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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멕스님의 서재입니다.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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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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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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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
글자수 :
45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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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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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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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3쪽

13화

DUMMY




잠시 좌중에 침묵이 흘렀다.

마가 뜨는 거, 토크 쇼 방송에서는 치명적인 순간이었다.


‘‘저, 저기, 오빠!’’


가장 먼저 정신 차린 MC홍일점이 겨우 침묵을 깼다.


‘‘으, 응?’’

‘‘너무 구체적으로 그 보좌관 신원을 밝히시면 ......’’


홍일점의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을 보면서 나 역시 순간 아차, 싶었다.

유방확대 수술 전문의 저 새끼 때문에 욱, 하는 심정으로 프롬프터 창에 입력되어 있는 글을 필터링 안 가치고 다 발설해버린 것이다.


작년에 대학 갓 졸업하고 자매들 공부도 봐 주고 있는 여자 보좌관이라.

김진홍 의원 주변 웬만한 사람이라면 금세 누구인지 알 것이다.


‘‘이거 명예훼손 빼박 아닌가요? 하하하.’’


유방확대 수술 전문의 새끼가 다시 또 나를 향해 비웃듯이 말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 거, 에라이 모르겠다.

프롬프터 창에 적혀있는 나머지 문구들 다 읽어버리련다.


‘‘그 여자 보좌관이 왜 김진홍 의원에게 불만을 품고 그랬는지 저간의 사정을 알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김진홍 의원이 나이도 어리고 여자라고 만만하게 보면서 그 여자 보좌관한테 온갖 갑질을 했거든요. 이혼 후 애들이 엄마랑 사는데, 엄마가 아프시니까 그 뒤치다꺼리까지 그 어린 여보좌관한테 맡긴 거죠. 심지어 무슨 세탁소에 빨래 맡기는 것까지 시켰을 정도. 그리고 매주 정기적으로 애들 과외지도까지 하게 했으니까요.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김진홍 의원 정의로운 척 혼자 다하면서 다른 사람 갑질에 그렇게 상임위에서 목청 높이더니 지는 그보다 더 한 강약약강 시전하면서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그 여자 보좌관 입장에서 당연히 반감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요?’’


막상 다 읽고 나니 겁이 많이 났다.

이거 홍일점 말대로 명예훼손 빼박이다.


사실 시사평론가들이 명예훼손 소송에 엮이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특히나 노선 뚜렷하고 개성 강한 스타일의 선후배들은 통과의례처럼 법정을 들락날락거린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한 번도 고소고발당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될 만큼 당파성이나 이념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말도 항상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두리뭉실, 간만 보듯, 얍삭 만땅으로 빠져나갈 퇴로를 열어두고 하기 때문이다.


‘‘음 ......’’


주위를 휘익 둘러보았다.

진심인지 아니면 아니면 연기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MC들의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들.

그 표정들을 훑은 후 여전히 비웃는 듯한 유방확대 수술 전문의 놈을 지나서 신선혜 얼굴에서 시선을 멈추어 보았다.

그녀는 잔뜩 화가 난 듯 입을 샐쭉 내밀고 있었다.



+++



‘‘신변! 신변!’’


방송이 끝나자 신선혜는 내게 제대로 인사도 안 하고 자리를 떴다.

정말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방송 전 커피숍에서는 마치 내가 자기를 키워주려고 뜨게 해주려고 배려한 척 하더만,

실상 온 에어에 들어가서는 소위 방송 용어로 내가 혼자 다 따 먹었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기분이 우울했다.

지성과 미모를 갖춘 여자와 썸을 타는 것.

그저 한 순간의 미몽으로 끝나는 것인가.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기분이 우울한 일이 방송 몇 시간 후 벌어졌다.


‘‘김피디입니다.’’


종편 중구난방 김피디로부터 전화가 왔다.


‘‘예, 피디님.’’


영상통화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를 내 인생의 리즈 시절로 이끌어 줄 동아줄로 내심 상정하고 있던 터라.


‘‘음 ......저기 ...... 하아!’’


그가 마치 담배 연기라도 길게 내뿜는 듯 헛헛한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시죠?’’


통화 초장부터 왠지 느낌이 되게 안 좋았다.


‘‘오늘 오전에 처음으로 정원택 선생님이랑 김여중 선생님한테 저희 프로 포맷 개편에 대해서 상의를 드렸거든요.’’

‘‘아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두 선생님 반응이 어떠셨나요?’’

‘‘아, 그게 ...... 참’’


김피디의 미적거림으로부터 이미 답은 나왔다.


‘‘괜찮습니다. 사실대로 말씀해주시죠.’’

‘‘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두 분 반응이 똑같은 건 아니었습니다. 김여중 선생님은 가타부타 말씀하시지는 않고 그냥 알았다고만 하셨고요 ......’’


나도 그 정도는 눈치가 있다.

그게 김여중의 전형적인 반대 의사 표시다.

직설적으로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완곡하게 자신의 부정적인 입장을 그런 방식으로 전달한 것일 게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열렬히 환영한다는 인사말을 남겼을 것이다.

겉과 속이 그다지 같지 않는 전형적인 좌파 스타일이다.


‘‘그럼, 정원택 선생님은요?’’

‘‘......’’

‘‘대놓고 저를 까셨나 보군요, 하하하, 하하하.’’


전화 통화 중 무표정, 혹은 실망 가득한 표정임에도 불구하고 호탕하기 짝이 없는 웃음소리를 내는 기술.

나는 오래 전부터 이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하하하, 하하하. 괜찮습니다. 뭐 할 수 없죠. 사실 저 같이 근본 없는 놈이 벌써부터 그런 당대의 논객 분들과 겸상을 한다는 건 제가 생각해도 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좀 더 수련과 연마를 한 후에 ......’’

‘‘아!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바람을 넣은 것 같아서 .....’’


음 ..... 정원택의 반대가 생각보다 엄청 심했나 보다.

그 듣보잡 새끼 중 나랑 둘 중 한 명을 택일하라는 수준의 윽박지름?


시발, 아무리 진성 우파 논객이라고 해도 그렇지

좀 같이 나눠 먹고 살면 안 되냐.

꼭 그렇게 세상이 약육강식이어야만 하냐.


‘‘하하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최고의 인기 토론 프로그램인 중구난방으로부터 섭외 요청을 받은 것만으로 가문의 영광이었는걸요, 하하하, 하하하, 푸하하하, 푸우.’’


웃음에 삑사리 소리가 났다.

무표정이나 실망스런 표정 하면서 웃음소리 내는 기술까지는 익혔지만, 울컥하는 표정에서 웃음소리 내는 경지까지는 좀 더 수련이 필요하다.


‘‘음, 이번에는 비록 기회가 닿지 않지만, 다음 정기 개편 때까지 시간 여유를 가지고 저희가 두 선생님 설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 말씀 전합니다.’’


김피디는 여전히 정중하고 예의 발랐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시발시발거릴 수밖에 없었다.


여동생 주화 네한테 천만 원 돈 그냥 해주겠다고 큰 소리 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만약 정말 중구난방에서 정원택, 김여중 등과 나란히 자리를 함께 하게 된다면, 신변호사한테 상남자스러운 본격적인 대시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이 모든 게 정말 한낱 꿈에 그치고 마는 것인가.

괜시리 바람만 넣은 프롬프터 창이 얄미워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진짜 그 여자 보좌관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까지 들어오게 된다면?


세상아! 너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차라리 처음부터 주지를 말지.

줬다 뺏는 게 어디 있냐.

세상 이 새끼, 진짜 좆나 어이없는 새끼네.



+++



그날 저녁 나는 핸드폰을 끄고 혼술을 했다.

새벽녘까지 처연한 음악들만 틀어놓고 혼자 시팔시팔 세상에 대한 저주를 한참 또 늘어놓다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보니 지인들의 메시지들이 많이 와 있었다.

온 순서대로 메시지들을 읽어봤는데, 반은 걱정하는 메시지, 반은 놀리는 메시지들이었다.


감히 건드려도 여당 주류 중의 주류인 김진홍 의원을 건드리다니.

요즘 허파에 바람 너무 들어간 것 같더만 드디어 개오버 사고를 쳤다느니.

여기까지가 우리 인연의 끝인가 보오, 라고 손절한다느니.

요즘 뭔가 좀 심리가 불안한 상태인 것 같은데 좋은 보험 상품 나온 게 있으니 가입하는 게 어떻겠냐느니 등등.


그런데 중간부터 조금씩 메시지 분위기가 바뀌어져갔다.


방금 자 속보를 봤느냐니

요즘 운빨 좀 좋은 것 같은데 로또 번호 아무 거나 불러달라느니

최근 다니는 점집 나도 좀 소개해달라느니

평소 니가 울 나라 시사평론가 중 가장 포텐 있어 보였다느니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느니


나는 대체 무슨 뉴스가 떠서 얘들이 이렇게 태세전환을 하는 지 급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인들 메시지들 보기를 멈추고 검색창에 내 이름을 쳐 보았다.

별 다른 최신 뉴스는 없었다.

인터넷 삼류 시사평론가인 내 이름 가지고 나오는 정론지 뉴스는 애초 가뭄에 콩 나듯이였다.

나조차 처음 들어보는 신문사에서나 내 이름을 인용했다.


대신 검색어로 김진홍을 쳐 봤다.

곧바로 뉴스들이 줄줄이 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김진홍 의원에 관한 기사가 아니었다.


김진홍 의원의 전직 여보좌관이 올린 SNS 글 기사였다.

한 인터넷 방송에서 모 시사평론가가 폭로한 김진홍 의원 갑질 의혹이 전부 사실이라고 고백하는 내용의 SNS 글.

한 인터넷 방송이란 저품격 토크쇼일 테고, 모 시사평론가란 바로 나, 강대구를 말하는 것일 테고.


‘‘어? 이, 이게 뭐야?’’


전직 여보좌관은 글 말미에 저품격 토크쇼와 나 강대구를 따로 언급하며 글을 마친다.


[ ...... 저는 문제의 그 프로와 그 시사평론가라는 분 존재를 이전에 전혀 몰랐습니다. 다시 말해 그 분들에게 제 이야기 폭로를 부탁드린 적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분들 덕분에 이렇게 공론화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응원해 주고 계시는 네티즌 분들로부터 용기를 얻고 있다는 말씀 역시 꼭 전하고 싶습니다.]


프롬프터 창 ...... 너 이 새끼!

너 이 개새끼, 또 한 건 했어, 시발!

푸하하하하!



+++



운명도 본래 양극화다.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부르지만, 행운은 또 다른 행운을 부른다.


‘‘여보세요. 강소장님이십니까?’’


김진홍 의원 전직 여보좌관의 양심선언이 있고 이틀 후.

중구난방 김피디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그는 지난번과 달리 밝은 어조였다.


‘‘예, 김피디님. 점심은 맛있게 드셨습니까? 하하하.’’


나 역시 밝은 어조로 답례했다.

대충 무슨 이야기가 들려올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요즘에 강소장님 타율이 너무 높으신 거 아닌가요? 하하하.’’

‘‘글쎄, 요즘 타석에 들어서면 이상하게 공이 야구공 같지 않고 무슨 축구공처럼 크게 보이네요. 골프공처럼 보였던 나날들이 불과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하하하.’’

‘‘아휴, 그럼 메이저리그 얼른 진출하셔야죠, 하하하.’’

‘‘아직은 스카우터들 마음을 백 프로 사고 있지 못해서요. 좀 더 연습하고 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하하하.’’

‘‘아이고! 무슨 말씀을요. 죄송합니다. 제가 스카우터로서 보는 눈이 많이 부족했었네요.’’


사실 며칠 전 중구난방 측 섭외 철회에 있어서 김피디 잘못이 뭐가 있었나.

정원택, 김여중 두 꼰대 양반들이 자라나는 새싹을 키우기는커녕 그저 자기들 밥그릇 보전 때문에 짓 밞았던 것뿐이겠지.


‘‘강소장님! 본론으로 들어가서, 염치 불구한 말씀이지만, 다시 저희 중구난방에게 기회 한 번 더 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이고,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귀사 측으로부터 섭외 한 번 받은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걸요. 그건 그렇고 .....’’

‘‘아! 정선생님, 김선생님 입장이요?’’

‘‘예. 그분들 윤허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들 두 사람 입장이 급선회한 이유는 보나마나 뻔할 것이다.

내가 살생부 속 김진홍 의원이 들어있는 이유를 정확히 맞췄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 어떤 놈이기에 요즘 이 바닥에서 저렇게 핫하게 떠오르나 몹시도 궁금할 것이다.


‘‘먼저 김여중 선생님도 자기 딴에는 그 살생부 건에 대해 나름 분석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선생님은 김진홍 의원이 대통령한테 최근 찍혀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잠정결론을 내리셨었다네요. 그런데 자기 예측이 전혀 틀리고 강소장님 분석이 정확히 맞은 것에 상당히 충격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얼른 강소장님 직접 뵙고 싶어하시더라고요, 하하하.’’

‘‘아! 그러세요. 와! 이것도 정말 영광인데요. 당대의 논객인 김여중 선생님 같은 분이 저 같은 삼류 평론가를 보시고자 하신다니. 참! 정원택 선생님은요?’’

‘‘아! 정선생님은 아주 간단합니다.’’

‘‘예? 어떻게요?’’

‘‘그냥 평소 김진홍 의원 정치 스타일에 대해 되게 안 좋게 생각하시던 차에, 이번 살생부가 다른 사람도 아니라 김진홍 의원 자식들이 만든 거라고 하니까 아주 그냥 좋아 죽으시던데요, 하하하.’’

‘‘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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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1 24.05.23 384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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