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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멕스님의 서재입니다.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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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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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28
추천수 :
509
글자수 :
454,020

작성
24.06.03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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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7화

DUMMY




지금 나의 심정은 시즌이나 큰 대회 직전 선수들 포메이션과 작전 구상을 완벽히 마친 감독의 그것과 비슷하다.

다시 말해, 앞으로 한 동안 내가 출연하게 될 프로그램들과 그 안에서 나의 캐릭터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느낌이었다.


우선 주중 스케줄을 보자.

평일에는 최웅 한소라의 시사팩폭쇼에 자율출근하듯 내키는 대로 출연하며 꼴리는 대로 입을 턴다.

그러다 수요일에는 공중파 최고 인기 토론프로그램인 중구난방에 출연해 정원택과 김여중 사이에서 한껏 정제된 모습을 선보인다.


이어서 주말 스케줄을 살펴보자.

토요일 아침 송주나의 굿모닝 뉴스쇼에 출연해 주중에 있었던 뉴스들에 대해 송주나 앵커와 로맨틱한 분위기에서 담소를 나눈다.

그러다 오후에 시간이 나면 저품격 토크쇼에 나가서 송주나와 있는 동안 제대로 쉬지 못했던 숨을 거세게 내쉬며 포효하는 것이다.


정말 완벽한 스케줄이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원래 인터넷에서 활동하면 품앗이 활동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니까 뭔가 로비하기 위해서, 혹은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 남의 프로에 얼굴 비추는 거.


그런데 그런 거 이제 좀 자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뭐랄까, 중구난방에 이어 송주나 라디오 프로에까지 출연하게 되었으니 이제 어느 정도 신비주의 컨셉이 요구된다.


푸하하, 내 인생에 신비주의 컨셉이라니.

시발, 세상아, 너 해도 해도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냐.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행복해지기를 바란 건 아니었어, 인마.

푸하하하하.


‘‘여봐라.’’

‘‘아이 새끼, 진짜 요즘 너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니냐.’’

‘‘아! 생각해보니 그러네. 여보세요. 시사팩폭쇼의 최웅 선생님 아니십니까? 어쩐 일로 이 시각에 저에게 친히 전화를’’

‘‘아이, 됐어, 새끼야. 원래대로 반말 해. 아니 욕을 해도 상관없어.’’

‘‘어허! 제가 무슨 시정잡배도 아니고 아무리 사적인 전화통화 중이라도 어찌 방송계 대선배님께 반말이나 욕을 지껄일 수 있겠습니까?’’

‘‘아이 새끼, 그래, 그래, 중구난방 출연자. 김여중 정원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제 됐냐?’’

‘‘어허! 어찌 제 이력서의 마지막 칸이 아직도 그 지점에 머물러 있다 속단하십니까?’’

‘‘뭐라고? 너 이 새끼 또 뭐 하나 물었구나? 꼬락서니, 아니 폼 보니까 또 공중파시군요. 어디서 또 섭외 들어오셨나요, 강소장님?’’


확실히 최웅, 눈치도 빠르고 순발력도 대단하다.

이러니 내가 다른 애들은 정리해도 당신은 정리 못하지.


‘‘신생프로라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가르쳐드릴 수 없습니다. 이 바닥에 이 정도 암묵적 룰은 아실만큼 아시는 분이시잖습니까?’’

‘‘와! 공중파 프로 창단멤버? 야, 진짜 어쩌다 니가, 아니 강소장님 확 뜨게 되신 거예요? 거, 서로 좀 나눠 먹읍시다. 예? 당췌 비법이 뭡니까?’’

‘‘어허! 비법이라니요. 세상사에 비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저 정도만을 성큼성큼 걷고 있을 뿐이지요, 허허허.’’

‘‘진짜 지랄하고 자빠졌네. 야! 됐고! 다음 주에 무슨 요일에 출장할래?’’

‘‘글쎄요, 참 시사팩폭쇼라고 하면, 오늘날 제가 있기 까지 제 태반과도 같은 곳인데, 그게 참, 스케줄이 워낙 좀 있다 보니, 가만 있자 우선은 제 스케줄 비서한테 연락, 인공지능 비서가 아니라 진짜 사람 비서인데 .....’’

‘‘야! 진짜 이건 농담 아닌데 .....’’


핸드폰 너머 최웅이 갑자기 목소리 톤을 바꾸었다.

평소 그 답지 않게 잡기를 싹 다 뺀 목소리 톤이었다.


‘‘응, 뭐요?’’

‘‘..... 소라가 진짜 너 보고 싶어 하더라.’’

‘‘뭐라고?’’

‘‘너 또 내가 너 코 꿰려고 뼁끼 쓴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거 진짜야. 그저께 잠깐 간단하게 술 한 잔 했는데 말미에 진짜로 진지하게 대구 니 이야기 하더라.’’

‘‘뭐라고?’’

‘‘요즘 졸라 섹시해 보인다고.’’

‘‘......’’

‘‘물론 너는 지금 코웃음을 치면서 이 새끼 또 쌍팔년도 수법 쓰고 있네 하겠지. 근데 엄연한 팩트인데 어떡해? 내가 그 말 듣자마자 속으로 어떤 생각 했는지 알아? 야! 확실히 남자는 다 필요 없고 능력이 최고구나. 걍됐구 같은 새끼도 요즘 좀 치니까 섹시한 남자 소리를 다 듣는 구나. 야! 솔직히 니 인생에 이런 말 처음 듣지? 그것도 인영 피디나 김작가도 아니고 소라한테 그런 말을 듣다니. 야! 술 한 잔 쏴라, 새꺄.’’

‘‘......’’

‘‘야! 걍됐구! 너 듣고 있냐? 왜 아무 리액션이 안 들려? 너 지금 핸폰 손으로 막고 막 몰래 환호성 내지르고 있지? 그렇지?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이잖아, 인마! 하하하.’’


최웅 말대로, 이번에도 역시 나는 그를 속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애초 그를 속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핸폰을 손으로 막지도 환호성을 내지르지도 않고 있었다.

그냥 무덤덤했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최웅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최웅이 한소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 머릿속에는 한소라가 아닌 다른 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름 아닌 송주나.


송주나와의 미팅을 마치고 나선 지 불과 두어 시간 지난 시각.

그 두어 시간 동안 조금 전 미팅에서 보았던 송주나 그녀 모습이 끊임없이 내 눈앞에서 재생되고 있었던 것이다.


‘‘야! 강소장!너 듣고 있어? 너 진짜 쌩 까는 거야? 나는 쌩 까도 인간적으로 소라는 쌩 까면 안 되지. 한동안 술만 쳐 마시면 나 붙잡고 우리 소라, 우리 소라는 어디 있고 시꺼먼 니놈 새끼만 있어, 하며 내 얼굴에 침까지 뱉은 전력 있는 놈이 말이야 ......’’

‘‘최선배! ......’’

‘‘이 새끼는 뭔 호칭이 수시로 바뀌어. 야! 하나로 통일해. 생명의 은인, 인생의 등불, 최고의 인연, 이 셋 중에 골라.’’

‘‘ ...... 갑자기 소라 먹고 싶다.’’

‘‘뭐, 뭐, 뭐야?’’

‘‘오늘따라 졸라 소라 먹고 싶다고.’’

‘‘너, 너, 이 새끼. 너 내가 항시 말했지. 내 핸폰 자동녹음 된다고. 너, 너 이건 진짜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네. 야! 너 이 정도면, 우리 시사팩폭쇼 영구 출연해야 돼. 그것도 무보수로. 안 그러면 나 진짜 이거 바로 소라한테, 아니 너튜브에 뿌리 .....’’

‘‘이 양반,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뭐가 인마!’’

‘‘소라무침 안주 삼아 소주 한잔 하고 싶다는 이야기인데. 이 양반 대체 평소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있기에. 오호라! 나도 핸폰 녹음했는데, 안되겠다. 이거 형수님한테 바로 파일 보내드려야지.’’

‘‘뭐, 뭐라고?’’



+++



송주나가 새로운 시사 라디오 프로를 런칭하겠다는 계획은 시기적으로 지극히 옳은 결정이었다.

왜냐하면 총선이 이제 거의 반 년 남짓 남았기 때문이다.


시사 프로그램 입장에서는 대선보다도 총선이 진짜 성수기다.

우선 출마자들이 워낙 많으니 공급이 과잉된다.

둘째로 대선보다도 당 내외 갈등과 분열이 훨씬 극심하기 때문에 이야기 거리도 엄청 풍부하게 제공된다.


송주나의 ‘송주나의 굿모닝 뉴스쇼’ 개시를 불과 일주일 여 앞둔 시점.

그런데 의외의 다른 곳에서 사건이 크게 하나 터지고 만다.


5회차 동안 내가 출연하는 동안 딱히 큰 사고 없었던 중구난방.

혹자는 나에 대해 생각보다 존재감이 없다고 혹평하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연착륙에 성공하고 있다는 여론이 조금 우세한 형국.


그런데 총선이라는 성수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갈수록 가열되던 정원택과 김여중의 대립이 나의 6회째 출연 회차에서 그만 정점에 이르게 되고 만다.


‘‘정선생님! 듣자듣자 하니 말씀이 너무 심하시네요’’

‘‘아니, 내가 무슨 말이 심했다는 거요?’’

‘‘사람을 무슨 모사꾼으로 모는 것도 어느 정도가 있지.’’

‘‘아니, 내가 당신을 언제 모사꾼으로 몰았다는 거야?’’


옆에 앉아 있는 두 양반의 목청이 갈수록 높아졌다.


발단은 이것이었다.

며칠 전부터 보수당의 이번 총선 공천을 담당할 공천관리위원장 후보 이름들이 흘러나왔고,

이에 대해 이번 중구난방 회차에서는 패널들이 각자 어떤 이를 가장 선호하는지에 대해 토론을 벌이게 되었다.

그런데 김여중이 미는 인물에 대해 정원택이 우리 보수를 망하게 하려고 가장 급이 안 되는 인물을 민다고 농담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에 대해 김여중이 발끈하자, 정원택은 그 전에도 항상 김여중이 이런 식으로 우리 보수를 궤멸시키려 들었다고 한 술 더 떴고

결국 두 양반 사이 본격적인 감정싸움 말다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기, 김피디님. 이 부분 꼭 살려줘요. 나 그냥 이대로 못 넘어가. 꼭 공론화시켜야 하니까 이 부분 절대 편집하지 말아줘요, 알겠죠?’’


김여중이 정말로 화가 났는지 김피디까지 끌어 들였다.


‘‘아니, 김선생, 그냥 난 농담반 진담반 한 말인데 왜 이렇게 과민반응을 보이고 그래? 그러니까 더 이상하잖아. 혹시 정말 우리 보수당 망하게 하려고 그 동안 일부러 페인트 썼던 거야?’’

‘‘뭐, 뭐라고요? 이봐요! 정선생님! 아무리 방송 중이라도 기본 예의는 좀 지키시죠!’’

‘‘내가 기본 예의 안 지킨 건 또 뭐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국가 아닌가? 이 정도도 이야기 못해? 여기가 무슨 좌파들이 동경하는 공산주의 국가야?’’

‘‘뭐, 뭐, 뭐라고요? 이제 하다하다 철 지난 색깔론까지? 이 분 오늘 막말이 너무 심하네.’’

‘‘뭐? 막말?’’

‘‘그래! 막말! 당신 오늘 막말이 너무 심하다고.’’


좀처럼 젠틀한 신사 풍모를 잃지 않는 김여중 입에서 두세 살 위인 정원택을 향해 반말까지 나왔다.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었다.


김피디도 나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듯 보였다.

편집하지 말아달라는 김여중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황급히 나에게 눈짓을 보내왔다.


나보고 중재자 역할을 해 달라는 거였다.

지난 번 저품격 토크쇼에서 영화감독 오재식과 영화평론가 고형 사이에서 했던 그 중재자 역할.


물론 나는 그때보다 훨씬 부담감이 앞섰다.

상대들이 상대들인지라.

그렇다고 피디의 시그널까지 받은 상태에서 잠자코 있을 수 없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롤 맡기려는 게 나를 섭외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으니까.


‘‘저기, 외람되지만 ...... ’’


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막 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프롬프터 창이 떴다.


‘‘응. 강소장, 뭐? 말해 봐.’’


마침 정원택이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아! 예. 그러니까, 잠시 만요 ......’’


잠시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뜸을 들이고 있는 나를 향해 정원택은 미간을 찌푸렸고 김여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아! 됐습니다. 저기, 정선생님!’’

‘‘응. 뭐?’’

‘‘이번에는 정선생님이 틀린 것 같은데요.’’

‘‘뭐, 뭐라고?’’


정원택이 더욱 더 미간을 찌푸리며 나에게 화내듯 말했다.

조금 겁이 났지만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김여중 선생님은 보수 진영 분열을 노리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진심을 가지고 하신 말씀이셨는데, 정선생님이 이번만큼은 되게 오버하신 것 ......’’

‘‘이 자식이, 니가 뭘 안다고 끼어들고 야단이야, 인마!’’


정원택이 나를 향해 버럭 호통을 쳤다.

이번 건 진짜 막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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