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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멕스님의 서재입니다.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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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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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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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
글자수 :
45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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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2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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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6화

DUMMY





전 미스코리아이자 현 WTN 메인 앵커 송주나와의 미팅 날.

아침부터 가슴이 너무 떨렸다.

오전 일찍 미용실을 갔는데, 노련한 헤어 디자이너가 데이트 약속 있어서 오신 거죠? 하고 바로 싱긋 웃을 정도였다.


약속 장소인 방송국 휴게실을 갔는데, 그녀가 곧바로 눈에 띄었다.

근처에 20대 신인 여자 배우들도 있었는데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사팩폭쇼의 여성 엠씨 한소라가 섹시미,

저품격 토크쇼 패널이자 변호사인 신선혜가 지성미라면,

송주나의 미모는 뭐랄까 엘레강스하면서도 오컬트했다.

아무튼 뭔가 형언할 수 없는 미모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강소장님. 저희 서로 얼굴은 익히 알고 있죠?’’


게다가 목소리에는 카리스마가 넘쳐 흘렸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정원택이 약간 강요하는 듯한 억지 카리스마라면 송주나는 훨씬 자연스러운 카리스마였다.

자발적으로 능욕당하고 굴종당하고 싶은.


‘‘요즘 강소장님 출연작들 빼놓지 않고 보고 있습니다.’’

‘‘아! 저, 정말, 감사, 참나.’’


그녀 앞에서 비문 오문 없이 문장 하나 끝내기가 너무 힘들 지경이었다.

입술도 떨리고 커피 잔을 들고 있는 손도 떨렸다.


‘‘저, 저기, 그, 근데 .....’’

‘‘예, 말씀하시죠.’’

‘‘질문 좀, 몇 가지, 궁금한 게 좀 있어서, 실례가 안 된다면 ......’’

‘‘물론 그러셔야죠.’’

‘‘굳이 왜 시사 라디오를, 뉴스 메인 앵커 하시는 분이시면, 굳이 라디오 하시기에는 급이 좀, 티비 토론 프로그램을 차라리 새로 .....’’

‘‘하하하. 무슨 질문인지 알겠습니다.’’


그녀가 남성인 나보다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나 매사 자신감 넘치는 여성은 다르다.


‘‘상당수 분들이 라디오 시대는 끝났다 생각하시는데 저는 꼭 그렇게 보지 않아요. 물론 음악 쪽 라디오 프로그램은 확실히 예전의 영광을 되찾는 건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시사 쪽 라디오 프로그램은 오히려 틈새시장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뭐랄까 과도기라고나 할까요? 래거시 미디어 대신 너튜브 같은 대안 미디어가 득세하고 있지만, 지금 그 대안 미디어의 현실을 보세요. 진보든 보수든 극단 세력들이 자위행위 하는 꼴 밖에 더 되나요?’’

‘‘예에?’’


그녀 입에서 불쑥 자위행위라는 워딩이 나오자, 솔직히 나는 잠시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탁자 아래 발이 저려오면서 잠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었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아니 뭐, 그게 아니라, 갑자기 사래, 계속 말씀, 컥......’’


그녀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예, 그래서 결국 이대로 계속 나가다 보면 사람들이 피로함을 느끼며 어느 정도 중립성을 지키는 저희 레거시 미디어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리라 봐요. 근데 이전 같은 포맷으로는 대안 미디어에 길들여져 있는 그들을 쉽사리 충족할 수 없겠죠? 래거시 미디어 특유의 엄근진스러움을 벗어나서 보다 자유롭고 보다 라이트하고 보다 탄력적인 포맷을 준비해야겠죠?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실험을 하는 데 있어서는 TV보다 라디오가 부담이 덜하니까요. 바로 그 점 때문에 제가 우선 티비 대신 라디오 프로그램을 런칭하기로 결심한 거고요. 결론적으로 보다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컨셉과 보다 자유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포맷, 이 두 가지 이유로 제 이름을 내건 새로운 시사 라디오 프로를 런칭하고자 하는 거죠.’’


나는 그저 그녀 말을 잠자코 듣기만 했다.

끼어 들 틈이 없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어조도 그렇지만 논리도 한 치의 빈틈이 없었다.


시사평론을 하면 나보다도 훨씬 잘 할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굳이 내뱉지는 않았다.

그것은, 혹시나 내 밥그릇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로 저희 프로 시사평론가 패널로 강대구 소장님을 모시고자 하는 거기도 하고요.’’

‘‘예? 아! 저, 제가, 예? 보다 중립성 포맷과 자유로운 실험을 컨셉, 제가 그 적임자, 시사평론가 중에서요?’’

‘‘예.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 참나. 이런, 부끄부끄, 과찬의 말씀, 참나. 하하하.’’


여전히 그녀 앞에서 나는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그녀는 나를 향해 살인미소 같은 미소를 씨익 짓더니 다시 또 설명을 이어갔다.


‘‘저희 제작진이 강대구 소장님 연구를 많이 했거든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시사평론가들 중에 가장 중립적인 평론가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또 기존 평론가들이 뭐랄까, 거의 대부분 엄숙주의에서 자유롭지 않은 데 반해, 강대구 소장님은 뭐랄까, 가장 자유로운 영혼 같은 평론가라고나 할까요? 그러니 저희 방송 컨셉과도 가장 잘 맞는 평론가이신 거죠.’’

‘‘감사, 참나, 저도 모르는 저를, 이렇게 좋게만, 면구스러워서, 참나.’’

‘‘그럼, 저희 프로 같이 하시는 거죠? 호호호.’’


그녀가 아까보다 더 치명적인 살인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

누나! 나 진짜 이러다 죽어.


‘‘예, 다, 당연, 이걸 안 받으면 바보 ......’’

‘’호호호, 알겠습니다. 그럼, 사인 한 걸로 알겠습니다. 참! 한 가지 더. 혹시 강소장님은 저희 프로에 대해서 건의 사항이나 아이디어 같은 거 없으세요?’’

‘‘예? 아, 아디어요?’’

‘‘예. 평소 강소장님 다른 프로 하시면서 뭐 그런 거 있을 수 있잖아요. 내가 피디면 이렇게 안 할 텐데. 혹은 이런 거 해 볼 텐데. 그런 거 있으면 가감 없이 이야기해주세요. 우리, 같이 프로그램 만들어 가요. 방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저희 프로는 래거시 미디어와 대안 미디어 사이 그 중간 어디를 지향해요. 그러니까 대척점에 있는 양쪽 미디어의 장점을 모아서 정반합을 거쳐 차세대 대안 미디어 꿈꾸고 있는 거죠. 래거시 미디어는 저희 쪽에서 맡을 테니까 인터넷 방송 쪽 아이디어는 강소장님이 맡아주셨으면 하는데. 그 쪽에 워낙 오래 계셔서 저희보다 훨씬 많이 아시잖아요.’’

‘‘음 ......’’


나는 한참동안 고심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사실 아이디어는 일찌감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가슴과 손 떨림을 부여잡으며 그녀 앞에서 비문 오문 없는 제대로 된 문장을 완성해낼 수 있을까?

그래! 단문으로 이야기해보자.


‘‘캐릭터가 중요하거든요.’’

‘‘예? 그렇죠. 캐릭터는 어디서든 중요하죠.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아하! 저희 라디오 방송에서도 캐릭터가 중요하다고요?’’

‘‘예. 혹시 영화 좋아하세요?

‘‘그럼요, 영화 좋아하죠.’’

‘‘이번 주 오재식 감독 영화가 개봉했죠.’’

‘‘그렇죠. 그걸로 강소장님이 저품격 토론쇼에서 또 한 건 하셨잖아요.’’

‘‘그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거든요.’’

‘‘알아요. 시간 나면 저도 곧 보러갈 예정이에요.’’

‘’저희도 로맨틱 코미디 같은 시사방송을 만들어보죠.‘‘

‘‘예? 로맨틱 코미디 같은 시사방송이요?’’

‘‘예, 엠씨가 여자주인공, 패널이 남자주인공이죠.’’

‘‘어머! 그럼, 제가 여자주인공, 강소장님이 남자주인공?’’

‘‘예, 로맨틱 코미디 같은 시사방송을 만들죠.’’

‘‘....... 아하!’’


짝짝짝.

그녀가 손뼉을 쳤다.

이어서 내게 엄지척을 해 보였다.


‘‘정말 신박한 아이디어네요! 그러니까 시사 라디오 방송 사상 처음으로, 캐릭터가 살아있는 방송을 꾸며보자, 이 말씀이네요. 그것도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 같은 캐릭터 ......’’

‘‘예, 맞습니다. 제가 이미 몇 번 인터넷 방송에서 실험해봤습니다.’’

‘‘어머!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시사팩폭쇼 몇 번 봤었는데, 거기 아주 이쁜 여자 엠씨분한테, 좀 이런 표현 쓰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많이 좀 들이대시던데, 호호호.’’

‘‘마음에 없는 상황극일 뿐이 없죠, 아니, 뿐이였습죠.’’

‘‘그러셨구나. 그러니까 그런 걸 저희도 해 보자는 말씀인거죠? 정말 재미있겠다. 저도 진짜 이번 새 프로에서는 기존 그 완벽한 척 하는 슈퍼우먼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정말 잘 됐네요, 호호호. 그럼, 제가 좀 강소장님한테 질척거리는 롤 맡으면 되는 거죠?’’

‘‘예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러니까 시사팩폭쇼에서 그 여성 엠씨분, 성함이 한소라씨인가. 그 분 역할을 강소장님이 이번에는 맡으시고. 대신 제가 거기서 강소장님 역할을 맡으면 되는 거잖아요.’’

‘‘아, 아니, 그게 무슨 말, 말씀을 거꾸로, 헷갈리시는 것 같은 ......’’


어리둥절한 표정의 나는 다시 비문 오문을 섞기 시작했다.


‘‘아니요. 그렇게 해요. 강소장님도 똑같은 캐릭터 또 하면 재미없잖아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리얼리티가, 사람들이 안 믿어, 송앵커님이 저를 플러팅한다면, 그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사이코드라마, 호러 영화 ......’’

‘‘에이, 사람들 전부 예상할 수 있는 설정이면 흥미가 반감되잖아요. 사람들 뒤통수 때리는 캐릭터를 설정해야죠. 그리고, 참! 강소장님 미혼 아니신가요? 나무위키에서는 그렇게 나오던데.’’

‘‘예, 노총각, 월드컵 주기로 여자 한 번 사귀는데, 그것도 최근에는 5년 째 혼자 독수공방, 고독사 너무너무 두려워 ......’’

‘‘호호호. 강소장님, 너무 겸손하세요. 어쨌든 깨끗한 미혼 총각이시고 저는 엄연한 돌싱 처지인데. 그거 따지면 리얼리티가 아주 없지도 않잖아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외모나 스펙 이걸 아무리 봐도, 사람들이 저한테 돌 던지면,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도 맞으면 ......’‘’


내가 또 문장 하나를 못 끝내고 허둥지둥 하는 사이, 그녀가 또 빙그레 살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 숨 막혀 죽을 것 같았다.


‘‘강소장님!’’

‘‘예? 예.’’


그녀가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목소리 톤을 한층 낮췄다.


‘‘저 사실 애도 있어요.’’

‘‘예에?’’

‘‘다섯 살 된 딸 있어요. 제일 이쁠 때죠.’’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물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월을 돌아보았다는 이야기다.


15년 전, 미스코리아 대회 생중계에서 그녀를 보자마자 첫 눈에 반한 이래로,

내가 그녀에 관한 뉴스를 반년 가량 이상 소홀히 한 적이 있었던가.

그렇지 않다면 그녀가 임신을 하고 애까지 있다는 소식을 내가 어찌 지금까지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아니, 참! 최근 그녀에게 연락이 온 이래로 그녀에 관해 몇 번이고 여기저기 검색을 해 봤지만 그녀 딸 이야기는 없었는데.

그저 이혼 이야기 밖에 없었는데.

당연히 그냥 아이 없는 상태에서 이혼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무위키에도 없었는데.


‘‘사실 전남편 애가 아니에요.’’


그녀가 한층 목소리를 더 낮추어 말했다.

마치 내 귀에만 속삭이듯.


‘‘아! 그, 그러시구나. 그, 그렇다면, 아! 뭐, 예, 뭐, 사람이 그럴 수도, 뭐, 그럼 그게 이혼사유, 아! 그건 뭐 함부로 말할, 사람이 살다 보면 뭐, 권태기, 남자도 오늘 처음 본 여자를 제일 사랑,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그런 거지, 뭐 ......’’


내가 한참 또 허둥댔다.

이번에는 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정말로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그런 나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그녀가 빵, 하고 큰 웃음을 터뜨렸다.

근처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쪽을 돌아볼 정도였다.


‘‘호호호. 사실은요 ......’’


그녀가 주위 테이블을 의식하며 다시 또 속삭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배로 낳은 애가 아니에요. 이혼 후에 입양한 애예요.’’

‘‘예에? 저, 정말이요?’’

‘‘예. 근데 이거 아는 사람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아요. 이런 제 내밀한 비밀까지 말씀드린다는 건, 그만큼 강소장님을 제가 믿는다는 이야기겠죠?’’


그녀가 마침표를 찍듯 윙크를 동반한 살인미소를 또 지어 보였고,

그 순간 정말 나는 심장이 멎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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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화 24.05.22 392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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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화 24.05.19 408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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