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엘멕스님의 서재입니다.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22,456
추천수 :
509
글자수 :
454,020

작성
24.06.01 02:05
조회
318
추천
4
글자
12쪽

25화

DUMMY




워워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 편 오감독을 향해 진정하라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오감독은 나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보였다.


그가 손에 무언가를 들었다.

마시고 있던 음료수 캔이었다.


설마, 했는데 그가 그것을 우리 쪽으로 던졌다.

방송하면서 속이 많이 탔는지 많이 마셨나 보다.

음료수에 양이 별로 남지 않아서인지 제대로 날아오지 못하고 우리 테이블 앞에서 싱커처럼 떨어졌다.


하하하.


내 딴에는 슬랩스틱을 한다고 뒤늦게 헛스윙 하는 포즈를 취해 보였다.

좌중에 몇몇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오감독의 흥분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슬쩍 옆을 보니까, 그 사이 고형의 표정은 좀 바뀌어져 있었다.


불과 십여 초전까지만 해도 임전무퇴할 것 같던 그였지만,

역시나 사람은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되는 법.

자신에게 안 맞는 옷은 일찌감치 벗어던져야 하는 법.

아니, 어쩌면 오감독의 폭력적 행동에 정말 제대로 쫀 거 같기도 하다.


‘‘참! 이게 사실은요. 유사 이래 참 해결이 되지 않고 계속 논란만 되고 있는 문제인데요. 공인이나 예술가에 대해서 그 사람의 사생활을 어느 정도 평가 기준으로 삼는 가의 문제.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도 제우스를 비롯해 사생활이 안 좋은 신들이 한 둘이 아니었잖습니까? 그리고 최근만 해도 얼마 전 모 영화제에서 아동 성범죄를 저질렀던 감독이 상을 받으니까 난리가 나지 않았습니까? 여배우가 중간에 화나서 뛰쳐나가기도 하고. 그 여자 섹시하던데. 근데 알고 봤더니 아쉽게도 레즈 쪽이시더라고요. 대한민국 축구팀을 응원하는 게 아니라 성 정체성 쪽이 레즈 ...... ’’


지금 이 이야기는 프롬프터 창을 읽으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프롬프터 창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평소 내 상식을 가지고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즉석 애드립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였다.


레즈를 가지고 아재 개그를 한 게 조금 먹혔다.

맞은 편 오감독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그어졌다.

물론 어이없다는 실소에 가까운 미소였지만.


내 옆에 앉아있는 고형은 킥킥 소리까지 내면서 웃고 있었다.

정말로 내 말장난이 재미있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이쯤에서 본인도 회군하고 싶어 과장해 웃음소리를 내고 있는 건지 어떤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계속 여세를 몰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그래서 지금 이 문제는 누가 옳고 그르다 이 자리에서 함부로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술가 이전에 인간이다 생각하는 분은 제 옆에 계신 고형처럼 문제제기할 수 있기도 하지만, 반면 원래 예술가는 좀 뭐 사생활도 남달라야 한다, 그게 창작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작품과 창작자 사생활이 무슨 관계가 있냐, 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 입장에서는 또 너그러이 이해하실 수도 있는 문제 아닐까요? ....... ’’


애드립을 이어가면서 나는 한편으로는 중구난방 김피디의 혜안에 감탄해 마지않을 수 없었다.

극단적인 양 진영의 불화와 대립을 이렇게 순식간에 녹여낼 수 있는 나의 이런 재능.

나도 몰랐던 나의 이런 재능을 발굴해 낸 김피디, 도대체 당신의 혜안이란.


내 이 재능이라면 매일 싸움질만 일삼는 대한민국 여야도 협치로 이끌 수 있는 국회의장 자격도 있어 보이며,

더 나아가 세계 각국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며 평화를 전도하는 유엔 사무총장이 될 소질도 엿 보일 정도다.


그렇게 한편으로는 애드립을 이어가며 또 한 편으로는 쓸 데 없는 망상에 젖어 들어가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프롬프터가 느닷없이 또 모습을 드러냈다.


‘‘...... 그래서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고 일단락 지으며 다음 주제로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 근데, 오감독! 당신 말이야!’’


처음에는 다들 빙의된 무당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그랬다.

순식간에 내 목소리 톤이 바뀌어져 있었다.

그리고 내용 역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정녕 당신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럴 수 있냐고?’’


심지어 나는 나도 모르게 삿대질까지 하고 있는 중이었다.


‘‘뭐, 뭐, 뭐요?’’


방금 전 슬쩍 미소까지 엿보이며 흥분을 가라앉히려 하던 맞은 편 오감독이 일순 당황한 낯빛으로 내게 되물었다.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냐고?’’

‘‘내, 내가 뭘 어쨌다고?’’

‘‘지금 여기 분위기 개판 된 건 전적으로 당신 때문이야! 알아?’’


‘‘엠씨 분들! 갑자기 저 양반은 또 왜 저러는 거야? 방금 전까지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하더만.’’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호통까지 쳐 대는 나의 모습에 오감독이 이해 불가하다는 표정으로 엠씨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수년째 나를 보아왔던 저품격 토크쇼 엠씨들도 이런 나의 모습은 처음 본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 갑자기 왜 그러세요? 설마 상황극이신 거에요?’’


엠씨 중 한 명인 홍일점이 나에게 물었다.


‘‘상황극은 얼어 죽을. 일점아!’’

‘‘예? 예, 왜요?’’

‘‘너 솔직하게 말해보련?’’

‘‘뭐, 뭐를요, 오빠?’’

‘‘원래 오늘 출연진에 이번 저 인간 신작 영화 여주인공 맡은, 배우 임장미 양도 나오기로 되어 있었지?’’

‘‘어, 어떻게 오빠 그걸?’’

‘‘원래는 임장미 양 혼자 나와서 홍보활동 하려고 했었는데, 부득부득 저 감독 놈이 같이 나오겠다고 우겨댔었지?’’

‘‘예? 그것까지 우리는 자세히 잘 모르는데 ......’’

‘‘웃기고 있네. 니들이 모르면 대체 누가 알아? 아무튼 원래 영화사에서는 임장미 양 혼자 내보내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저 감독 놈이 끼어 든 거잖아. 그래서 둘이 같이 나오기로 했었다가 이번에는 갑자기 임장미양 몸이 불편하다고 오늘 캔슬한 거지. 여기까지 전부 다 맞지?’’

‘‘예? 그, 글쎄, 저희는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뭐 얼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


내 취조하는 듯한 말투의 상대는 엠씨 홍일점이었지만, 정작 범인인양 벌벌 떨기 시작하고 있는 건 맞은 편 오감독이었다.


‘‘ 임장미 양이 오늘 여기 왜 출연 캔슬한 건 지 알아? 오감독 저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 평소 임장미 양 어떻게든 한 번 따먹어 ...... 아, 아니, 하도 질척거려서 임장미 양이 오늘 여기도 결국 안 나오게 된 거야. 원래 장미양이 저품격 토크쇼 니네 방송 애청자였거든. 촬영 틈틈이도 찾아 볼 정도로. 근데 저 인간이 갑자기 오늘 여기에도 따라 나온다니까 장미양이 기겁을 하고 안 나오게 된 거라고. 장미양이 저 인간이랑 지난 작품 같이 하면서 이미 학을 뗐었는데, 그 작품이 하필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또 이번 시나리오도 너무 마음에 들고, 소속사 대표가 워낙 또 강권을 하고 그래서, 결국 눈 딱 감고 이번만 한 번 더 출연하자 이 마인드였었는데, 저 눈치까지 없는 인간이 장미양이 남자로서 자기를 좋아해 이번 영화 출연도 오케이 사인 내린 줄 알고, 지가 대시 좀 하면 결국 함락할 거라고 착각하면서, 이번 영화 촬영장에서도 계속 추근대기에 후반 작업 이후에는 최대한 피해 다니고 있는 거라고! 제기랄, 임장미님 실물 영접할 수 있는 오늘 절호의 기회였는데, 저 탐욕덩어리 감독 놈 때문에 ......’’


한참동안 내가 떠들고 난 후, 슬쩍 옆자리 고형에게 시선을 던져 보았다.

고형은 임장미 양 출연 건에 관한 정보까지는 가지고 있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프롬프터 창 정보가 어디 보통 정보일 리가.


이어서 나는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프롬프터 창을 읽어 내려가느라 그 사이 맞은 편 오감독 놈 표정을 살피지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의 표정을 살펴볼 수 없었다.

어느새 빤스런을 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야! 그노마 언제 튀었냐?’’

‘‘오, 오빠!’’

‘‘응? 왜?’’


가만 보니, 홍일점을 비롯한 저품격 토크쇼 엠씨들 표정들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 영화, 우리 광고 들어온 영화란 말이야. 적당히 해야지, 이렇게까지 해 버리면 어떡해? 앞으로 누가 우리 프로에 광고를 넣겠어. 엉엉엉. 우리 망했어, 우리 망했다고, 엉엉엉.’’



+++



인터넷 방송 후폭풍은 럭비공과도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고, 반전과 반전을 거듭할 수도 있다.


저품격 토론쇼 여성 엠씨인 홍일점은 나의 느닷없는 폭로로 프로그램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저런 감독 영화는 불매해야지 하면서 보이콧 운동이 벌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른 제품 광고주들이 저런 배은망덕한 프로에는 광고를 안 주어야지 하면서 자기네들도 불매운동이 벌어질 것이라 우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정반대 결과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개봉 첫 주이기는 하지만, 흥행 스코어가 기대에 약간 못 미치고 있던 오재식 감독 임장미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신작 ‘실연 성형시술’.

저품격 토크쇼에서의 돌발 사태는 문제의 영화에 대한 엄청난 홍보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특히나 지고지순한 남자주인공을 내세운 영화 스토리와는 달리 감독이 아주 음험한 캐릭터라는 점과,

정반대로 영화 속 가스라이팅녀 역할이던 주인공 역 여배우 임장미가 실지로는 감독의 스토킹에 가까운 집착에 고통 받고 있다는 점.


이 두 가지 아이러니한 현실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잔뜩 자극시켰나 보다.

한 편에서는 영화 불매 운동 여론이 조금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관객들이 극장을 찾으면서 영화 흥행이 급상승일로에 접어들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오감독 영화 인생까지 해피엔딩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그날 내 옆에 있던 영화평론가 고형의 전언에 따르면, 오감독의 다른 악행들도 영화판에 급속도로 퍼지게 되면서 이번 영화 흥행 성적과 상관없이 차기작을 찍으려면 꽤 많은 시간과 반성, 환골탈태 노력등이 소요될 전망이란다.


저품격 토크쇼 제작진의 걱정과는 달리 광고주들은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지도 않게 몇 개 더 붙었다고 한다.

개 중에 영화나 뮤지컬이 반 이상이었다고 한다.

오감독 영화의 흥행 성공 결과를 보면서 자기네들 작품들 가지고도 그런 돌발 상황극을 만들면 어떨까 오히려 제작진 측에 사전 역제안을 해왔다고 한다.


수혜를 입은 건 저품격 토크쇼 뿐 아니었다.

고형은 용기 있는 영화평론가라는 호칭을 얻었다.


고형보다 오감독을 더 심하게 들이받았던 나는 더 화려한 칭호를 얻어냈다.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나를 가리켜 정의의 사도, 시대의 영웅, 우리 사회 목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번처럼 여동생 주화나 매제가 주작한 거 아닌가 물어봤지만 이번에는 자기네들이 쓴 게 아니란다.


‘‘여보세요, 강소장님.’’

‘‘예? 아! 예. 전화 주셔서 감사, 어쩐 일로 또, 말씀하시죠.’’

‘‘또 한 건 크게 하셨더라고요, 호호호.’’

‘‘어떻게, 저품격 토크쇼 같은 프로를 다 보시고, 레벨에 안 맞으시게.’’

‘‘어머! 저 그런 거 너무 좋아해요. 참! 강소장님, 이번 주말에 미팅 날짜 좀 잡았으면 하는데, 어떠세요? 지난 번 말한 그 시사 라디오 프로 런칭 건 때문에 그러는 데요’’

‘‘잠시만요, 차 세우고, 아이 씨 ......’’

‘‘에에?’’

‘‘아, 아니요. 송앵커님에게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제가 좀 흥분, 아이고, 성적 흥분은 절대 아니고요, 그냥 흥분, 다시 한 번 또 아이고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5 24화 24.05.31 320 6 12쪽
24 23화 24.05.30 330 8 13쪽
23 22화 +1 24.05.29 340 5 11쪽
22 21화 +1 24.05.28 349 11 12쪽
21 20화 24.05.27 364 7 12쪽
20 19화 +1 24.05.26 375 6 12쪽
19 18화 24.05.25 371 6 13쪽
18 17화 24.05.24 371 8 11쪽
17 16화 +1 24.05.23 384 10 12쪽
16 15화 24.05.22 392 11 12쪽
15 14화 24.05.21 399 7 13쪽
14 13화 24.05.20 393 9 13쪽
13 12화 24.05.19 408 9 13쪽
12 11화 24.05.18 420 7 12쪽
11 10화 24.05.17 434 11 13쪽
10 9화 +1 24.05.16 445 12 12쪽
9 8화 +2 24.05.15 480 8 12쪽
8 7화 24.05.14 470 12 12쪽
7 6화 +2 24.05.13 471 12 12쪽
6 5화 24.05.12 499 9 12쪽
5 4화 24.05.11 524 10 13쪽
4 3화 24.05.10 545 11 13쪽
3 2화 +2 24.05.09 580 11 13쪽
2 1화 +3 24.05.08 622 11 13쪽
1 프롤로그 24.05.08 642 13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