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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멕스님의 서재입니다.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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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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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80
추천수 :
509
글자수 :
454,020

작성
24.07.27 01:07
조회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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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81화

DUMMY

고개까지 조아리며 말하고 난 후 다시 머리를 들었을 때,

임민정은 더 이상 맞은편 자리에 없었다.


방금 전 방용섭이 그러했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스튜디오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방용섭과 조금 다른 점은, 작가 하나에게 맡겨 놓은 핸드백을 찾는 바람에 뒤꽁무니를 좀 더 오래 보여줬다는 점뿐이었다.


게스트 두 명이 빤스 런한 초유의 사태.

그것도 게스트 중 한 명은 무슨 신들린 사람이 되어 자신의 추한 행적을 낱낱이 자진납세까지 하고 간 상황.


이 정도 인터넷 방송이면 각종 미디어에서 기사화가 될 터이고

네티즌 커뮤니티를 들썩이게 만들 것이며

조회수 폭발을 사실상 예약해 놓은 상태가 될 것이다.


그 덕분일까?

아니, 거기에다 덤으로 한 가지 더 있을 것이다.

원래 오늘 나를 엿 먹이려고 작정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한 당사자지만, 이렇게 악랄하게까지 저 두 악당 년놈들이 준비를 해 왔으리라고는 차마 예상하지 못했던 최웅.

그리하여 방송 내내 나에게 일말의 죄책감을 가진 그가 나를 위한 보상 선물을 펼쳐놓기 시작했다.


‘‘와! 와! 와! 진짜! 와! 와! 와!’’

‘‘왜 그러세요?’’


최웅이 나를 향해 연신 엄지 척을 하며 감탄사를 내뱉자

그의 의도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한소라가 물었다.


‘‘와! 진짜, 와! 나 진짜 차마 말을 못 잇겠네.’’

‘‘아이, 또 왜 그러십니까, 최엠씨님.’’


반면 그의 의도를 간파한 나는 애써 표정관리에 나섰다.


‘‘야! 나 이제부터 강대구 소장님, 형님이라고 부를게요. 예? 괜찮겠어요?’’

‘‘에이, 그게 얼마나 갈 거라고.’’

‘‘와! 진짜, 진짜, 어떤 표현으로 따거를 향한 내 존경심을 표할 수 있을런지. 이건 정말 말 그대로 인간계를 훌쩍 넘은 신계야, 신계. 아니, 뻔히 음해당하는 걸 알면서 어떻게 그걸 그렇게 방송 내내 묵묵히 참고 견디실 수 있으셨던 거죠? 나 진짜 본받고 싶어서 그래요. 말씀 좀 해주세요, 강소장님.’’

‘‘어험! 아까 전에 설명 다 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공공선을 위해 제가 지난주 다른 방송에서 방용섭 전시장님과 임민정 교수님 행태를 비판했던 거라지만, 그분들도 인간인 이상 어떻게 저한테 억하심정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오늘 처음부터 어느 정도는 각오를 하고 나왔던 거지요. 물론 아까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게 사실이 아닌 걸 제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리 참고 인내할 수 있었던 거기도 하고요, 어험.’’

‘‘와! 와! 진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거의 부처님 레벨. 와! 정말! 와! 진짜 말이 안 나오네.’’


다시 또 최웅이 온갖 호들갑 개오버를 떨어댔다.


‘‘걍됐구! 나 요즘 새로운 프로젝트가 하나 생겼음.’’

‘‘뭔 프로젝트? 나도 껴줌?’’


2년 전인가 술자리에서 최웅이 잠깐 했던 말이 불현 듯 생각나기 시작했다.


‘‘국내 최고 시사 인터넷 방송 사회자가 아직 저서 한 권 없다는 게 좀 모양새가 안살아 보이지 않음?’’

‘‘응, 쓰지 마.’’

‘‘책 가제는 리액션의 미학 혹은 리액션의 효과임. 관심 없음?’’

‘‘안주 하나 더 시킵시다.’’

‘‘사회자나 해설자가 스스로 액션을 취하려 드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지. 진정한 무림의 고수는 그저 관조하다가 리액션만으로 해결하는 법이지.’’

‘‘오늘 이거 법인카드지?’’


그날 최웅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이러했다.

사회자나 해설자가 리액션 하나로 사람 하나 띄우고 망치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거.

예를 들어 게스트의 일상적인 에피소드나 선수의 평범한 플레이를 가지고 온갖 호들갑과 개오버를 떨면서 보고 듣는 사람들 마음을 충분히 동하게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사람들은 사회자나 해설자에게 무의식적으로 어느 정도의 권력을 위임하고 있기에 그들 말에 귀가 얇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물론 최웅이 쓰겠다는 그 책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대신 그는 방송 중에 시도 때도 없이 이런 바람잡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저 진짜 오늘 강대구 소장님으로부터 인생을 배웠네요.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다손 치더라도 좀 참고 인내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는 법인 것을. 아마도 시청자 여러분들도 저처럼 오늘 방송을 통해 이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지 않았나 싶은데요. 옆에 계신 우리 한소라씨도 그렇죠?’’

‘‘예? 예, 예. 저도 오늘 소중한 걸 배웠네요.’’

‘‘자! 그러면 오늘 저희 시사팩폭쇼의 신생코너, 불과 세 번째 시간이지만 날이 갈수록 화제거리가 만발하고 있는 코너, 비정치토론은 이쯤에서 마치고요. 우리 시사평론계의 석가모니, 강대구 소장님도 이만 보내드려야겠네요. 잠시 광고 보시고 다음 코너에서 다시 뵙죠.’’




+++



리액션의 미학이든 리액션의 효과든 간에 최웅이 언젠가 그 책을 완성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을 마치고 실시간 채팅창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니 최웅의 바람잡이 역할이 더할 나위 없이 잘 들어맞고 있었으니까.


방송 시작 전부터 채팅창은 후끈 달아있었다.

그 점에 있어서도 역시 최웅의 의도가 잘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지난주 다른 방송, 중구난방에서 강대구에게 디스를 당한 이들이 복수혈전을 위해 출전한다라.

당연히 개싸움이 벌어질 테고, 싸움 구경은 불구경과 함께 자타가 공인하는 구경거리 양대 산맥이니까.

특히나 운영하는 채널 이름부터 시사흥신소인 방용섭은 강대구에 대한 뒷조사를 엄청 해왔을 테니까.

그렇게 방송 시작 전부터 시사팩폭쇼 구독자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방용섭이 나에 관한 의혹들, 다시 말해 학폭, 빚투, 미투들을 차례로 열거하는 동안 채팅창은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악플들로 도배되어갔다.

개 중에서 가장 기분 나쁜 것은 이런 류 댓글들이었다.



- 저 새끼 졸라 찌질한 줄 알았건만 의외로 할 거 다 하면서 다녔네

- 걍됐구 같은 놈도 저렇게 나대며 살았는데 나는 지금껏 뭐 하고 산 건지.

- 저 새끼 존나 싫지만 이 모든 게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나도. 저런 찐따 새끼가 학폭을 했다니.

- 미투도 어이없지 않냐. 고딩 때 이쁜 여자 앞에서 말도 못 붙였을 것 같은 색히가 아무리 여동생 친구라고 해도 퀸카를 성희롱 했다니.



수세에 잔뜩 몰려 어버버버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수차례 클로즈업 되다가,

마침내 그 순간이 도래했다.

나와 방용섭을 사이에 두고 프롬프터, 아니 갓롬프터가 뜬 것이었다.


그때까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막힘없이 술술 입을 털던 방용섭은 갑자기 통성기도 하는 사람 표정과 목소리로 자신의 주작을 낱낱이 고백하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되자 네티즌들은 이번에도 역시 자신들의 고유 속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한다.


태세전환.

아니, 이번 경우는 엄밀히 말하면 태세전환이라기보다 고지전이라고 칭하는 게 옳을 것이다.


평소 나에 대해 안티팬 스탠스를 취하고 있던 새끼들은 더 이상 악플을 달지 못하며 쥐 죽은 듯 고요해지고

대신 그들 자리를 나의 그냥 팬들이 차지하게 된다.



- 난 아까부터 전혀 공감이 안 가더라. 우리 깡다구 형님이 저랬다는 게

- 다른 건 몰라도 강소장님이 이쁜 여자 성희롱 하고 그럴 스타일은 아니지. 처음에 한소라한테 말도 제대로 못 붙였다가 요즘에서야 좀 치는데.

- 뒤에서 찌질하게 학폭 유도는 좀 했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 에이, 강대구 형님 그동안 컨셉 재미있게 하려고 그러는 건지 실지로는 자존감 엄청 센 분이신데.

- 맞아. 요즘 중구난방에서 정원택 김여중한테도 전혀 밀리지 않던데

- 지난주 일요토론 봤음? 거기서도 담대하시던데.



안티팬이 사라지고 나의 그냥 팬들이 점거하기 시작한 채팅창.

여기서 활활 거대한 산불을 일으키기라도 하려는 듯 엠씨 최웅이 아주 기름을 1톤 부어 버린다.


- 평소 맨날 강소장만 보면 쥐 잡듯 하던 최웅 저런 모습 처음이야

- 농담하는 게 아니라 최웅 진짜 강소장 대인배 풍모에 감동한 것 같은데

- 맞아. 저 눈빛 보소. 눈빛이 걍 존경 그 자체네.

- 솔직히 나 개인적으로도 강소장님 임민정한테 마지막 했던 멘트에 충격 받았음. 저 상황에서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상대방을 이해하려 들다니.

- 진짜 오늘의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었지.

- 사람들은 부처의 모습을 봤다고 하지만 기독교 신자인 제 입장에서는 예수님 모습이었습니다.

- 세계 5대 성인 강대구님 ㅠㅠㅠ

- 제 나이 곧 구순을 앞두고 있는데, 다시 태어나면 오늘 강대구 소장님처럼 저렇게 한없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고 싶군요.



+++



네티즌들의 열화 같은 반응 가득한 채팅창을 닫고 나서 나는 메시지함을 열어보았다.

예상대로 메시지 함도 지인들의 응원 메시지들로 가득했다.


개 중에 오늘 방송 중에 언급되었던 시골 부모님과 여동생 주화도 있었다.

부모님은 과수원 일 하시느라 뒤늦게 방송 내용을 알고 연락을 주신 거고,

여동생 주화는 애 유치원 보내고 낮잠 쳐다가 역시 이제야 메시지를 보내 온 것이었다.


오히려 이게 더 다행스럽고 잘 된 일이었다.

혹시나 부모님이나 여동생 주화나 실시간으로 내 방송을 보고 있다가 너무 어이없는 나머지 도중에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을 경우

방용섭의 자백 해프닝이나 그와 임민정의 야반도주 추태에까지 자칫 이르지 못했을 수 있으니까.


‘‘오, 오빠!’’


나의 팬클럽 사실상 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선혜 변호사의 흥분 그 자체 반응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아! 신변! 아까 전 시사팩폭쇼 방송 보고 전화 준 거였지?

‘‘예, 정말 충격이었어요.’’

‘‘하하, 충격은 무슨.’’

‘‘정말이에요. 지금 인터넷 난리 났어요. 이거 반전의 반전의 연속. 한 편의 영화가 따로 없다고.’’

‘‘하하하. 그저 네티즌들이 즐거우셨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하지요, 하하하.’’

‘‘와! 정말! 어쩜! 호호호, 호호호.’’


영상통화는 아니지만 나는 신선혜가 지금 핸드폰을 손에 들고 뭘 하고 있는지 대충 감지할 수 있었다.

아까 전 스튜디오에서의 최웅처럼 나를 향해 연신 엄지척을 해 보이고 있을 것이다.


‘‘대구 오빠!’’

‘‘응?’’

‘‘농담이 아니라요.’’

‘‘응, 농담 아니라, 뭐?’’

‘‘존경해요.’’

‘‘응?’’


감격하고 있는지 그녀 목소리에는 심지어 물기까지 느껴졌다.


‘‘인간적으로 정말 존경한다고요.’’


그런데 내가 섬 타고 있는 여자 중에 신선혜만 이렇게 감흥에 젖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까 전 스튜디오를 나서기 전 한소라 역시 나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그녀가 나에게 스킨십을 했다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 그녀 역시 방송에서 보여준 나의 자비로운 대인배 풍모에 속된 말로 뻑이 간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섬 타고 있는 여자 중에 신선혜, 한소라 이렇게만 감흥에 젖어있는 것도 또 아니었다.


‘‘여, 여보세요.’’

‘‘아! 강소장님! 정말 오래간만이죠? 저 송주나에요.’’


몇 주 만에 WTN 간판 앵커 송주나로부터 드디어 연락이 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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