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수호자의 노래

수호자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정상호
작품등록일 :
2020.05.04 01:40
최근연재일 :
2022.03.19 23:5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3,534
추천수 :
125
글자수 :
397,167

작성
21.05.29 23:50
조회
27
추천
1
글자
7쪽

안개빛 희극 (8) 하인츠

DUMMY

“드디어 오늘이구나···.” 하인츠가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북부의 가을은 혹독했다. 곧 다가올 겨울을 암시하듯, 매서운 바람이 하인츠의 콧잔등을 때렸다. 어제까지 땅에 내리꽂았던 가을비는 그새 그친 모양이었다. 모처럼 맑게 갠 하늘에서는 이른 아침의 햇빛이 내렸다.


하인츠의 막사는 주변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언덕 아래로 보이는 풍경이 하인츠의 눈에 오롯이 담겼다.


하인츠의 막사 아래에는 곧장 진압군의 진영이 있었다. 정확히 맞은 편, 넓은 강 너머로 모한 바르도나의 진영이 보였다.


어제까지 내린 비로 불어난 강에는 조그만 다리가 하나 놓여있었다. 그 다리는 두 진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정말 가능한 것일까···?’ 하인츠는 자기도 모르게 의문을 품었다.


모한 바르도나는 한때 아홉 대륙 최고라 불렸던 사내였다. 그런 사내를 상대로 선제공격을 가하다니. 불안감이 엄습하는 이야기였다.


명색이 진압군인 이상, 언제까지고 기다릴 순 없었다. 헤스마르 케멜은 언제까지고 기다리는 사내가 아니었다. 그 사내는 황자의 눈으로서 하인츠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인츠가 아홉 대륙의 대장군으로 계속 남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성과를 내야 했다. 그저 허울뿐인 대장군일지라도, 하인츠는 절대 그 자리를 포기할 수 없었다.


대장군···. ‘프란토르···. 당신께서라면 모한 바르도나를 상대로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하인츠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프란토르 다이아르. 그는 비록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아홉 대륙의 훌륭한 지휘관이었다. 아버지는 아홉 대륙의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지휘관이었다.


프란츠는 승리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생 대부분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었다. 끝끝내 최후의 전투에서도 그는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어 황제를 구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인츠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지휘관이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그 다리를 돌파했을까?’ 하인츠는 생각했다.


모한 바르도나에게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은 바로 그 좁은 다리였다. 좁은 다리를 사이에 두고, 공격을 위해 먼저 그 다리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자살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해답이었다. 프란토르나 나이트였다면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그건 정말 모를 일이었다.


그럴수록 프란토르 다이아르···. 그 이름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떠올리기에 끔찍한 얼굴이었지만, 끝끝내에 떠오르는 것도 그 얼굴이었다.


하인츠는 늘 눈물과 함께 지낸 어머니의 얼굴을 잊지 않았다. 계승권에서 멀어진 아들들을 벌레 보듯 대한 프란토르의 눈빛을 잊지 않았다. 형제들이 죽은 뒤, 후계자가 된 하인츠에게 주어진 끝없는 압박감 역시 잊지 않았다.


차가운 가을비는 옛 기억을 지워주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결국,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채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병사들을 다리 위로, 사지로 내모는 게 정말 훌륭한 일인 것일까? 어찌 됐든, 이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새벽의 차가운 기운이 지나갔다. 곧, 깊은 잠에서 깨어난 병사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였다. 단단한 갑옷을 갖춘 자유 기수들. 마이아르의 문양을 걸친 기사들. 조잡하고 단출한 복장의 징집병들. 하나같이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들이 가진 눈빛은 모두 같았다.


어느새 대장군의 갑주를 걸친 하인츠가 그들 앞으로 향했다. 하인츠는 허리춤의 칼집에서 날카로운 대장군의 검을 뽑았다. 그리고 대장군을 올려다보는 사내들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홉 대륙의 자식들이여, 마침내 결전의 날이 찾아왔다. 지긋지긋한 가을비가 사라진 오늘은 모한 바르도나의 허무맹랑한 야망을 아홉 대륙에서 사라지게 하기에 정말 좋은 날이지.” 하인츠는 뽑은 칼을 드높이 하늘로 들었다.


“아홉 대륙의 용사들이여, 이곳은 결전의 땅이다. 좁디좁은 돌다리. 그곳이 우리의 무대지. 반란군에게 절망을 안겨주기에 아주 적당한 장소라고 생각하지 않나?” 하인츠는 큰소리로 주변에 물었다.


이에 병사들도 큰소리로 화합했다. 청량한 하늘도 꿰뚫은 드높은 기세였다. 하인츠는 병사들이 기세를 표출하게 잠시 내버려 뒀다. 곧, 병사들이 잠잠해지기 시작하자, 하인츠는 다시 연설을 이어갔다.


“프레이의 자식들이여, 아홉 대륙에 다시 평화를 가져오자!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임무로다. 황제를 위하여, 프레이를 위하여, 아홉 대륙을 위하여!” 하인츠는 대장군의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거센 환호가 끝없이 이어졌다. 하인츠는 갑주를 둘러싼 대장군의 말에 올랐다. 그리고 아홉 대륙의 전사들과 함께 결전의 무대로 향했다.


아름답게 쭉 늘어선 병사들 앞에 하인츠가 늠름하게 자리했다. 좁은 다리 앞에 일렬로 선 병사들을 쭉 훑으며, 하인츠는 다리 너머를 바라보았다.


모한 바르도나. 그곳에 그 사내가 있었다. 마치 산과도 같은 덩치에 하인츠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다리 너머로 보이는 사내의 덩치는 인간이라고 칭하기 어려웠다.


반란군의 수괴는 이름 모를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온몸에는 거칠고 녹슨 사슬을 걸쳤다. 두 주먹에 달린 강철은 마치 짐승의 손톱처럼 날카로웠다.


과거 최강의 사나이라 칭해지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모한 바르도나의 눈에서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예전보다 지금, 더욱 열기가 느껴졌다.


“프레이의 개들이여. 이 몸의 진격을 방해하려 드는구나, 어리석은지고. 하지만, 썩 나쁘지 않구나. 이 몸이 이끄는 하얀 호랑이들의 진가를 아홉 대륙에 알릴 좋은 기회니 말이다.” 다리 너머에서 거대한 목소리가 울렸다. 모한 바르도나의 우렁찬 목소리였다.


하인츠는 주저하지 않고, 모한 바르도나에게 대답을 던졌다. “당신이 어리석음을 논하다니,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오는구려. 모한 바르도나! 프레이를 등진 그대에게 남은 것은 후회뿐이오.”


“하하, 젊은 친구가 참으로 재밌게 말하는군. 우리 부족에 자네 같은 친구가 있다면, 참으로 즐거울 텐데 말이야.” 모한 바르도나가 호탕하게 말했다.


하인츠는 허리춤에서 대장군의 검을 뽑았다. “나보고 반란군이 되라는 소리요? 헛소리는 그쯤 해두시오, 모한 바르도나. 그대의 공허한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구려.” 하인츠가 말했다.


모한 바르도나는 거대한 덩치를 움직였다. “흠, 그대가 바로 새로운 대장군이로군. 분명 프란토르 다이아르의 아들···이라고 했었지. 제 아비를 쏙 빼닮았군. 자신감에 가득 찬 그 모습이 말이야.”


‘···또.’ 하인츠는 자기도 모르게 검을 쥔 손에 과도하게 힘을 주었다. “쓸데없는 얘기는 이쯤 해두시오.” 하인츠는 뒤를 돌아보며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반란군에게 공포를 심어줄 시간이다. 아홉 대륙의 전사들이여, 돌격하라!” 하인츠는 대장군의 검을 거세게 휘둘렀다. 병사들의 우렁찬 함성이 날카로운 칼날을 뒤따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수호자의 노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024년 5월 11일 휴재 공지 24.05.10 1 0 -
공지 2024년 5월 4일 휴재 공지 24.05.02 1 0 -
공지 2024년 4월 27일 휴재 공지 24.04.26 1 0 -
공지 2024년 4월 20일 휴재 공지 24.04.19 1 0 -
공지 2024년 4월 13일 휴재 공지 24.04.12 2 0 -
공지 2024년 4월 6일 휴재 공지 24.04.04 2 0 -
공지 2024년 3월 30일 휴재 공지 24.03.29 2 0 -
공지 2024년 3월 23일 휴재 공지 24.03.23 2 0 -
공지 2024년 3월 16일 휴재 공지 24.03.15 2 0 -
공지 2024년 3월 9일 휴재 공지 24.03.09 3 0 -
공지 2024년 3월 2일 휴재 공지 24.03.02 2 0 -
공지 2024년 2월 24일 휴재 공지 24.02.23 2 0 -
공지 2023년 6월 24일 휴재 공지 23.06.23 3 0 -
공지 2023년 6월 17일 휴재 공지 23.06.16 6 0 -
공지 2023년 6월 10일 휴재 공지 23.06.09 4 0 -
공지 2023년 6월 3일 휴재 공지 23.06.02 5 0 -
공지 2023년 5월 27일 휴재 공지 23.05.26 2 0 -
공지 2023년 5월 20일 휴재 공지 23.05.19 5 0 -
공지 2023년 5월 13일 휴재 공지 23.05.12 2 0 -
공지 2023년 5월 6일 휴재 공지 23.05.06 7 0 -
공지 2023년 4월 29일 휴재 공지 23.04.28 6 0 -
공지 이야기를 읽으시기 전에, 드리는 이야기 +2 20.05.05 120 0 -
공지 제1부 빛바랜 기사 연재 공지 20.05.04 63 0 -
80 마지막 장작 (9) 에리크 22.03.19 20 0 12쪽
79 마지막 장작 (8) 하인츠 22.02.26 14 0 12쪽
78 마지막 장작 (7) 아라기 22.02.19 16 0 8쪽
77 마지막 장작 (6) 하란 22.02.12 14 0 7쪽
76 마지막 장작 (5) 로나트 21.11.13 26 0 8쪽
75 마지막 장작 (4) 글라드 21.10.09 15 0 7쪽
74 마지막 장작 (3) 아라기 21.09.04 25 0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