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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멕스님의 서재입니다.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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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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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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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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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5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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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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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1화

DUMMY

전직 국회부의장 발언 순서가 끝나자마자 나는 사회자에게 손을 슬쩍 들어 보이며 발언권을 신청했다.


‘‘예, 강소장님! 사색 다 끝나셨나요?’’

‘‘예. 사회자님, 제가 방금 전까지 진보 쪽이 200석을 넘게 얻을 거라고 했잖습니까?’’

‘‘예, 그러셨죠. 정확히 204석이었죠.’’

‘‘그걸 182석으로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예에?’’


나의 말에 사회자 뿐 아니라 게스트들 역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문창섭까지도.


‘‘왜요, 강소장님?’’

‘‘음, 이번 주에 새로운 돌발변수가 발생했으니까요. 진보 쪽 전략 공천으로 새로 영입된 인물들이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오르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공천심사위원장을 둘러싸고 권력다툼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요.’’

‘‘강소장님! 만약 그러시다면 미리 방송 초부터 말씀하셔야지, 갑자기 방송 도중에 그렇게 입장을 바꾸시는 게 어디 있나요?’’


고상하고 젠틀하기 그지없던 사회자도 나의 태도에 순간 화가 좀 난 모양이었다.

솔직히 입장 바꿔 생각해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무슨 방송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러나 나도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프롬프터 속 판세 데이터도 주식장 그래프처럼 시시각각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방금 전까지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강소장님! 그런 식으로 판세를 이야기하는 건 좀 무책임한 거 아닌가요? 어차피 검증할 수 없으니 매번 사람들 귀 솔깃하게 자극적으로 수치를 이리저리 부풀릴 수도 있고.’’

‘‘맞습니다. 이럴 바에 아예 지난번에 진보가 204석이 아니라 240석 가져갔을 거라고 하시지 그러셨어요? 일주일 만에 한 정당이 204석에서 182석으로 줄어든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에요. 선거 판세라는 게 무슨 그렇게 갈대마냥 쉽게 흔들리는 게 아니에요’’


같이 게스트로 나온 전 국회부의장이나 전 원내대표도 나를 향해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속으로 아무튼 요즘 젊은 것들 자극적인 것만 찾는 꼬라지하고는, 하며 혀를 끌끌 차고 있는 듯보였다.


‘‘죄송합니다. 아무튼 만약 오늘 선거를 하면 진보가 182석이 가져갈 것이라고 저는 벡프로 확신하고 있는 바입니다. 또 앞으로 선거 끝날 때까지 얼마든지 변화 가능하리라고 보고요. 사랑도, 사상도, 선거판세도 움직이는 거니까요.’’


사랑도, 사상도, 선거판세도 움직이는 거다.


문창섭이 중구난방에서 내가 자신에 대해 한 말을 김여중으로부터 전해들은 덕분일까?

그러니까 사랑이 움직이듯 문창섭의 사상도 움직였을 거라고 했던 나의 말.


내가 그 말을 하는 순간 맞은 편 문창섭 눈이 번뜩이는 게 느껴졌다.

이어서 그가 나를 쉴드쳐 주기 시작한다.


‘‘여론조사 업체 운영하는 제 입장에서 보면 방금 전 강대구 소장님이 했던 티케이 피케이 지역비교는 상당히 일리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티케이에 비해 피케이가 바람을 잘 타면서 캐스팅 보드가 될 수 있다는 말말이죠. 박 부의장님께서는 일주일 만에 20석이 날아간 걸 비현실적이라고 방금 그러셨지만,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피케이 지역이 지난주까지만 해도 진보 쪽에 힘을 실어주려고 하다가 요 며칠 진보 쪽 하는 거 보니 역시나 하면서 다시 관망세로 돌아서는 게 저희 여론조사에서도 관측되었거든요.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저와 강소장 판세 분석이 좀 차이가 많이 나지만 피케이 지역은 거의 비슷하게 나오는 것 같네요.’’


나의 판세 분석 의견과 반대 입장에 서 있는 문창섭이 나를 변호해 주면서 어느 정도 분위기가 일단락되게 되었다.



+++



생방송이 끝이 났다.

문창섭과 식사 약속을 잡은 여의도 한 식당에 이동 중에 잠깐 피드백을 살펴보았다.

지인들 감상문 문자들과 게시판을 보니 나에 대한 반응이 생각보다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예상대로 방송이 장난이냐, 신뢰가 안 간다, 일요토론 같은 품격 있는 방송에 어울리지 않는 게스트였다라는 비난 글이 많았지만,

의외로 일요일 아침 평소 졸린 방송인데 확 깨는 해프닝이었다, 일요토론에서 본 적 없는 돌발장면이라 흥미로웠다 등등의 반응도 있었다.


‘‘여기 의원 시절에 자주 왔던 곳인데, 나도 간만이에요.’’


고급 전복 요리집.

손님들 대부분이 의사당 쪽과 관계되어 있는 듯한 화이트칼라 내지 전문직인 분위기.


‘‘아이고, 차장님, 이게 얼마 만이에요?’’


문창섭이 식당에 들어서자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있는 여사장이 직접 마중을 나와 주었다.

그 옆으로 직원들 몇도 와서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 왔다.

단지 문창섭과 동행이라는 이유로 나도 사장님 이하 직원들에게 귀빈 대접을 받게 되었다.

마치 게임에서 몇 단계 레벨 업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멀쩡하게 칸막이는 있지만 조금만 목소리 높이면 옆방으로 소리가 다 새어가는 곳이에요. 어떻게 보면 여의도 축소판 곳이지요.’’


내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문창섭이 추천하는 전복 요리를 주문했다.

아직 서로 잘 모르는 사이다 보니 잠시 탐색전을 가지게 되었다.

문창섭이 내 이력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하였고, 나는 예의 바르면서도 낮은 어조로 그 질문들에 대답했다.


그리고 식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이야기도 본격적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문창섭이 굳이 나를 이렇게 따로 보고자 하는 이유가 조금씩 드러났다.

그것은 정말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강소장!’’

‘‘예.’’

‘‘원래 오늘 강소장 자리에 앉기로 했던 논객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예, 그러셨죠.’’

‘‘그 분이 일정이 생겨서 강소장이 대체하기로 된 거라 내가 그랬었죠?’’

‘‘예.’’

‘‘그거 내가 거짓말 한 거예요.’’

‘‘예?’’

‘‘내가 잘 아는 친구라서. 내 강의도 듣던 제자 같은 친구라서. 그래서 그냥 주저 앉혔어요.’’

‘‘주저 앉혔다는 말씀은 ......’’

‘‘피디한테 강소장 출연시키라고 할 테니까 이번 타임에는 좀 쉬라고 했죠.’’

‘‘예? 아! 예.’’


서론부터 정보기관 고위관계자 출신다웠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까지 저를 ......’’

‘‘그 판세 분석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듣고 싶어서 ......’’

‘‘아! 예.’’

‘‘...... 그런 건 아니에요.’’

‘‘예?’’


문창섭이 씩 웃어보였다.

원래 잘 웃는 인상이 아니기에 순간 나는 뜨끔했다.


당에서 활동할 때는 주로 판을 짜는 전략가였고, 이후 청와대에 들어가서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수석, 다음으로 국정원에 들어가서는 실세 차장.

한 마디로 정치 인생 전체가 겉으로 드러나기보다는 뒤에서 뭔가를 꾸미는 인생이었다.


준 선글라스 급으로 색이 많이 들어가 있는 그의 안경.

마치 자신의 속내를 쉽사리 드러내기 싫어하는 그의 성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악세서리 같아 보였다.


‘‘그럼, 대체 무슨 일로?’’

‘‘강소장님이랑 같이 손잡고 일을 한 번 해볼까 싶어서요. 강소장님에 대해서는 굳이 오늘 같이 출연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라.

그냥 일반인이 하는 말이면, 아니 일반 정치인이 하는 말이라면, 인터넷 검색 좀 하고 인맥 동원해서 평판을 알아봤다든지 하는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정보기관 최고위층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등골이 오싹해졌다.


‘‘ ....... 그래서 충분히 능력이 검증된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휴우.

하긴 뭐 프롬프터가 나타난 이후 내 능력은 뭐 거의 뭐 굳이 뭐 언급할 가치가 뭐.


‘‘그래서 제가 앞으로 하려고 하는 프로젝트에 혹시나 강소장님이 같이 할 수 있을까 해서요.’’

‘‘어떤, 프로젝트를 말씀하시는 건데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문창섭이 다시 또 슬쩍 미소를 지어보였다.


‘‘강소장님!’’

‘‘예.’’

‘‘기분 나쁘실지 모르겠지만 .....’’


문창섭이 한층 목소리를 낮추었다.


‘‘예?’’

‘‘핸드폰 좀 여기 꺼내놓을 수 있으시겠어요?’’

‘‘예? 아! 예. 그, 그러죠.’’


내가 핸드폰을 상 위에 올려놓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금 녹취를 하지 않고 있다는 걸 대놓고 화면을 켜서 보여주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말하고자 하는 프로젝트가 대외비인 건 이해하신 걸로 알고요.’’

‘‘예.’’

‘‘목소리도 지금부터는 좀 낮춰서 이야기하도록 하고요.’’

‘‘예,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혹시 강소장님은 저희 여론업체 투자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예?’’

‘‘정가 일각에 이런저런 소문들이 이미 나있는데.’’


중구난방 녹화 도중 나타난 프롬프터에서는 후원자에 대해서 보수 진영 재력가라고만 나왔었다.

그런데 굳이 그것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는데요.’’

‘‘예, 그러시군요. 저희 여론업체 투자자는 예지호 사무총장 쪽 사람입니다.’’

‘‘예에? 예, 예지호 사무총장이요?’’

‘‘정확히 예지호 사무총장은 아니고요. 그쪽 집안 분이십니다.’’


예지호 IMF 현 사무총장.

20세기 말 국가적 굴욕을 안겨 주었던 IMF의 현 수장.

그가 사무총장에 임명되자 국민들은 마치 오랜 한을 푼 것처럼 열광했었다.


내년 임기가 끝나는 그가 다시 재선에 도전하지 않는 한

차기 대권에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

그런 그가 문창섭 여론조사 업체랑 연결되어 있다니.


지금 프롬프터는 뜨지 않고 있었다.

대신 내게는 잔머리와 눈치가 있었다.


논리와 지식이 부족해서 1티어 시사평론가는 되지 못했지만

잔머리와 눈치 덕에 그래도 시사평론가라는 타이틀을 근근히 유지했던 나이다.

그 잔머리와 눈치를 가지고 대충 지금 상황을 재빨리 정리해 본다.


그러니까 예지호는 IMF 사무총장 연임보다 대권에 관심이 있는 상태.

워낙 스펙 경력에 열광하는 울 나라 국민 성향상 초 엘리트 경력에 IMF 사무총장이라는 이력만으로 충분히 그를 유력 주자에 자리매김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권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캠프가 구성되어야 하고 내로라하는 지략가들이 모여 킹 메이킹을 해주어야 가능하다.


아마 그것을 위해 예지호는 당대의 지략가 문창섭에게 접촉을 한 모양이었다.

마침 자신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진보 진영에 회의감을 절실히 느끼고 있던 문창섭은 정치색 별로 없는 관료 출신 예지호에게 때맞춰 매력을 느꼈을 것이고.


처가가 재벌급인 예지호 입장에서 자금 걱정도 별로 없을 것이다.

문창섭의 신생 여론조사 업체도 아마 예지호 처가 쪽 인사가 투자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문창섭은 이번 총선을 자신의 여론조사 업체를 통해 판을 얼마나 흔들 수 있는지 리트머스 시험지로 써 먹고 있는 것이다.

진짜는 2년 후 대권일 것이고.


의외로 배경 설명은 쉽게 그림 그려졌다.

그런데 정작 진짜 질문은 이것이었다.


하필 나를 왜?

솔직히 내가 요즘 좀 치긴 하지만, 그래도 문창섭 정도면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내노라하는 인재들은 바로 끌어모을 수 있을 텐데.

국회 근처에도 가 본 적 없고 그저 방송에서 입만 털고 있는 나를 굳이 왜?


‘‘왜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강소장을 영입하려고 하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확실히 정보기관 고위관계자 출신다웠다.

문창섭이 마치 지금 내 머릿속을 꿰뚫고 있는 듯한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제가 요즘 시사 방송 쪽에서는 좀 뜨고 있기는 하지만, 하하’’


내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얼굴마담이 필요해서죠.’’

‘‘예? 얼굴마담이요?’’

‘‘예, 얼굴마담이요.’’

‘‘제가 ...... 얼굴마담 역할이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은 설명이었다.

보통 얼굴 마담이란 건 그래도 허우대는 멀쩡한 사람이 맡아야 돼는 거 아닌가.

나는 그 쪽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인물인데.

얼굴마담보다 삐끼, 웨이터 뭐 이런 것과 어울리는 인물인데.


그런데 이어지는 문창섭 설명을 들으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그가 괜히 당대의 지략가로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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