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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실린더cyli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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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3 14:11
최근연재일 :
2023.06.01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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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9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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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쪽

32. 마탑의 여재女才

DUMMY

"피욀리아."


낮고 또 침잠된 감정에서 금방 헤어나온 것 같은 어두운 톤의 목소리.

가 그녀를 부른 것은 아니었다. 그토록 깊은 집중에서 헤엄쳐 나온 것은 그녀의 정신이었다. 멀어졌던 현실에 대한 인지가 깨어나며 둔하게 느껴지는 청각이 흐릿하게 부르는 소리를 캐치했다.

실제로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는 부드러운 미성이었다. 그녀는 그 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조금 들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본격적인 대저택, 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람이 있는 데다. 시내 좁은 건물들의 틈바구니 사이에 끼어서 건축된 4층짜리 건물이었다. 단원들의 당분간 거처로 삼기에는 아주 넉넉한 곳이었다.


지온 상회의 본부처럼 어느 사업가가 사용하던 다용도의 매물이었는데, 네피림이 들어오면서 고급스럽게 리모델링을 했다. 제법 비싼 값을 주고 내장재를 조금 갈고, 구조도 약간은 바꾸었다.


단장이 머무르는 집무실에 깨나 공을 들였다. 그의 취향에 맞는 원목 가구들을 넣고, 약간의 기술을 더해 사용하기에 편한 실용성을 더한다.


단장이 오래도록 일하는 집무실은 언제나 햇빛이 크게 들이닥치는 통창이 필요하다. 바이런 고든은 그렇게 하늘과 경치를 바라보는 걸 아주 좋아했고, 부유한 현자에게 그것을 못 할 사정은 없었다.


위 아래로 길게 뻗은 커다란 창문은 천장의 조금 아래까지 그 머리를 두고 있고, 열면 3층에서 멀리 광장이 보이는 경치가 활짝 열리며 바람이 통째로 들어온다.


세넨은 잘 지은 도시였다. 돈이 많고 유동인구가 넘쳐나며, 풍부한 기술력으로 계획 하에 발전된 곳이라 그럴까 싶다.


골목골목까지 바람길이 만들어져 원활한 대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고, 건물들이 많으나 피차 하늘을 완전히 가리고 있지는 않았다.


내려다보면 분주하게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맞은 편에는 역시 어떤 상회의 건물, 그 옆에는 규모가 제법 있는 대장간, 그 옆에는 여관, 식당···. 주욱 이어지는 목적성 건물들이 있고 그에 맞춘 사람들이 제 일자리를 찾아 부지런히 움직인다.


깡, 깡하고 맞은 편 자리에 있는 대장간의 내부로부터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작게 퍼진다. 모루가 있는 공간은 건물 심처에 두어 지나친 소음을 내뱉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아예 안들리지는 않았다.


활기차고 성실한 장인들의 솜씨를 구경하는 것 같은 감상이 들어 그다지 나쁘지 않은 박자의 소리였다.


세넨의 중심가라 저택 건물 외에는 별달리 소유하고 있는 부지도, 마당도 없는 곳이었지만 가격이 제법 비싸다. 동부 쾰른에서, 예컨데 비케이드 남작의 영지에서 같은 가격을 지불했다면 넓은 정원이 딸린 대저택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같은 넓이라 하더라도 어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서 가격은 많이 달라졌다. 특히 요즘처럼 각종 물류가 활발하게 흐르고 있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요충지에는 사람이 늘 몰리게 마련이었고, 사람을 따라 장사를 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도시가 커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전쟁의 위협이 거세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의 평화와 번성을 누리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그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다 하고 있는 짓이었다. 네피림이 벌이는 활약들은.


“음.”


피욀리아가 그런 네피림의 행동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지는 의문이었다. 세상에는 옳은 목적을 따르고 있다고 말하면서, 행동으로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미치광이들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제 스스로까지 속이는 메쏘드 연기의 달인이나 사기꾼들도 심지어 즐비하다.


그녀는 본부 건물의 2층 복도, 창가에 앉아 있었다. 방에서 보이는 창가 자리도 있었으나 벽면과 마주한 복도에서 바로 바깥을 구경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1층에서 바로 올라오면 나타나는 계단 옆 자리다.

그녀는 그곳에 둔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턱을 괸 채 있다가 반응한다.


그녀는 성대를 떨어 소리를 냈다. 말도 아닌 소리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대는 대충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피림의 단원은 여러 명이었다. 벌이고 있는 프로젝트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극소수의 인원들이지만 하나하나의 실력을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구성이다. 좋게 봐주어도 소규모, 혹은 중규모보다 조금 아래의 용병단 정도인 그들이었으나 일국 유수의 실력가라 볼 수 있는 고위 능력자들로 단원들을 전부 채웠으니까.


프리랜서처럼 움직이며 일정한 적을 두지 않은 집단에서는 단 한 명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특수 능력자들이다.


네피림은 설립 자체가 불가사의한 집단이었지만, 어떻게든 모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피욀리아는 그 특이성의 이유 중 대부분을 바이런 고든에게서 찾고 있었다. 현자sage급의 게이지 유저user.


세간에는, 그런 이가 존재한다는 소문조차 요즘 시대에 들어본 적이 없는 실력자였다.


어느 대국의 최고위 마법사가 자신의 평생을 바친 뒤에 간신히 도달했다고 해도 반신반의를 할 만한 일이었는데, 고작해야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 그런 위치에 도달했다는 건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질나쁜 농담 정도의 이야기였다.


문제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피욀리아 또한 마탑에서 주목받던 천재였으니, 그녀의 안목은 정확했다. 그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진짜 불세출의 천재라는 것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녀를 부른 부드러운 목소리 톤의 주인공도 결국 그런 천재들 중 하나였다.


네피림의 최소한의 입단 조건 자체가 극악한 수준이다. 왕실의 히든 카드로 요직에 앉아 있어야 할 자들이 재야에 묻혀있다가 전부 튀어나왔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재인才人들이 있는 줄은 그녀도 몰랐다. 여기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녀를 부른 남자는 ‘갈랑’이라는 이름으로, 흰 색 머리칼을 가진 인간이다. 단발 정도 길이의 머리칼을 제대로 다듬지도 않은 산발의 행색이었는데, 언제나 재질이 질긴 천인지, 가죽인지 뭔지 모를 옷을 품이 넉넉하게 입고 다녔다.


언뜻보면 야인처럼 보이는 꼴이다. 자세히 차림을 살피고 매만지면 그것이 잘 짜인 고급품이며 촉감도 마감도 부드럽고 완성도가 높다는 걸 알게 되기는 하지만.


날씨에 상관 없이 내의는 잘 입지도 않고, 가슴팍을 드러내고 다니는 인간이다. 20대 후반 정도의 외견이었고, 실제 나이는 그보다 약간 더 많다.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이다. 약간 위로 치솟은 눈꼬리는 가만히 있어도 날카롭거나 매서운 느낌을 주고 상대를 위압하기에 용이하다. 그 내면에 든 성격과 말투는 그런 편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황토색의 두껍고 질긴 천옷을 아래 위로 입고, 가운데에는 띠를 동여맨다. 그 또한 특별히 양식에 따라 만들어진 물건처럼 보이지 않고 아무 데서나 주워 온 줄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역시 가까이서 보면 품질이 좋다.


신발 역시 비슷한 톤의 가죽신을 신었는데, 밑창이 탄탄하고 두껍다. 어느 바닥이라도 잘 견딜 수 있게 생긴 물건으로 갈랑이 어딜 가든 잘 신는 물건이다.


체격이 크고 단단해서, 모르는 이가 보더라도 무술 계통의 솜씨를 가졌구나 싶은 청년이었다. 옷 사이로 드러나는 몸매는 무섭도록 단련된 근육질이었다. 심지어 그 피부 또한 일반적인 인간과 다르게 질겨 보이는 면이 있었다. 실제로, 단단하고 질기다. 둔기나 타격에는 상처를 잘 입지도 않는다. 제대로 날이 선 물건을 가져와야 그의 피부를 갈라낼 수 있었다.


어느 산이나 야지에서 독야청청하게 무술의 길을 홀로 걸어가는 인간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런 성장기를 보냈다고 한다. 피욀리아가 자세히 알 바는 아니었지만.


성격만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사내였다. 어지간히 까탈스럽다고 알려진 그녀가 잘 호응을 하고 지낼 정도이니 말이다.


“오늘은 어때, 기분이 괜찮으신가 아가씨.”


“소름돋는 말투는 하지 마.”


피욀리아는, 아주 뛰어난 아티피서이자 아티팩트 메이커였다. 아티팩트 메이커가 마법사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때 그녀는 아주 뛰어난 부류의 능력자다. 남들은 그 갈래 중 한 가지만을 택해서 계발시키기도 벅차 하니까.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해, 여러 종류의 무구들을 다양한 디자인으로 만들어내 늘 착용하고 다닌다.


개중에 하나가 그녀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검은 드레스였다. 시와 장소에 맞추지 못하고 늘상 입고 있다면 정신 나간 여자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실루엣이 풍성한 드레스는 아주 아름다울 만큼만 그 가닥이 조금 흩날리며 크게 외관이 흐트러지지도 않는다.


그런 기능을 포함하고 있었다. 실용 위주의 기능을 짜 넣기도 버거운 것이 일반적인 아티팩트의 사정인 데에 반해 외관과 매무새를 신경 쓰는 건 그녀 스스로가 자신 맞춤의 아티팩트를 만들어내는 뛰어난 게이지 유저이기에 부릴 수 있는 사치였다.


물론 예술품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고, 또 국보급의 보화로 인정받는 아티팩트들은 장인의 솜씨와 숨결이 묻어 있는 물건들이 많기는 하다. 그런 것들 중에서도 본격적으로 기능에 ‘적당한 태’의 유지와 ‘청결함 유지’ 따위의 기능을 넣은 건 많지 않다.


어쨌거나 소재에 저장 가능한 게이지의 양은 한계가 있었고, 짜넣을 수 있는 마법 술식 역시 그에 비례하게 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또 아티피서로서 뛰어난 실력가이기에 동시에 부릴 수 있는 오만이기도 했다. 아티피서의 실력을 가르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었고, 개중 하나는 한 명의 게이지 유저가 몇 개의 아티팩트를 동시 운용이 가능한가, 였다.


개인의 에너지 용량과 여러가지 자질에 따라 달라지는 점이었고 당연스레 다종의 아티팩트를 다루는 자는 보다 ‘마법사’의 다양한 응용력에 가까이 닿게 된다.


아티피서로서의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주어진 몇 개의, 그리고 정해진 마법 술식의 기능을 완벽하게 숙달해서 빠르게 발동하는 것이 아티피서의 재능이고 능력이다. 대신 그들은 새로이 술식을 짜거나 하는 일에는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구조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게이지를 다루어내는 것만도 일가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었고, 좋은 아티팩트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오시하는 실력가가 될 수도 있는 길이다.


아티팩트는 초상력을 담을 수 있는 특별한 소재에 게이지를 이용해 마법진을 미리 새겨 넣은 물건들로, ‘기’보다 더 휘발적인 게이지가 반영구적으로 형상과 식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물질을 이용해 고정한 마법식이 아니라면 마법사들은 매 마법 발동의 순간마다 새롭게 식을 구축해야 했고, 그건 달인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미리 준비’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다. 반영구적인 수준은 절대 아니었고 전장에 나가기 수 시간이나 하루 전에 구축한 마법식을 유지할 뿐이다. 개인의 역량에 따라 숫자 역시 제한될 것이며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소모된다.


아티팩트 메이킹은 본격적인 ‘마법공학’이라는 이름의 색다른 이론과 학문으로 정립되어 있는 분야였다. 마법의 한 갈래였지만 조금 다른 성향의 현상 발현을 추구하고 있었고, 이 분야의 발전이 주로 현대 세계의 다양한 물질적, 삶의 질적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편의를 가져왔다.


본격적인 아티팩트라 하기는 뭐하지만 ‘초상력석石’이라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특이한 보석을 이용해 한시적인 가동 가능한 기계류 역시 구현이 가능했고, 그것만으로도 인력으로 해내기 어려운 다양한 작업들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국가의 중요한 전략 자원이 되는 초상력석은 전 대륙에 고르게, 또 많이 분포되어 있으나 늘 일정량 이상을 확보하고 타국이 지나치게 독점하지 못하도록 은근한 합의와 알력 다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전 대륙에서 운용 가능한 초상력SP의 규모가 나날이 커질수록, 그것이 한 번에 터져 나왔을 때 대륙이 겪게 될 소란 역시 이전까지 없던 크기일 것이다.


반드시 그런 일이 일어나리란 보장은 없었지만, 또 아니라는 확신 역시 없다. 네피림은 그런 일을 막기 위해 움직인다.


피욀리아는 또 네피림의 그런 움직임이 반드시 표면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지 확신하고 있지는 않았다. 개인의 목적이나 목표라 할 지라도 제대로 결과값이 나오지 않는 것이 세상사였는데, 그것이 거시적인 규모가 된다면 더욱 희박한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물가 안정을 위해 평생을 뛰어댄 어느 도시의 재정관이 결국 인플레이션을 재촉할 수도 있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게 그렇다. 꼭 마음먹은 대로 되는 법은 없었다. 피욀리아는 똑똑한 편이었고, 그런 점에서 회의적인 면모역시 많이 가지고 있다.

정말로 단장이 특별한 인간인가.

글쎄,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천재들을 긁어 모았다지만 목적지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좌초될 수도 있었다.


단원들의 마음이 전부 합치되어 있는가가 또 가장 중요한 점이었으니까.


그런 그녀의 생각 배경에 마탑이 많은 요소를 차지하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초국가적, 곧 범대륙적 단체인 '마탑'은 굉장한 영향력을 세상에 흩뿌리는 대형 단체이다.

수많은 천재들을 배출하고 또 보유하고 있는 집단으로, 그 출신의 마법사가 아주 많다. 현역으로 온갖 국가나 집단에서 중역을 맡는 마법사들 역시 마탑에 적을 둔 이들이 많다.


필연적으로, 마탑은 그런 각지와 분야에서 힘을 쓰는 중진들에게 입김을 끼치고 또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의 아티팩트 제작과 연관해, 시대의 마도공학 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마탑이 했음을 부정할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알력 관계가 치열하게 대립하며 길항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네피림이라는 작은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필연적으로 작아지게 마련이다. 그녀의 배경에 마탑이 있듯, 다른 누군가는 또 어딘가의 소속된 이일지도 모른다.

피욀리아가 단원들을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또 모르는 만큼 어떤 속내와 비밀을 감추고 있는 자가 있을런지 모르는 일이란 말이다.


어쨌거나 개중에서 갈랑이라는 덩치 큰 야수처럼 생긴 사내는 비교적 겉과 속이 일치하는 편 같았다. 피욀리아는 그렇게 느낀다.


"아가씨 아닌가? 맞잖아. 거기다 귀한 집에서 자랐고."

"귀한 집에서 자란 적 없어. 늘 말하잖아. 난 고아였다고. 마탑에서 거두어들여서 그곳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내 실력으로 자리를 쟁취했을 뿐이야."

"허어···."


그녀의 말은 맹세코 사실이었다. 그녀는 누군가의 지원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세상은 안락한 보금자리보다는 가파른 시험대의 위였다. 까딱 발끝을 잘못 디디면 추락하고야 마는.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천재성을 천려일실의 실패도 없이 드러내기 위해서 늘 온 신경을 집중하고 살았어야만 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화려한 드레스나, 마치 고귀한 귀족가의 애지중지하는 딸내미처럼 꾸며진 모습으로 다니는 것은 어쩌면 그런 스트레스의 완화법일지도 몰랐다. 혹은 방어기제이거나.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서라도 자신의 취향을 아낌없이 드러내며 일종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타인이 보기에 첫 인상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곱게 틀어올린 머리나, 혹은 늘어뜨리기도 하며, 다양한 헤어 스타일을 매일 완벽하게 세팅하고 화장 역시 그리 과하지 않은 적당한 우아함으로 완벽하게 해내고 다닌다.


어딜 가든 흠을 잡히지 않게끔 몸에 배인 습관들이다. 가진 바 배경이 없는 천재라는 것은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쉬웠다. 마탑같은 거대한 집단 내부에서는 말이다. 그녀보다 한 수, 고작 반 수 아래의 솜씨나 경력을 가졌으며 훨씬 막강한 뒷 배를 가진 이들 또한 수두룩했다.

그럼에도 개중에서 결국 가장 뛰어난 성취를 완성한 것은 그녀였다.


금장 급의 능력을 완숙하게 가졌고, 심지어 아티피서로서와 마법사로서 양종의 능력을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냈다. 둘 중 한 종류만 그녀의 나이대에 했더라도 마탑 최고의 인재로 불렸을 것이다.

그녀는 두 가지를 해냈기에 그저 지원을 받고 장래가 촉망되는 수준의 재원이 아닌 마탑의 중역들에게도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완성된 게이지 유저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었고.


지금 이렇게, 따로 떨어져 나와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소규모 괴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능력이나 조직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않는다면 이런 임무를 애초에 수행할 수는 없었으리라. 이따금씩은 능력이나 신뢰나, 자신에게 정말로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날들이 있었지만은. 네피림에 섞여서 지내는 동안.


피욀리아 유세티안Pioellia Yusetian. 그녀의 풀 네임Full-name이었다. 동부, 혹은 북부 대륙 출신의 고상한 공녀의 이름같은 어감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정확한 출신도 잘 알지 못한다. 인종적으로 보았을 때 동, 북부 계통이 아닌가 싶지만 유년기의 기억은 시커먼 장막에 가린 것이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마법적 술식이 있고 기능이 있으니, 의도적으로 그러고자 한다면 누군가의 기억을 지우는 것도 가능은 하다. 그녀 자신이 마법사로서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는 있었다.

그도 아니면, 단순히 큰 충격을 받아 어린 나이의 기억을 트라우마처럼 여기고 스스로 잠가버렸을 지도 모른다.

마지막 수로는 그녀의 뇌가 장면을 다 담을만큼 용량이 좋지 못해서, 즉 멍청해서 어린 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다.


세 번째는 거의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를 깊이 아는 누군가에게서 멍청하다는 말의 비슷한 것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가씨는 가끔 멍청한 면이 있지.”

“어?”


그런 면에서, 간혹 이렇게 결코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한 일을 맞닥뜨리면 바보같은 반응을 보이고는 한다. 갈랑은 수더분한 성격에, 자주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딘가 그 육중한 거구처럼 둔감해보이는 성격 탓인지 네피림 내에서도 그는 다들 친근하게 대하는 게 있었다. 그녀가 느끼기에- 그녀 자신보다 더 깐깐하다고 생각하는 할슈트나 카이시조차도 갈랑의 앞에서는 그리 잔소리가 심하지 않다.

이 사내는 기묘한 신뢰감을 주는 편이었다.


물론, 그런 정확한 이유 모를 신뢰감의 형성은 좋은 사기꾼의 조건이기도 하다.


갈랑이 말했다. 걸걸할 것 같은 목소리지만 의외로 부드럽다. 굵은 목 안에 든 성대는 바깥 것과는 다르게 생기기라도 한 모양이다.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미성의 시인들의 성대가 어찌 생겼는지 알 길은 없다만.

피욀리아는 해부학에는 그다지 정통하지도,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완벽해 보이지만 가끔 고지식하고 머리가 굳어 있다는 말이야. 그런 점에서 아가씨라는 말이 어울리기도 하는군.”


갈랑이 입매를 들어올리며 웃었다. 큼직하게 생긴 이목구비의 웃음은 호감형이었다. 피욀리아는 인상을 내렸다. 그러니까, 안면에서 입매든 뭐든 힘을 빼고 최대한 부정적으로 만들어보였다. 곱상하고 가녀린 외모와 달리 험악한 인상이다. 피욀리아는 그런 것을 잘한다.

그녀 스스로가 말하듯, 잘 꾸민 외견과 달리 내면은 자수성가의 길을 걸어오느라 온갖 진창에 발을 디뎠던 자다. 미인이랄만한 고운 외모로 상대를 협박하는 일조차 하고자 한다면 능숙하다.


피욀리아의 깊은 잿빛 눈동자가 갈랑의 것을 처다보았다. 흔들리지 않고 바라보는 눈빛에는 짜증과 비난이 섞여 있다. 갈랑은 허허허, 웃었다. ‘무서운데.’ 그는 타고나고 또 단련한 육체처럼 신경줄이 굵은 사내였지만 이 집단의 아가씨들은 그런 그의 성정을 웃도는 성질머리들을 갖고 있었다.

하나같이 귀여운 구석은 없다.


피욀리아의 눈빛의 한없는 깊음에 갈랑마저도 두꺼운 얼굴 가죽이 구멍이 날 즈음.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사고가 유연한가. 외골수 싸움꾼. 무도武道밖에 모르는 근육질쟁이. 때려 부수는 것 말고는 재주도 없는 사내인 주제에.”


확실히, 마법사이자 아티피서인 그녀는 주먹질로 세상 만사나 만물을 때려 부숴서 해결하고야 마는 갈랑에 비해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머리의 굳고 유연함은 그런 능력에 절대적인 잣대가 달린 것이 아니었다. 좋은 칼이나 도구를 쥐고도 멍청한 선택밖에 할 줄 모르는 머저리들은 세상에 아주 많다.

자신이 그저 자리에서 벗어나면 되는 일을 가지고, 한사코 별 것도 아닌 것에 매여 시간과 삶을 낭비하는 젊은이들을 갈랑은 많이 보았다.


“적어도 말솜씨는 아가씨보다 낫지 않은가.”

“······.”


그건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말솜씨라는 게 교우관계나 화법, 처세술이라는 영역으로까지 간다면.

피욀리아는 확실히 외골수였다. 다른 사람 말을 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줄곧 마탑에 처박혀서 초상력에 대한 연구와 개인적 성취를 얻기 위한 훈련에만 매진했었으니까. 29살이라는 나이에 경이로운 능력을 보유하게 된 천재는 자신의 삶의 모든 가용可用분을 그 능력을 얻기 위한 대가로 바쳐버렸다.

후회스러운 일은 아니었으나 그럴싸해 보이는 외관에 비해서, 빈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천재라는 단어는 보기에는 참으로 그럴싸해 보이는 말이지만 이 세상에 ‘거저’ 되는 일은 없었으니까.


누구보다 어떤 일에 매진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장치이거나, 혹은 애초에 그 집중력 자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시간이라는 건 상당히 정직하다. 가장 깊은 역사의 족적을 남긴 천재가 어떤 분야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그 분야에 헌신했다는 건 그 길을 조금이라도 걸어본 사람이라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참 중요하다. 아무런 애정 없이 어떤 일을 그만큼 할 수 있을리 없으니.


피욀리아는 그렇다면 자신의 연구와, 마법을 비롯한 초능력의 구현과, 아티팩트와, 아티피서로서의 응용 능력의 계발을 사랑했는가.


아마 그런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결국 분야는 다르고 이야기는 달라도 눈 앞의 갈랑과 비슷한 처지였다. 육체파냐, 아니냐의 문제였지.

심지어 갈랑은 조금 더 연륜이 있고 은근한 여유로움마저 장착을 했다. 부족한 건 그녀였다.


“아악!”


피욀리아는 비명을 질렀다. 진지한 건 아니었다. 마음이 아파서 내지르는 것이었다. 심장께를 붙들고 호들갑을 떨자 갈랑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 꼴을 지켜봤다.

피욀리아가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다.


“···마음이 아픈데. 방금 당신은 나한테 비수를 찔렀어. 대인 관계 무능의 외톨이 폐인이라고 나를 욕하다니.”

“···아니······. 그런 말은 한 적 없네만.”


갈랑이 멋쩍게 답했다. 잘 쳐줘도 간신히 정신병자가 되지 않은 정도인 사람들이 많다. 네피림에는. 그런 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게 이미 익숙한 갈랑도 어쩌면 그런 부류일 지는 몰랐다.


그는 자신의 흰 산발,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 자주 하는 행위였다. 짐승이 제 갈기를 정비하듯 머리를 한 번 헝클이고 나면 생각이 정리된다.

헝클어지는 것과 머릿속이 반대였다. 갈랑은 그것이 신기하다고 가끔 생각한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야 어쨌든, 진짜로 심장병이 도졌을 리는 없을테니 그저 부드럽게 눈매를 휘며 말했다.


“뭐, 요새 고민거리가 또 많은가. 표정이 죽상이구만. 답도 없는 고민을 붙잡고 있어봐야 젊은 때 흰머리만 늘어나지.”


피욀리아가 그 말에 그의 흰 머리칼을 처다봤다. 갈랑도 제 머리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그의 머리칼은 결이 좋다.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을 것처럼 하고 다니는 주제에, 제 갈기를 소중히 여기는 영특한 짐승처럼 자주 감고 특제 비누를 사용하고 또 잘 말리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마도공학적 산물들을 사용한다. 서민들이 쓰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었지만 네피림의 단원들은 대개가 부자였다. 들어오기 전에는 모르겠으나, 들어오고 나서 온갖 일들을 도맡고 그 의뢰금의 부스러기라도 스스로 가지게 되니 말이다.


하기야 금장급을 넘는 능력자들이 돈이 없고 가난하다는 것도 웃기는 농담이었다. 금보다 비싼 팔다리를 가지고 그것을 벌지 못할 이유가 없다.


피욀리아는 뚱한 표정으로 그를 몇 번 처다봤고, 갈랑은 시덥잖은 말을 한 두 번 더 반복했다. 핀잔같은 그녀의 눈빛만 늘어간다.


“답이 없으면 몸이라도 움직이게. 나가서 뛰기라도 하던가. 마법사들은 신체 단련을 게을리 하는 경향이 있어. 심지어 아티피서들도. 여차할 때는 아무것도 없어도 자기가 가진 본신의 힘만으로도 어떻게든 해야 하는 법인걸.”


일리는 있는 말이었다. 마법을 쓸 때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지 않은 순간에는 그녀 역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만 생존 확률이 늘어난다. 전장에 서는 마법사들은 살기 위해 지상에서 앞으로 다이빙을 하는 것 정도는 능숙한 법이었다.

흙바닥을 엉망으로 구르더라도 상대의 공격 한 번을 피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삶을 연장시키고, 도리어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아티피서들은 마법사보다 훨씬 변화무쌍한 위치에서 전장 임무를 수행하는 역이니 보다 더하다. 오로지 기력氣力만을 사용하는 전사들보다야는 아니겠으나 아티팩트로 제 몸을 강화시킬 때도 최소한의 여건이 있어야 증폭 현상이 제대로 일어나는 법이었다.

힘이 있어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건 아티피서로서의 능력 운운 이전에 전장터에 설 병사로서 자격이 없는 경우였고.


아티팩트가 차마 보호하지 못하는 일순간의 틈을 위해서 아티피서들도 필사적인 고련을 하고는 한다.


다만 그녀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굳이 나서서 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가 그녀의 전투에서의 좌우명이었다.

어쩔 수 없는 수세에 몰리게 된다면 그건 그 때의 방법일 것이고···.

마법사로서 아티팩트 메이커인 그녀는 그 시간에 무수한 맞춤 아티팩트를 빚어내서 방어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궁리를 하는 편이다.


그리고, 말했듯 전장에 서는 시간보다 실내에 처박혀 있던 시간이 훨씬 길었다. 몸이 썩어들어가는 게 아닌가, 혹은 이미 자신의 몸 어디가 많이 축나지는 않았나 싶은 긴 시간을 견디고 나서 운동을 조금 멀리하게 되었다.

영 익숙치 않고 자신이 없는 무언가. 그녀는 모든 부분에선 딱히 천재도 아니었고, 못하는 일도 많다.


“싫어. 땀내 나는 근육쟁이야. 저리 가라고. 날 더 고민하게 내버려 둬.”

“말버릇이 고약한 건 그 험난했던 성장기와 관련이 있는 건가?”


뭐, 자신이 없다고 피욀리아가 영 회피를 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 나름대로 심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쓴다. 다른 이가 보는 앞에서 그 과정을 보이는 일은 피욀리아가 할만한 짓이 아닐 뿐이다.

그리고 그런 완벽주의 기질에 따른 험한 말은 갈랑으로서도 ‘저 머리를 때리면 무슨 소리가 날까’하는 고민을 잠시 하게 만들었다.


“아무튼 팀Team은 목숨을 담보로 서로를 믿는 집단이네. 이런 소규모 정예에서는 더욱 그렇지. 난 내 등 뒤의 목숨줄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갈랑의 말에 피욀리아가 다시금 그를 처다본다. 갈랑이 찡긋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지?’ 피욀리아는 전혀 모르는 표정으로 대응한다. 그는 매끈한 턱을 쓰다듬었다. 머리는 산발이며, 옷은 대충 어디서 주워다 입은 듯한 행색이지만 여기저기 단정히 하고 다니는 사내였다, 참으로.

그녀가 알기로 갈랑은 실제로 무도의 수련을 위해 어느 심산유곡에서 단절된 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다. 그런 극한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사람은 반대급부로 또 넉넉할 때는 잘 꾸미려 드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꾸미는 꼬라지가 그녀의 취향과는 영 반대였다. 아무리 재질이 좋아도 저런 후줄근한 태의 옷을 입고 근육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모습은 꼴불견이다. 물론 그녀의 기준에서만 말이다.


갈랑이 입을 연다.


“실전에서 내 목숨줄에 영향이 갈 정도의 고민이라면 도움이라도 요청하게. 언제든 상담을 기다리지. 아가씨는 혼자가 아니야. 알지?”


마무리는 가슴 따뜻한 말이었지만 도리어 그 말이 지극히 그녀를 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가끔 죌른이 그러듯 눈을 가늘게 좁혀 뜨고 몇 살 터울의 오라비를 노려보았다. 피는 전혀 섞이지도 않았고, 성장 배경과 쓰는 말씨조차 다르지만 어쨌든 그녀의 좁은 인간관계에서 상당히 낯이 익숙해져버린 사내인 것은 분명하다.


“아주 가슴 깊이 새겨두지요. 갈랑. 일 보세요.”


껄껄껄, 하고 의성어로 그렇게 웃는 것처럼 호탕스런 기세로 그는 웃어보이더니 자리를 피했다. 이렇듯 조직원 중 뭔가 불안해 보이고 심경에 이상이 있어 보이면 괜스레 다가와서 시간을 가지고 떠나는 사내였다.

그 대상은 피욀리아가 될 때가 유독 자주 많았다.

내가 그렇게 불안해 보이나?


그녀는 스스로 생각했지만 곧 고민을 접었다. 그저 겉으로 보이는 건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나가야 할 지, 실재가 중요할 뿐이다. 앞으로 닥칠 일들을 예상해 보는 것 또한 그렇고.


단장은 종잡을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 능력의 끝을 그녀의 수준으로서 가늠하기가 힘들다. 그녀가 금장 급의 게이지 양종 능력자인 것이 아니라, 장로 급의 수준에서 그런 중첩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달랐을 수 있다. ‘후.’

생각만 해도 까마득한 지경이었다. 일반적인 경우에 나누어져 있는 단계의 이름은, 위로 올라갈 수록 한 자리를 건너 가기가 기하급수적인 노력과 시간이 더 필요해진다.

그녀가 지금의 두 배의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해도 그렇게 되려면 이미 중년은 넘었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바이런 고든의 이상성만이 더욱 선명하게 자리를 잡는 것이다.


규격 외에서 다시 규격 외로 벗어나는 천재라니.


대체 어느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는 말인가.


마탑은 다는 아니어도 이 시대 대륙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들을 대부분 파악하고 있는 집단이었고, 그런 그들의 정보망을 완전히 피해서 나타난 현자는 곧 최고 경계 등급의 태세로 그들이 변하기 충분한 조건이었다.


마탑이 그에 대해서 안 건 벌써 몇년 전의 일이다. 아직 네피림이라는 이름이 왕이나 고위 관료들에게도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을 때, 마탑과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는 어떤 단체에 그가 들렀다.

네피림의 초창기, 라고 할까. 피욀리아마저 제외한 몇몇 초기 멤버들만이 그와 함께하며 의뢰들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마탑의 인물들이 아니면 알아챌 수 없는 기적을 선보였고, 그 날로 마탑의 수뇌는 비상 체제의 돌입 필요성을 느꼈다.


대륙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막대한 자원과 인력을 보유한 그들로서도 긴 세월동안 배출해내지 못한 성취를, 고작 한 청년이 혼자서 이루어내다니.


차라리 몇 세대 전의 실력자가 깨달음을 얻고 어느 미답지에서 살아가며 독자적인 연구를 해나가다가 다시 나타났다고 하면 최소한의 수긍은 되리라.

그들에게 바이런의 존재는 충격이자 공포였다.


마탑의 인원들 전체가 그런 경악을 선명하게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와 연락하던 게르겐이라는 자, 그러니까 마탑의 젊은 계층들은 그런 실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수준이 되는 자가 현자 급의 무서움을 아는 법이다.

피욀리아가 보기 드문 천재였을 뿐이고, 대부분의 가늠할 그릇이 되는 자들은 이미 마탑 조직의 중추를 맡아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중년 이상, 혹은 노년기의 인물들이었다.


지나친 차이가 나면 도리어 그 전체 윤곽의 두려움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다.


피욀리아가 볼 때 그게 가능한 최소한의 조건은 장로 급에 닿아 있는 수준이어야 했다. 기 능력자라면 그랜드 마스터 급을 넘보고 있던가.


그 아래 수준의 능력자들이 보기에는, 그저 묘하게 힘든 기색이 없는 이상한 능력자로 착각할 가능성이 있었다.

남들보다 조금 손쉽게, 어려운 일을 해내고 말이다.


결코 좁힐 수 없는 격차나 분야적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고 있는 인종이 있다면 싫어도 그 한계를 두드리는 자들은 그것의 위대함을 알아채고야 마는 법이었는데.


똑똑, 하고. 그녀가 테이블을 길게 기른 손톱으로 두드렸다. 심지어 예쁘게 장식된 네일의 보석 그림들 조차도 피욀리아가 구성한 아티팩트의 부분들이었다.


그녀는 한 차례 그렇게 두드린다. 밝은 오후. 약간의 출출함을 느낄 때까지 그녀는 그 자리에 한동안 앉아서 여러가지 고민과 생각들을 이어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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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차고 건강한 아침


작가의말

별로 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만오천자...?!


그림은 뭐 그냥 적당한 걸 집어넣은 거고

피욀리아의 드레스는 피부를 많이 감싸고 풍성한 태에 프릴이 달렸고 검은색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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