 부상단주인 졸리 아에르)등 지휘 직책자의 휘하에 속하지만 중장년 이상의 나이대를 가진 그런 이들은 아무도 무례하게 대하지 않았다.

혈기가 넘치는 일반 단원들을 통솔하고, 수많은 실제 경험을 통해서 상행을 조율하는 지휘자들에게 조언을 건넨다. 단순히 물건을 옮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거대한 상단을 꾸리고 먼 여정을 오가는 길에 벌어지는 다양한 변수들은 일일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이상의 사건과 사고의 연속이었다.


그런 이들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으면 결국 상단이란 건 굴러가지가 않게 되리라. 단원에 불과하지만 십장같은 하급 지휘자들보다는 수당도 더 센 편이었고 말이다. 거기다 직접 장거리 상행에 참가하게 되면, 연차나 몇 번의 상행을 경험했는가를 기록해둔 상단 기록부에 따라 추가 수당이 붙게 된다.

지식이 많은 노인이 적극적으로 조언을 하고 이들을 이끌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제도였다. 그런 식의 추가 수당을 많이 받다보면, 정말 베테랑 단원들은 일시적으로는 중급 이상의 지휘자들보다도 많은 봉급을 받으며 일을 하게 된다.


십장으로서 그가 맡은 열명의 단원들 중에도 그런 이가 하나 있었다. 나머지는 그와 비교해도 더 어린 젊은 청년들이거나, 엇비슷한 자가 둘이다. 선임이랄만한 베테랑 단원은 40대 중반의 큼직한 체격을 지닌 사내다.


한 개의 마차는 세 마리의 준마가 붙어서 바퀴를 열심히 굴린다. 거대한 짐마차는 얼핏 견주어본다면 오두막 집처럼도 보이는 크기였다. 실제로 내부 공간은 오로지 적재를 위한 빈 공간이었으니 평범한 집보다도 많은 물건을 싣을 수 있을 테였다. 효율적으로 물건을 쌓아 올리기 위해서 튼튼하게 짜여진 목재 외관의 마차였고, 적재량과 내구성에 큰 영향을 주는 골조에 약간의 합금이 섞여 있었다.


내부는 그야말로 사각형의 뻥뚫린 빈 공간이었고, 그 안에 온갖 기물과 귀물들을 상자에 넣어 차곡차곡 적재를 해두었다. 마차는 초상력석Super-power stone을 이용해 돌아가는 자체 엔진이 내부에 들어 있었다. 짐으로 가득 채워둔 마차가 엔진만을 이용해 굴러가는 일은 굉장히 비효율적이며 또 오래 갈 수도 없었지만, 적어도 말의 부담을 덜고 단지 세 마리의 준마로만 거대한 마차를 장시간 끌고갈 수 있게 하는 도움으로는 충분했다.


그런 식으로 최소한의 운용을 하게끔 기계장치를 이용하는 게 이런 운송 수단 개발 업계의 유행이었다. 현재로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고 말이다.


초상력석은 광산 따위에서 발굴해내는 광물이었고, 어지간한 보석만큼 비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희귀하고 유용한 광물로서 그렇게 값싸게 구할 수도 없는 물건이었다.

최초에 캐낸 자연 상태의 초상력석은 그 자체로 초상력SP를 담고 있고,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것을 다 사용하고 나면 초상력을 담는 빈 그릇으로서 기능한다.


반영구적인 그릇은 아니었고, 주로 게이지 유저를 이용해 게이지를 충전하고 나면 한 번 최대량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담을 수 있는 용량이 조금씩 감소하게 되며, 보통 열 번을 다 채우지 못하고 버리게 된다.

보통 이런 장거리 상행에서는 사용 횟수가 거의 다 해가는 초상력석을 이용한다면 상행 도중에 엔진이 힘을 잃게 되므로 여유분을 더 챙겨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초상력석은 아무 데나 있는 돌멩이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발굴량이 깨나 있었다. 단지 그 사용처가 너무 방대하고 유용하기에 늘 과잉 수요 상태일 뿐이다.

가격 역시 소모품치고는 비싸나 번듯한 상단에서는 운용할 수 있을만한 물건이었는데, 문제는 게이지 유저들을 고용해 그 내부에 에너지를 채우는 것이 더 비싸다는 점이었다.


엉덩이가 무겁고 또 콧대가 높은 게이지 유저들은 하급의 능력자라고 해도 구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보통 대형 조직이나 상단 따위에서는 전속 능력자를 두고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충전 업무를 감당하도록 하는 방식을 쓰는 게 일반적이었다.

지온 상회는 중부 대륙 한 도시 최고의 상단이었고, 역시 그런 능력자를 고용하고는 있었다. 프리드먼도 낮은 수준이지만 충전이 가능하기는 했다. 지나치게 오래 걸릴 뿐이었지. 적어도 베어 핸즈 중에서 최상급의 능력자나 목장 정도는 되어야 빠르게 초상력석의 충전이 가능했다.


프리드먼이 이런 마차에 들어가는 초상력석 하나를 채우려면 사용 횟수가 절반 정도 깎인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몇 시간은 꼼짝도 않고 집중한 채 그 일만 해야 할 것이었다. 게이지의 운용이 정신력의 소모를 담보로 한다는 걸 생각하면 그다지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분명 그것을 하고 나면 한동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쉬기만 해야 하리라.


간혹 게이지 유저들 중에서는 게이지 운용 능력과 그 한계를 깨기 위해서 거대한 초상력석을 구해 게이지를 소모하는 수련을 하는 이도 있다고는 했다. 프리드먼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의 생각에 그리 효율적인 방식의 수련은 아니었다. 뛰어난 아티팩트 메이커가 다양한 물건을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서 그렇게 한다면 모를까 말이다. 그럴 시간에 한 자락이라도 더 마법 구현을 연구하고 실제 발현을 해보는 것이 총체적인 수련량은 더 높으리라.


게이지의 운용이라는 건 참으로 오묘하고 또 복잡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런 고급 원료를 활용해 굴러가고 있는 오두막만한 마차의 주위로 그의 '조'가 빙 둘러 붙은 채 걸어가고 있었다. 십두(or십장)인 그는 지휘 직책자로 말을 탈 수 있었으나 걷고 있다.


말이 적을 때는 나이가 많은 베테랑 단원이나 지휘자가 번갈아서 탄다거나, 혹은 노년기를 접어든 고문 급 단원에게 양보하는 것이 관례였다.

지금은 딱히 말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전체적인 속도가 그리 급하지 않았기에 그 역시 그냥 걷고 있었다.


말도 어쨌든 생물이었고, 오랜 시간 사람을 태우고 가다 보면 피로도가 누적되게 되어 있었다. 그의 안위나 상행의 완수보다 말의 컨디션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나.

굳이 핵심적인 이유를 파보자면 그가 걷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젊고, 체력이 많았으며 또 걷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다.

체력 단련이라는 측면에서도 승마보다는 제 발로 터벅이며 장시간 행군을 겪는 것이 꽤 효과적이었고.


저 괴물같은, 에인션트 그리즐리라 밝힌 용병들이나 최상급의 능력자들에 비한다면 아주 부족한 수준이었으나 그 역시 기능력자 중 한 명이고 검수이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배워서 꾸준하게 단련해 온 검술은 그의 좋은 친구이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역시 매일 밤에 자기 전이나 아침 일찍은 검을 얼마간 꼭 휘두른다.


그의 육신은 분명 다른 평범한 이들이 본다면 압도될만한 근육질의 것이었고, 그건 거대한 체격으로 완성되진 않았으나 세세하게 갈라진 잔근육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물건이었다.

계속해서 극한으로 체력 수준을 유지하고 몸의 한계를 키워나가는 일은 육신의 운동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력술의 발전에도 분명하게 영향을 주었다.


게이지는 정신력에 영향을 주며 또 받고, 기는 체력과 그리하니까 말이다.

모든 기력술사, 기능력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강력한 체술의 달인들이었다. 그 다루는 무구의 종목은 다를지언정 하나같이 박투나 근접전의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기를 움직이는 운동성은 결국 몸을 움직이는 체술에 근거하기에 말이다.

기의 수발이 자유롭다는 건 결국 사지를 비롯한 육신의 제어의 달인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대륙에는 다양한 계통의 체술들이 존재했다.


몇몇 것들은 이름을 날리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아는 자들만 알며 또 어떤 종류는 이름도 없는 하류의 것들도 많았다.

초상력을 통한 공학으로 활자 인쇄기가 만들어진 시대이기에 제지 기술도 어느 정도 발전을 한 상태였다. 모든 사람들이 손쉽게 읽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하루 정도의 일당을 값으로 치른다면 누구나 큰 어려움 없이 구할 수 있었다.


그런 책들 중에는 당연히 체술의 요체를 나름대로 정리해 둔 것들도 있었다. 귀한 것들은 비전으로 취급되며 천문학적인 값을 주고도 얻을 수 없었지만.

원한다면 독학도 가능한 법이었다. 도시나 어느 정도 규모 있는 마을 따위에서는.

물론 아무리 그것들을 읽고 제 몸을 혹사시킨다고 해도 기능력자로서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보는 자들은 극소수였다.


그건 재능과 고련, 그리고 운이라는 것이 함께 합쳐져야 얻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전 시대에 비해서는 많은 수가 되었으나 능력자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는 않고 여전히 유지되는 이유였다.


프리드먼은 남들에 비해 운이 두 배로 좋은 경우였다. 그리고 그렇게 따져 본다면. 중첩 능력자였으니.

게이지 유저와 기 능력자 양종을 굳이 비교한다면 게이지 유저 쪽이 조금 더 재능이라는 영역에 의존하는 바가 큰 분야이기도 했다.


대륙 여러 나라들의 군사 분야에서는 기 능력자들이 조금 더 흔하다. 체계적으로 양성해낸다면 확률이 보다 높은 편이다.

다만 능력자들을 분석하고 확보해야 하는 국가들의 입장에서 '자연발생'이라고 할 만한 민간에서 나타나는 천재들의 등장은, 게이지 유저들인 경우가 더 많았고 말이다.


잿빛의 머리칼. 갈색 눈동자. 백인과 굳이 비교한다면 누런 피부색을 띈 청년이었다, 프리드먼은. 탄탄한 근육질로 이루어진 몸은 보통 체격이었고, 옷을 벗는다면 다소 중량감이 있는 몸집이다.

펑퍼짐한 천옷 따위로 가린다면 그가 극한의 운동으로 수련을 한 인간이라는 걸 잘 알아챌 수 없을 테고 말이다.


왼손잡이인 그는 오른쪽 허리춤에 그가 애용하는 한손검을 차고 있었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십자가 형태의 직검이었고 소드 가드(검 손잡이 위쪽의 칼날막이 부분)가 정확하게 허리 쯤에 걸린다.

거기서 시작한 검날의 길이가 비스듬한 대각을 그리며 뻗어 무릎이 굽는 부분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간다.


폭이 그리 크지 않았고, 다만 세넨 시에서 솜씨 좋은 대장간을 수소문해 제작한 합금 강철검이었으므로 아주 튼튼했다.

간단한 손질과 수리만을 반복하면서 어느덧 5년 이상을 쓰는데 별로 흠이 없었다. 물론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장거리 여정에는 몇 개의 예비용을 챙겨다니기는 하지만.


그 외에 왼쪽 허리춤에는 아래로 길게 내려오는 천옷 외투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던지거나 하기 좋은 단검이 있었다. 얇상한 놈으로 손 한 뼘 정도 길이의, 크로스 가드가 달린 검이다.


위급할 때, 또 순식간에 초근접전이 벌어지게 될 때 상대의 공격을 막고 빈틈에 찔러넣는 용도였다. 그러기 위해서 왼쪽에 있다. 불필요한 어떤 동선도 없이, 반복 훈련으로 연마한 손놀림은 순식간에 그걸 뽑아 앞으로 찔러 넣을 수 있었다.


만일을 대비해서 게이지 유저로서, 마법사로서 마법 보조 아티팩트 하나와 손방패, 활과 화살 조금이 그가 맡는 마차의 측면 수납 공간에 들어있고 또 일부는 외부 프레임에 매달려 있었다.


상행의 인원들이 마차 주변의 위치를 지키는 건 그런 이유도 있었다. 긴급한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각자 대비할 수 있는 장구류들을 자신의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달아두거나 한다.

습격을 받으면 곧장 방패를 꺼내들고 화살을 메길 수 있도록 적재한 위치 근거리를 늘 지키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전투는 고용받은 전문 호위 인력의 일이었으나 도적떼의 눈먼 칼날이나 화살이 그들만을 노리고 보호받는 이들을 피해가는 건 아니었다.

각자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서 강건한 장정들은 어느 정도 무술을 익힐 것을 장려받고 있었다.

정말 노약자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었겠지만.


그가 맡은 조의 인원들은 전원 튼튼한 장정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혹시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모두 전투에 돌입할 수 있었다.

특히 베테랑 단원으로서 있는 40대의 거한은 더욱 잘 참가할 테였다.


베테랑이 겪은 경험의 가짓수는 늘 다양했고, 그들이 베풀 수 있는 노하우도 분야가 여러 갈래였다.

저 중년의 사내는 특히 전투 경험이 많은 양반이었다. 아직까지 체구와 근력을 유지하며 전투력으로써 그 노하우를 베풀 수도 있었고.


어지간한 신입 지휘책임자들보다 더욱 능숙하게 현장을 관리하고 젊은이들의 행동을 유도해 생존률을 높이리라.

직접적인 조직 내의 목적성이 생존과 상행의 성공인 화물 관리자들은 적극적인 전투 참가보다는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거나 막고 살아남는 게 가장 우선시되었다.


불가피하다면 앞에 서서 도적의 목을 베긴 해야겠지만. 상황을 분간 못하고 앞서 가다가 제 몸이나 상단의 운반물이 상한다면 그대로 상회의 손실이었다.

중상을 입는다면 그 즉시 운반자가 아니라 짐거리가 되어 행로를 늦춰지게 할 테였고.


그런 수많은 전투 상황에서 자신의 임무를 다해서 기어코 살아남아 나이를 먹은 단원이 바로 그 거한이었다. 프리드먼이 검을 처음 잡은 시점, 그러니까 열 살 무렵에도 이미 지온 상회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으리라.


거한의 이름은 '살만 데릭'이었다. 강직해보이는 어감의 이름을 가진 사내는 실제로도 그런 힘을 보유하고 있다. 청색으로 물을 먹인 질긴 특수 천옷을 입고 있었다. 여러 겹을 겹쳐서 덧대고 특수한 약품 처리를 해서 내구성을 높인 옷이었다. 방어구만큼 효과를 보이지는 않으나 적어도 어지간한 일에 잘 찢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근거리에서 짧게 휘둘러지는 작은 칼날 정도를 막을 정도는 되었다.

일을 하다가 상할 일도 별로 없고, 물건 따위를 나르고 작업을 하면서 쓸리는 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에도 좋다.


익숙해지면 제 몸처럼 달라붙는 촉감이었고, 처음 입는다면 거칠한 느낌에 익숙해지기가 조금 어렵다. 살만은 물론 이 재질이 하도 익숙해서 몸처럼 느껴지는 지경이었고.


이것을 다시 몇 겹을 다양 종류의 복색으로 갖춰 입으면 눈먼 칼 한 두 번 정도는 막아 줄지도 몰랐다. 본격적인 방검복이라기보단, 중상을 조금 경감시켜주는 정도이겠지만. 늘상 입고 다닌다는 게 중요했다. 여행이라는 건 곧 위험의 연속이었다. 살만 데릭은 그렇게 살았고, 살아남았다.


그는 북부 대륙 출신의 인간이었다. 전형적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코가 높고, 입체적인 골격을 가졌다. 체구가 조금 크고 하얀 피부의 백인이다. 머리칼을 비롯한 터럭들은 중부인들과 비슷한 잿빛이었으나, 눈빛은 푸른 색이었다. 중년을 지났으나 아직도 형형하게 타오르는 그것은 어지간한 무뢰배를 제압할만큼은 되었다.


그것이 비단 눈빛의 정광 때문인지, 팔뚝의 굵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살만 데릭은 프리드먼이 알기로 기능력자는 아니었지만 저 정도의 체구와 단단하게 자리잡은 근육이라면 소드 폼멜 정도의 능력자와는 엇비슷하게 수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의 발현'이 소드 폼멜의 조건이었고, 양과는 관계 없는 발현만이라면 당장 그렇게 큰 일을 해내지 못한다. 초인에도 수준이 있었고, 소드 폼멜의 단계는 분명히 가장 일반인에 가까운 계층이었다.


장한은 활의 명수이기도 했고, 거대한 양손 도끼를 제 팔처럼 다루는 전사이기도 했다. 동시에 상행에 포함되는 다양한 잡무들에 베테랑이기도 하니 상단에 있어서는 핵심 인력이다. 확실히 프리드먼보다는 많은 봉급을 받고 있으리라.


투실한 볼께에 몸의 중심은 앞뒤로 두꺼운 체격을 지녔고, 그 몸통에 달린 사지역시 흉흉한 일을 손쉽게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은 두께였다. 그의 손에 거대한 배틀엑스가 들리지도 않았건만 그런 모습이 상상이 가고 또 지독하게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서부 대륙에서 자생하는 거대 물소의 뿔을 사용한 혼합 각궁을 사용했는데, 프리드먼은 근접 격투는 몰라도 활에 있어서는 도저히 그를 이길 자신이 없는 달인이었다.

일, 이백 미터 너머에 있는 상대의 머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해서 꿰뚫어대는 일을 목격한 뒤로는 굳이 덤비지 않고 있었다. 활 솜씨로 내기를 하자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필연적으로 다양한 무기술을 익히게 되는 프리드먼에게 있어 궁술은 역시 익숙한 것이었고, 종종 상행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내기를 걸고 푼돈이나 여행 중의 간식거리 따위를 나누기도 했다. 살만에게 그런 장난을 치기 전에 그가 활을 쏘는 모습을 목격해서 아주 다행이라고, 당시에 생각했었다.


그 외의 인원들은 게리, 제냐, 초, 글록, 가운, 메이, 케일리, 챔버였다. 재기가 넘치고 나름의 개성이 있는 인원들이었지만 프리드먼을 뛰어넘는 재주가 있지는 않았다. 육체적으로나, 장거리 상행의 노하우로는 말이다. 물론 프리드먼은 자신의 지능이 그렇게 높은 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머리를 굴리는 일에 있어서는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젊고 어린 친구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 그보다 학식이 높은 연장자들이야 물론이었고.


그게 앞에서 세 번째 자리에 있는 프리드먼 조의 마차였다. 마차는 총 열 한 대였고, 열 대가 상행에 필요한 물건을 싣고 있었으며 한 개가 상단원들이 먹고 마시고 사용하는 소비품들로 채워져 있다.


십두, 혹은 십장이라고 불리지만 정확하게 열 명을 휘하에 두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만 하더라도 그를 포함해서 열명인 한 개 조를 지휘하는 인물이었고.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서 5명에서 20명 아래의 인원들을 통솔하게 된다.


현재 상단의 전체 인원은 140명이었다. 상단의 인원들 138명에, 에인션트 그리즐리라 불리는 저 초인적인 용병 둘을 합쳐서 백 사십 명. 총 열 한 대의 마차에 프리드먼과 같은 십장들이 조를 꾸려 조장으로 모두 붙어 있었다.


대부분의 조는 프리드먼 조와 달리 열 명을 조금 넘는 수였기에 백여 명을 상회하는 숫자였고, 그 위에 지휘 직책자들이 있고 조에 속하지 않는 직책자들이 몇 더 있었다. 간혹 어떤 업무에 특화된 베테랑, 고문들은 유동적으로 이곳저곳을 옮겨 가면서 상행이 어디 모난 구석 없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살피는 역할을 맡았고, 그들은 상단 행렬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계속해서 이동을 한다.


그리고 행수, 로서 장거리 상행 하나의 총 지휘책임자가 되는 것이 부상단주 졸리 아에르였다. 그의 곁에는 전체 행렬의 움직임과 상단의 계획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참모들이 있다. 행수의 곁에 있는 우두머리 조는 마차에 붙지 않고 졸리 아에르와 함께 행렬의 가장 앞에 서던가, 혹은 상황에 따라 고문조처럼 이곳 저곳에 흩어져 위치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부관 역할을 하는 베테랑 지휘직급자 하나와 베테랑 단원, 둘 이상이 늘 붙어있는 법이었다.


이번 상행에는 상회의 본부에서 일을 하며 상단주의 일을 돕는 총관직의 장년 한 명이 지휘직급자로 졸리 아에르의 곁에 붙었다. 단원으로는 장거리 상행이 가능한 이들 중에서 가장 연차가 높고 경험이 많은 '베테랑 카얀'이라는 노인이 붙었고 말이다.


카얀은 60대의 노년이었으나 아직 그 혈기가 다 식지 않았고 오랜 상단 생활로 단련을 한 체력이 다 죽지 않아서, 여태 정정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처음 상행에 참가한 어설픈 젊은이들보다 더 멀쩡하게 두 발로 행군을 견디기까지 한다.

관례상, 상행에 참여한 최연장자로서 말이 부족하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말을 탈 수 있는 권한이 있었지만 그는 굳이 모든 시간을 승마로 보내지는 않았다.

말을 타는 것도 나름대로 체력이 소진되는 일이었고 말이다. 때로 노인은 체고가 높은 짐승의 위보다 그저 자신의 익숙한 두 발로 잔잔하게 걷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었다.


그의 나이임에도, 긴 상행의 속력을 따라 붙을 수 있는 건 카얀만의 특이성이었지만.


프리드먼은 자신이 선 셋째 마차의 옆이 깨나 시야가 좋다는 것을 깨닫는다. 뒤든 앞이든 중간이든, 마차로 가려진 우측면만 아니라면 그의 시력 안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주로 그가 살펴야 하는 중요한 이들은 행렬의 선두에 서거나, 혹은 중간 지점에 선다는 것이 주요했다. 그는 그 사이에 위치했으니.


뒤가 아닌 앞을 바라보면 마침 자신과 같은 왼쪽 면에서 걸어가는 행수조의 일원들이 보였다. 졸리 아에르 부상단주는 우측면이나 정확히 가운데 머리 지점에서 가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역시 익히 아는 얼굴인 베테랑 카얀과 상회의 총관의 뒷모습이 바로 보였다.


딱히 직책이 없고, 지휘권도 없으며, 상단의 운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단원들의 문제는 곧 그들의 안위와 한 번 한 번의 상행이 온전하게 완수되는지, 였다. 그러나 지휘권을 받고 직책을 가지는 이들은 연차가 쌓이고 능력을 입증받으면 상위의 직책으로 올라가게 되어있고, 그런 수직적인 조직도의 가장 위쪽에 위치한 것이 본부의 '총관'이었다.


상단주와 부상단주는 상회의 전체 운영과 거물 고객들을 상대하는 등 외부 일처리를 하는데 집중하며 내부 인원들을 관리하고 상회 행정에 누락이 없는가 살펴보는 일이 바로 총관의 직무였다.

그런 점에서, 지휘권자들이 가장 가깝게 느끼며 여러 일처리의 피드백을 받는 것 역시 그이다. 총관의 일은 수십여 명에 달하는 본부 소속 직책자들 하나하나를 모두 맞상대하는 것이었고, 개중엔 하급 지휘 직책자인 프리드먼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직속 계열의 최고 상관이라는 이야기였다. 그에게는 애증의 감정마저 있었다. 그런 법이었다. 직속이라는 건.


프리드먼은 지온 상회가 그렇게 질이 떨어지는 단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외부적으로는 세넨 시 최고의 상회였고, 규모 있는 조직이다. 거대함으로도 그렇고, 그 내부에 돌아가는 일처리 역시 능력 있는 선임들이 훌륭하게 톱니바퀴를 돌려대고 있었다.

오히려 뛰어난 조직이라고 봐야 하리라, 그 이름값을 따진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 내부에서 일을 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냐고 한다면 그렇게 또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아마 어딜 가나 마찬가지이리라. 정말 문제가 없는 조직이라면 이미 대륙 정벌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천재 중의 천재들만 모인다는 어느 왕실의 엘리트 집단조차도 사람이 모여 의견이 맞지 않는다면 늘 문제의 연속일 뿐이다.


그 문제를 뛰어넘는 일을 해내는 조직원들이 헌신을 다하기에 여러 공동체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을 뿐이지.

프리드먼은 따진다면 자신이 그런 구성원이 되기를 원하기는 했다. 어지간하면 맡겨진 일에 열심을 다하는 편이었다.

우연히 재주가 있었고 재능이 뒷받침되었을 뿐이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했으리라. 열 살 무렵 그의 아버지가 고용된 기능력자를 시켜 그의 손에 검을 들려주고 검술을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면 말이다.

어쨌거나, 나름의 즐거움을 가지며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까지 휘두르고 있었다.


프리드먼은 자신의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만지작거렸다.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든 것이 있었다. 십자가 형태의 장식물이 달려 있는 팔찌였다. 장식이 조금 큼지막하고 그의 기준에서 지나치게 반짝거려 달고 다니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의 부친께서 그에게 주고 언제나 가지고 다니라며, 당부를 한 물건이었다. 그 물건의 가치보다도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 건네준 부친의 손길이나 눈빛, 마음이 기억에 남아 아직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프리드먼은 움직이기 편한 중부식의 천옷을 입고 있었다. 아래는 회색빛, 윗도리는 누런 주황색이었다. 내의는 튼튼하게 짜여진 질긴 가죽 셔츠가 있었고 말이다. 옷들은 모두 소매 등 구멍이나, 품이 널널해서 움직이기가 아주 편했다. 그가 남부로의 장거리 상행을 가면 늘 신는 소가죽 신도 길이 들어 편리하다.

당장 누가 등을 치며 전력질주를 하라고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리라.


박자에 맞춰서 걷는다. 가도는 대업으로서 여러 국가들이 모여 만들어낸 시설물이다. 황야에 맨질맨질하게 만들어져 닦인 길의 위는 누군가 청소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그 위의 퇴적물들을 치우게 된다.

터벅, 터벅.

그의 황토색 소가죽 부츠의 밑창이 바닥을 찰 때마다 부스러기같은 돌자갈이나 먼지가 튕겨 나간다.


덜컹거리는 마차의 소음 역시 일정하다. 오랜 시간 함께 걷다보면 인간이라는 건, 사회적 생물이라는 것인지 일정하게 박자를 맞추게 된다. 말의 발굽 소리나 마차의 프레임이 내는 소리나 어느 정도 하나의 박자로 맞아 들어가는 과정은 묘한 고조감마저 얻게 한다.

그렇게 다 함께 발을 맞추어 걸어가다 보면 장로(긴 여정)도 그렇게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다.


먼 괴로움은 어느새 흐려지고 하나하나 딛는 소소한 성취에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말이다.


이렇게 걷다가 또 힘들면 분명 말의 등을 빌리고 말리라.


***




힘차고 건강한 아침


작가의말

별다른 전개는 없네요. 죄송스럽게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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